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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행복 이야기

◐천안 태조산에 자리잡은 성불사(成佛寺)(2)◑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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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CAFE 성불사■

성불사....

오늘은 행선지가 어딜까? 그 궁금증은 항상 내비게이션이 말해준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불사 길 144로 향한 드라이브 길은 천안 태조산 성불사이다. 천안시의 대표적인 명소인 태조산 성불사는 백학이 못다 새긴 불상이 있어 더욱 성불의 염원이 담긴 절이다. 잠시 이곳에서 겨울 태조산의 맑은 공기와 함께 시름을 털어낸다.

천안 성불사는 태조산 북서쪽 기슭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구불구불한 눈길을 조심하며 달려온 길에 태조산 성불사 일주문이 반갑게 산문을 연다. 하얀 눈이 조용한 산사와 함께 참 잘 어울린다.

천안 태조산 성불사 일주문을 지키는 사자와 코끼리가 정말 좋은 곳에 잘 왔다며 반긴다. 태조산의 풍경과 성불사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천안 태조산 성불사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길에 오르자 수령이 800년과 55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800년이나 된 느티나무는 엄청나게 큰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성불사 천년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한 수호신이다.

겨울이지만 잎이 무성했을 느티나무를 상상하며, 수백 년을 자란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주변에 큰 숲을 이루고 있어 봄에 이 길을 산행하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할 것이다. 성불사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태조산의 아름다운 풍치가 매력으로 다가온다. 봄이 되면 더욱 날 유혹하겠지.

태조산을 올라오면서 마주한 선녀 보살, 천녀 보살 등 수많은 무당과 점쟁이들이 접신하고, 강신한 땅에 제법 뿌리를 내리고 있다. 태조산 성불사에 오르니 이제야 그 의미를 알 수가 있다. 성불(成不)이 되지 못한 백학의 꿈을 성불(成佛)로 대신하고 싶은 그대들의 꿈이 이곳 태조산에 모여있구나.

세상에 무엇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단지 인간은 부처가 되고자 하는 수행과 정진의 삶이다. 어찌 접신과 강림으로 그 이름도 멋진 선녀와 천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너 자신을 알라.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고 종교다. 그래야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세상이다.

암반 위에 자란 800년 된 느티나무 앞에서 벼랑에 앉아 있는 아담한 대웅전을 만난다. 대웅전에서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오늘따라 청아하다. 스님의 독경소리에 승무가 떠오르고 처마 끝의 풍경소리가 겨울 숲을 울린다.

산사의 맑은 득음 같은 예불 소리가 어찌 이리 마음을 울리냐. 스님의 예불 소리를 방해하지 않고자 조용히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석불상을 찾아 대웅전 뒤로 간다. 자연석에 백학이 다 이루지 못한 성불(成不)의 석불상과 석가삼존과 16나한상이 보인다.

이곳 천안 태조산 성불사는 어떤 곳인가? 왜 천년사찰인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고려 초기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사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왕위에 오른 후 도선국사에게 전국에 사찰을 짓게 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이곳에 와보니 백학 세 마리가 날아와 천연 암벽에 부리로 불상을 쪼아 새기다가 완성을 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결국 미완성 석불이 남겨졌다.

이런 유래로 처음에는 '성불사'(成不寺)라 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이름을 고쳐 지으면서 지금은 성불사(成佛寺)라 부르고 있다. 다 마무리하지 않은 불입상을 모시고 있는 사찰이란 점에서 천안 태조산 성불사는 어쩌면 미완성의 완성이라는 절묘한 인생의 철학이 담겨있다. 세상에 이런 사찰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천안 태조산 성불사의 큰 특징이다.

천안 태조산 대웅전 뒤편의 사각형 바위 전면의 불입상과 석가삼존, 16나한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 모습은 완벽한 어느 불상보다도 가슴을 흔든다. 수많은 사찰을 다녔지만 심금을 울리는 사찰에 그 첫머리를 올려야 할 듯싶다.

