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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가족(晛溪家族)

♠갈밭재(葛田岾, 725m), 갈밭(葛田)은 옛날 합천이씨 집성촌이였다가 지금은 한집만 살고 있다.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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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밭재(葛田岾, 725m)는 경남 산청군 생초면 향양리 어은동마을과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 갈밭골(葛田谷)사이의 고개이다. 갈밭(葛田)은 옛날 합천이씨 집성촌이였다가 지금은 한집만 살고 있다.

♥장모님,이모님의 탄생지 갈밭(葛田)!!! 합천이씨집성촌!!!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대안길 317

■(지번)경남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 1119

●덕갈재(德葛峙)
수영더미 라고도 하는 이곳은 수영더미"쉬잉디밋재 "라고하며 어은동 북쪽 거창 신원면과 남상면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610m 매우 가파르고 험하여 행인들이 자주 쉬면서 넘어 갔다고 한다.

●갈전산(葛田山)
높이 : 764m위치 : 경남 산청군 생초면

갈전산(葛田山&갈밭산)은 산청군 관내에서 제일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칡이 많아 갈전산이라고 하며, 등산로는 잘 나있지 않지만 산청 북쪽산 답사 산행지로 권하고 싶은 산이다.

●갈밭재&갈전재(葛田峙)

▲합천이씨인터넷족보의 덕이(德伊)이름으로 검색!!!

덕갈산 : 이곳 산은 사유지인지 참으로 잘 관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소나무들만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가 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소나무들이 생장하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못하는 키 작은 관목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더욱 굵고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삼각점과 그 삼각점 뒤 저쪽 나뭇가지에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는 덕갈산에 도착을 한다. 덕갈산에 대한 자료를 거창군 남상면에서 찾아 보니 이곳은 떡갈나무가 많은 산이라서 떡갈살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덕갈산이라 부르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꺾여 내려가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한다.

 

내려가기 전 가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좌측으로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 서 있는 매봉산과 그 우측으로 올라야 할 갈전산이 미세먼지속에서도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 온다.

그 매봉산 좌측 동쪽으로는 지난 구간부터 계속 눈길을 따라 오던 감악산이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자고 치근거리듯 다가온다.

잠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평이한 능선이 이어지고 한동안 마음 편안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기계음이 크게 들리며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심하며 그 공사장 한쪽으로 내려가니 포크레인 운전기사가 잠시 작업을 멈추고 등산복장을 하고 있는 이 산객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기에 설명하고 무슨 공사냐고 물어 보니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라고 전해 준다.

이 공사가 끝나면 진양기맥 마루금은 또 어떻게 변하고 또 후답자들은 어떻게 이곳을 통과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기도 한 시간이다.

 

포크레인 기사님의 배려로 쉽게 그 공사장을 빠져 나와 좌측 2차선 포장도로 위로 올라 잠시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1034번 지방도로이다.

원래 마루금은 능선을 계속 타고 와 저 도로 좌측 절개지로 내려 와야 할 것 같지만 도로가 생기면서 절개지로 인해 등로 우측 사면 등로로 내려 왔는데 그곳마저 새로운 도로 공사로 막혀 버리니 점점 더 맥 잇기 산행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나 온 절개지 쪽으로 가 보니 그곳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오는데 살펴보니 덕갈산 0.6 Km란 이정표와 거리 표시이다.

이제 그 1034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1034번 2차선 포장도로인 지방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표시판에는 청수로란 표시가 뚜렷하고 도로 옆 표시판에는 지나 온 방향으로 거창까지 16 Km 란 표시가 뚜렷하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저 앞에 건물이 보이는 도로 우측 옆으로 이정표 하나가 보이고 살펴보니 갈전산 2.1 Km란 방향과 거리 표시가 함께 되어 있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어 진행해야 하지만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궁금해 살펴보니 농업회사법인(주)원산종돈으로 아마도 돼지 축사인듯 보이는데 등로로 오르며 살펴보니 생각보다 무척 큰 축사처럼 보였다.

이곳은 갈전재 또는 수영덩이라 불리는 고갯마루인데 경남 거창군 남상면과 신원면 그리고 산청군 생초면의 3개 면이 만나는 지점의 고갯마루로서 6.25 전쟁 당시 무고한 양민학살이 자행되였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고갯마루이기도 하다.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백과사전에서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1951년 당시 한국군 11사단은 지리산 일대의 빨지산 토벌에 동원되어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11사단장 최덕신이 토벌을 위해 휘하 부대에 보낸 방침은 견벽청야 즉 빨치산들이 머물 지역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발상 자체는 정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나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없게도 이러한 견벽청야 방침에는 빨치산이 출몰하는 지역의 주민은 모조리 적국 국민으로 취급하고 더 나아가 제거 대상으로 본다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 공비 토벌을 명목으로 출동한 한동석이 이끄는 한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는 사단의 이러한 사단의 방침을 그대로 이행하여 민간인들을 안전 지역으로 피난시킨다는 명목으로 인근 초등학교 건물로 사람들을 전부 모은 후 군경 가족 등을 추려내고는 주민들을 전부 인근 박산으로 이끌었다.

국군이 지켜주는 피난길을 간다고 말 그대로 남부여대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간 이들에게 쏟아진 건 같은 나라 군대의 총탄으로 700명 가까운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죽인 11사단 병력은 시체에 휘발유 뿌려 불을 붙이고 매장하는 등 증거인멸에도 나섰다.

