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26일 오후 2시 대전국립묘지 현충관에서 독립운동가 이규병(1897~1942), 조계식(1876~1945), 우억만(1879~1953) 선생 등 독립운동선열의 유해 3위의 안장식을 거행하였다.
이규병 선생은 1913년 중국 용정에서 봉명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에서 활동했으며, 조계식 선생과 우억만 선생은 포천과영덕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성명성별운동계열출생사망년월일본적주소포상년도훈격공훈록공적조서
조계식 (趙啓植) : 한양조씨 양경공파 - 문간공파 종인
남
3.1운동
1876-03-26
1945-07-10
경기도 포천 新北 萬世橋
新北 萬世橋
1999
애족장
경기도 포천(抱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신북면(新北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포천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만세운동의 소식을 일찍 접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했던 조계식은 신북면을 중심한 만세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그는 조훈식(曺薰植)· 최학돌(崔鶴乭) 등과 뜻을 같이 하기로 결의하고 만세운동계획을 추진해 갔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30일로 정하고, 우선 군중이 많이 참가하게 만세시위의 참여를 촉구하는 선전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선전문을 비밀리에 인쇄하여 각처에 배포하였다. 또한 이들은 만세시위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밤새워 인쇄·제작하면서 거사에 만전을 기하였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인 3월 30일에 이들은 신북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는데, 이때 인근 각지에서 모인 군중은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조계식은 1,000여 명 군중과 더불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시위를 저지하는 일경의 탄압을 받아 시위대는 해산되고 그는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경성복심법원과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8輯 4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513∼515面
1919. 3. 29 京畿道 抱川郡 新北面 자기 집에서 趙薰植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 선전문서 10수 통을 작성하여 배부하고 이튿날인 30일 新北面 사무소 앞에서 약 1천명의 군중과 더불어 독립만세를 절규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다가 被逮되어 懲役 1年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식민지 통치 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실시하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근대적 기본권을 박탈, 토지조사사업등으로 일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거세져가고 있던중, 민족 해방 의지를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 비밀결사 운동, 교육 문화 운동 및 생존권 수호 투쟁 등을 통해 운동 역량이 강화되어 갔으며 1918년 1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자 식민지 약소민족을 크게 고무하여 민족 해방 운동을 고양시켰으며 일제 강점기 1919년 3월 1일, 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종의 장례식 날 손병희(孫秉熙)를 총대표로 하는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서울 탑골 공원에 군집해 있던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대한독립 만세” 외치기 시작하자 마른 장작불에 기름을 붙듯 독립 운동은 전국과 해외까지 확산되기 시작한다.
포천보통학교
만세시위지
포천공립보통학교 동맹 휴학지는
일본인 교장의 비교육적인 처사에 맞서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벌인 곳이다. 1927년11월26일에 포천공립보통학교의 마쓰하라 교장이 수업료를 못 낸 학생들을 구타하자 이에 분개한 4학년생 50여명이 진정서를 제출하고 동맹 휴학에 들어갔다. 이들은 교장이 학생을 구타한 일 외에 수업료를 거두지 못했다며 한국인 교사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은일, 학생을 학교장 가사에 동원한 일 등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자 교장은 오히려 포천경찰서에 학생들의 동맹 휴학을 진압해 달라고 요청하고 주동 학생들에게 무기정학 또는 5일간의 유지정학 처분을 내렸다.
영평면사무소
만세시위지
영평리에서는
1천여 명의 주민이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면서 군청 사무소를 습격하여 친일 면장을 응징하고 영평 헌병 분견소를 공격하였다.
송우리 만세시위지
송우리 헌병분견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포천군 소흘면 ,가산면 주민들이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한 곳이다. 1919년3월24일에 소흘면 송우리에서 주민 약600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주도자들이 체포되었으나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3월30일이 되자 약 1,000여 명의 주민들이 다시 송우리 헌병분견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가 송우리 헌병분견소를 공격하려 하자 일본 헌병들이 이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다. 이때의 총격으로 최석휴등이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무봉리 만세시위지
무봉리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무봉리 주민 1,0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 소식은 곧바로 포천에도 알려졌다.