나한상을 바위 벽면에 새겨놓은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현재 마멸이 심하여 형체가 분명하지 않으나 바위에 새겨놓은 우리나라 유일의 마애 나한상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일반적으로 성불사를 떠올리면 노산 이은상 시인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황해도 정방산 성불사의 그윽한 풍경소리건만 천안 태조산 성불사에서도 이 노래가 먼저 떠 올린다.

노산 이은상이 황해도 정방산 성불사에서 머물렀던 그날의 하룻밤을 상상한다. '저 손아 마져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렁 울릴 제면 또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젠 또 들리라. 소리 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소리 데리고 잠 못 이뤄 하노라.' 쉴 새 없이 울어대는 풍경소리에 잠 못 이루었던 그날 밤은 노산에게 참으로 고독한 밤이었을 것이다. 성불사의 밤은 그렇게 노산에게 인간 실존에 대한 시를 선물했다.

이 노래를 쓴 노산 이은상이 성불사를 찾은 건 29살 때인 1931년 8월 19일이라고 한다. 이화여전 교수 시절 친구들과 함께 황해도 정방산에 놀러와 등반한 후 그날 밤을 이곳 성불사에서 묵었다고 한다. 마침 그날따라 사방에 벽이 없고 기둥만 세워진 청풍루 마루 위에서 잠을 잤는데 밤새도록 처마 끝에서 댕그랑거리는 풍경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해 시조에 담은 것을 홍난파가 곡을 붙여 명곡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인간 실존보다는 여행자로서 심연의 고독을 풀어내는 태조산의 가을과 하얀 눈의 겨울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마음을 풀어낸다.

천안 태조산 성불사를 창건한 도선 국사는 똑같은 이름의 성불사를 우리나라에만 네 곳이나 창건했다. 북한 정방산에 한 곳과 남한에 세 곳을 지어 우리나라에서만 도선이 지은 성불사가 모두 네 곳이다. 성불하고자 하는 스님들의 염원이 그렇게 사찰의 이름에 담겨있는 것이다.

천안 태조산 중턱에 자리한 성불사에서 학이 날아와 바위에 불상을 만들고 날아간 자리에 도선국사가 성불의 염원을 담아 절을 지었으니 성불하고자 하는 마음은 미물인 백학이나 도선국사나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신라 말기에 활약한 도선은 우리나라 최초로 풍수지리설을 창시한 장본인이다. 그가 지은 '도선비기(道詵秘記)'는 원본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고려 성립 과정이 수록되어 있어 그가 고려 시대에 활약한 행적을 남겼다.

도선이 이처럼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도선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훈요십조 제2조에는 도선이 정한 곳 이외에 어느 누구도 한반도에 함부로 절을 짓지 말 것을 명시했으며, 제5조에는 서경이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 되므로 서경에 깊은 관심을 가질 것에 대한 내용이 수록됐다. 서경은 지금의 평양이다. 이처럼 태조 왕건이 후대의 왕들에게 도선의 풍수설을 유훈으로 남겼다. 그로 인해 고려와 도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관계가 되었다. 고려의 정치철학이 곧 도선이다.

도선이 절을 지을 자리를 미리 정해 놓는 것은 마치 사람의 몸에 침놓을 자리가 미리 정해진다는 침구학처럼 한반도의 중요한 혈자리를 미리 생각한 결과일 것이다. 그처럼 중요한 명당자리에 절을 세우고 승려들이 머물며 예불과 불법에 수행정진하면 불국정토가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고려는 불교 숭상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천안 태조산 성불사에서 그 의미를 되새긴다. 성불사는 '부처를 이루는 절, 성불(成佛)'이다. 처음의 뜻으로 돌아가도 성불사는 '부처를 이루고자 한 절, 성불(成不)'이다. 누구든지 불법을 만나 수행정진하면 이 세상 어디든지 부처를 이룰 수 있는 도량이다. 그것이 처처불상이다. 이 세상이 곧 성불사이다.

