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陽人문화유적❀
▣만곡선생문집(晩谷先生文集)▣●조술도(趙述道, 한양인, 1729∼1803)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7. 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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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곡 조술도 선조님 출생 옥천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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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곡선생문집(晩谷先生文集)▣
●조술도(趙述道, 한양인, 1729∼1803)의 시문집인 『만곡선생문집』(晩谷先生文集)의 책판이다. 조술도는 자가 성소(聖紹)이고 호가 만곡(晩谷)으로, 조덕린의 손자이자 조희당의 아들이며 조운도와 조진도(趙進道)의 동생이다. 조부가 당쟁에 희생되고 형 조진도가 과거에 합격하고서도 합격이 취소되는 것을 보고 일찍부터 과거에 뜻을 접고 학문에만 매진하였다. 어려서 조부로부터 직접 가학을 전수받은 뒤 다시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영남 유림에서 명망 높은 학자가 되었다. 1762년 월록서당(月麓書堂)을 창건하여 형제들과 함께 강학하였고 그 뒤 만곡정사(晩谷精舍)를 짓고 채제공(蔡濟恭)의 친필을 받아 당호(堂號)를 달았다. 만년에 도산서원장(陶山書院長)을 역임하였고 ‘호문(湖門) 6군자’로 칭송되었다. 이 책판은 총 181점으로 조술도의 깊은 학문과 여흥 넘치는 문학세계를 담고 있다. 주로 성리학 사대부다운 학문세계와 국가와 백성에 대한 우환의식을 표현한 작품이 많다. 서문은 이상정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정종로(鄭宗魯)가 썼다.
▣晩谷先生文集序[鄭宗魯]▣
大凡聖人之道。精微廣博。有未易洞見而實体之。然若語其要領則不過曰精思力踐而已。苟有能從事於此而擴充之。豈不卓然爲吾道中鉅匠而師表乎後世也哉。余於晩谷趙公謬蒙辱與之交。目其儀容。耳其辭氣。又得其書牘言論而心偉之。公殆所謂豪傑之士哉。盖其家庭之承襲。壎篪之唱和者。有異於他。而天姿卓越。地步超逸。不待師友之開發指引而便能覺俗學之外。有吾儒家眞的妙訣。專心一意於窮理盡性之工。平生所潛究默玩者。皆聖賢文字。而尤於子朱子之書。益致其力。如大全語類等書。反復繙閱。擧以告人。如誦己言。旣而從李大山,金九思兩先生質問講磨。以極其歸趣。則其於此學之大綱領。此理之大原頭。固已覷破之無餘矣。是故其服膺而發見於外者。衣冠常整齊也。居處常淨潔也。言語常正大也。行事常平易也。吐辭宏博而動輒根於義理。闡人潛德而未嘗浮於事實。嘗著雲橋問答。痛卞邪學於未及熾盛之時。居常訓誨後進。使不迷於趍向。則其深造自得之竗。固非人人之所能知。而大抵特立於頹波之中。直趍於上達之域。以撑拄夫東南半壁之天。而屹然爲障川之柱指南之車。若彼其犖犖焉。倘非豪傑之士。其孰能如是乎。今觀其遺集凡數十卷。而皆可誦可法。不特其文詞有炳然者而已。則其得傳於後無疑。若公誠死而不朽者歟。余自哭公。常切後死之歎。公之猶子居信忠彦甫。要我校讐而爲一言以弁之。遂與公族孫根復共卒業。因書此以歸之。若其精思實踐之功。於聖人之道。有能默契而高詣者。則讀是集者當有以自識之矣。晉陽鄭宗魯撰。
▼https://blog.naver.com/miki1133/22261817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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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谷先生文集卷之八 / 雜著▣
https://blog.naver.com/yjmuse1/223110746926
[月麓書堂學䂓]
