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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체제 족쇄 벗어야 한국 미래 있다!!! [현장N]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제주4.3특별법 개정안 국회 통과 규탄[제주4·3평화기념관] 4.3폭동사건[남로당주관]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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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체제 족쇄 벗어야 한국 미래 있다!!!

전민정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대표 [펜앤초대석]

[제주4·3평화기념관]   4.3폭동사건[남로당주관]

□ 제주4·3폭동반란사건이란???

 

1948년 4월 3일 남로당중앙당과 남로당 전남도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제주島당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남한을 북한에 수립된 김일성 공산주의 정권의 통치영역에 포함하기 위하여 일으킨 폭동 반란으로서, 1957년 4월 2일 마지막 인민유격대원을 체포하여 사건을 완전히 종결할 때까지 만9년간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다.

 

1. 1948년 4월 3일 남로당제주도당은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려고 무장 반란을 일으켜 1,756명을 살해했음1)

2. 1948년 5·10제헌의원 선거 때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유일하게 북제주 2개 선거구 선거를 파탄 내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했음2)

3. 1948년 5·10선거 때 선거인 등록율 91.7%, 투표율 95.5%로 국민 절대 다수의 참여와 지지로3)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8년 7개월 17일 간 항적했음.

4. 4·3주동자 김달삼(본명 이승진)은 박헌영 지령에 따라 살인 방화 테러로 지하선거를 실시하여 52,350명 투표지를 가지고 월북하여 북한정권 수립에 앞장섰음4)

5. 1948년 10·19여순반란사건 직후인 10월 24일 제2대 인민해방군 사령관 이덕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여 항적함5)

6. 김달삼은 1949년 8월 북한 강동정치학원 출신자 300명으로 구성된 제3병단을 이끌고

태백산지구에 남파되어 대한민국 전복을 획책했음

7. 4·3 주동자 김달삼 안세훈 강규찬 고진희 이정숙 문등용은 월북하여 북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어 북한정권 수립에 앞장섰음7)

8. 6·25전쟁 직후 국운이 백척간두에 처했을 때 남로당 제주도당은 각 읍․면 별로 인민군지원환영회를 조직하여 빨치산과 합세, 공세를 강화하고, 북한인민군이 상륙하면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 전복을 획책했음

9. 4·3주동자 안세훈 강규찬 고진희 조몽구 등은 6·25 때 북한인민군과 함께 남침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하였음

10. 제주4·3발발의 주체는 남로당이고 남로당은 조선공산당의 후계체이며 남로당강령은 마르크스 · 레닌 사상에 입각한 공산주의체제 국가 건설을 목표로,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 건국 이후에도 계속 항적하였음.

11. 남로당제주도당 인민유격대원들은 인공기를 곳곳에 게양하였으며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며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하였음

12.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CNN방송의 ‘문답 아시아’ 프로 그램에 출연하여 ‘제주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다고 전 세계에 천명하였음

13. 남로당제주도당 대정면당 위원장 이운방은 4·3‘주동자는 빨갱이로 봐야지, 최종

목적은 공산주의니까. 그들의 우선 목적은 통일조국 건설이고’라는 증언을 하였음

14. 제주도민전 문화부장으로 1947년 3·1기념투쟁을 진두지휘한 김봉현이 일본으로 도피해서 김민주와 함께 쓴 책에서도 3회나 4·3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위한 투쟁이라고 명기했다.

 

1. 우리나라 초기 공산주의의 배경

1919년 거족적인 3·1 독립운동으로 국권 회복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일제의 탄압은 가혹해졌다. 이때 백성들의 마음을 강하게 유혹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당시는 1917년 11월, 러시아에서 레닌의 주도 하에 일어난 볼셰비키 당에 의한 폭력 혁명이 성공한 이후로서, 전세계적으로 공산화의 물결이 급속히 확산되는 때였다.

공산당은 소비에트 정부의 후원 아래 공산화를 목적으로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이런 배경으로 공산주의는 애국지사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파급되었고, 이를 선두에서 지휘했던 자가 박헌영이다. 공산당 조직은 3·1 운동이 있은 지 6년 만인 1925년 4월 17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박헌영, 김재봉, 윤병덕, 김약수 등 20여 명이 조선공산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2. 해방 이후 공산주의의 확산

(1) 38선으로 분단된 조국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터뜨리자, 소련은 만주에 있는 일본군을 점령하고 곧이어 한반도를 향해 진격했다. 이에 미국은 38선을 그어, 38선 이북은 소련이 일본의 항복을 받고, 38선 이남은 미국이 항복을 받기로 결정했다.

 

(2) 박헌영의 등장과 조선인민공화국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의 갈림길에서 혼란과 무질서에 휩싸였고, 숨어 있던 공산주의자, 해외에서 돌아온 좌익 세력들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45년 8월 17일, 여운형을 중심으로 ‘건국준비위원회’가 세워졌는데, 이는 당시 가장 큰 정치단체였다. 이후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은 건국준비위원회를 흡수하여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급조해 창건했다.

하지만 1945년 10월 말부터 있었던 ‘위조지폐사건’은 당시 급속도로 번져가던 조선공산당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조선공산당에 의한 위조지폐 발행 사실이 탄로 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박헌영은 미군정의 체포령을 피해 38도선 부근의 이북 해주로 월북했고, 남한에 있는 공산당원들과 프락치를 조종하여 대대적인 폭동을 계속 일으켰다. 그 전초전이 바로 1946년 ‘대구 10·1 폭동 사건’이다.

 

3. 1946년, 대구 10·1 폭동 사건

(1) 대구 10·1폭동 사건의 전개

10·1폭동이 있기 전부터 우리나라 식량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당시에는 미군정이 쌀을 모아 균등하게 배급하는 ‘쌀 배급제’가 실시되었는데, 쌀값의 폭등으로 인해 백성들의 반미 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남로당은 수많은 민중들을 선동하여 반미 시위를 일으키며 박헌영의 위조지폐 사건을 덮으려 했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역에 수천명의 노동자가 모여 반미 시위를 벌였다. 경찰 150여 명이 경계만 서고 있는 상태에서 대구역 조선노동조합 대구지역평의회 사무실 2층에서 갑자기 “경찰 저놈들 죽여라”는 고함과 함께 경찰에게 돌을 사정없이 던졌다. 깜짝 놀란 경찰은 2층의 노동자들을 향하여 사격했고, 당시 연탄 공장에서 근무하던 황말용이 경찰의 사격으로 죽었다. 경찰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대구 전역으로 퍼졌고, 이 일로 좌파 간부들은 10월 2일 노동자들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10월 2일 오전 9시, 대구의과 대학생 네 명의 학생들이 병원에서 콜레라로 죽은 시체 4구에 시트를 덮고, ‘어제 대구역에서 경찰에 의해 죽은 시체’라는 거짓말로 학생들을 선동했고, 오전 10시 반경 대구경찰서에 도착했다. 공산당 도당 책임자 장적우가 경찰이 먼저 무장해제 하면 군중을 해산시키겠다고 대구 경찰서장 이성옥에게 압력을 넣었다. 이 말을 믿은 이성옥 서장은 경찰들에게 무장해제를 명했으나, 시위대들은 경찰서 안으로 진입하여 대구 경찰서를 장악했다.

 

(2) 경북·경남·전남 지역 등 전국으로 폭동 확산

조선공산당 시위대들은 50~100여 명씩 조를 짜서 탈취한 자동차로 경북 22개 군청과 경찰서로 출발하여 점령했다. 대구 시내는 폭도로 변한 군중이 경찰의 몸을 칼과 도끼로 난자하며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다. 대구에서의 10·1폭동을 계기로 조선공산당은 각 지방당부에 ‘호응 투쟁’을 전개하라는 지령을 내려, 폭동은 남한 전역의 73개 시군에 파급되어 갖은 난동과 만행이 저질러졌다.

 

(3) 대구 10·1 폭동 사건의 결과

대구 10·1폭동 사건으로 경찰 38명, 공무원 163명, 민간인 73명이 사망하였고, 부상 1천명, 776동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대구 10·1폭동은 겨우 진압되었지만, 시위 주동자들은 태백산과 소백산으로 숨어들어 우리나라 빨치산의 시작인 ‘야산대’를 만들었다.