우리나라 성불사 네 곳을 마저 챙겨 보자. 또 한 곳은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에 있는 성불사로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시기에 소실됐으나 지난 1966년부터 지속적으로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절이다. 역사적 기록인 '범우고'와 '광양읍지' 등에 그 존재가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한 곳은 충청북도 내륙에 있는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의 해발 520미터의 성불산, 옛 이름이 송명산(松明山) 아래에 있는 성불사지이다. 성불산 아래에는 옛 절터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체요절이 발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서지학자들의 엄격한 고증과 연구가 필요하다. 대한불교 천태종에서 이 성불사를 복원하기 위해 지난 2013년 11월부터 복원 불사를 하고 있다.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 오른 편에 좌불상이 있다. 삼재들입에 기도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완벽한 좌불상을 바라보니 천 년 전의 신비를 안고 있는 전설의 불입상과 대비된다. 좌불상을 보면서 미완성의 불입상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랴. 그것이 사람 마음인걸. 성불사 관음전의 화강암 좌불상도 비록 정교하지 못하고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정감이 간다. 투박하고 꾸밈없는 그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천안 태조산 맑은 겨울바람과 성불사 불임상과 좌불상, 관음전의 투박한 화강암 좌불상에 마음의 시름이 깨끗이 씻긴다. 미진조차 털어내고 태조산의 산길을 내려온다. 바라보는 겨울 하늘의 풍경도 아름다워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One Point Tip]

■충청남도 천안시 성불사 찾아가는 길  주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불사길 144

☎전화: 041-565-4567

●성불사: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불사길 144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신도들의 운행 버스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인 성불사는 서기 921년 태조 4년에 도선국사가 송도에 대행사를 세우면서 전국 3800여 개의 비보사찰을 세웠다. 천안 태조산 성불사는 백학이 지금의 대웅전 바로 뒤편 암벽에 불상을 조각한 것 때문에 성불사로 불려 왔다.

▲ 눈 내린 천안 태조산 성불사 일주문의 풍경이다. 성불사는 지난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가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하였다. 성불사는 대웅전에 불상이 없고, 대웅전 유리창을 통해 뒤편 암벽에 조각된 암벽 불상, 서기 921년 태조 4년에 백학이 조각한 불상을 모시고 있는 특별한 사찰이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일주문 편액이다. 성불사 일주문 편액은 천안을 기반으로 활약 중인 서예가 취묵헌(醉墨軒) 인영선(印永宣 1947~)이 썼다. 취묵헌 인영선은 한국 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일중 김중현(1921~2006)으로부터 작품을 인정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4년에는 일중서예상의 4번째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전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길에는 붓다의 염원을 담아 돌멩이 하나에도 정성을 담아 돌탑을 쌓는다. 삼층석탑, 사층석탑 등 염원하는 마음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행복을 누리길 기원한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의 풍경에는 사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불사의 역사와 함께한 고목들이 웅장한 자태로 그 신비를 더한다. 하얀 눈이 내린 태조산 성불사는 바라만 봐도 한 폭의 풍경화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의 풍경에 숙묵당 앞의 550년 된 느티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나무는 충청남도 보호수 8-4호로 지난 1982년 10월 15일 지정되었다. 안서동 산 106-1로 흉고 직경이 140Cm, 수고가 10m이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응진전과 종무소, 강당이 있는 4층 연화당 건물이다. 응진전은 부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신다. 부처에게는 열여섯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그 뜻은 성자를 의미한다. 아라한은 응진의 자격을 갖춘 분들이다. 응공은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을 의미하며, 응진은 진리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능력의 소지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나한전을 응진전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가 주존으로 봉안되며, 좌우에 가섭과 아난이 봉안돼 있다.