書堂已成。牕戶明㓗。庭宇淨殖。展宜棲息講道之所。凡我同學之士。盍懋所以自新之道。而旋念吾輩茅塞已久。放逸多年。卒然語之以仁義道德之實。不徒不入於心。亦且不切於聽。故姑取白鹿洞學規餘義。揭之壁上。以爲朝夕觀省之資云爾。
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
●右五敎之目。
家庭間。切勿疾言遽色。宗族中。切勿小事相難。尊長側。切勿儳錯言語。
入學之始。都不外於日用彝倫之間。故謹依五敎之目。補之如右。
博學之。審問之。愼思之。明辨之。篤行之。
●右爲學之序。
勿觀雜書。恐分精力。勿主偏見。恐益葛藤。勿牽他說。恐亂正義。勿取急讀。恐不留住。勿憚溫習。恐失毫釐。
問學之要。亦不外於講硏尋索之工。故謹依爲學之目。補之如右。
言忠信。行篤敬。懲忿窒慾。遷善改過。
●右修身之要。
心志必端正。衣冠必整飭。言語必徐緩。步履必安詳。
忿怒內萌。徐觀義理。淫慾外誘。斬斷根株。
操修之功。動靜無違。表裏交正。而七情之發。尤益難制。故謹依修身之目。補之如右。
正其義不謀其利。明其道不計其功。
●右處事之要。
心安而身勞者爲之。義多而利少者爲之。
董江都二段語。惟朱夫子答蔡季通兩語可以解破。故謹依處事之目。補之如右。
己所不欲。勿施於人。行有不得。反求諸己。
●右接物之要。
勿論人長短。勿言人過失。勿揀人賢愚。勿窺人隱密。勿羡人富貴。勿干人酒食。
洞䂓以其精者而言之。此目以其粗者而言之。由粗入精。亦循序漸進之道。故補之如右。
기사전거 :
行狀(柳致明 撰, 定齋集 卷31), 趙德鄰行狀(李象靖 撰, 玉川集 卷18), 趙喜堂行狀(李光靖 撰, 小山集 卷12), 漢陽趙氏大同世譜 등에 의함
일월면 주곡리 주곡(主谷)의 「월록서당 학규(月麓書堂 學規)」와 시판(詩板)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注谷里)는 예부터 주곡부곡(主谷部曲)의 소재지로 선초 영해부(寧海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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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면 주곡리 주곡(主谷)의 「월록서당 학규(月麓書堂 學規)」와 시판(詩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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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력
왕력서기간지연호연령기사
영조 | 5 | 1729 | 기유 | 雍正 | 7 | 1 | 9월 29일, 英陽縣 注谷里에서 태어나다. |
영조 | 13 | 1737 | 정사 | 乾隆 | 2 | 9 | 7월, 조부상을 당하다. |
영조 | 28 | 1752 | 임신 | 乾隆 | 17 | 24 | 모친상을 당하다. |
영조 | 31 | 1755 | 을해 | 乾隆 | 20 | 27 | 3월, 부친상을 당하다. |
영조 | 35 | 1759 | 기묘 | 乾隆 | 24 | 31 | 넷째 형 趙進道와 함께 別試 鄕解에 합격하다. ○ 覆試에 선발되지 못하다. 이후로 擧業을 폐하다. |
영조 | - | ~ | ~ | 乾隆 | - | ~ | 學正이 되어 呂氏鄕約을 시행하다. |
영조 | 41 | 1765 | 을유 | 乾隆 | 30 | 37 | 겨울, 大山 李象靖, 九思堂 金樂行의 講道를 듣고, 이후 편지로 질의하다. |
영조 | 44 | 1768 | 무자 | 乾隆 | 33 | 40 | 9월, 관동지역을 유람하고 〈東遊錄〉을 짓다. |
영조 | 52 | 1776 | 병신 | 乾隆 | 41 | 48 | 봄, 晦屛 申體仁을 방문한 뒤 둘째 형 趙運道 등과 남쪽으로 頭流山(智異山)까지 유람하고, 〈南遊錄〉을 짓다. ○ 月麓書堂을 창건하다. |
정조 | 1 | 1777 | 정유 | 乾隆 | 42 | 49 | 8월, 鄭宗魯가 내방하다. |
정조 | 8 | 1784 | 갑진 | 乾隆 | 49 | 56 | 12월, 〈雲橋問答〉을 짓다. |
정조 | 9 | 1785 | 을사 | 乾隆 | 50 | 57 | 先事로 인해 상경하다. |
