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zh.wikisource.org/w/index.php?title=%E5%85%83%E5%8F%B2/%E5%8D%B7166&action=edit§ion=1
▣王綧(왕준)▣
王綧,高麗王㬚之猶子也,美容儀,慷慨有志略,善騎射,讀書通大義,以質子入朝。
歲癸丑,高麗權臣高令公叛,憲宗命耶虎大王東征,綧奉旨為使講和,仍鎮守其地,時高麗人戶新附者,就命綧總之。中統元年,授金符總管,陞佩虎符,兼領軍民。三年,率兵征濟南李璮。至元七年,高麗臣林衍叛,世祖遣頭輦哥國王討之,綧簽領部民一千三百戶,與國王同行。是年十一月,以疾辭還,家居。二十年九月,卒,壽六十一。子三人。
阿剌怗木兒襲職,授虎符,總管高麗人戶。至元八年,將兵討叛賊金通精,賊敗走躭羅。十一年,進昭勇大將軍,從都元帥忽都征日本國,預有戰功。〔十〕五年,加鎮國上將軍、安撫使、高麗軍民總管,尋陞輔國上將軍、東征左副都元帥。十八年,復征日本,遇風濤,遂沒于軍。
闊闊帖木兒,入侍武宗潛邸,積勞授太中大夫、管民總管。
兀愛襲兄阿剌帖木兒職,佩金虎符,授安遠大將軍、安撫使、高麗軍民總管、東征左副都元帥。二十四年,乃顏叛,力戰屢捷。復從月魯兒那演討塔不歹、朵歡大王于蒙可山、那江,統兵五千餘眾,與八剌哈赤脫歡相拒,絕流戰黑龍江,箭中右臂,忍傷復戰,敵大敗。二十五年,征哈丹禿魯〔干〕,隸平章闊里帖木兒麾下,論功居多。冬十二月,賊軍古都禿魯干次於斡禿魯塞,平章率兀愛討降之。明年,加授昭武大將軍、遼陽等處行中書省事。又明年,哈丹等入寇高麗國境,遣兀愛鎮守,仍修城壁,嚴卒伍,軍威大振,賊遂潛遁。九月,哈丹禿魯干復寇纏春,兀愛引兵擊却之。
二十八年,入覲世祖于內殿,嘉其戰功,賜尚方玉帶及銀酒器。二十九年,改東征左副都元帥府,立總管高麗女直漢軍萬戶府,乃授兀愛三珠虎符,陞鎮國上將軍,總管高麗女直漢軍萬戶府,兼瀋陽安撫使、高麗軍民總管。
[参考资料章节预览]
王綧高麗王㬚之猶子也 按本書卷二太宗紀十三年辛丑秋條、卷一五四洪福源傳、卷二0八高麗傳「猶子」皆作「族子」,新元史從改,是。王綧非王㬚兄弟之子。
〔十〕五年 上文有「十一年,進昭勇大將軍」,下文有「十八年,復征日本」,此「五年」上脫「十」字,今補。本證已校。
哈丹禿魯〔干〕 據下文補。此名本書屢見。蒙史已校。
■왕웨이(王偉)
고려왕의 아들 왕기(王氣)[1]는 관대하고 야심이 강하며, 승마와 사격, 독서와 의(正)에 능하고, 양성자를 가지고 궁궐에 들어간다.
올해는 추악하고 고려 장관 가오링이 반란을 일으켰고 셴종은 예후 왕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명령하고 평화를 맺으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의 땅을 지켰습니다. 중앙연합 원년에 그는 황금 부적의 머리, 호랑이 부적, 인민의 지도자를 수여 받았다. 3년 동안 그는 군대를 이끌고 제남(濟南)에서 리유(李劉)를 모집했다. 원나라 7년, 고려의 신하 린옌(林燕)이 반란을 일으켜 조상이 왕(王)의 왕(王)을 보내어 청하고 백성 1,300가구를 이끌고 왕과 동행하였다. 같은 해 11월, 그는 사직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20세 되던 해 9월, 그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셋을 두었다.