▲ 수령 800년의 천안 태조산 성불사 느티나무이다. 이 나무는 충청남도 보호수 8-3호로 지난 1982년 11월 2일 지정되었다. 안서동 산 106-1로 나무 둘레가 5m, 수고가 10m이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범종루이다. 2층의 누각으로 되어 불전 사물인 범종, 운판, 목어, 홍고 등이 있는 사찰 당우이다.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이다. 성불사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성불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다포식 건물이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의 주련이다. 주련을 오른쪽에서부터 읽으면 삼세여제일체동, 삼세에 진여의 부처는 모두 같다. 광대원운항부진, 득도의 원력은 광대하여 언제나 그침이 없다. 대웅전의 문은 2분합 문으로 어칸은 꽃살창이고, 양측 협문은 빗살 창이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의 현판이다. 대웅전의 '대웅'은 부처의 덕호로, '대웅전'은 본존 불상을 모신 법당을 이른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의 꽃살문이다. 성불사 대웅전 꽃살문은 훨씬 화려하고 정교하다. 문양의 변화가 다양하고 조각 솜씨가 뛰어난 걸작으로, 불성의 깨우침의 단계를 꽃봉오리와 만개한 꽃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 천안 성불사 마애 석가삼존 16나한상은 대웅전 뒤편 산자락에 있는 희미하게 보이는 일군의 불입상들이다. 지난 2002년 8월 1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었다. 이 일군의 마애상들은 세로 248㎝, 가로 357㎝ 크기의 바윗면에 새겨져 있다. 석가삼존과 16나한상이 각각 부조로 새겨져 있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 뒤편 바위에 새겨진 불입상이다. 겨우 형체만 알아볼 수 있는 불입상이다. 이 불입상은 전체적인 형태가 불분명하고 윤곽선만을 살펴볼 수 있다. 오른쪽 발가락은 뚜렷하게 보이나 왼쪽 발의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바위의 절리 현상으로 인하여 얼굴 부분과 신체의 전면이 크게 떨어져 나간 것인지 원래 미완성의 상이었을까. 약간 딱딱하지만 꾸밈없는 조각 기법과 양식이 고려 시대 마애불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 천안 성불사 무엇을 위한 간절한 염원일까? 성찰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면 일상이 많이 달라진다. 땅에 평화, 우리 마음에도 평화이다. 그런데 더 다급한 것은 나를 안정시켜 주는 마음의 평화다. 마음의 평화를 잃으면 나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괴롭다. 세상을 더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기 전에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와야 한다. 나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그 평화로움을 주위 사람들에게 먼저 나눠줘야 한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스님들이 속세와의 인연을 버리고 수행정진하는 숙묵당의 풍경이다. 느려도 묵묵히 정진하는 큰 스님이기를 바란다. 행여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라 조심하며 둘러본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3기의 비석들이다. 오른쪽부터 보면 '태조산 성불사 중건 기념비'와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 당청 시 주공덕비'와 '정덕순 여사지묘'이다. 불사를 일으킨 사랑의 공덕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때때로 세상 전체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산령각이다. 성불사 전각 가운데 하나로서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을 한 산령각은 단청의 색이 밝고 화려하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산령각에서 바라본 대웅전 처마와 풍경, 조형물로 만든 붕어와 석조좌불상이다. 대웅전 네 귀퉁이의 지붕 처마 끝에는 조형 붕어가 밤낮없이 잠을 자지 않고 풍악을 울리고 있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산령각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관음전 응진전의 풍경이다. 하얀 눈이 내린 성불사의 지붕과 마당에 순백의 아름다움이 채색된다. 겨울 성불사에 내린 눈과 절의 풍경이 조화롭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담벼락의 기와와 숙묵당의 전경이다. 소복이 쌓인 눈에 시선이 머문다. 눈을 돌려 태조산의 산야는 겨울 햇살에 맑은 숲의 풍경이라 매우 대조적이다. 이 또한 소소한 즐거움이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에서 관음전으로 가는 마당이다. 관음전과 응진전의 풍경에 겨울 하늘이 아름다운 길을 연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느리게 걸으며 풍경에 빠진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에서 관음전으로 가는 앞마당에 자연 암벽 앞에 석조불상과 석등이 있다. 무술년 동지, 삼재풀이 기도가 이곳에서 행해진다. 삼재는 9년 주기로 사람에게 돌아오는 3가지 재난을 뜻한다. 