정조 | 12 | 1788 | 무신 | 乾隆 | 53 | 60 | 조부 趙德鄰의 관작이 회복되고, 넷째 형 조진도의 科牒이 還授되다. ○ 넷째 형 조진도를 곡하다. ○ 조부의 유문을 수습하다. |
정조 | 17 | 1793 | 계축 | 乾隆 | 58 | 65 | 아들 趙居晦와 趙居愚를 곡하다. |
정조 | 20 | 1796 | 병진 | 嘉慶 | 1 | 68 | 12월, 둘째 형 조운도를 곡하다. |
정조 | 22 | 1798 | 무오 | 嘉慶 | 3 | 70 | 金鎭東과 「聞韶世稿」를 교정하다. ○ 四未亭에서 河弘度의 「謙齋集」을 교정하다. ○ 李秉遠이 「大山集」을 가지고 와서 교정을 의뢰하다. |
정조 | 23 | 1799 | 기미 | 嘉慶 | 4 | 71 | 영양 현감을 대신해 〈農書演議〉를 짓다. |
순조 | 3 | 1803 | 계해 | 嘉慶 | 8 | 75 | 조부의 직첩이 還收되다. ○ 5월 5일, 졸하다. ○ 9월, 영양현 杏田에 장사 지내다. |
순조 | 21 | 1821 | 신사 | 道光 | 1 | ― | 從子 趙居信이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다. |
기사전거 :
行狀(柳致明 撰, 定齋集 卷31), 漢陽趙氏大同世譜, 本集內容 등에 의함
[편찬및간행]
저자는 당쟁에 희생되어 유배지로 가던 중 죽은 玉川 趙德鄰의 손자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형제들과 학문에만 전념하며 초야에 묻혀 지냈다.
저자의 유적과 유문은 아들들이 요절한 관계로 종자 趙居信(1749~1826)이 수습 정리하여 立齋 鄭宗魯(1738~1816)에게 校讎와 서문을 부탁하였는데, 정종로가 저자의 족손 趙根復과 함께 교수를 마치고 서문까지 써서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집에는 이후의 간행 경위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趙居信의 「梅塢集」 권1에 벗 鄭象緯를 위한 만시 〈挽鄭賢則〉에 “世味支離七十三 猿腸相對不須談”이라는 구절과 「晩谷集」의 간행이 완료된 후에 쓴 〈晩谷集刊役落成韻〉이 실려 있는데, 「매오집」의 시가 저작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고 조거신이 73세 되는 해는 1821년인 점으로 볼 때 이 시들이 지어진 연도가 1821년임을 알 수가 있으므로 본집의 간행 또한 이 시기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본집은 저자 사후 얼마 안 되어 간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인지 저자의 손자 趙端復(1790~1859)이 定齋 柳致明(1771~1861)에게 부탁하여 받은 행장 및 기타 정종로, 申體仁, 조거신이 지은 제문 등 부록문자의 수록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본집은 저자의 조카 조거신이 주도하여 1821년에 17권 9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초간본》 이 본은 현재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만송D1-A1141), 국립중앙도서관(古3648-文72-78), 장서각(D3B-611)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저자의 조카 趙居信이 1821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장본이다. 본 영인저본 중 권8의 제8판은 상태가 불량하여 동일본인 국립중앙도서관장본으로 대체하였다.
序(鄭宗魯 撰), 梅塢集(趙居信), 本集內容 등에 의함
[구성과내용]
본집은 17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鄭宗魯가 지은 서문과 총목록이 있다.
