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조광조,학포양팽손◑

면암 최익현이 세운 정암조선생서원유지추모비(죽수사터)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0. 4. 2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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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수서원의 <정암조선생학포양선생죽수서원유지추모비 >비문은 1905년 면암 최익현이 짓고 송병순이 썼다 .

면암 최익현이 조대감골에 세운 <정암조선생서원유지추모비>

靜菴先生書院遺址追慕婢

학포 양팽손선생이 세운 : 죽수사(竹樹祠) - 증리 서원터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송병순(宋秉珣) 동옥(東玉), 심석재(心石齋), [1839(헌종 5)~1912], 1905년 세움.

학포 양팽손(學圃 梁彭孫) 1488-1545, 본관은 제주(濟州)선생이 세운 : 죽수사(竹樹祠) - 증리 서원터

정암조선생서원유지추모비(靜菴先生書院遺址追慕婢)’(서원말/증리마을회관 옆의 당산은행나무 아래 : 증리 229-1번지)

조대감마을 일명 서원마을

무덤터(시신을 묻은 장소 : 증리 189번지 근방)

죽수서원에도 정암조선생죽수서원유지추모비(靜菴先生竹樹書院遺址追慕婢)”세움.

정암조선생학포양선생죽수서원유지추모비

(靜菴趙先生學圃梁先生竹樹書院遺址追慕碑)

희암(希菴) 양재경(在慶:1859~1918)의 주선으로 1905년 최익현(崔益鉉)이 짓고, 음기는 송병순(宋秉珣)이 썼다.

 

정암선생서원유지추모비

(靜菴先生書院遺址追慕婢)

 

학포 양팽손선생이 세운 : 죽수사(竹樹祠) - 증리 서원터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송병순(宋秉珣) 동옥(東玉), 심석재(心石齋), [1839(헌종 5)~1912], 제주양씨 종친회에서 1910년 세움.

 

학포 양팽손(學圃 梁彭孫) 1488-1545, 본관은 제주(濟州)선생이 세운 : 죽수사(竹樹祠) - 증리 서원터 정암조선생서원유지추모비(靜菴先生書院遺址追慕婢)’(서원말/ 버스정류장위 당산느티나무 우측 정미소아래 논두렁에 위치)

서원말 일명 조대감마을

초장지(初葬址, 시신을 묻은 장소 : 증리 189번지 근방)

 

중수죽수서원기 : 조찬한이 찬한 중수기.

조광조신도비 : 노수신이 찬한 정암조광조의 신도비.(노수신문집 소재집)

양팽손신도비 : 홍량호가 찬한 학포양팽손의 신도비.(홍양호문집 이계집)

 

南道 정자기행(433)- 한후정(寒後亭) 정자로 만난 인물-오준선(吳駿善)

 

석인碩人이 간반澗畔에 은거하니/푸른빛이 정원을 둘렀도다

눈속에 곧은 자태 빼어났고/바람앞에 일운逸韻이 맑도다

찬 매화는 귀한 바가 아니고/서리 국화도 도리어 가벼웠어라

홀로 세한歲寒 빛을 간직했으니/미간楣間에 성훈聖訓이 밝게 걸렸네

 

碩人在澗 蒼翠繞園成

雪裡貞姿秀 風前逸韻

梅非所貴 霜菊較還輕

獨保歲寒色 楣間聖訓明

 

이 시는 구한말 광산지역을 근거로 활발하게 무장투쟁을 벌인 의병의 스승으로 의병들과 문도들의 정신적 지도자의 삶을 살았던 오희도(吳希道)의 후손인 후석 오준선(後石 吳駿善 18511931)이 화순군 쌍봉리 마을 뒷산 대숲에 자리한 양팽손의 후손 희암(希菴) 양재경(梁在慶)의 정자 한후정(寒後亭)에서 지은 것이다.

 

겨울에 솔의 뜻을 쌍봉리 한후정 (寒後亭)

지번명)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725 도로명)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길 27-11

한후정(寒後亭) 양재경(梁在慶, 1859-1918)

敬以直內❀ ❀義以方外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하고, 의로써 행동을 반듯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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