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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연경으로 가는 정랑 형[현곡공 조위한(趙緯韓)] 보내는 서(正郞兄赴燕京序)◑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4.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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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으로 가는 정랑 형[현곡공 조위한(趙緯韓)] 보내는 서(正郞兄赴燕京序)

산에 오르고 물에 임하여 고인도 슬퍼했으니, 고국을 떠나 어버이와 작별하는 이날이 애석하구나. 세상에 누가 작별하지 않으리오, 사람마다 모두 형이 있도다. 숙(叔)이여 백(伯)이여 다행히 네 형제가 무고하나, 나를 돌아보고 나를 살펴 주셨으니 두 분을 생각하여도 따를 수 없네. 은혜는 낳고 길러 주신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즐거움은 형제의 우애만한 것이 없다네. 아낄만 한 것은 시일이 아니겠는가, 보답하기 어려운 것은 하늘 연경(燕京)으로…서:정랑 형은 조찬한의 형인 조위한(趙緯韓)을 가리킨다. 조위한은 1610년(광해군2)에 예조 정랑이 되었고, 가을에 사은사 이시언(李時彦)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중국에 갔다. 산에…슬퍼했으니:높은 산에 올라 흐르는 물을 굽어본다는 전국시대 송옥(宋玉)의 〈구변(九辯)〉에 “구슬퍼라 흡사 타향에 있는 듯하도다. 산에 올라 물을 굽어봄이여 돌아갈 사람을 보내도다. 배우던 초기에 훈도에 힘입었지만 소자가 어찌 조술하리오, 재주는 끝내 자구를 수식하는 데 그쳤으니 장부가 할 일 아니라네. 바야흐로 봄날의 햇빛이 눈에 들어오니 문득 풍수(風樹)의 아픔이 일어나네. 죄가 크고 악이 극에 달하여 죽어도 할 말이 없고,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졌으니 곡을 한들 어찌 미치리오. 남겨진 자식으로서 어리석은 것이 애통하고, 아직까지 모진 목숨 구구하게 살아 있네. 가정에서 배우던 초년부터 마음이 어찌 거칠었겠는가, 진실로 선인의 아름다움을 본받았으니 죽더라도 썩어 없어지지 않으리라.

이 때문에 서로 권면하여 배우지 않고도 능하였으니, 과연 시종 학업에 전념하여 앞뒤로 이어서 이름을 세웠네. 네 형제가 모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니 당대에 드문 일이요, 세 아들이 서로 이어 대과에 급제하였으나 구원(九原)에 계신 분은 살려내기 어렵구나. 대저 이룬 것이 이와 같으니 낳아 주신 부모에게 욕되지 않으리라. 지금은 또 집을 맞대고 담장을 연이어 정원에는 장후(蔣詡)의 오솔길을 열어 놓았고, 한 상에서 밥 먹고 잠자리를 오래 가질 수 없는 것은 어버이를 모실 수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효자는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동안 하루하루를 아낀다.[不可得而久者 事親之謂也 孝子愛日]”라고 하였다. 같이 하여 방에는 강굉(姜肱)의 이불을 펼쳐 놓았네. 이에 마씨(馬氏) 가문에서 백미(白眉)가 가장 뛰어나다는 감탄이 일었고, 강변의 부로들은 붉은 뺨이 형과 같다고 칭송하였네. 아우가 술 권하거든 형이 다시 권하며 늙어가는 줄도 모르고, 형이 피리 불면 아우가 화답했거늘 어찌 도가 행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리.