1946년 8월 28일 이북에서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북조선노동당(약칭: 북로당)의 창립대회가 열렸다. 남한에서도 1946년 11월 23일 박헌영을 중심으로 남조선노동당(약칭: 남로당)이 출범했다. 남과 북에 두 개의 공산당이 창당된 것이다. 김일성은 1948년 2월 6일 ‘북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헌법을 채택하고 지폐를 발행하며, 사실상 북한쪽에서 단독 정부를 먼저 수립했다.

 

1948년, 제주 4·3 폭동 사건

(1) 한반도의 최남단, 제주도의 공산당 조직

제주도는 육지인 목포로부터 141.6km, 부산으로부터는 286.5km 정도 떨어져 있다. 진압이 어렵다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해방 직후부터 친북 좌파들의 활동이 극렬히 전개되었다. 해방 이후 제주도에는 1945년 12월 9일 좌익계 인사들만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제주도위원회’가 창립되었고, 1946년 11월 23일에는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당시 제주도 마을 사람 거의가 사상이나 노선도 모르고 남로당에 가입했으며, 헌병대, 정보기관, 경찰관 등을 제외하고는 온통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회의 세상이었다. 미군정이 있기는 했으나, 해방 직후에 결성된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1947년의 3·1발포 사건까지 사실상 제주도 전역을 지배한 자치 행정 기구였고, 그 배후에는 남로당이 있었다.

 

(2) 1947년, 제주 3·1 발포 사건

1947년 3·1절 행사는 친탁과 반탁, 좌와 우의 격돌장이 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충돌이 일어났다. 제주도에는 우익이 약하여 아예 좌익과 다툴 힘이 없었고, 결국 경찰과 대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 3·1절 기념 투쟁에 참가한 인원은 25,000명이며, 그중 좌익 단체 소속만 17,000명이었다. 남로당 지지 청년들은 “미군정은 물러가라”, “친일파를 처단하라”등을 외치며 군중을 선동하여 쏟아져 나갔다. 긴박한 상황에서 골목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5~6살 난 어린이가 기마경찰관 임영관 경위의 말에 부딪혔고, 좌익 청년들과 사람들이 임영관 경위를 끌어내리려는 소동이 벌어졌다. 미군정의 허락을 받은 경찰이 총을 쏘자 군중은 삽시간에 도주했고, 이 불행한 사태로 타살된 경찰관 한명을 포함해 7명이 죽고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남로당은 경찰관이 위급한 상황에서 정당방위로 일으킨 순간의 실수와 돌발적인 상황을 부풀렸고, 마치 상부에서 의도적으로 발포 명령을 내린 것처럼 꾸며서, 시민들에게 경찰에 대한 악감정을 갖도록 선동하였다. 결국 제주 남로당은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빌미로 1947년 3월 10일부터 북군청을 제외한 제주도 모든 행정기관, 학교, 회사, 은행, 교통, 통신기관과 민간 기업 등 156개 단체, 41,211명이 참가한 ‘제주도 총파업’에 들어갔다. 미군정에서는 발포 사건의 장본인 이문규 순경을 파면하고, 제주 군정장관, 제주 도지사, 제주 검찰청장, 제주 경찰 감찰청장등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함으로써, 1947년 4월 말 제주도 총파업 사건은 수습되었다.

 

(3) 5·10선거 반대를 위한 2·7 폭동 사건

1948년 2월에,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남한만의 단독 선거일이 1948년 5월 10일로 확정되었다.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려던 박헌영은 합법적인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고, 지령을 내려 2·7 폭동과 4·3 사건을 일으켰다. 1948년 2월 7일, 남로당은 당원 30만 명을 동원하여 전국적으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2·7 폭동 사건을 일으켰다. 다리가 폭파되고 운수, 전신, 전화의 파업이 일어났고, 남한의 행정기관들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서울과 각 지방에서는 ‘민주학생연맹’의 지휘 아래 일부 학생들이 동맹휴학에 들어갔고, 농민과 노동자들이 경찰서와 지서를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제주도에서도 2월 7일 새벽을 기하여 일제히 도내 경찰을 습격하여 많은 살상과 방화를 하였다. 소위 ‘인민해방군’으로 개편된 이들은 소총과 수류탄, 일본검, 죽창으로 무장하여 경찰관을 생매장하고, 경찰 지서장을 살해하며 폭도화되었다. 2·7 폭동은 약 2주간 지속되었고, 폭도들은 한라산 전역에 전투기지를 구축하고 4·3폭동까지 이어나갔다.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48년 4월 3일 새벽 2시부터 제주도 12개 지서를 일제히 습격하여 경찰, 공무원, 그 가족 등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면서 시작된 무장폭동이었다. 이후 공산주의자들은 선량한 제주 시민을 선동하여 북조선 건국선거에 참여하게 하고 대한민국에는 선전포고 및 살상, 방화, 약탈을 자행하며 인공기 게양, ‘김일성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며 7년간이나 대한민국에 항적하였다.

 

무고한 양민의 희생에 대한 원인과 책임은 공산당에 있다.

 

공산주의 이념에 물든 폭도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희생되었던 것은 공산반란군이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양민을 끌어들여 희생을 유도하였기 때문이다. 군경 입장에서는 피아를 구분하기 어려운 불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경진압을 하였던 것이며, 이로 인한 희생에 대해 군경의 위법성 또는 책임은 인정될 수 없다. 무고한 희생자 없이 무장내란을 진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진압의 결과 2년 후 6.25남침이라는 위기로부터 대한민국을 건졌다는 점에서 진압군의 책임은 면책되고 희생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폭동과 내란의 주범인 남로당에 있다. 정부는 북한군과 남한 좌익들이 12만 8천명의 남한 양민을 학살한 역사부터 진상규명하여 처벌하고 배상을 물어야 한다. 제주4.3이 남로당의 무장폭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김대중(도요타다이쥬) 대통도 인정하였다.

 

​제주4.3보고서는 4.3사태의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제주4.3특별법의 제1차적 목적은 진상규명이었다. 그러나 제주4.3보고서를 작성한 자들은 4.3의 진실을 감추었다. 폭동을 봉기로, 폭도를 희생자로 둔갑시키기 위해서 폭도의 만행을 감추었던 것이다. 따라서 4.3보고서는 남로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해 일으킨 내란이었음을 규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공권력에 의한 양민 희생과 희생자 명예회복만을 부각함으로써 4.3사태가 공산폭동반란이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은폐 · 왜곡하였다. 1948년 4월 3일 좌익폭도들은 어린아이들까지 살상하고 남한 선거 반대, 북한 선거 지지를 하였고, 1948년 10월 24일은 2대 폭도사령관 이덕구가 대한민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였는데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들을 빼버렸다. 심지어 폭도들이 군경복장을 하고 마을을 여러 차례 습격, 살인, 방화를 자행하여 이를 군경에게 뒤집어씌웠다. 이런 왜곡의 결과로, 제주4.3 평화기념관에는 남로당의 만행에 대한 전시물은 찾아 볼 수 없고, 이승만 정권이 양민을 학살한 것처럼 전시하고 있다. 공비토벌을 학살로 규정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무시한 채 군경을 죽인 2,500여명의 살인폭도를 희생자로 결정하는 죄악을 범하고 있다.

 

​폭동이고 반란인 사건은 국가가 보상하고 기념할 사건이 아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은 국민 화합적 차원에서 필요하다. 4.3사태의 가해자는 공산폭도이며 따라서 4.3사태의 무고한 희생자는 원칙적으로 공산폭도와 그 유족에게 배상을 청구해야 옳다. 국가는 무고한 피해자에 대해서만 보상하는 것이지 폭도까지 보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해자측이 역사적 진실을 통해 잘못을 인정한다면 국민화합 차원에서 배상책임을 감면받을 수는 있다. 국가가 폭동과 반란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추념하거나 보상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 되는 것이므로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제주4·3사건 진행과정

1948년 4월 3일

제주4·3사건 발발

4개월 12일 간

무장폭력 건국 방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8년 7개월 17일 간

대한민국에 항적

1957년 4월 2일 마지막 공비 오원권 생포

제주4·3사건 종결(만 9년)

 

이때 자유 민주주자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은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자유민주주의로 건국을 해야하고 남한만 이라도 자유선거를 통해 정부를 수립 대한민국을 세워야 한다고 순회연설과 국민계몽을 해나갔다. (정읍 발언)

 

유엔의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였으나 ,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김구와 김규식 등 소수 유명인사들은 반대하였다. 이들 의견을 따랐다면 우리는 민족끼리 공산화 아니면 대한민국은 탄생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한은 1948년 5.10일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위하여 총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결국 북한에는 김일성이가 공산주의 괴뢰정권을 만들었고(1946년) 남한에는 이승만에 의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1948.8.15) 되어 유엔은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하였다.