아라무얼(Ah Ra Mu'er)이 취임하여 호랑이 부적을 수여하고 한인의 집안을 책임졌다. 원나라 2년, 장군들은 반역자 진동징과 싸웠고 도둑은 패배하고 떠났다. <十一>년째 되던 해에 장군(趙宗)에 들어가 수도 원수(官帝)에서 수도(道市)까지 일본을 정복하고 군사적 공적을 세웠다. [<〔十〕五年>] <〔十〕五>년째 되던 해에 자전(嘉安)국의 장군, 화해(治大)의 사절, 고려(高府)의 군(軍)과 문(水)의 장군, 순(迈)의 보조국(內國)의 장군, 동방원정(東東天帝)의 좌측 부도(光帝)의 원수(元帝)를 역임하였다. <十八>년 후, 그는 일본을 다시 정복했다가 폭풍우를 만나 군대에서 실종되었다.
쿠오쿠오 티무르(Kuokuo Timur)는 우종 은밀저택(Wuzong Hidden Mansion)에 들어가 노동력을 모아 태종 박사(太中我)와 백성 총지배인(主人人)을 바쳤다.
우아이는 동생 이라티무르를 공격하여 금호 부적을 달고 장군 안원(安元), 평화 사신, 고려의 군민 총독, 동방원정대 좌충우 원수 등을 하사하였다. 3년 동안 나이옌은 반란을 일으켜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탑을 연주 한 Yuelu'er의 Fu는 사악하지 않으며, Duohuan의 왕은 Najiang의 Mengke Mountain에 있으며 <>,<二十四> 명 이상의 군대를 지휘했으며 Ba Raha Chi Huan은 거부하고 Heilongjiang에서 전투의 흐름, 화살은 오른팔에 맞았고 상처를 견디고 전투를 재개했으며 적은 패배했습니다. <二十五>년째 되던 해에 그는 핑장 콜리(Pingzhang Koli)의 티무르(Timur)의 지휘 아래 하단 발루(Hadan Balu)[간]<〔干〕>)를 정복하였는데, 그들 대부분이 공덕이 있었다. 겨울과 <十二>월, 도둑 군대의 고대 수도는 대머리 Lusai에 이어 두 번째였으며 Pingzhang은 독수리를 이끌고 항복했습니다. 내년에는 자오우 장군과 랴오양이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수여될 것입니다. 이듬해 하단 등은 고려 국경에 입성하여 우아이를 보내 마을을 지키게 하고 성벽을 보수하고 군대를 엄중히 지키며 군의 위신을 크게 높였고 도둑들은 도망쳤다. <九>월, 하단 볼드와 루간은 고우탕춘으로 돌아왔고, 우아이는 군대를 이끌고 그를 물리쳤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에 그는 내당(內家)에 들어가 그의 군사적 공적을 칭찬하고 옥대와 은술잔을 주었다. 29년째 되던 해에 원수(元官)의 저택을 동방원정(東東動動)의 좌측(古官)으로 바꾸고, 고려(高麗) 여지한군(家音軍)을 세웠는데, 이 저택은 청전(成田)국의 장군 우아이산주(吳山山寧) 호랑이푸(富虛富後), 고려(高陽) 여지한군(家音軍) 장군, 심양(瀋陽) 평화 사절, 고려 군(軍) 및 문민(源官) 총독을 하사하였다.
728x90
'❀漢陽人문화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양조씨 옥천 문중 이야기 통한 지조있는 삶의 가치 재조명! (0) | 2024.01.20 |
---|---|
겸재 정선의 ‘초본(草本)’ 금강산 그림 발굴 영양 주실의 한양 조씨 문중에서 대대로 소장:한국국학진흥원, 7점 기탁 받아... (4) | 2024.01.15 |
■秋齋集卷之一 漢陽趙秀三芝園著 / 詩[憶昔行] (2) | 2023.12.31 |
♥조수삼(19세기)-사마시에 합격한 날♥ ■사마창방일구호칠보시(司馬唱榜日口呼七步詩) (2) | 2023.12.30 |
▣월봉 조동희 화백의 무궁화 그림▣ (0) | 2023.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