권1~2는 詩(224題)이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다. 趙性道, 趙奉圭, 權正宅, 權正忱, 洪允一, 任必大, 吳宅鎬, 白致文 등을 애도한 만시 61제가 포함되어 있다. 권1의 〈剡溪途中〉부터 〈月松亭又次仲兄韻〉까지는 1768년 관동지역을 유람할 때 지은 것으로 雷巖, 酒泉臺, 曹溪洞, 佛影寺, 孔巖, 望洋亭 등지에서의 감회를 읊고 있다. 〈桃李院和申子長韻〉부터 〈淨趣庵次權象仲韻〉까지는 1776년 伽倻山, 智異山 등지의 南遊記行 때 지은 것이다. 이 밖에 저자의 詩作에 대한 생각을 말해 주는 〈好詩不必作〉, 1777년 정종로의 내방을 받고 함께 지내며 지은 〈喜鄭士仰見訪〉, 〈別士仰悄坐書堂偶吟〉 등 5제, 넷째 형 조진도가 覺華寺, 道淵書院, 寒水亭, 滄厓亭, 御風臺, 水月庵, 滄洲精舍, 漁隱亭 등 春陽의 八景을 노래하였는데 이를 이어 지은 〈四兄作春陽八景詩 ……〉, 淸凉山의 암자에서 기거하며 지은 〈冬棲淸凉小庵遇雪景五十韻〉, 〈淸凉雪月之勝呈仲兄四首〉 등이 있다. 권2에는 蔡濟恭의 「樊巖集」 御製詩를 읽고 그 운을 따라 지은 〈伏讀御製題樊相文稿仰次其韻〉, 李滉의 〈和子中閒居二十詠〉에 차운한 〈敬次陶山閒居二十韻〉이 있다. 또 李野淳이 〈武夷九曲〉에 차운하고 陶山九曲詩를 지은 뒤에 화운을 요청하여 지은 〈李健之次武夷九曲韻 ……〉의 뒤에는 〈무이구곡〉 末二句의 분분한 해석에 대한 견해를 밝힌 장문의 後序를 병기하였다. 권2의 끝에는 1803년에 지은 절필시 〈春日偶書〉가 실려 있다.
권3~7은 書(152)이다. 서는 인물별로 묶어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대체로 師友, 門人, 親戚 순으로 편차한 것으로 보인다. 스승인 金樂行과 李象靖을 비롯 蔡濟恭, 權濂, 朴孫慶, 李光靖, 李重延, 李獻慶, 柳長源, 金宗德, 洪錫範, 南景龍, 鄭瀾, 金鎭東, 金道行, 趙鼎玉, 權思浩, 鄭宗魯, 李㙖, 李野淳, 金鵬運, 李宇根, 金熙奮, 姜必孝, 權昇, 洪最根, 李長德, 黃舒漢, 金坤壽, 柳遠祚, 權勉行, 형제 및 친족 등에게 보낸 것이다. 권3의 스승 이상정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理氣, 性情, 未發 已發, 「中庸」의 不睹不聞 등에 대해 질의한 데 대한 답서가 부기되어 있고, 「朱書講錄刊補」의 대여를 요청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1785년 봄 서울에 올라갔다가 西學이 세도의 근심거리가 된 것을 알고 〈雲橋問答〉을 지은 뒤에 쓴 것이 있다. 이광정에게는 넷째 형이 졸한 뒤 상례에 대한 질의를 위해 쓴 것이다. 이헌경에게는 서학에 대해 명료하게 비판한 〈西學問答〉을 읽은 뒤의 소감을 적어 보낸 것이다. 유장원에게는 「論語」의 灑掃應對章에 대한 견해를 밝힌 것이 있다. 권4의 〈與孤雲寺會中〉은 1802년 스승 이상정의 「大山集」을 義城의 孤雲寺에서 간행할 때 문인들에게 보낸 것이다. 〈答權如天別紙〉는 權思溥가 祭禮의 疑節을 물은 데 대해 답한 것이다. 권5의 정종로에게 쓴 것 중에는 道學道統, 所以爲知覺者不同, 放彌卷藏, 存天理之本然遏人欲於將萌, 四端七情 등에 대한 내용을 별지로 부친 것이 있다. 〈答李稚春〉은 이상정의 조카인 李堣가 부탁한 「대산집」의 교감을 거절한 것, 「대산집」 목록에서 누락된 저자 집안의 행장을 넣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 등이다. 이야순에게는 族祖의 후사를 세우는 문제 및 족제 李彦淳의 養母喪에 입어야 할 상복을 물은 데 대해 답한 문목 등 儀禮와 관련한 문제들을 언급한 것이 많다. 문인들과는 「朱子大全」, 「孟子」, 「大學或問」, 「中庸」 등에 나오는 의문처나 禮制 등에 대한 질의응답을 주고받은 것들이다. 친족들에게는 주로 안부를 묻고, 학문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보낸 것이다.