 

이과정에서 공산당은 남한의 대한민국 건국을 막으려고 1946년 부터 전국적으로 9월총파업, 대구폭동,

 

제주 4.3폭동, 여순반란 사건 등등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파업과 폭동과 테러를 일으킨다.

 

(* 에피소드: 이때 전국적인 파업활동 지원자금 공급을 위해 박헌영이 주도한 "정판사 위조지폐 "를 발행하게 된다

 

이 사건이 발각되자 박헌영은 시체로 위장하여 월북하게 되고 이때부터 김일성에게 주도권을 완전히 빼았기게 되었으며,

 

6.25사변시 남한의 남로당 지하조직 "20만 봉기" 설의 책임을 물어 1957년 처형 되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북으로 도주한 박헌영의 사생아는 지금도 남한에 버젓이 생존하여

 

반정부적인 활동을 계속 하고 있으며 1980년대에는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 합하여 xx민족연구소를 설립

 

전교조와 검인정 교과서의 원천을 제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처형된 위조지폐범 발행책 박종락의 손자(박지원)도 생존해 현재 호남의 거물 정치인으로 맹 활동중에 있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도 건국에 기여했다는 괴설로 법을 바꾸어 유공자로 대접 받으며 잘 살고있다.

 

제주4.3사건 당시인 1949년 2월 2연대 특공대 장병들이 무장대로 가장했다. 당시 토벌에 나선 군인들이 무장대로 변장해 주민들의 사상을 검열한 사실이 확인됐다. 왼쪽 아래에 ‘폭도로 가장코’라는 설명이 뚜렷하다.

 

원래 소박한 제주도는 1921년 일본 유학생이며 일본공산당 에서 활동하던 김영식이라는 자에 의해 제주도공산당을 일찍 부터 결성 하였다. 제주도는 지역의 고립성과 문맹율이 높은 특성으로 80%이상이 공산주의에 쉽게 현혹되었고 남로당조직이 광범위하게 퍼져 영문모르게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를 경계하는 치안 조직 경찰에 뜻하지 않게 사건이 발생했다

 

1947년 3.1 절 기념행사에 출동한 제주경찰 기마대의 말의 눈을 누군가 찔러 말이 놀래 근처에 있던 어린애에 부상을 입히게 되었고 경찰의 사과후에도 일련의 군중이 의도적으로 경찰서로 몰려가고 이것을 경찰에 대한 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발포,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다. 이후 제주도 남로당은 5.10 선거반대. 대한민국 건국반대.스탈린 ,김일성, 박헌영 만세를 주장하며 파업과 시위와 테러를 지속적으로 감행했다

 

드디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4시 사이에 제주남로당 무장 유격대가 제주도내 경찰서 12곳을 습격하여 경찰과 경찰가족 선거관계자 우익주민 27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다수의 경찰가족을 산으로 납치하였다.

 

주동자는 대구폭동 에 가담하고 은밀히 잡입한 김달삼이란 자에 의해 주도되었다. 결국 남로당의 공격과 방해로 5.10 선거에서 제주도 3개 투표소중 2개소가 무효투표로 처리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 되었으나 전국적인 공산주의 세력의 파업과 시위와 테러는 계속 자행되어 정부적 차원에서 일종의 특단의 조치가 내려지게 됐다.

 

* 이승만 대통령의 특단 조치 요약은

 

1,자유 대한으로 전향하라!

2,아니면 재산정리해서 북한으로 가라!

3,그렇치 않으면 소탕하겠다.

 

전국적으로 약 9만명이 재산을 정리해서 북으로 갔고 서울대 교수의 절반인 50%가 북으로 가게 되었다. 생계와 특수 목적의 전향하지 않은 공산사회주의자들은 식량이 풍부한 호남지역의 지리산, 월악산 그리고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과 제주 한라산 등으로 숨어 들어가 후일 6.25사변시 빨치산의 원천지가 되었다.

 

제주도 빨치산은 1957년이 되서야 겨우 소탕하게 되었다.

 

제주도에는 1948년 11월 21일 계엄이 선포되고 조직적인남로당 무장유격대 약 350명의 소탕작전이 시작된다.

 

상당수의 볼모로 잡힌 주민들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 남로당 유격대는 산위에 있고 산중간에는 민간인이 거주하여 남로당이 산중간에서 보급을 받고 활동함으로 소탕에 어려움이 있고 남로당이 산중 거주 주민으로 위장 활동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심지어 한 집안에서 형은 볼모로 잡힌 빨치산, 동생은 경찰일 정도였다 하니 혼란이 말이 아니었다.

 

이후 산중간의 민간인 분산 작전이 실시되어 해안가 5km이내로 이주하도록 조치하고 남아있는 민간인은 남로당 폭도로 간주 살육이 자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뒤 따랐다.

 

기간중 민간인 1만4천여명과 군경 토벌대 1천7백여명이 전사, 사망하였다.

 

소탕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김달삼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 간부들은 이미 북한으로 몰래 빠져나갔다.

 

1949년 6월 제주남로당 총사령관 이덕구가 체포되었고 남로당폭도들의 증언에 의하면 , 몇개월내에 인민공화국을 건설한다고 독려하였다고 한다.

 

1949년 10월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북한은 다음해 1950년 6.25일에 즉시 기습남침을 단행하였다.

 

1948년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한것은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만약 그당시 이승만대통령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건국이 실패했다면

 

현재 우리는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되었을 것이다.

 

정의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역사적 배경

광복 직후 제주사회는 6만여 명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의 창궐, 극심한 흉년 등으로 겹친 악재와 미곡정책의 실패, 일제 경찰의 군정 경찰로의 변신, 군정 관리의 모리(謀利) 행위 등이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 참가했던 이들의 시가행진을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사함으로써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3·1절 발포사건은 어지러운 민심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조직적인 반경찰 활동을 전개했고,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민·관 총파업이 이어졌다. 미군정은 이 총파업이 경찰 발포에 대한 도민의 반감과 이를 증폭시킨 남로당의 선동에 있다고 분석했지만, 사후처리는 경찰의 발포보다는 남로당의 선동에 비중을 두고 강공정책을 추진했다.

 

도지사를 비롯한 군정 수뇌부들을 모두 외지인으로 교체했고 응원경찰과 서북청년회원 등을 대거 제주로 파견해 파업 주모자에 대한 검거작전을 벌였다. 검속 한 달 만에 500여 명이 체포됐고, 1년 동안 2,500명이 구금됐다. 서북청년회(이하 ‘서청’)는 테러와 횡포를 일삼아 민심을 자극했고, 구금자에 대한 경찰의 고문이 잇따랐다. 1948년 3월 일선 경찰지서에서 세 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해 제주사회는 금방 폭발할 것 같은 위기상황으로 변해갔다.

 

경과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총성과 함께 한라산 중허리의 오름마다 봉화가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봉기의 신호탄이 올랐다. 350명의 무장대는 이날 새벽 12개의 경찰지서와 서청 등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했다. 무장대는 경찰과 서청의 탄압중지,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촉구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무장봉기가 발발하자 미군정은 이를 치안상황으로 간주하고 경찰력과 서청의 증파를 통해 사태를 막고자 했다. 그러나 사태가 수습되지 않자 군대에 진압출동 명령을 내렸다. 당시 국방경비대 제9연대의 김익렬 중령은 경찰·서청과 도민의 갈등으로 발생한 사건에 군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귀순작전을 추진해 4월 말 무장대측 책임자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대동청년단원이 일으킨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평화협상은 결렬되고, 제9연대장은 교체되었다. 미군정은 제20연대장 브라운 대령을 제주에 파견하여 5·10 선거를 추진했다.