하물며 밖으로부터 얻은 명성은 부화하여, 공중의 구름처럼 변화가 몹시 심함에랴. 저 남쪽 고을에 수령이 되어 갔을 때도 오히려 걱정을 했는데, 더구나 명을 받아 중국으로 가시니 일찍이 생각 지도 못한 일이었네. 마침내 두 사신의 부관(副官)에 충원되어 세자의 책봉에 사은하게 되었네. 만리장성 끝에 요동에는 학이 남긴 천년의 화표(華表) 있고, 천상에 접한 황하에서 사람은 팔월의 배를 탄다네. 압록강에서 배 돌릴 때는 언제려나, 연경에서 돌아오는 길은 만리라네. 더구 나 지금은 가을 바람이 더위를 걷어내고 옥빛 이슬은 차갑게 반 짝이는 때임에랴. 낙엽 지고 가지는 차가운데 까마귀 울며 피를 토하고, 바다는 넓고 하늘은 텅 비었는데 외로운 기러기 비껴 날 며 슬피 울리라. 앞산에도 뒷산에도 십리 길에 석양은 저물어가 는데, 오늘 밤은 어떤 밤인가, 일년 중 명월은 유독 밝다네. 남포 (南浦)의 노래 더욱 슬프고, 서루(西樓)의 한은 끝이 없구나.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흐르는데 손 붙잡고 무슨 말을 하리. 아, 굴대에 기름을 치고 길 재촉하니 바야흐로 얼음을 마시고 명을 받들리라. 기성(箕城)588 누대의 풍악은 비록 망향의 근심 위 로한다지만, 통군정(統軍亭)589의 풍운에 고국 떠나는 생각 견디 기 어려우리라. 요동의 강 건너가다 얼음 깨지고 계주(薊州) 들판 지나다보면 눈발로 앞깊 어두우리라. 백이(伯夷)의 사당 지날 때면 만고의 고결한 인품에 읍하고, 망저(望諸)의 능을 바라볼 때면 육국(六國)의 유사(遊士)들 조문하네. 짙은 구름이 산해관에 뻗쳐 있어 높은 산등성 오르기 어렵고, 밤비는 옥하관(玉河館)에

처량하게 내려 부질없이 춘초(春草)의 꿈 꾸리라. 그러나 남아는 본래 먼 길을 가나니, 장부가 어찌 규방의 일 걱정하랴. 자장(子長)은 천하를 유람한 뒤 문장이 기이해졌고, 계찰(季札)은 노나라에서 예악을 듣고 학문이 더 넓어졌도다. 양마(良馬)가 속박을 벗어났으니 바야흐로 천리를 발로 내달리고, 붕새가 물결을 박찼으니 의당 구만리에 날개를 펴리라. 그런 다음 칙명을 받들고 본국으로 돌아와, 봄 기운을 따라 고향 동산에 찾아오리라. 진천(秦川)을 돌아보며 효산(崤山)과 함곡관(函谷關) 부질 없이 먼 것에 웃을 테고, 한강 굽이에서 잔을 들며 친척의 환영에 기뻐하리라. 고향 집에는 사람들 이마에 손을 얹고 우러르는 일이 끊겼었는데, 이제 우리 형제를 감히 똑바로 보지 못하며 공경하리라. 진실로 이별이 없다면 어찌 만남이 있으리오, 바라건대 슬픔을 거두고 기쁘게 생각하시기를. 멀리 전송하는 회포 견딜 수 없어 마침내 갈림길에서 주는 것이니, 감회를 기록했을 뿐 어찌 서문이라 할 수 있으리오.

 

●572[憭慄兮若在遠行 登山臨水兮送將歸]”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뜻을 담고 있다. 《楚辭 卷6》

573 숙(叔)이여 백(伯)이여:형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경(詩經)》 〈정풍(鄭風) 탁혜(蘀兮)〉에 “숙(叔)이여 백(伯)이여 나를 부르면 내 너에게 화답하리라.[叔兮伯兮 倡予和女]”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서는 형제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574 네 형제:네 형제는 위로부터 조계한(趙繼韓), 조유한(趙維韓), 조위한(趙緯韓), 조찬한(趙纘韓)이다.

575 나를…주셨으니:《시경》 〈소아(小雅) 육아(蓼莪)〉에 “나를 돌아보시고 나를 다시 살피시며, 출입할 땐 나를 배에 안으셨다.[顧我復我 出入腹我]”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어버이의 은혜를 말한다.

576 아낄만…아니겠는가: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날을 아껴야 한다는 뜻이다. 양웅(揚雄)의 《법언(法言)》 〈효지(孝至)〉에 “이 세상에서 오이라.”

577 봄날의 햇빛:원문의 ‘春暉’는 어머니의 은혜를 비유하는 말이다.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한 치 되는 풀의 마음 가지고서, 삼춘의 햇볕 같은 어머니 은혜 보답키 어려워라.[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라고 하였다.

578 풍수(風樹)의 아픔:풍수지탄(風樹之歎)과 같은 말로,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 다시는 봉양할 수 없는 자식의 슬픔을 말한다.

