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달래주는 향기

<長恨歌(장한가:긴 아쉬움의 노래)>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

晛溪亭 斗井軒 2025. 5. 2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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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의 장한가는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아쉬움을 주제로 상상을 가미하여 만든 명시이다.

<長恨歌(장한가:긴 아쉬움의 노래)> 에는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하늘에서 만난다면 비익조가 되기를 원했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땅에서 만난다면 연리지가 되기를 바랐네"라는 구절이 있다.

백거이가 비익조와 연리지를 사랑의 비유로 사용했기에 비익연리(比翼連理)란 사자성어가 되어 지금도 쓰인다.

칠월칠일장생전(七月七日長生殿;7월 7일 장생전에서)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차한면면무절기(此恨綿綿無絶期;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長恨歌(장한가:긴 아쉬움의 노래)>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한나라 황제가 미색을 중히 여겨 경국지색을 찾는데,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부득

다스리는 오랜 동안 얻지 못하였도다.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양씨 가문에 딸이 있어 갓 장성했는데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니 누구도 알지 못했소.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하늘이 내린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하루 아침에 간택되어 군왕 곁에 있도다.

回眸一笑百媚生 회모일소백미생

눈웃음 한 번에 온갖 교태가 나와

六宮粉黛無顔色 육궁분대무안색

여섯 궁궐 화장한 후궁들이 낯빛을 잃었다오.

春寒賜浴華淸池 춘한사욕화청지

봄 추위에 화청지에서 목욕을 하니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골세응지

매끄러운 온천물에 기름진 때를 씻는다.

侍兒扶起嬌無力 시아부기교무력

시녀들 부축해 일어나니 귀엽게 힘이 없는 듯

始是新承恩澤時 시시신승은택시

이때부터 새로이 황제의 승은을 입었네

雲鬢花顔金步搖 운빈화안금보요

구름 같은 머리, 꽃 같은 얼굴과 흔들거리는 금장식.

芙蓉帳暖度春宵 부용장난도춘소

부용휘장[1] 안에서 봄 깊은 밤을 헤아리니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짧은 밤을 한탄하나 이미 해 높아 일어난다.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부조조

이를 좇는 군왕은 조회를 돌보지 않았고

承歡侍宴無閑暇 승환시연무한가

연회를 벌이느라 한가할 틈이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춘종춘유야전야

봄이면 봄놀이 따라가고 밤이면 밤시중을 독차지했네.

後宮佳麗三千人 후궁가려삼천인

후궁에 빼어난 3천 미녀들이 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총애재일신

3천의 총애가 한 몸에 머무르니

金屋粧成嬌侍夜 금옥장성교시야

금빛 방에서 단장하고 교태로 시중들고

玉樓宴罷醉和春 옥루연파취화춘

옥루 잔치 끝나면 춘정에 취한다.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제형개렬토

자매와 형제 모두가 봉토를 갖게 되니,

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아리따운 광채가 가문에 나는구나.

遂令天下父母心 수령천하부모심

비로소 천하의 부모들이

不重生男重生女 부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겼네.

驪宮高處入靑雲 려궁고처입청운

여궁[2] 높이 솟아 푸른 구름 모여들고,

仙樂風飄處處聞 선악풍표처처문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곳곳에서 들려온다.

緩歌慢舞凝絲竹 완가만무응사죽

느린 노래 오만한 춤이 비단결과 피리에 맺히니

盡日君王看不足 진일군왕간부족

군왕이 종일 넋 잃고 보아도 부족하다.

漁陽瞽鼓動地來 어양비고동지래

어양에서 북소리가 땅을 울리며 오는데,

驚破霓裳羽衣曲 경차예상우의곡

<예상우의곡>의 소리도 끊기었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성궐연진생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千乘萬騎西南行 천승만기서남행

1천 수레와 1만 기병이 서남으로 떠났다.

翠華搖搖行復止 취화요요행부지[3]

화려한 깃발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는데,

西出都門百餘里 서출도문백여리

도성 문에서 서쪽으로 나와 100여 리

六軍不發無奈何 육군부발무내하

6군이 아니 움직이니 어쩔 수 없이[4]

宛轉蛾眉馬前死 완전아미마전사

눈썹 긴 미인도 군마 앞에서 죽어야만 했지.

花鈿委地無人收 화전위지무인수

땅에 떨어진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금작옥소두

취교, 금작, 옥소두도 그러하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엄면구부득

군왕이 얼굴 가리고 구하려 해도 어쩔 수 없고

回看血淚相和流 회간혈루상화류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른다.