 

5월 10일, 전국 200개 선거구에서 일제히 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제주도의 세 개 선거구 가운데 두 개 선거구가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됐다. 제주도가 남한에서 유일하게 5·10 선거를 거부한 지역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결국 5·10 선거 후 강도 높은 진압작전이 전개됐다.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제주도 사태는 단순한 지역 문제를 뛰어넘어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승만 정부는 10월 11일 제주도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제주에 증파시켰다. 1948년 10월 17일 제9연대장 송요찬 소령은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포고령은 소개령으로 이어졌고, 중산간 마을 주민들은 해변마을로 강제 이주됐다.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중산간 지대는 초토화의 참상을 겪었다. 11월 중순께부터 이듬 해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진압군은 중산간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했다. 중산간 지대에서 뿐만 아니라 해안마을에 소개한 주민들까지도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희생되었다. 그 결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입산하는 피난민이 더욱 늘었고, 추운 겨울을 한라산 속에서 숨어 다니다 잡히면 사살되거나 형무소 등지로 보내졌다. 4개월 동안 진행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방화되었고, 마을 자체가 없어져버린 이른 바 ‘잃어버린 마을’이 수십 개에 이르게 된다.

 

1949년 3월 제주도지구 전투사령부가 설치되면서 진압과 선무를 병용하는 작전이 전개됐다. 신임 유재흥 사령관은 한라산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이 귀순하면 모두 용서하겠다는 사면정책을 발표한다. 이때 많은 주민들이 하산했고, 1949년 5월 10일 재선거가 성공리에 치러졌다. 1949년 6월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가 사살됨으로써 무장대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보도연맹 가입자, 요시찰자, 입산자 가족 등이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붙잡혀 집단으로 희생되었다. 또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4·3사건 관련자들도 즉결처분되었다.

 

결과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3 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 4·3사건은 7년 7개월 만에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된다.

 

1980년대 이후 4·3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각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0년 1월에 「4·3특별법」(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공포되고, 이에 따라 8월 28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어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2003년 10월 정부의 진상보고서(『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4·3평화공원 등이 조성되었다.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4·3사건의 인명 피해는 25,000∼30,000명으로 추정되고,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9,285동이 소각되었다. 4·3사건진상조사위원회에 신고 접수된 희생자 및 유가족에 대한 심사를 마무리한 결과(2011. 1. 26 현재), 희생자로 14,032명과 희생자에 대한 유족 31,255명이 결정됐다.

 

의의와 평가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지역 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4·3특별법 공포 이후 4·3사건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21세기를 출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제주도는 2005년 1월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후일 좌편향 민족사관의학자들에 의해 태생적 원인과 배경을 쏙 빼고 군경에 의한 무차별 주민 학살사건으로 만 편향 왜곡 기록되고 있다.

 

좌편향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들 이라는 시각이니 대한민국의 화합이 아직도 멀 뿐이다.

 

기념관은 지하 2, 지상 3층 연면적 11455규모로, 한라산과 산방산에 얽힌 제주의 '설문대할망' 설화를 바탕으로 4·3을 담는 그릇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내부는 기념·추모의 공간,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는 엄정한 공간, 역사교육 및 교훈의 공간, 제주의 향토성을 바탕으로 한 한국 현대사의 전문 역사관, 과거사 청산 및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복합공간 등으로 구성됐다.

 

지하 1층에는 4·3영상 상영, 세미나, 마당극 등의 장소로 활용되는 대강당과 4·3 유물 및 전시자료의 보존관리를 위한 수장고, 상설 전시실 등을 갖췄다.

 

또 지하 1층에는 1945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4·3원인, 전개, 결과, 후유증, 진상규명 과정이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프롤로그를 포함한 6개의 상설 전시관 공간과 다랑쉬굴, 해원의 폭낭의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되고 있다.

 

지상 1층에는 4·3 관련 문화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시실과 어린이 눈높이에서 4·3사건을 이해하도록 하는 어린이체험실 등이 꾸며졌고, 지상 2층은 4·3 아카이브와 열람실, 교육실 등이 있다.

 

지상 3층은 학예연구실과 세미나실로 활용된다. 동판을 산화시켜 푸른빛이 도는 4·3 평화기념관의 외곽 한편에는 독일 베를린시가 지난해 기증한 평화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높이 3.4, 너비 1.2크기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2개가 설치돼 눈길을 끈다.

전시관 둘러보기

 

1'역사의 동굴'(프롤로그)

 

1관은 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 완성되지 않은 4·3의 역사를 프롤로그 형태로 보여준다. 제주4·3의 전 기간을 통하여 화산섬 제주도의 중산간 지대에 산재한 천연동굴들은 주민들에게는 천혜의 피신처로 활용되었다.

 

동굴을 모티브로 한 전시관으로 통하는 긴 터널은 4·3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 관문이기도 하다. 이는 오랫동안 지하에 묻혀 있던 역사적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터널을 지나면 원형의 천창 아래 누워있는 백비(비문 없는 비석)’를 만나게 된다. 4·3은 아직도 정명(正名)되지 못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비로소 비문이 새겨질 것이며, 누워 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이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2'흔들리는 섬'(해방과 좌절)

 

2관은 전쟁-해방-자치-미군정-3·1발포 사건-탄압의 순서로 일제(日帝)로부터의 해방과 자치, 미군정 실시에 뒤이은 제주시 관덕정, 3·1 발포사건 등이 소개한다.

 

해방 이후 제주도민은 자치를 시행해 나가지만 3·1절 기념대회에서 민간인 6명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제주도민과 미군정의 갈등과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194843일의 무장봉기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3'바람타는 섬’(무장봉기와 분단 거부)

 

3관은 194843일 새벽에 일어난 5.10 단독선거를 반대한 무장봉기의 발생 과정과 배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남과 북에 2개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굳어져가는 분단과정을 보여준다.

 

향후 초토화 작전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5·10단선·단정반대사건을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연출되었다. 이 공간에는 오름을 상징하는 중앙부와 오름 위의 상황을 묘사한 강요배 화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4'불타는 섬(초토화와 학살)

 

4관에서는 초토화 작전과 민간인 대량학살, 그 이후 한국전쟁 기간 형무소 재소자 학살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4·3사건 희생자의 80% 이상은 이때 희생된다.

 

원통형의 하얀 방, 벽에는 죽음의 다양한 형상들이 하얀 붕대로 둘러싸인 부조물로 표현되어 제주도는 죽음의 섬으로 변하는 모습을 각각 보여준다.

 

5'흐르는 섬’(후유증과 진상규명 운동)

 

복구와 정착 그리고 후유증, 진상규명운동으로 나누어 4·3의 상처와 아픔, 그 회복과정을 보여준다. 진상규명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는 오랜 기간 도민의 투쟁에 의해 200014·3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그 결실을 맺었다. 이 공간에는 4·3 진상규명을 위한 다양한 역사적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6'새로운 시작'(에필로그)

 

6관에서는 제주사람들은 4·3의 역사적 상처를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풀어가고 있다. 이곳은 4·3의 아픈 기억을 통하여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맨 끝의 출구 통로에는 4·3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 공간은 희생자를 기리는 한편 어두운 터널에서 다시 광영천지로 빠져나오는 재생의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19924.3사건 당시에 희생된 주민 유해 11구가 발견된 제주시 구좌읍의 '다랑쉬굴'을 그대로 재현한 특별전시공간이 마련됐고, 실외의 움푹 패인 공간에 커다란 정자목 팽나무 '해원의 폭낭'이 조성돼 있다. 이 공간은 이런 마을의 공동체적 만남과 해원의 신목을 동시에 상징하는 장소로 4.3의 역사를 되새겨 보며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사색하게 한다.

 

제주4·3평화공원과 기념관은 4·3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평화·인권의 의미와 통일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평화와 통일의 성지이자 인권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4·3평화공원을 나오면서 허영선 시인의 무명천 할머니라는 시를 떠올렸다.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꽃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깊은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곳마다 헛딛는 말들을 할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무명천 할머니'의 본명은 진아영이다. 그는 1914년생으로 4.3사건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49135세 나이에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영문도 모른 채 총을 맞아 턱이 없어진 할머니는 무명천을 늘 턱에 두르고 있어 무명천할머니로 불렸다.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자 언니가 월령리로 데려와 살게 되었다. 턱을 잃은 할머니는 한평생 후유장애인으로 치료비를 벌기 위해 선인장 열매를 따거나 톳을 따다가 품팔이를 하며 살아갔다. 턱과 이가 없어 씹지를 못하니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병과 영양실조는 늘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200498일 세상을 떠났다.

