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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 英陽군의 편액탐방-15- 한양조씨 사월종택 : 작성자: 英陽鄕土史연구소장 <국가민속문화재 제294호> ◑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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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陽군의 편액탐방-15- 한양조씨 사월종택 : 작성자: 英陽鄕土史연구소장  <국가민속문화재 제294호> ◑

 

英陽군의 편액탐방-15- 한양조씨사월종택

英陽군의 편액탐방-15- 한양조씨사월종택#편액 및 英陽의 문자 소개 英陽문자1지난 8월 3일향토사연구회 박원양 소장님,문가모 조귀현 회장님과읍내 상원리 한양조씨 사월종택을 방문할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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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陽군의 편액탐방-15- 한양조씨사월종택

英陽군의 편액탐방-15- 한양조씨사월종택#편액 및 英陽의 문자 소개 英陽문자1지난 8월 3일향토사연구회 박원양 소장님,문가모 조귀현 회장님과읍내 상원리 한양조씨 사월종택을 방문할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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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의 세령재 부조묘시향시 사용하는 병풍>

 

◐편액 및 英陽의 문자 소개◑

<英陽문자1>

지난 8월 3일 향토사연구회 박원양 소장님, 문가모 조귀현 회장님과 읍내 상원리 한양조씨 사월종택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가 지정 민속문화재이며, 영양 최고 건축물로 알려져 있는 종택입니다. 숭정 기원 후 첫 번째 갑신년은 1644년이니 370년 된 고가(古家)입니다. 안에서 10폭 병풍을 발견하고는 허락을 얻어 사진을 찍고이에 그 해석을 올립니다. 오류 있음에 질정을 바랍니다. 한평생을 찌질한 가난으로 점철했으나 따스한 인간미와 담담한 기풍이 깃든 시풍으로 자연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년-427년) 그의 작품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병풍에 쓴 것 입니다.

 

아마 작자 낙관의 호는 송파(松坡)이며 성명은 조선기(趙宣基). 혹은 사월 선생이 낙향함에 견주어 썼을 듯 합니다. 전체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월종택 10폭 병풍: 당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년-427년)그의 작품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병풍에 쓴 것입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翳翳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寓形宇內復

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松坡書(송파서)

 

낙관의 호는 송파(松坡)이며 성명은 조선기(趙宣基).

한양조씨 문중의 작품이니 당연히 작자가 조씨이겠지요?

이상 한양조씨 사월종택 월담헌 소장 병풍의 초보적인 해석이었습니다.

<영양향토사연구회 이재욱 교수 글>

 

 

#[향토사 해설]

 

17세기초 상류주택 '영양 한양조씨 종택' <국가민속문화재 제294호 지정 2017.12.29>

 

영양 한양조씨 사월 종택은 경북 영양에 입향한 한양조씨 조원(1511∼?)의 손자인 사월(沙月) 조임(1573∼1644)이 1602년에 지은 것으로 전한다. 북쪽에 야산을 두고, 남쪽에는 하천과 농경지가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세에 건립됐다.

 

고택은 경북 지역 상류 주택의 보편적인 형태인 ㅁ자형 본채와 방앗간채, 사당으로 구성된다. 본채는 대청마루와 안방, 부엌이 연결된 안채와 방 3개, 마루 2개가 있는 'ㅗ'자 형태의 사랑채가 나뉘어 있다.

 

이처럼 사랑채가 분리된 공간 구성은 앞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영덕 충효당 종택,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조선 중기에 성리학적 질서가 자리를 잡으면서 남성의 활동공간인 사랑채가 본채에서 떨어져 나가는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안동문화권의 ㅁ자형 가옥 중에서도 독특한 평면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양조씨 사월 종가 가문이 영덕 지방 가문과 혼인으로 연결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본채의 사랑채 영역. [문화재청 제공]

 

아울러 한양조씨 사월 종택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대부분 18∼19세기에 지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건립 연대가 이르고, 중요한 제례가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건립과 중수에 대한 내용을 담은 문헌과 편액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임의 사월문집 책판은 2015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이기도 하다.

- 작성자 연합뉴스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7/12/29 09:5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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