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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들은 노닐고 선비는 공부하고, 경치가 좋은 터에 서원을 지은 것이지요. 이 서원이 도봉서원

by 晛溪亭 斗井軒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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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들은 노닐고 선비는 공부하고, 경치가 좋은 터에 서원을 지은 것이지요. 이 서원이 도봉서원

이번에 정차한 역은 방학역이에요. 이곳이 ‘방학’역이 된 데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요.  
첫 번째로는 먼 옛날 이곳이 쿵더쿵쿵더쿵 곡식을 찧는 방아가 있던 방아터여서 ‘방아골’이라 불렸다고 해요. 방아골을 한자 말로 옮기면서 ‘방학리’가 되었고, 지금은 ‘방학동’이 된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이곳 땅의 모양새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해서 붙여졌다고도 해요.   
세 번째 이야기가 중요해요. 조선 시대에 나라의 관리가 서원 지을 터를 정하기 위해 도봉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았어요. 그랬더니 저 아래에서 학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었어요. 그래서 학들이 자유롭게 놓여나 논다는 뜻으로 ‘방학’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학이 노닐 만큼 경치가 좋은 터에 서원을 지은 것이지요. 이 서원이 도봉서원이에요. 
서원이란 쉽게 말하면 조선시대 학교 같은 곳이에요. 조선 시대에 공부라면 유학이 최고였어요. 그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학문을 닦던 곳이 서원이에요. 그런데 지금의 학교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어요. 서원에서는 학문이 높고 본받을 만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냈거든요. 도봉서원에서는 누구를 받들고 제사 지냈을까요? 바로 조광조라는 유학자예요. 
조광조는 어떤 사람이냐고요? 조선 중종 때 인물로 낡은 정치를 고쳐 새로운 개혁 정치를 펼치고자 했어요. 그러나 개혁을 당해야 했던 관료층인 훈구파는 조광조의 개혁 정치를 반대했어요. 게다가 조광조를 지지했던 중종의 마음마저 바뀌었어요. 결국 조광조는 귀양을 갔고 죽임을 당했지요. 함께 개혁을 이끌던 선비들도 화를 당했지요. 기묘년(1519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기묘사화’라고 해요. 조광조는 기묘사화로 죽었어요. 하지만 왕들이 바뀌고 오십여 년이 지난 선조때에 이르러 조광조를 인정하고, 그를 받드는 서원이 세워졌어요.
학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방학에 세워진 도봉서원에서는 선비들이 조광조의 학문을 본받고자 열심히 글 읽는 소리가 들렸겠지요.

/자료 제공=‘잠실역은 왜 잠실역이야?’(안미연 글ㆍ윤유리 그림ㆍ현암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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