이 도량에 오는 불자들의 걸음걸음마다 법비 내리어 일체중생 모두 성불하기를 기원한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관음전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산령각의 전경이다. 마음속 사랑을 어찌 아무 말로 전하겠는가. 고매하게 타오르는 그 마음을 그 높이 그대로 회오리치는 정열을 붓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견성이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대웅전에서 관음전과 응진전을 바라본다. 대웅전의 풍경과 파란 겨울 하늘이 참 잘 어울린다. 12월의 바람은 매섭다. 태조산 날카로운 바람은 몸을 뚫고 마음까지 벤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한 걸음 한 걸음 풍경에 매료된다. 부디 그 발걸음 끝에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벅찬 환희와 감동이 성불사와 함께 하기를 석조불 앞에 기원한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관음전에서 환상적인 겨울의 아름다움과 마주한 마음속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새해맞이 태조산에 올라 해맞이를 하는 자유를 그려본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관음전 화려한 꽃살문이다. 관음전 현판 아래 두 장의 꽃살문 조각이 우아하다. 아름다운 꽃살문에 어찌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리오. 어느 미인이 이보다 아름다우랴. 아름다움은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한다. 아홉 살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열일곱 살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미소를 던졌을 때 사랑의 화살을 맞은 단테는 시를 쓴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하고 글에 맞도록 사유하고 정련하여 '신곡'이 탄생한다. 역사의 궤도가 바뀐다. 그렇게 우리에게 단테의 '신곡'은 명작으로 남는다. 꽃살문의 사랑 앞에 단테의 신곡이 왜 떠올랐을까? 아름다우니까. 생각의 힘은 그렇게 지구를 한 바퀴씩 돌아다닌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관음전 석조보살좌상이다. 이 석조불상은 문화재자료 제386호로 지난 2004년 4월 10일 지정되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고려 시대 불상으로 높이 67Cm, 어깨너비 34.5Cm이다. 조치원 대성천 준설작업 중 발견된 불상으로 지난 1990년 성불사에 이관 보존하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 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석불상으로 종교적,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암벽에 자라는 소나무가 하얀 눈을 맞는다. 암벽 위 한 그루 소나무는 살기도 힘들겠지만 바라보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이미 오래도록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존귀하다. 암벽 위의 소나무 한 그루가 숨 가쁘게 살아온 우리 삶에 쉼표 같은 감동을 전한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물 대신 눈을 먹으라고요. 어찌 표정이 그럴까. 너도 뭔가 언짢은 게지. 눈 내린 약수터의 표정이 새삼 나를 자유롭게 한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응진전의 현판과 꽃살문이다. 성불사 꽃살문은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는다. 때문에 꽃살문은 사찰에서 사랑받아왔다. 겨울에 죽은 듯이 보이다가 이른 봄이 되면 꽃이 피는 의미를 세속으로 보면 꽃살문은 회춘이다. 한겨울 곧게 피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통력이 꽃살문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넘쳐나기를 바란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응진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하얀 눈이 지붕에 내려앉은 모습에 발길도 멈추고 바라본다. 송이 송이 눈꽃 송이 하얀 꽃송이, 태조산 성불사는 꽃들의 천국이다. 꽃살문과 하얀 눈꽃에 기분 좋은 호사에 박수가 절로 난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 전통문화 체험관 조감도이다. 진통을 거듭하던 성불사 전통문화체험관 건립 계획이 조건부로 승인되어 드디어 공사에 착수한다. 정상부에서 내려오는 우수량을 산정해 산마루 물 흐름을 완화시키고, 옹벽은 자연석을 사용하고 주차장 내에 대형차량 주차장 확보와 템플스테이는 전통한옥에 어울리도록 건축하는 조건부 승인으로 천안의 템플스테이관을 갖춘 전통문화 관광지역이 탄생하게 되었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가 있는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의 '태조'에서 유래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과 도선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태조산에는 고려의 왕이 머물렀던 유려 왕산의 태조봉이 있다. 태조가 936년 신검을 정벌하기 위해 천안에 진을 치면서 8만여 명분의 군량미를 쌓아둔 '유량동'도 태조와 연관된 마을 이름이다.