黃埃散漫風蕭索 황애산만풍소삭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운잔영우등검각

구름 걸린 굽은 사다리, 검각[5]을 오른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하소인행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정기무광일색박

어기(御旗)는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수벽촉산청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성주조조모모정

황제의 마음은 날로 저물어간다.

行宮見月傷心色 행궁견월상심색

행궁에서 달을 보니 마음 절로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 야우문령장단성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 애간장이 끊어진다.

天旋地轉回龍馭 천선지전회룡어

하늘 바뀌고 땅이 돌아 황제 돌아오는 길에

到此躊躇不能去 도차주저부능거

여기 이르러 머뭇거리매 떠날 수가 없었다.

馬嵬坡下泥土中 마외파하니토중

마외역 언덕 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부견옥안공사처

고운 얼굴 보이지 않고 죽은 자리만 남았다.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상고진첨의

임금 신하 서로 보니 눈물이 옷을 적시고,

東望都門信馬歸 동망도문신마귀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귀래지원개의구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예전과 같아

太液芙蓉未央柳 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6]의 연꽃도 미양궁[7]의 버들도 다름이 없다.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여면류여미

연꽃은 얼굴이요 버들은 눈썹이니

對此如何不淚垂 대차여하부루수

이런 정경을 보고 어찌 아니 눈물 흘리겠는가!

春風桃李花開日 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숭아꽃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 추우오동섭락시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진다.

西宮南內多秋草 서궁남내다추초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우거지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섭만계홍부소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지 않네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자제백발신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초방아감청아노

초방의 젊은 시녀들도 늙어 버렸다.

夕殿螢飛思悄然 석전형비사초연

저녁 궁궐에 반딧불 나니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 고등도진미성면

외로운 등불 심지 다 타도 잠이 오지 않는다.

遲遲鍾鼓初長夜 지지종고초장야

더디고 더딘 종과 북소리에 처음으로 긴 밤을 보내는데

耿耿星河欲曙天 경경성하욕서천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 하늘을 넘어간다.

鴛鴦瓦冷霜華重 원앙와랭상화중

원앙기와 차가워 서리가 겹겹이 쌓이는데,

翡翠衾寒誰與共 비취금한수여공

비취금침 싸늘하니 누구와 함께 덮겠는가?

悠悠生死別經年 유유생사별경년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魂魄不曾來入夢 혼백부증래입몽

꿈속에서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다.

臨邛道士鴻都客 임공도사홍도객

임공[8]에서 온 도사가 서울에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능이정성치혼백

정성을 들이면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 하니

爲感君王輾轉思 위감군왕전전사

그리워 잠 못 드는 군왕을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수교방사은근멱

방사로 하여금 남몰래 찾게 해보았지.

排空馭氣奔如電 배공어기분여전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승천입지구지편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상궁벽락하황천

위로는 하늘 끝,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 양처망망개부견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문해상유선산

홀연 바다 위에 선산 있다는 소문 들어

山在虛無縹緲間 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누각령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 구름이 일어

其中綽約多仙子 기중작약다선자

그 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中有一人字太眞 중일 유일자태진

그중 '태진'[9]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설부화모삼차시

눈 같은 피부와 고운 얼굴이 닮았다고 했지.

金闕西廂叩玉扃 금궐서상고옥경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전교소옥보쌍성

소옥에게 일러 쌍성에게 말 전하니[10]

聞道漢家天子使 문도한가천자사

한나라 천자의 사자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구화장리몽혼경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攬衣推枕起徘徊 남의추침기배회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迤邐開 주박은병이리개

주렴과 은병풍이 스르르 열렸다.

雲髻半偏新睡覺 운빈반편신수교[11]

구름 같은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부정하당래

머리장식 안 고친 채 집에서 내려오니.

風吹仙袂飄飄擧 풍취선몌표표거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이 나부낀다.

猶似霓裳羽衣舞 유사예상우의무

예상우의무를 추는 그 모습인 듯한데,

玉容寂寞淚欄干 옥용적막루란간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난간에 흐르니

梨花一枝春帶雨 이화일지춘대우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하다.

含情凝睇謝君王 함정응제사군왕

정 어린 눈길 돌려 군왕에게 사뢰니

一別音容兩渺茫 일별음용량묘망

한번 이별 후 소리와 모습 다 아련하여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12]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寰處 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부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뿐.

唯將舊物表深情 유장구물표심정

오직 옛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 하니

鈿合金釵寄將去 전합금채기장거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보내겠다 말했지.

釵留一股合一扇 채류일고합일선

비녀는 반 쪽씩, 자개함은 하나씩.