그리하여 3웗13일 포천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영중면 영평리와 소흘면 송우리에서 만세 시위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1919년3월29일에는 소흘면 무봉리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 시위를 벌이며 무봉리 일대를 행진하였다. 이때 시위를 주도한 5명이 송우리헌병주재소에 체포되었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무봉리 만세 시위는 신북면사무소 만세시위, 송우리 만세 시위와 함께 포천 지역에서 일어난 시위중 대규모 시위에 속한다.
신북면사무소
만세시위지
신북면사무소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포천의 4개면민 1,000여멍이 연합하여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신북면 만세시위는 포천 지역 연합만세 시위였다. 1919년3월29일에 중면 신사리에 사는 유중식은 '내일 신북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자고 하니 여러 사람과 같이 나오라'는 통문을 받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한편 함병현,김수종에게 마을마다 통문 내용을 알리게 하여 만세 시위 계획을 널리 선전하였다. 3월30일에 신북면사무소에는 신북면,일동면,이동면,영중면 등지에서 주민 1,000여명이 몰려 들었다. 어는 청년의 연설에 이어 누군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군중도 함께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일제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시위는 점차 폭력적인 양상으로 바뀌었다. 시위운동 후에 유중식과 함병현 등은 밀고에 의해 잡혀 유중식은 징역 1년형, 함병현은 징역 10월형에 각각 처해졌다.
포천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다채로운 기념사업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특히 100년 전 포천에서 울려 퍼졌던 만세 소리가 재현된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포천에서는 3월 13일 포천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일본 교원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에 올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이후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포천 전 지역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되었으며, 특히 30일에는 소흘읍과 가산면 주민 2천여 명이 송우리 헌병 분견소를 공격하는 등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인 역사가 있다.
이날 일정은 3월 1일 정오에 맞춰 청성 역사 공원 반월 가게에서는 당시 희생된 선열을 추모하는 시민대종 타종행사가 거행되고 오후 2시 포천반월아트홀 소극장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이 진행된다. 기념식은 독립유공자 표창, 기념 영상 상영,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기념사, 3.1절 노래 제창, 만세 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동완 선생의 손자인 박재상 씨가 대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어린이 합창단의 3.1절 노래 합창이 이어질 예정이다. 독립유공자 유족의 선창에 맞춰 만세 삼창도 진행된다. 시는 기념식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와 수기 태극기를 나눠주며 모두가 함께하는 기념식을 만들 예정이다.
그동안,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근곡 박동완(朴東完, 1885~1941) 선생은 양평 출신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었으나, 박동규 경기북부노인지도자 대학 학장이 역사적 문헌 자료와 보훈처의 공훈록 등 각종 고증자료를 확인하고 연구한 끝에 박동완 선생이 포천 신읍동 호병골 출신인 것이 최종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포천시의 독립운동사가 올바르게 세워진 것도 커다란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시는 오는 3월 29일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공연을 준비한다. 반월아트홀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대한독립 만세(the story 1919313)'는 1919년 3월 13일 시작된 포천지역의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창작무용극이다.
포천시는 전주시와 손을 잡고 문화교류를 통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천시립민속예술단과 전주시립예술단이 함께하는 이번 공연에는 관객 퍼포먼스도 진행된다. 천 명의 관객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공연 속 만세운동에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포천에서도 치열한 만세운동이 진행되었다. 공연을 통해 시민 모두가 그날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3.1운동 정신을 기리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시는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캠페인'도 진행한다. 현수막과 마을방송, 홈페이지, SNS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태극기 달기를 홍보하고, 주요 도로변에 태극기를 게양한다.
이외에도 '포천의 독립운동사'를 수정 발간한다고 밝혔다.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추가하고,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를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포천지역의 3.1운동과 독립운동가를 소개한 '포천의 독립운동사'는 누구나 읽어볼 수 있도록 시청과 읍면동, 관내 초·중·고등학교, 포천시립도서관 곳곳에 비치될 예정이다. 또한, 포천시립중앙도서관에서는 4월 말까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추천도서와 우수도서를 전시한다고 밝혔다.
포천시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독립유공자 등 명패 달아드리기 사업'을 추진한다. 사업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의 가정을 방문해 명패를 달아드리는 것으로, 유공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 분위기를 조성하고, 유공자의 자긍심을 높이도록 추진되는 사업이다. 시는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가정에 차례로 방문해 명패를 달아드릴 계획이다.
포천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는 박동완(朴東完, 1885~1941), 최 석유(崔錫休, 1888~1919), 안응건(安應乾, 188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