▲ 천안 태조산 성불사에서 만난 겨울과 가을의 이중주이다. 눈 내린 날의 태조산 성불사 풍경은 설렘이다. 성불사 관음전에서 밖을 내다보면 마당을 건너 태조산이 보이고, 겨울 하얀 눈의 산을 바라보았는데 그 너머 산봉우리와 능선엔 가을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마당의 기와에 소복한 눈이 풍경이 되고 스님의 맑은 독경소리와 목탁소리가 속세의 찌든 마음을 씻어 준다. 절은 오는 자를 막지 않고 가는 자를 잡지 않는다. 그대 안에 마음을 자유롭게 하리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충남 천안 태조산에 자리잡은 성불사(成佛寺)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불사길 144 성불사

성불사는 고려 태조에 의해 세워진 전국 3800곳의 비보사찰 중 한곳으로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비보사찰이란 밀교사상과 도참사상이 결합한 비보사상에 따라 지어진 사찰로 비보사상은 전국 각지의 명당에 사찰을 세워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사상체계를 말합니다.

태조산 성불사라는 글씨가 적힌 현판이 걸린 일주문에는 코끼리 석상과 사자석상이 두 기둥 옆에 세워져 있었으며, 일주문 뒷면에는 현판이 걸려있지 않았습니다.

 

사찰 경내 진입로에는 4층짜리 응진전 건물이 있으며, 응진전 왼편에는 범종루가 위치해 있는데, 범종루 안에는 담백한 형태의 범종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법고, 여의주처럼 보이는 구슬을 물고있는 목어와 운판 등, 불전사물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범종루 앞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84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듬직한 모습으로 사찰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대웅전을 포함한 전각들이 위치한 경내로 진입하게 됩니다.

 

먼저 대웅전 뒤쪽 암벽에는 창건 당시 암벽에 새겨진 마애석가삼존 16나한상 및 불입상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데, 비록 부처의 입상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석가여래와 양쪽의 보살과 더불어 주변의 나한들의 모습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충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마애불은 대웅전의 본존불이기도 합니다. 대웅전 내부를 살펴보면, 불단 중앙에 본존불이 위치해야할 자리가 비어있고, 대신 그 뒷편에 유리창을 설치해, 유리창 뒷편 암벽에 새겨진 마애석불입상을 대웅전의 본존불로 모신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형태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있는 적멸보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비어있는 본존불 자리 양옆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었습니다.

 

마애석가삼존 16나한상 및 불입상의 우측에는 약함을 들고있는 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거대한 암벽앞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더 위엄있는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약사여래좌상의 왼쪽 바닥 아래에는 약수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약사여래좌상의 동쪽에는 관음전이 위치해 있는데, 관음전 내부 불단에는 석조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불상은 연기군 조치원에 위치한 대성천의 준설작업 중 발견된 불상으로, 광배 위쪽 일부분과 불상의 몇곳이 깨져있어 붙여 놓았지만, 고려시대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서 종교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웅전 왼편에는 산신각에 해당하는 산령각이 있는데, 이날은 법당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상으로 천안 성불사 여행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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