권8은 雜著(6)이다. 이 중에는 서울에서 있었던 혹자와의 문답 형식을 통해 儒學과 天主學을 비교 비판한 〈雲橋問答〉, 유학과 佛學을 비교 변론한 〈儒釋分合辨〉, ‘人心兼出入有善惡’, ‘人心常覺’, ‘心不可以專言氣’, ‘理不可以有無論’, ‘程子放開說’, ‘惟精惟一’, ‘不知不慍’, ‘蔡傳記疑’ 등에 대해 논한 〈齋居隨錄〉, 독서하는 방법 9조목을 적은 〈讀書漫錄〉, 1799년 陶山書院에서 행한 향음주례의 ‘賓主介僎’, ‘戒賓介’, ‘設席位次’, ‘陳器’, ‘迎賓’, ‘序賓’, ‘獻賓’, ‘賓酢主’, ‘主酬賓’, ‘主獻介’, ‘主人獻衆賓’, ‘獻堂下衆賓’, ‘升位’, ‘樂賓’, ‘司正揚鱓’, ‘旅酬’, ‘無筭爵’, ‘賓出’ 등에 대한 의절을 정한 〈鄕飮酒儀考〉, 1776년 월록서당을 완성한 뒤에 白鹿洞學規의 뜻을 취하여 五敎之目, 爲學之序, 修身之要, 處事之要, 接物之要 등의 세부 학규를 적은 〈月麓書堂學規〉가 실려 있다.
권9는 잡저(7), 序(7)이다. 잡저는 종손 趙明復을 위한 名字說과 족질 趙星臣에게 준 恬字說, 1799년 勸農 綸音이 내려졌을 때 현감을 대신해 지은 것으로 ‘均民田’, ‘重民時’, ‘蚤作息’, ‘濬溝洫’, ‘治堤堰’, ‘通水利’, ‘節民用’, ‘禁子錢’, ‘置力田科’ 등 권농의 급선무 9조목을 나열한 〈農書演議〉, 1768년 9월에 다녀온 관동 유람기인 〈東遊錄〉, 1776년 둘째 형 趙運道 및 鄭瀾과 伽倻山, 頭流山 등지를 유람한 기록인 〈南遊錄〉 등이 실려 있다. 서는 편저인 「三朝意會編」, 「咸陽吳氏族譜」, 鄭惟一의 「文峯集」, 重刊 「眞城李氏族譜」, 吳瀷의 「愚齋集」, 「野城鄭氏族譜」, 琴是養의 「三棄堂集」에 대한 것이다.