釵擘黃金合分鈿 채벽황금합분전

비녀와 자개함을 반으로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 단교심사금전견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인간회상견

천상과 인간세상 사이에서 다시 보게 되리라.

臨別殷勤重寄詞 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량심지

두 마음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13]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14]에서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15]

하늘에서 만난다면 비익조가 되기를 원했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16]

땅에서 만난다면 연리지가 되기를 바랐지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하늘과 땅이 장구해도 끝이 있건만,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한은 끝없이 이어져 다함이 없네

1] 연꽃을 수놓은 휘장.

[2] 당나라 시대의 화청궁(華清宮)은 여산(驪山)에 있었기 때문에 '여궁'(驪宮)이라고도 불렀다.[3] '復'은 보통 '복'이라 읽지만, 여기서는 '다시'란 뜻이라 '부'라 읽었다.

[4] 여기서 '6군'은 당나라 황제의 친위대를 가리키는데 금군(禁軍)이라고도 한다. 안록산의 난을 피해 당 현종이 친위군과 궁인들을 이끌고 피난할 적에, 6군의 병사들은 '지금 이런 환난이 닥침은 오직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을 벌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면서 행군을 멈추었다. 황제가 명령해도 소용이 없었으므로 병사들을 달래고자 현종은 결국 양국충을 죽이고, 양귀비에게는 자살을 강요했다. 이때 양귀비는 마외역 근처에 있는 불당에 들어가 목을 매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마외병변(馬嵬兵變)이라 부른다.

[5] 중국의 지명. 대검산(大劍山)과 소검산(小劍山) 사이를 넘는 험준한 고갯길이다. 군사적 요충지라 관문이 있었다.

[6] 한 무제가 궁궐 안에 판 못

[7] 유방이 항우와의 천하 쟁탈전에서 승리하고 한나라를 세워 황제로 등극하자, 승상 소하가 수도 장안(長安)에 건립한 궁궐이다.

[8] 장안 근처의 지명. 현재의 쓰촨성 충라이시(邛崃市)이다.

[9] 당현종이 양귀비를 여도사로 변장시켰을 때 '태진'(太眞)이란 이름을 쓰도록 했다.

[10] 소옥(小玉)과 쌍성(雙成) 모두 서왕모를 모시는 선녀들이다.

[11] '覺'자는 '깨달을 각'이지만, '잠에서 깬다.'는 뜻으로는 '교'라고 한다.

[12] 양귀비의 처소.

[13] 비녀와 자개함만으로는 도사가 정말로 양귀비의 혼령과 만났다고 보증할 수 없으니, 현종과 양귀비만이 아는 대화를 알려주어 참임을 보증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14] 722년 당나라 태종이 여산에 세운 이궁. 뒤에 현종이 청화궁(淸華宮)으로 고쳐 양귀비와 거처한 곳이다.

[15] 비익조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라, 암•수가 몸을 서로 의지해야만 하늘을 날고,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한다.

[16] 연리지는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맞닿다가 엉켜, 하나로 합쳐진 것을 뜻한다.

[17] 연리지가 되고, 비익조가 되겠다는 마지막 구절을 가리킨다.

신록의 계절, 장미의 계절이라고도 하지요. 젊었을 땐 할 일도 많았는데 요즈음엔 만날 사람도 없고 뒤늦게 빠져든 고전(古典)과 씨름하다 보니 모든 일이 시시해서 글 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습니다.  이따금씩 나가보면 화창한 날씨에 사방이 온통 울긋불긋해 눈이 부실지경입니다. 그런데 왠지 우울한 마음에 술생각이 간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나라 때의 시인인 백거이를 잠시 모셨습니다. 회원님들도 함께 하시지요.

 

對酒

-白 居 易-

一.

巧拙賢愚相是非 [교졸현우상시미]、 잘났네 못났네 현명하네 어리석네 서로 다투는데,

何如一醉盡忘機 [하여일취진망기]。 흠뻑 취해 모두 잊는 것이 어떤가.

君知天地中寬搾 [군지천지중관착]、 그대는 아는가 세상은 넓고도 좁고,

鵰鶚鸞皇各自飛 [조악난황각자비]。 수리와 봉황새 제각기 가는 길 있다네.

二.

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달팽이 머리위 두 뿔 무슨 일로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 [석화광중기차신]。 부싯돌의 불꽃처럼 순간을 살다 가는데.

隨富隨賓且歡樂 [수부수빈차환락]、 부자나 가난한 자나 기쁨과 즐거움이 있거늘,

不開口笑是癡人 [부개구소시치인]。 입벌려 웃을 줄 모른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三.