579 세…급제하였으나:조찬한의 형제 가운데 조계한만 생원시를 통과하는 데 그쳤고, 나머지 세 명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580 장후(蔣詡)의 오솔길:한나라의 장후는 애제(哀帝) 때 연주 자사(兗

581 강굉(姜肱)의 이불:강굉은 후한 때 사람으로 자가 백회(伯淮)인데, 두 아우 중해(仲海)·계강(季江)과 우애가 지극하여 혼인한 뒤에도 넓은 이불을 만들어 늘 형제들과 함께 덮고 잤다고 한다. 《後漢書 卷53 姜肱列傳》

582 이에…일었고:삼국 시대 때 촉(蜀)나라의 마량(馬良) 형제가 다섯으로, 모두 재명(才名)이 있었는데, 그들의 자(字)에 모두 상(常) 자가 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마량이 가장 뛰어났는데, 마량의 눈썹이 희었으므로, 사람들이 “마씨의 오상(五常) 가운데 백미(白眉)가 가장 뛰어나다.” 하였다. 《三國志 卷39 蜀書 馬良傳》 여기서는 형인 조위한이 형제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명성이 있었다는 뜻으로 쓰였다.

583 강변의…칭송하였네:조찬한의 용모가 형인 조위한과 닮았다는 칭송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소식(蘇軾)의 시를 인용한 것이다. 소식이 1097년 담주(儋州)에 유배가게 되었을 때 아우인 소철(蘇轍)도 뇌주(雷州)에 유배가게 되었다. 소식이 오주(梧州)에 당도했을 때 소철이 아직 배소에 도착하지 않고 등주(藤州)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하여 서둘러 달려가 등주에서 소철과 만나 동행하다가 다시 이별하게 된다. 그 당시 등주를 찾아갔을 때를 묘사한 시에 “강변의 노인들이 자네에 대해 잘 말해 주었는데, ‘흰 수염에 뺨은 혈색이 좋고 키가 당신만하였지요.’라더군.[江邊父老能說子 白鬚紅頰如君長]”라고 하였다. 《東坡詩集注 卷1 吾謫海南子由雷州被命卽行了不相知至梧乃聞其尙在藤也旦夕當追及作此詩示之》

584 두 사신:사은 정사 이시언(李時彦)과 부사 한덕원(韓德遠)을 가리킨다.

585 만리장성…있고:한(漢)나라 때 요동(遼東)의 정령위(丁令威)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鶴)으로 변하여 고향의 성문(城門) 화표주(華表柱)에 날아와 앉았다. 이때 한 소년이 활로 그를 쏘려고 하자, 학이 날아올라 공중에서 배회하며 “새여 새여 정령위라,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搜神後記 卷1》

586 천상에…탄다네:장건(張騫)이 한 무제(漢武帝)의 명을 받고 황하의 근원지를 밝히려고 뗏목을 타고 가다가 하늘 궁전에 이르러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나고 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天中記 卷2》

587 얼음을 마시고:사신(使臣)의 명을 받고서 두렵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외국으로 가는 것을 이른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의 “내가 아침에 사신의 명을 받고서 저녁에 얼음물을 마셨으니, 내 속

588 기성(箕城):평양(平壤)을 가리킨다.

589 통군정(統軍亭):의주(義州) 압록강 가 고대(高臺)에 있는 정자 이름으로, 관서 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이다.

590 백이(伯夷)의 사당: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모신 사당이 사신들이 지나가는 요동의 난하(灤河)에 있다. 이제묘(夷齊廟) 또는 청절사(淸節祠)라고도 불리었다.

591 망저(望諸)의…조문하네:망저는 전국시대 악의(樂毅)의 봉호(封號)이다. 육국은 전국시대 한(韓)·위(魏)·조(趙)·제(齊)·초(楚)·연(燕)을 가리킨다. 연나라가 제나라에 격파된 뒤에 연나라 소왕(昭王)이 자신을 낮추고 후한 폐백을 갖추어서 어진 자를 초빙해 원수를 갚으려고 하자, 곽외(郭隗)가 부족한 자신부터 잘 대우하면 어진 자들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소왕이 곽외를 잘 대접하자, 악의가 위나라에서 오고, 추연(鄒衍)이 제나라에서 오고, 극신(劇辛)이 조나라에서 오는 등 선비들이 다투어서 연나라로 달려왔다. 《戰國策 燕策1》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조선 시대 사신들의 견문록에 의하면 순천부(順天府) 소속 양향현(良鄕縣) 남쪽 3리에 있다고 한다. 《懶齋集 卷3 朝天時聞見事件啓》

592 자장(子長)은…기이해졌고:자장은 한나라 사마천(司馬遷)으로,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남으로는 강회(江淮)에 노닐고 북으로는 문사(汶泗)를 건너 산천을 유람하면서 호한(浩瀚)한 기운을 얻어 이를 문장으로 발휘하여 《사기(史記)》를 지었다 한다.