 

늦게나마 가해자들의 진정어린 사과와 피해자들의 용서를 통해 화해와 상생이 되는 역사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발길을 돌렸다.

 

상세정보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봉개동 237-2) / 전화 : 064-723-4344 / 이용 : 09:00~17:30 / 휴무 : 첫째,셋째 월요일

 

천량호

​예 싸우지마심시오 예 ㅇ

 

김 정순

​금 실장 그럼 저 나갈게요

 

금실장

​남이사 김영천

 

펜앤드마이크TV

​유경주(H71)님 후원 감사합니다

 

귀여운여인

회원(1년)

​소중한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항상 행복하세요~👍👍👍👍👍

 

금실장

​내가 나가라 했나 웃기네

 

김 정순

​ㅂ2ㅂ2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민정띠~

 

금실장

​자시경옵하 분하다

 

천량호

​예피디님 새복만이받으시고요 훌륭한분만이 초대해주심시오

 

곽은경TV

신규 회원

₩10,000

회전 의자에 앉아 방안을 빠른 속도로 휘젓고 다니는 하마 캐릭터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억울해~

 

🌹이웃 사랑🌹

​싸우면 채금

 

후니안

회원(2년)

​붕가 붕가~~~

 

사건의지평선

회원(2년)

​올해 56

 

사건의지평선

회원(2년)

​?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후.붕가?

 

천량호

​예 전민정님 예 목소리좋으심니다 예

 

금실장

​이웃사랑님 손가락은 비뚤어도 글은 바로 쓰야지요 싸우다니요

 

금실장

​갑자기 시비를 거는데

 

후니안

회원(2년)

​뿡

 

유경주(H71)

회원(2년)

​윤통도 모를듯

 

원이 why not

회원(1년)

​귀여운여인님~ 또 만나니 더 반갑습니다 💐

 

천량호

​안철수 끝 꿈께라

 

사건의지평선

회원(2년)

​니안 완능가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모른당께요.

 

펜앤드마이크TV

​곽은경TV님 후원 감사합니다

 

후니안

회원(2년)

​평선이형 분위기가 싸해여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천씨 오늘 조심....

 

금실장

​니안 먼 분위기

 

천량호

​예홍준표는모를껌니다 예

 

후니안

회원(2년)

​무떠버~~~~

 

Let it be

​우리 사회는 68운동이 빗켜가서 68도 모르는 사회

 

사건의지평선

회원(2년)

​87체제 용어는 좌측이 쓰는 용어라는 사람도 펜앤안에 있는데요

 

귀여운여인

회원(1년)

​소중한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항상 행복하세요~👍👍👍👍👍

 

회색코뿔소

​안철수는 현재도 간첩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신영복 조문가서 비통한 심정 토로한 이유나 말해라!

 

금실장

​인사나 해라요 니안

 

🌹이웃 사랑🌹

​금님 무시 하는게 건강에 좋음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예 오세훈이는 생각도 못합겁니다 예.

 

후니안

회원(2년)

​말 몬항~~~

 

금실장

​87이가문제 아 87학번인디

 

사건의지평선

회원(2년)

​분위기 조쿠만 왜

 

금실장

​이웃사랑님 이유없이 화내는 금실장 아닙니다

 

원이 why not

회원(1년)

​자시경님.. ㅋㅋ

 

천량호

​전민정님 예 근대요 인상좋으시고요 느낌이요 럭셔리하시내요

 

🌹이웃 사랑🌹

​금님 압니더

 

후니안

회원(2년)

​천씨아자씨요 예 결석요 하믄안되고요예 ~

 

원지현

​맞는 말씀입니다

 

천량호

​정규재사장님이 훌륭한분들 만이초대해주시내요 예

 

🌹이웃 사랑🌹

​홍카도 압니더

 

사건의지평선

회원(2년)

​맞습니다. 민주화가 운동권의 성취라고 하는 프레임

 

금실장

​닉 바꿔서 들어와서 웃기는 인간이 있넹

 

귀여운여인

회원(1년)

​🙂🙂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헌법재판소 심리 보는줄 알앗심다 주필님....

 

최강수

​87체제가 민주화는 아니다 민주화 가정일 뿐이다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아~~~* 이 분 밑에서 일해도 되겠네요

 

사건의지평선

회원(2년)

​마치 민주화가 운동권만의 전리품이라는 모땐 인식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똑 떨어집니다

 

김 정순

​금 실장 미워...

 

원지현

​민주화는 좌익의 성취가 아님을 알려야합니다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훌륭하십니다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정순띠~

 

금실장

​김정순 아직 안 나감 ?

 

천량호

​예 민주공화국에는요 이제 약자도 돌아봐줘야하거든요 힘을보태주심시오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정말 코어를 손대는 일이십니다

 

🌹이웃 사랑🌹

​김정순님 워워

 

금실장

​닉 하나만 씁시다

 

후니안

회원(2년)

​따랑합니더~~^^

 

김 정순

​네 자시경님~~^^

 

천량호

​문재인정권은요 방향은좋앗거든요 근대 부패해서요 국민들이 시간지나면서 싫어햇죠

 

후니안

회원(2년)

​저분 밑에서 일하믄 무섭것는디요

 

심종범

​일등공신이 땡삼이다

 

낙 타

회원(2년)

​으윽 하이눈 못봤네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후 의외로 부드럽당께...

 

🌹이웃 사랑🌹

​걸리믄 꿈떡 못하긋네

 

최강수

​화폐에 자국민이 한사람도

 

천량호

​예 어서들오심시오 좋아요구독누려주심시오

 

달래냉이

​와 잘하신다!

 

후니안

회원(2년)

​무떠버요 예

 

원지현

​건국경제성장 나라의기틀을 순간폭동으로 이용 진영의 전리품으로 이용 명맥을 이여가고있는 좌파들의 논리를 부수어야 됩니디ㅡ

 

징기스칸

회원(1년)

​와밉노그러면안돼

 

금실장

​니안 니가더 무서버 거울 좀 봐봐

 

후니안

회원(2년)

​ㅎㅎ 난 차케여

 

천량호

​근대요 대통령님 이제는요 개헌하면요 약자위한개헌해주심시오 예

 

Food All-Market

회원(2년)

​1987년 이후 태어나신 분!!!

 

자유의깃발

회원(1년)

​6년 전 탄핵도 덮자는데 37년전 87 논의가 가능할까?

 

후니안

회원(2년)

​🖐🖐🖐

 

징기스칸

회원(1년)

​정순띠와밉버요

 

Ej Kim

회원(2년)

​안녕하세요

 

최강수

​화폐에 자국민이 한사람도 없는나라가 자주국가인가 건국이념도 모르는민족이

 

Ej Kim

회원(2년)

​후니안님 충성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이제이님~

 

금실장

​이제이님 ^^

 

후니안

회원(2년)

​이제이큰누님 ~^^철푸덕

 

낙 타

회원(2년)

​아 연설대회 나온 분이네요 예

 

금실장

​징기스칸옵하 쪽팔리니까 미워하는겁니다

 

천량호

​아마 정규재사장님이 조선에 계섯다면 장군이엇을검니다 예 느낌이그러거든요 예

 

징기스칸

회원(1년)

​넵

 

금실장

​딱 보면 누군지 알잖아요

 

낙 타

회원(2년)

​사장님 아니구요 예

 

후니안

회원(2년)

​몰

 

원이 why not

회원(1년)

​곶감에 부각에 고등어에.. 이제 정주필 장군 만드시는 분.. ㅎ

 

후니안

회원(2년)

​?

 

귀여운여인

회원(1년)

​사장님 아닌데요.

 

Ej Kim

회원(2년)

​금실장님 안녕하세요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천씨는요 조선세대 장군 이었서면 말이 피곤해 죽을겁니다 예

 

Ej Kim

회원(2년)

​자시경님 안녕하세요

 

Ej Kim

회원(2년)

​귀여운여인님 반가워요

 

귀여운여인

회원(1년)

​이제이님 ❤

 

천량호

​예 전요 홍길동처럼 날아다니고싶내요 쾌도홍길동보섯나요 그거 재밋게봣거든요 예

 

징기스칸

회원(1년)

​실력차이 배위야지 ㅎㅎ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대표적입니다.절차상 하자

 

천량호

​근대요 전요 왠지 전생에요 요리사엿을거같기도함니다 예

 

낙 타

회원(2년)

​오늘 이진근 안하나 보네요 예

 

정희 문

회원(6개월)

​이제이누나 알라뷰

 

후니안

회원(2년)

​천씨 헌티 가스라이팅당한 펜앤ㅠㅠ

 

Food All-Market

회원(2년)

​천량호 할아버지, 전생이 있다 믿으십니까?