권10은 序(6), 記(8), 跋(16), 箴(2), 銘(1)이다. 서는 鄭榮邦의 「石門集」, 裵相說의 「槐潭遺稿」, 洪浚亨의 「梅軒詩集」, 申活의 「竹老集」 및 「春川朴氏族譜」, 「英陽金氏族譜」에 대한 것이다. 기는 盤谷의 寒松書堂, 金德五의 癡軒, 南老明의 晩翠軒, 茅山 李棟完을 기려 4대손 李延祚가 세운 三守堂, 李栖의 桃湖亭, 趙一道의 皆巖亭 중건, 吳演의 醉睡堂, 飛鯉洞 齋舍의 중수 등에 대한 것이다. 발은 卓光茂 부자의 「景濂亭世稿」, 李滉의 「紫霞山詩帖」, 朴敏의 「凌虛集」 등에 붙인 것이다.
권11은 贊(2), 上樑文(4), 哀辭(11), 祝文(9)이다. 찬의 〈三棣堂行錄贊〉은 趙奎瑞ㆍ趙台瑞ㆍ趙斗瑞 형제의 효행과 우애를 기록한 행록에 쓴 것이고, 〈陋室贊〉은 李重延의 누실에 대해 쓴 것이다. 상량문은 英陽南氏의 시조 南敏을 모신 鄕社를 중건할 때 쓴 것, 안동 무실에 있는 전주유씨 수곡파의 岐陽 追遠祠에 대한 것 등이다. 애사는 李重慶, 宗君 趙居仁, 李宗岳, 金樂行, 金聖翼, 鄭箕東, 金中柱, 족제 趙尙鈜, 金宗敬, 金宗德, 종조제 趙宗道를 애도한 것이다. 축문은 남민을 향사에 봉안한 것, 道淵書院에 채제공을 추향한 것, 社稷壇, 興霖山, 日月山에 올린 기우제문 등이다.
권12는 祭文(33), 墓表(3)이다. 제문은 김낙행, 權炳, 李猶遠, 李世澤, 金綋, 이상정, 柳浣, 朴孫慶, 吳相鎬, 金重燦, 權斗寅, 吳道濬, 權國觀, 유장원, 채제공, 종질 趙居寬, 넷째 형 趙進道, 족제 趙觀璧과 趙尙鏞, 삼종제 趙存道, 삼종질 趙居約, 족형 趙尙龍, 둘째 형 趙運道, 아들 趙居晦 등을 애도한 것이고, 묘표는 趙德久, 吳濟大, 趙廷琡에 대한 것이다.
권13은 墓碣(15), 墓誌(5)이다. 묘갈은 吳三省, 南薈, 吳學泰, 黃命圭, 金弘望, 鄭鍹, 崔景遠, 朴守緖, 南鵬翼, 權載德, 具耼壽, 金聲久, 沈智, 趙任, 李熙良에 대한 것이고, 묘지는 李完, 李弘重, 金潛, 李元杓, 李周遠에 대한 것이다.
권14는 묘지(5), 行狀(4)이다. 묘지는 洪世恭, 安尙玉, 李宇鏡, 趙喜益, 南翼陽에 대한 것이고, 행장은 李晉哲, 李棟完, 趙德純, 趙錫晦에 대한 것이다.
권15는 행장(3), 行錄(5)이다. 행장은 南基萬, 둘째 형 趙運道, 넷째 형 趙進道에 대한 것이고, 행록은 白仁國, 趙儉, 南佶, 申𥴈, 趙𩕳에 대한 것이다.
권16은 행록(11)이다. 행록은 吳三達, 趙是光, 安洛駿, 李元凱, 趙褆, 權聖天, 田光玉, 余杠, 南奉萬, 金龍燦, 南大萬에 대한 것이다.
권17은 행록(5), 遺事(8), 傳(2)이다. 행록은 南峻衡, 李宇泰, 徐昌鏡, 金命欽, 趙壽聰과 趙壽昌에 대한 것이고, 유사는 趙貞, 金聲厚, 金聲裕, 趙一道, 趙喜采, 李弘績, 金時儁, 李宇烈에 대한 것이다. 전은 鄭錫三의 처인 열부 權氏와 효자 邊克泰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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