593 계찰(季札)은…넓어졌도다:춘추 시대 오(吳)나라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노(魯)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옛 주나라 음악을 듣고 열국(列國)의 치란흥쇠(治亂興衰)를 알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襄公29年》

594 진천(秦川)을…테고:진천은 위수(渭水)가 흐르는 장안(長安) 일대의 강으로, 진(秦)나라 때의 관중(關中)을 가리킨다. 효산(崤山)과 함곡관(函谷關)과 역시 진나라 때 험준한 군사적 요지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사신으로 갔던 중국을 뜻한다.

595 고향…끊겼었는데:원문의 ‘加額之望’은 백성들이 이마에 손을 얹고 멀리서 공경히 바라보는 것이다.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이 낙양(洛陽)에 사는 15년 동안 예궐(詣闕)할 때마다 위사(衛士)들이 모두 손을 이마에 얹고 공경스럽게 바라보면서 “이분이 사마 상공(司馬相公)이시다.” 하였다 한다. 《宋史 卷336 司馬光列傳》

玄洲集卷之十 門人愼天翊攷 ○倂儷 合七十六首○儷集 / 序 二十七首

送正郞兄赴燕京序 

登山臨水。昔人所悲。去故離親。此日可惜。世孰無別。人皆有兄。叔兮伯兮。幸四子之無故。顧我復我。懷二人而莫追。恩罔極於生成。樂莫如乎兄弟。可愛非日。難報者天。學初賴於薰陶。少子何述。技終止於雕篆。壯夫不爲。方春暉之入望。奄風樹之起慟。罪大惡極。死無所辭。地拆天崩。哭將何及。哀遺孤之貿貿。尙頑喘之區區。自趨庭之初載。心豈或荒。苟趾美於先人。 死且不朽。是以相勉不學而能。果終始焉業專。遞後先而名立。四人皆成司馬。一世所稀。三男相繼登龍。九原難作。蓋有爲者若是。庶無忝於所生。方且接屋連墻。園開蔣詡之逕。共榻同床。堂拂姜肱之衾。於是馬氏門闌。起白眉最良之歎。江邊父老。有紅頰如君之稱。弟勸兄酬。莫知老之將至。伯吹仲和。何憂道其不行。矧自外之名浮。劇空中之雲幻。彼作宰於南國。猶且疚懷。況銜命於中朝。曾是不意。遂充兩价之副。爲謝貳君之封。紫塞極於遼東。鶴遺千年之表。黃河接於天上。人乘八月之槎。鴨江之廻輈幾時。燕城之 歸路萬里。況今金飆捲暑。玉露泫涼。葉謝枝寒。慈鴉啼而有血。海闊天空。斷雁橫而流哀。前山後山。十里之斜陽垂盡。今夕何夕。一年之明月偏多。南浦之歌愈悲。西樓之恨未極。相看有淚。交手何言。嗟呼。念載脂而催程。方飮氷而將命。箕臺絲管。雖慰望鄕之愁。統樓風雲。難堪去國之思。涉遼灘而氷折。度薊野而雪昏。過伯夷之廟。則揖萬古之淸風。瞻望諸之陵。則弔六國之遊士。陣雲橫於山海。難陟高岡。夜雨凄於玉河。空夢春草。雖然。男兒固有行役。丈夫焉念香閨。子長遊而文奇。季札觀而學博。良驥脫馽。方超千里 之蹄。神鵬鼓浪。宜展九霄之翮。然後奉勅歸於下國。隨春入於故園。回首秦川。哂崤函之虛遠。携杯漢曲。悅親戚之歡迎。鄕廬絶加額之望。昆弟有側目之敬。苟無離則何合。庶收悲而爲懽。不堪遠送之懷。遂有臨岐之贈。誌之而已。序云乎哉。

※대종회 사무실에 도둑놈이 활동하고 있나보네요! 현주집4책을 대종회사무실에 기증했는데, 어느 도둑놈이 2책을 훔쳐갔다고 하네요!!! 도씨는 이실직고하고 그 자리에 도로같나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묘2권보는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였으면 잘 보존해야지, 경매에 붙처 ₩1,200만원에 누가 경매낙찰했다고 하네요!!! 그거야말로 파주 장명산 양절공과 한풍군선조님 유택을 홍성 매각골에 이장하면서 舊墓碑를 논바닦에 묻은 놈과 도둑놈과 신묘2권보를 기증한 종인이야말로  대종회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사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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