 

정희 문

회원(6개월)

​👧 제수씨 알랍우ㅡ

 

징기스칸

회원(1년)

​뜬금 없어 🐫

 

펜길동tv

회원(2년)

​87의 56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정희누나~

 

귀여운여인

회원(1년)

​차기님 ~^^ ㅋ

 

최강수

​정 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 국회는 대선때 1/3을 뽑고 2년뒤 2/3를 선출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

 

낙 타

회원(2년)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트렌드이고요 예

 

정희 문

회원(6개월)

​자시경처남

 

펜길동tv

회원(2년)

​천왔능가

 

천량호

​예어서들오심시오 예 날씨가좀풀러서 기분이좋내요 예

 

낙 지

회원(1년)

​늦어불었구먼

 

천량호

​예길동형님 예식사잘챙거드심시오 예

 

낙 타

회원(2년)

​나도 방금 왔구요 예

 

백두산

​재심 취소해야 정의가 섭니다

 

정희 문

회원(6개월)

​량호 장화 마이팔았어?

 

금실장

​차기삼춘 아들이 너무 바보아녀요?

 

금실장

​아 좀 똑바로 키우소

 

천량호

​저요 예 저번에요 얼마못팔앗슴니다 예 돈벌기가쉽지안내요

 

만파식적

​반란죄를 왜 무죄로 기가막히네요

 

정희 문

회원(6개월)

​에구..량호

 

ol irontruth

​사이비 보수 펜앤 아웃

 

후니안

회원(2년)

​천씨가 아들? 가카

 

오승현

​주필님 수고하십니다.

 

정희 문

회원(6개월)

​애비가 맘 아프다

 

낙 타

회원(2년)

​보수뜻 모르시나 보네요 예

 

후니안

회원(2년)

​찐 보수는 누규?

 

정희 문

회원(6개월)

​양아들

 

낙 지

회원(1년)

​수영누부 보고프네

 

Food All-Market

회원(2년)

​히익...

 

금실장

​ol 야 너부터 정신차리고 와라

 

천량호

​그래도요 스마트폰쓰고 편하게 따뜻하게사니까만족함니다 예 시대를잘만낫거든요

 

정희 문

회원(6개월)

​량호

 

원지현

​간첩도재심 반란자도재심 9억먹은여자도 재심 세월만 지나면 이적행위도 재심 박통 MB도 재심 무죄복구하라

 

정희 문

회원(6개월)

​앞으로 아빠라 불러

 

펜길동tv

회원(2년)

​음 마켓도 마이팔았능가

 

정희 문

회원(6개월)

​호형호부를 허 하노라

 

펜길동tv

회원(2년)

​ㅈ빠?

 

천량호

​정희문형님이 편함니다 예 그래도요 예

 

금실장

​천길동이염?

 

Food All-Market

회원(2년)

​잇힝, 말일에는 물량 저감...

 

펜길동tv

회원(2년)

​음 ~~

 

원지현

​이나라 모든 유죄받은 국민들은 전부 재심하여 무죄 받아라

 

낙 타

회원(2년)

​내용 은근 어렵네요

 

후니안

회원(2년)

​주필님 마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예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헌법전문.

 

펜길동tv

회원(2년)

​량호 정희문은 삼촌임

 

낙 타

회원(2년)

​헌법적인거라 @_@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정확하신 주필님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맞습니다

 

천량호

​정규재사장님 넥타이요 복숭아색인대요 전요 천도복숭아좋아함니다 예

 

백두산

​87체제는 장단점이 있음

 

정희 문

회원(6개월)

​419도 빼야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내는 털복숭 좋아합니다 예~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

 

천량호

​예정희문삼촌 예 기억하겟슴니다

 

낙 타

회원(2년)

​특정 소요 사건을 헌법에 넣으면 되나

 

정희 문

회원(6개월)

​광장만주주의 찬양

 

펜길동tv

회원(2년)

​51 8도 넣지말아야

 

김영천

​우리시대는 좋든 싢든 87체제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서 분석해야 함니다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좀이 먹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금실장

​헐 차기삼춘은 금실장 삼춘인디 길동옵하 뭐래요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퍼팩트하십니다

 

김규호

회원(1년)

​김달삼이의폭동을 이따위로정의한새들은 대한국인이맞나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불럿슴미꽈~~민정띠

 

Food All-Market

회원(2년)

​헌법 3줄 요약 가능하신 분!?

 

천량호

​근대요 전민정님목소리가요 동화책읽어주듯시 맑고편하내요 예

 

낙 타

회원(2년)

​잘살자

 

낙 타

회원(2년)

​아 3줄;

 

낙 타

회원(2년)

​3글자 인줄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매우 위험합니다

 

펜길동tv

회원(2년)

​7과8은 차등을 두어야

 

Food All-Market

회원(2년)

​너무 어렵...

 

🌹이웃 사랑🌹

​국개만 자유가 있고 .국민은 자유가 읍서라

 

자유의깃발

회원(1년)

​경재 민주화라는 용어 자체가 경제에 정치를 개입시키는 좌파적 선동인데...

 

금실장

​경제가 어떻게 민주라는 이름을 차용할수 있나

 

달래냉이

​주필님이 하시는 87체제 담론 처음 봅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공부도 많이 돼요~

 

낙 타

회원(2년)

​경제민주화도 일본이 원조 아니요?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그래도 단어를 그렇게 쓰면 안됩니다

 

김커튼

​규재형 세상이 왜 이래

 

낙 타

회원(2년)

​일본인 우민화 정책 용어

 

정희 문

회원(6개월)

​헌법은 단순명료해야

 

후니안

회원(2년)

​어려운 문제 내지마시고요 예

 

낙 지

회원(1년)

​독소조항은 안좋항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헌법3줄은 생각 안해밧음...종교는 한줄 요약 가능한디..

 

펜길동tv

회원(2년)

​酒사파 여기도 있던디

 

김 정순

​후니안 님 ㅎㅎㅎ 예

 

천량호

​예 생각은 다 다양한거니까요 예 약자들을 넓게안아줘야함니다 예

 

후니안

회원(2년)

​뭡니꽈? 한줄

 

만파식적

​자유민주주의 체제부정하고 종북하는 세력은 모두 반란세력으로 유죄로 집어 넣어야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음....나를 따르라~~~

 

정희 문

회원(6개월)

​량호..약은 제시간에 잘머꼬?

 

펜길동tv

회원(2년)

​대한민국은 반공자유민주공화국이다 면 끝

 

🌹이웃 사랑🌹

​1987영화 보고 컥

 

김커튼

​훠훠훠 최저임금을 올려야 제 지지율도 올라 가는거 아닙니꽈? 훠훠훠

 

펜길동tv

회원(2년)

​왔다

 

후니안

회원(2년)

​믿읍니다 예

 

낙 타

회원(2년)

​똑똑한 학생들이 강철서신에 왜 빠져든거여

 

원지현

​국회위원을 과반을 빼앗기면 순간 나라체제가 바뀌는것을 목도했다 위험한 나라이다

 

자유의깃발

회원(1년)

​경제를 공정, 정의 따위의 유토피아적 구호로 정치적 재단을 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공산화 전술..

 

천량호

​전민정님은요 성우같내요 예 목소리가 맑고요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그 민주화세대라는 대세 우월론이 이 나라를 망친 것이기도 합니다

 

펜길동tv

회원(2년)

​동사조심 집앞에서 숨멈춘채 발견자 있음

 

낙 타

회원(2년)

​남침유도설 ㅋㅋㅋㅋㅋㅋ

 

원이 why not

회원(1년)

​주체사상 공부하던 민주화운동하던 선배들 자본주의 강남 좌파로 잘살더라구요.

