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2022/027

▣海月亭 襄烈公 趙仁璧(1330 ~1393-태조 2년)▣ ▣조인벽(趙仁璧) (1330 ~1393-태조 2년)▣ (호는 우계, 海月亭, 시호 襄烈公) 1. 성장과정 조부가 중국 주나라 목왕이 서언(徐偃)왕을 정벌할 때 큰공을 세워 조성(趙城)에 봉함으로써 그 이름을 따서 조씨라 정하고 중국에서 고려에 귀화하여 용진(덕원)에서 대대로 살았다. 조인벽은 고려 충숙왕 17년 판도판서, 예의판서를 지낸 조돈의 아들로 출생하여 덕원에서 자랐고, 배우자는 하동정씨와 정화공주 두분이시다. 정화공주는 환조의 따님으로 태조 이성계의 누이이다. 2. 업적 선생은 고려 29대 충목왕 이하 5대에 걸쳐 평생을 국토방위와 국가 치안에 전력을 바친 문무 겸비한 노 재상으로 왜구 퇴치와 홍건적(중국 원나라 말기 하북지방 도둑의 무리) 격퇴 등으로 무공을 많이 세웠고 학문에도 뛰어났다. 고.. 2022. 2. 28.
▣모계(慕溪) 조강(趙綱)의 청주 창의(倡義)는 어디까지 진실인가? https://blog.naver.com/demon_illu/222109819156 조강의 청주 창의는 어디까지 진실인가? 마지막으로 조강(趙綱)의 임진왜란 의병활동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문집... blog.naver.com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 정사현(鄭思顯)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성제원(成悌元)과 송인수(宋麟壽)를 사사하였다. 1563년(명종 18) 학행(學行)으로 목사 이증영(李曾榮)이 천거하여 견호(蠲戶)의 은전을 받았다.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 이듬해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570년 청주의 유림들과 합의하여 신항서원(莘巷書院)을 창건하였다. 1572년 중부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576년 다시 충청도사에 임명되었으.. 2022. 2. 27.
▣조선이 기록한 정체 불명의 누르가치 아들▣ ▣조선이 기록한 정체 불명의 누르가치 아들▣ https://m.blog.naver.com/demon_illu/222064187804 [바다루 : 2020. 8. 18. 21:08] blog.naver.com/demon_illu/222064187804 요동의 풍운 작년에 저는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선약해(宣若海)와 선세강(宣世綱)이 혼동된 문제에 대해 입론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글을 작성하고 뒤늦게 입수한 자료가 바로 선약해가 지은 『심양사행일기(瀋陽使行日記)』였는데요. 이것은 다름아닌 선약해가 1630년에 심양에 사신단의 일원으로 다녀오면서 적은 일기입니다. 제가 쓴 글이 부끄럽게도, 이 책을 역주한 신해진 선생께서는 선약해와 선세강의 혼동 문제를 진작에 간파하고 이미 적어두셨더군요. 제가 주목하는 .. 2022. 2. 27.
♠[한국의 보호수-①경상북도편] 영양 일월면 도계리 사의정사 조검 향나무♠ ♠[한국의 보호수-①경상북도편] 영양 일월면 도계리 사의정사 조검 향나무♠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승인 2022.02.08 06:30 영양 도계리 향나무는 영양 도계리에 살던 입향조 조검이 손수 심어 키우고 후손들이 정성껏 보호해온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양 도계리 향나무는 도계리 입향조의 곡절 많았던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 큰 나무다. 이 향나무의 나이 360년은 이 마을의 나이와 같다. 마을 입향조인 조검(趙儉:1570~1644)이 마을을 일으킨 기념으로 심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도계리 향나무는 높이가 10m, 가슴높이 둘레는 2m를 넘는데, 긴 세월을 살면서 매우 아름다운 수형을 갖추게 되었고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2022. 2. 11.
▣청통면 덕산마을 자암정/소암정▣ 일소일빈 (daum.net) : https://blog.daum.net/thddudgh7/16557860 추산정, 소암정, 자암정, 정덕재(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blog.daum.net 2022. 2. 10.
▣조종악(趙宗岳, 13世조, 문림 高孫, 호:龜巖)구암정(龜巖亭)▣ ▣조종악(趙宗岳, 13世조, 문림 高孫, 호:龜巖)구암정(龜巖亭)▣ ▲ 조종악을 기리는 귀암정은 영천시 금호읍 성천리 401-1 도로변에 건립되어 있다. 귀암정(龜巖亭)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조종악(趙宗岳, 1566∼1633)을 기려 후손들이 세운 집이다. 조종악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노모를 동생 조종대(趙宗岱)에게 부탁한 뒤 영천 의병에 뛰어들어 한천 전투, 영천성 수복 전투를 치렀다. 특히 영천성 수복 전투에서는 군대의 관향(管餉)을 맡아 군수 참모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함으로써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 조종악은 영천 수복 후 권응수의 명에 따라 청송 지역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이경천(李擎天)과 함께 청송으로 간 조종악은 군량을 모으고 의병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에 전력을 쏟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 2. 9.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이 신정(양력설)을 쇠는 이유 : 실학사상, 동학 천도교과 신간회 영향!◑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이 신정(양력설)을 쇠는 이유 : 실학사상, 동학 천도교과 신간회 영향!◑ ■영양군 주곡마을의 양력설과 조헌영의 신간회 활동 -조헌영의 생애와 삶(1) [탁암 심국보_진주시교구] ●조헌영은 경북 영양군 일원면 주곡리에서 1900년 태어났다. 어릴 때는 의병대장이던 할아버지 승기와아버지 인석으로부터 사서삼경과 한학을 익히고 대구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북고)를 다닌 뒤 일본 와세다대한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7년 2월 서울에서 신간회가 창립되고, 신간회 지회가 일본 동경에서 1927년 5월 설립되었다. 이때 조헌영은 일본 동경의 신간회 초대 지회장을 맡았다. 그리고 귀국하여 1927년 11월 18일 천도교에 입교했다. -------------------------------------.. 2022. 2. 4.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