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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시향제례❀

◐주봉서원 계음공 조팽년 춘계제향(3월 중정)◑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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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서원 계음공 조팽년 춘계제향(3월 중정)◑

강진군 주봉서원 계음공 조팽년 춘계제향(3월 중정) 5월 9일 사진입니다. 강진 유림에서 참여하여 잘 진행하였습니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 청난원종공신(淸難原從功臣)]

[개설]
1624(인조 2)에 향중 유림들이 조선시대의 문장가인 계음(溪陰조팽년(趙膨年, 15491612)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로후에 서원으로 발전하였다. 1865(고종 2)에 정조 때 성균관 교수를 지낸 조규운(趙奎運, 17251800)을 추향하였다. 2004년 11월 1일에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5호로 지정되었다

[조팽년의 주봉서원(冑峰書院)]

 

 옴천면 영산리 568번지, 1624년 도내 사림들이 주봉산 아래 기좌리 좌척에 조팽년(1549-1612)을 제향하기 위하여 ‘주봉서원’이란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가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 1971년 도내 유림들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복설하였다. 계음(溪陰) 조팽년과 조규운(1725-1800)을 모시고 있다. 조팽년(趙彭年)의 호는 계음이고 1549년 옴천면 황곡에서 아버지 세걸과 어머니 김해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한양이며 7세조 때 나주로 내려와 살다가 9세조(고조부) 때 황곡으로 이거하여 뿌리를 내렸다. 조팽년은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으며, 황곡리 선영하에 안장되었다. 1623년(인조 1)에 충효의 공으로 증통정대부 승장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에 추증됐다.

 시와 글씨에 뛰어났으며 한석봉에게도 글씨를 가르쳤다. 말년에는 고향 북쪽에 계음정이라는 정각을 짓고 후학을 지도하였다. 계음은 항상 봉급으로 부모봉양을 못한 점과 젊었을 때 남에게 크게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1593년 암행어사가 되어 전라도를 순찰할 때 상소를 하여 이순신을 재 등용케 하였다.


[역사적 변천]
서원은 원래 1624년 주봉산 아래에 위치한 기좌리 좌척마을 조평년의 유허지에 건립되었다. 1868(고종 5)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7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건하였다.

[내용]
조팽년은 선조의 명으로 암행어사가 되어 남해의 군영을 시찰한 후에당시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을 서용(敍用)할 것을 선조와 유성룡(柳成龍)에게 간언하였다이를 통하여 후에 이순신이 서용되는데 기여하였다.

[족보명 : 조성열]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식으로 서원 중앙에 강당이 위치하고 솟을대문으로 된 내삼문 안쪽에 사우인 주봉사(冑峯祠)가 있는데조팽년과 조규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강당 앞에는 선조에게 올린 시이순신 장군에게 올린 시한석봉에게 쓴 글 등을 새긴 세 개의 비석이 있다향사일은 음력 3월 중정일이다.

 

[의의와 평가]
주봉서원에 배향된 조팽년을 향사한 강진 사림들이 당시 이순신에 대해 가졌던 각별한 정회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 청난원종공신(淸難原從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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