 

낙 타

회원(2년)

​미국무기 재고처리설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세대 우월론 그런거 없어요 그 우월을 논하는 놈이 살인기획자, 살인방조자입니다

 

천량호

​예추울때길에서자면요 죽을수도잇슴니다 추위 조심하심시오

 

원이 why not

회원(1년)

​추울때 길에서 왜 자냐고요..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죄값을 받아야죠

 

후니안

회원(2년)

​예 예

 

원지현

​조직화된 좌익들이 대놓고 오픈상태로 활동하는 세상이 온것 애국보수에서도 대응하는 주체가 있어야된다

 

낙 지

회원(1년)

​하태경은 전향 했나여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지금까지 나라를 개작살 내놓았는데요

 

천량호

​예약자들은오갈곳업거든요 정부가나서서도와주심시오

 

펜길동tv

회원(2년)

​酒 찾다 길에서 잔 사람

 

만파식적

​불법하는 세력들이 적법으로 안잡았다고 무죄라니 말도 안됭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맞죠

 

정희 문

회원(6개월)

​우파적 헌법 못바꾼다에 1표

 

FASHION BGM

​아줌마야 너는 그런 말할 자격 자체가 없다

 

금실장

​도대체 약자는 기준이 머여

 

주님은나의 산성

신규 회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유부단하게 할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엄중하게 다뤄주시길 바랍니다

 

천량호

​예살빼는대요 예 운동열심이 함니다 사우나가서 재면요 오키로는빠젓을거같내요

 

자유시장경제

회원(6개월)

​130키로는 약자 입니다.

 

후니안

회원(2년)

​수리 약해졌어여 ㅠ 약자

 

낙 타

회원(2년)

​자격증 있어야 됨?

 

Let it be

​동학도 추가하는 분위기

 

낙 지

회원(1년)

​예 사회 전반 분위기는 좌향좌인데 법부터 바꾸는건 불가능하죠

 

김커튼

​훠훠훠 실업급여 예산이 7조에서 지금 마이너스까지 왔습니꽈? 훠훠훠 7조로 제지지율 올렸으면 개꿀 아니겠습니꽈? 저는 임기 끝낫습니돠 훠훠

 

낙 타

회원(2년)

​코로나 걸리고 나니까 주량이 반으로 줄었음

 

정희 문

회원(6개월)

​약먹어야 하는자

 

금실장

​주니안 약자 ?

 

원지현

​반란세력을 재심이라는 헌법 이용자체를 막아라

 

[현장N]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제주4.3특별법 개정안 국회 통과 규탄

4·3수형인 위법한 재심 및 배보상 반대 제주지법 탄원서 제출
제주지방법원정문앞에서 2일 오후 기자회견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및 폭정종식 비상시국연대 등 시민단체 일동은 2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제주4·3특별법을 즉각 폐기하라!”
“남로당폭동·반란을 옹호하는 반역적인 제주4·3특별법은 명백한 위헌이다!”
“악법인 제주4·3특별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은 즉각 사퇴하라!”
“4·3수형인들에게 부당한 방법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주지방법원은 사죄하라!”
“주권자 국민은 국회의원에게 경고한다!”
"당신들이 제주4.3사건특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은 몰락하고 있다!"
"당신들은 제주4·3사건이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고 반란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어찌하여 외면했는가?"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및 폭정종식 비상시국연대 등 시민단체 일동은 2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주장했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는 4·3사건 역사왜곡의 잘못을 시정하여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위한 목적으로 2021년 1월 29일 창립한 시민단체연대이다.

이날 기자회견 내용은 격문 발표, 탄원서 낭독 및 질의 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는 지난 2월 26일 국회 본희의에서 통과한 제주4·3사건 특별법(‘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명백한 위헌임을 국민에게 알리고, 위헌인 악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을 규탄하는 격문을 발표하며, 대한민국에 항적하였던 남로당 가해자들에게 위법하게 보상금을 안겨주고 있는 제주지방법원에 탄원서 제출 및 낭독했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는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제헌의원 선출 5·10총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남로당이 경찰과 공무원, 양민 등을 학살, 방화, 약탈했고, 김일성정권수립에 제주도민들에게 협박하여 5만2350명이나 되는 무기명 투표지를 갖고 김일성정권수립에 앞장서지 않았느냐"며 "이러한 반역자들이 무슨 희생자인가? 이들의 대한민국 건국 방해는 시작에 불과하고 대한민국에 선전포고, 인공기 게양, 적기가를 부르며, 김일성 장군 만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외치며 9년간 항적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공산폭동 내란 가담자들에게 보상이 왠 말인가? 현행법상으로도 적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여적 죄인들은 사형에 처한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반역에 가담했던 자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관대하게 처벌받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라며 "이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상금이 아니라 사죄와 반성"이라고 분노했다.

제주4.3특별법은 명백한 위헌이므로 즉시 폐기해야 한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는 "특별법 제14조 특별재심은 재심사유 및 재심청구권자에 대한 예외를 규정하고 있는데, 예외를 인정할 합리적 이유도 없고, 이를 허용할 경우 대한민국의 전복을 꾀한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된다"며,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이 되어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및 폭정종식 비상시국연대 등 시민단체 일동은 2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또한 "대한민국 법원이 행한 판결을 부정하는 길을 열어 준 것이 되어 매우 부당하다"며 "재심은 정당한 재심사유가 존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자의 청구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특별법 제15조 수형인에 대한 명예회복조치는 법무부장관에게 직권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다"며 "이는 어떤 이유로도 그 정당함을 설명할 수 없다. 위원회가 일괄 결정하면 ‘모든 수형인’에 대한 장관의 직권재심이 이루어지고, 법원이 이를 그대로 받아주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이보다 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시도는 없다"며 "총칼 대신 힘, 법률, 적법절차로 가장하고 있다. 국민은 분노한다! 대한민국에 항적하였던 남로당 가해자들이 무슨 희생자냐! 김일성에게 충성하다 옥살이 했으면 김일성에게 보상금 받아라! 대한민국 건국은 방해하고 김일성정권수립 선거에 앞장섰던 자들에게 보상금이 왠 말이냐! 제주4·3 공산폭동과 내란은 국가가 보상하고 추념할 사건이 절대 아니"라고 규탄했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는 "반역행위자의 자세는 사죄와 반성이다! 국회의원은 북한 국회의원이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냐? 4·3사건역사왜곡을 방조하여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는 국회의원들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일당독재 더불어민주당과 이에 부화뇌동한 국민의 힘당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건국을 방해한 사건을 미화하고 옹호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역이다! 특별법 통과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기회주의적인 국회의원은 반역자로 다스려질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악법 통과 찬성한 자들은 국희의원 자격없다 즉각 사퇴하라! 거짓 희생자 4.3수형자에게 위자료 주려고 만든 특별재심 등 악법을 즉각 폐기하라"며 "우리 국민들은 반역자들을 역사와 정의의 심판대에 세워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및 폭정종식 비상시국연대 등 시민단체 일동은 2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다음은 탄원서 전문.

◆탄 원 서

사 건 : 2019가합14598 손해배상(국)
원 고 : 이** 외 38명
탄 원 인 :

위 사건과 관련하여 탄원인은 아래와 같은 의견을 올리며 배상청구의 소를 각하 또는 기각하여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한 좌익의 내란행위였습니다.

제주4·3 수형자는 1948년 4월 3일부터 1957년 4월 2일까지 제주도에서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과 무장반란에서 무자비하게 제주양민을 학살, 방화, 약탈하였거나 대한민국에 항적한 남로당 활동에 동조, 지원, 추종하였던 제주4·3사건의 가해자들입니다.