丹砂見火去無迹 [단사견화거무적]、 단사(丹砂)도 불을 만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白髮泥人來不休 [백발니인래불휴]。 백발은 쉬지않고 와서 사람을 보챈다네.

賴有酒仙相暖熱 [뢰유주선상완열]、 주선(酒仙) 덕에 서로 따뜻해

松喬醉卽到前頭 [송교취즉도전두]。 적송자나 왕자교도 취하면 고개를 떨구었도다.

四.

丹砂見火去無迹 [단사견화거무적]、 단사(丹砂)도 불을 만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白髮泥人來不休 [백발니인래불휴]。 백발은 쉬지않고 와서 사람을 보챈다네.

賴有酒仙相暖熱 [뢰유주선상완열]、 주선(酒仙) 덕에 서로 따뜻해

松喬醉卽到前頭 [송교취즉도전두]。 적송자나 왕자교도 취하면 고개를 떨구었도다.

四.

百歲無多時壯健 [백세무다시장건]、 백 세를 살아도 몸 건강한 때 많지 않고

一春能幾日晴明 [일춘능기일청명]。 봄철에 맑은 날 며칠이나 되겠소.

相逢且莫推辭醉 [상봉차막추사취]、 서로 만났으니 사양 말고 취해,

聽唱陽關第四聲 [청창양관제사성]。 양관의 이별가나 듣자구나.

五.

昨日低眉問疾來 [작일저미문질래]、 어제 고개 숙여 병문안 갔더니

今朝收淚弔人回 [금조수루조인회]。 오늘 아침 눈물 훔치며 조문하네.

眼前流例君看取 [안전유례군간취]、 흐르는 눈물로 그대 조문하며

且遣琵琶送一杯 [차견비파송일배]。 비파 한 곡, 한 잔 술 그대에게 보내노라.

丹砂 : 연단을 해서 단약을 만드는 광물. 옛날 도사들은 단사를 원료로 하여 장수의 비약을 구워냈는데 이를 연단술(鍊丹術), 연금술(鍊金術)이라 함.

松喬 : 적송자(赤松子)와 왕자교(王子喬).

赤松子 : 전설 속의 선인(仙人)이다. 《漢書(한서)》 안사고(顔師古)의 주(注)에, “적송자는 선인(仙人)의 호(號)이다. 신농씨(神農氏) 때에 우사(雨師)였다.[赤松子仙人號也 神農時爲雨師]”라고 하였다. 음식으로 물을 먹고 옥으로 옷을 해 입은 적송자는 신농에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견디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금화산(金華山)에 살다가 스스로 몸을 태워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王子喬 : 태평광기(太平廣記) 제4권 신선4(神仙四)에 실려있으며 그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

王子喬者,周靈王太子也。好吹笙作鳳凰鳴。游伊洛之間,道士浮丘公,接以上嵩山,三十余年.

陽關第四聲 : 陽關은 고대 관문(關門 )의 명칭으로,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돈황현(敦煌縣) 서북쪽이다. 양관곡은 〈위성곡(渭城曲)〉 혹은〈陽關三疊(양관삼첩)〉이라고도 불리며, 소동파는 이 시의 창법을 여러 가지로 정리하기도 하였는데, 그 창법 중에 하나가 앞의 세구는 한 번 창(唱)하고, 제4구만 세 번 중첩하여 창(唱)하는 방법인데 간단하면서도 음악적인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훗날, 벗을 송별할 때 불러주는 송별가(送別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白居易(772 ~ 846)

자(字)는 낙천(樂天). 호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 낙양(洛陽) 인근의 신정(新鄭) 출생.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불리었다. 800년 29세로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32세에 황제의 친시(親試)에 합격하였으며, 그 무렵에 지은 장한가(長恨歌)는 유명하다. 807년 한림학사가 되었고 814년 태자 좌찬선태부(左贊善太夫)가 된 후 그의 비판적 성향으로 고급관료들의 반감을 사서 구강(九江)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비파행(琵琶行)을 지었다. 백거이의 시는 노파도 이해할 수 있는 평이성(平易性), 정치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해 일반 서민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노래한 풍자성(諷刺性), 시의 내용이 시대나 시사(時事)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사실성(事實性)으로 요약된다. 그의문집으로 현재 전하는 것은 《백씨장경집》 75권 가운데 71권이 있으며, 《백향산시집》 40권도 있다. 현존하는 작품수는 3,800여 수이고, 그 중에서 《비파행(琵琶行)》 《장한가(長恨》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는 불멸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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