비록 최근 일부 제주4·3사건의 남로당 수형자들이 재심을 통해, 과거 선고된 군사판결의 범죄사실의 기초가 되는 공소기록이 6·25한국 전쟁 등으로 소실되어 현재 그 당시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사실이 있기는 하나, 제주4·3사건의 가해자들의 당시 범죄사실이 있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각종 과거 진상규명 자료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입니다.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민들은 피고인들을 비롯한 남로당 가해자들로부터 생명과 신체를 훼손당하거나 공산화의 위험에 직면한 직접적인 피해자들로서, 단지 재판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더 나아가 전국민의 세금을 통해 이들 가해자들에게 수억원 대의 형사보상 결정까지 선물로 안겨 준 것은 너무나 천부당 만부당한 결정이었습니다. 폭도한테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의 유족이 폭도하고 같이 제사드리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폭도들한테 죽은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너무 억울하고 통곡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주 4·3사건에 대해서는 과거 ‘진상규명위원회’ 및 ‘헌법재판소’에서도 몇 차례에 걸쳐 다뤄졌을 만큼, 당시 양민 학살 등에 참여한 ‘가해자’가 존재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으며, 대한민국 초기 국가내란을 야기한 책임이 있는 자들이 군사재판 절차를 거쳐 선고를 받고 수형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오히려 제주 4·3 사건 특별법 내지 4·3수형인 재심에 관한 법원의 판결들에서는 이들 내란을 야기하는 등으로 문제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면죄부를 주고 이들 가해자들에게 수형기간 동안의 형사보상금을 안겨주는 판단을 하려는 고민을 하였을 뿐, 정작 위 가해자들이 야기한 제주4·3사건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크나큰 고통을 입은 진짜 피해자 내지 그 유족들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입을 다문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사건의 가해자들과 같이 과거 재판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형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바라보실 것이 아니라, 그 내용 면면이 실체적인 내용을 살펴 당시 군사법원 법관들이 관련 내용에 근거한 가해사실이 있었기에 유죄를 선고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들을 심도있게 고찰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1948년 신생 대한민국이 출생한 당시 상황은 좌우익이 대립하는 극도의 혼란상태였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서는 좌익에 부역하는 자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일 크고 작은 부역행위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김정은 만세!를 외치며 이 자리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재판관들은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서 너무도 현명하게 재판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과거를 재단하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지난 한 해에도 현 좌파정권에 부정적인 말 한마디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거나 재판중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4·3수형인 원고들은 본인들의 행위가 큰 잘못이 아니었다고 항변할 수는 있지만 작은 부역행위들이 다수 모여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이고 그것이 많은 희생자를 발생하게 한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결코 작은 부역행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보다 체제가 안정되어 있는 오늘날도 말 한마디로 처벌받는 점을 고려할 때 당시의 체제위기 속에 말 정도가 아니라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여적행위는 극형에 처해져야 할 상황임에도 당시에 징역형 정도로 선고했다는 사실은 최대한의 관용을 베푼 것이고 그 당시도 적법절차가 살아있었다는 놀라운 반증이 됩니다. 4·3수형인 원고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천만다행이라는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수형인명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형집행지휘서가 있었음이 추정되고, 형집행지휘서가 있었다는 것은 판결문이 있었음이 추정되며, 판결문이 있었다는 것은 공소장이 있었다고 추정됨이 상당합니다.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이 다수 있습니다.

증언들에 의하면 6·25한국전쟁당시 몸만 피신하기도 급급한 급박한 상황이어서 판결문 등 소송기록과 수용기록을 가지고 피난을 할 수 없었고 유엔군 참전이후 수복하였을 때에는 기록물들이 소실되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무죄라는 명백한 증거가 밝혀지지 않는 한 건국초기의 각종 재판에 문제제기를 받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백번 양보하여 공소제기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보더라도 무죄로 보거나 배보상도 청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공소기각 판결이 나온다면 수형자명부에서 삭제하여 명예회복으로 만족해야지 더 이상의 요구사항은 국민의 법감정상 허용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이 풍전등화같이 어렵고 힘든 과정에서 대한민국 편에 선 것도 아니고 신생아 대한민국을 살해하려고 북한 편에 섰던 사람들까지 국민들이 혈세로 보듬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역했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죄와 반성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건국되었다는 사실과, 대한민국을 살해하는데 가담하는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 것으로 감사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70년 전의 옳지 못한 사건을 이제 와서 후대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북한군과 남로당 및 남한 좌익들에게 학살당한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우익인사 12만 명의 진상규명과 배보상 문제는 간과하고 북한 편에 섰던 가해자들에 대한 배보상만 거론한다면 애국자들은 지하에서 통곡할 것입니다. 애국자들이 학살당한 역사부터 제대로 평가한 이후에 남로당에 부역했던 사람들의 명예회복 문제가 다뤄져야 합니다. 너무 불공정합니다. 법원이 좌파 편에서 정치적인 이념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니 제대로 심사를 하여 기울어져가는 대한민국의 공정과 정의를 바르게 세워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2. 본 사안은 법상 국가배상청구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2019년 제주지방법원 형사부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의 시발점이 된 제주4·3수형인 18명의 재심재판에서 형사소송법 제420조의 재심사유가 없음에도 위법하게 재심개시결정을 하였습니다. 즉 공소기각판결을 인정할 새로운 증거는 재심사유가 아니므로 제주지방법원은 재심개시결정을 해서는 안되는데 재심개시결정을 하였습니다.

또한 형사보상사건에 적용될 구형사보상법 제1조와 형사보상사무취급규정 제1조에 의하면 형사보상 청구의 대상 기준으로 무죄판결과 면소판결만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구법에 의하면 공소기각 판결의 경우에는 명백히 형사보상의 대상이 되지 아니함에도 53억 4천만원이라는 거액의 형사보상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제주지방법원이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따른 공소기각 판결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되고 집행된 것에 대하여 명확한 무죄의 증거가 확인되지 아니한 것에 대하여 형사보상청구를 판단함에 있어 신중을 기했어야 함에도, 이를 간과하고 형사보상청구 인용결정을 해 버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게다가 위 제주지방법원이 형사보상법 문언과 그 법리에 반하여 과도한 일급(日給)을 적용하기까지 함으로써 국고에 거액의 손실을 주는 형사보상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위법한 결정들에 대하여 법무부는 즉시항고 등과 같은 방법으로 불복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직무를 유기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과 소송수행자들에 대하여 대검찰청에 고발하였으며 접수된 고발사건은 현재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3. 결론

대한민국 건국 초기 당시의 국란을 야기하였던 제주4·3수형인에 대하여,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들에 대한 범죄사실 기록이 소실되었다는 사유만으로, 제주지방법원에서 실체적 진실에 반할 수 있는 공소기각 판결의 재심결정을 한 것은 법원 스스로 과거 판결에 대한 사법부정을 야기하는 잘못이었습니다.

이에 더 나아가, 위 제주지방법원이 위 18인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받아들여 형사소송법 제420조에서 한정적으로 열거한 재심사유가 없음에도 재심개시결정을 하였고, 형사보상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 공소기각판결을 가지고 과도한 보상금까지 안겨주는 명백하게 위법한 재판들을 하였습니다.

편향된 재판에 대해 공익의 대표자인 법무부장관과 검사들은 즉시항고 등을 통해 다투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국고를 손실하고 국민들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국가를 대표할 지위에 있는 법무부 공직자들이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을 청구할 직무를 유기한 행위는 대다수의 국민을 우롱하고 헌법질서를 농단하는 법치파괴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덧붙여 만약 담당 검사 등의 즉시항고의 의견제시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 법무부장관 등 상관의 위법한 보상강행이 개입되었다면 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그 행위를 불법적으로 지시한 자에 대하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죄책도 추궁되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대한민국 수호와 진정한 제주4·3사건의 피해자 및 그 유족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탄원인들이 의견을 올리오니 법과 정의에 맞는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라며, 자세한 입증자료 제출과 심도있는 심리를 위해 소송참가할 수 있도록 간곡히 요청하며, 제주지방법원 민사부는 위와 같은 헌법질서 농단 사정을 잘 분별하여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각하 또는 기각판단을 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수호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및 폭정종식 비상시국연대 등 시민단체 일동은 2일 오후 2시 제주지방법원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2021년 3월 2일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및 폭정종식 비상시국연대 등 시민단체 일동
국민통합연대/4대강보해체저지국민연합/경기도의사회/공정사회국민모임/국민노동조합/국민의자유와인권을위한변호사모임/나라지킴이고교연합/대구자유공정시민회의/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대한민국역사지킴이/미래대안행동/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인권여성연합/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정교모)/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수도이전반대범시민투쟁본부/신문명정책연구원/원자력살리기국민행동/의정감시단/자유민주국민연합/자유민주시민연대/자유시민정치회의/자유언론국민연합/자유연대/제주4.3진실규명도민연대/프리덤코리아/프리덤칼리지장학회/하늘교회/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해군사관학교구국동지회/행동하는자유시민

제주지방법원 귀 중

출처 : 뉴스N제주(http://www.newsnjej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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