하지만 그런 지옥 속에서도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박산으로 이끌려 나가기 직전 선별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있었는데 울함을 참지 못한 살아남은 이들이 뜻을 모아 당시 거창 지역 국회의원이던 신중목에게 눈물로 호소를 했고 사실을 알게된 후 경악한 신중목이 국회에서 이 사건을 공개하면서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긴급히 국회에서 조사단이 꾸려져 거창 지역으로 파견되었고 당시 지역 계엄사령관인 김종원이 국회 조사단을 빨치산으로 위장한 한국군 병력으로 현재의 갈전재 즉 수영덩이 고개에서 방해하는 짓을 저지르고 한국군에선 죽은 자들은 전부 빨갱이라고 주장하였으나 결국에는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이 실제 벌어졌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전원 군사재판에 넘겨져 최덕신은 직위 해제되고 연대장 오익경은 무기징역으로 대대장 한동석은 징역 10년 그리고 실제 학살을 집행한 소위 이종대는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였고 게릴라로 위장한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의 조사를 방해한 김종원은 징역 3년 등의 판결을 받았다.

김종원을 제외하면 저지른 죄에 비해 가볍기 그지없는 판결임에도 판결 얼마 후 관련자들은 전부 특사로 풀려나 현역에 복귀했지만 최덕신의 경우는 적성마을 토벌이 주민 소개 등으로도 해석 가능하여 학살로만 해석되지는 않는 점이 적용되어 부하 관리 소홀 혐의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라이 학살 당시에도 상부의 토벌 지시는 해석하기 애매하다는 점을 들어 문제삼지 않고 실행범인 켈리 소위만 처벌했다.

4.19 이후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2공화국 시기에 민간인학살사건의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이 당시 학살에 협력했던 면장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면서 사건은 다시 한번 세상의 이목을 이끌었고 거창의 생존자들은 명확한 진상 규명과 학살당한 이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건 아니라는 주장이 있어 잘못 알려졌거나 이걸 이용해서 마녀사냥 하득 죽인 것이 잘못 와전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이들을 전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아넣고 말았는데 아닌게 아니라 이 정권에서 2인자 중 하나인 정일권이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고 최덕신도 박정희 정권에서 권력 밖으로 쫓겨나기 전까지는 호의호식하였다.

물론 위에 언급한 것처럼 직접적인 학살 명령을 내린 증거가 없어서임은 물론으로 김종원도 권력은 잃었지만 조사 방해는 중죄가 아니고 학살가담자가 아니라며 더는 처벌하지 않았다.

한편 한동석과 오익경의 경우에는 1년도 안 돼 사면되어 현역으로 복직했다는 것이 1960년 뒤늦게 밝혀졌으나 그 이상으로 알려진 것이 현재로서는 없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갈전재에서 내려다보는 고촌마을회관

(우) 52200 경남 산청군 생초면 새실로640번길 23

(지번) 생초면 향양리 219-1

▲향양경로당

경남 산청군 생초면 새실로573번길 12

(우) 52200(지번) 생초면 향양리 304-1

▲향양저수지 : 경남 산청군 생초면 향양리 800

가슴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했던 갈전재 즉 수영덩이에서 잠시 동족 비련의 아품을 생각해 보고 우측 개울 위에 놓여 있는 앙증맞은 나무 다리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지금보다 더 멋진 소나무 등로가 잠시 침울했던 산객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즐겁게 바꿔 놓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는 힘들게 하지만 그 등로 주위를 가득 채운 멋진 소나무들이 많은 치톤피드를 내뿜으며 이마와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산객을 응원하고 있다.

적당히 간벌된 소나무 숲이기에 더욱 산행에 기분 좋아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니 이제부터는 소나무 보다는 갈참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감자기 등로 주위의 소나무와 갈참나무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오래전 설치되어 녹이 쓸어 버린 철조망이 등로와 함께하고 있다.

개인 사유지이며 이곳에 임산물을 가꾸고 있어 오래전부터 출입금지를 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한동안 오르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가파른 잡목지대가 펼쳐지더니 매봉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매봉산 갈림 삼거리에서 잠시 고민하지만 역시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기에 다시 땀흘리며 매봉산으로 향한다.

고도가 높고 약간은 북사면이기에 등로엔 약간의 잔설이 남아 있어 약간은 긴장을 하며 오른다.

오르니 잠시 구름속에 숨어 있던 햇살이 얼굴을 내밀고 정상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내려 와 매봉산 갈림 삼거리로 복귀한다.

오늘 산행하는 구간 중 제일 높은 봉우리인데 자료를 찾아 봐도 제대로 된 자료는 찾지 못하고 단지 산의 형태가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란 자료만 어렵게 찾아 본다.

 

매봉산에서 내려 와 이제는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낙엽진 앙상한 갈참나무 군락지 아래 성가실 정도로 자라고 있는 관목과 잡목들이 등로를 어지럽게 막고 있지만 다행히도 겨울이라 산행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지만 여름철 산행에는 고생 좀 해야 될 구간으로 생각된다.

잠시 더 진행하는 무명봉 하나는 우측 우회 사면로로 통과하여 다시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른다.

 

사면 등로를 지나다 보니 남사면은 완전히 녹아 질처이지도 않지만 북사면은 이제서야 기온이 오르며 얼었던 등로와 잔설이 녹아 미끄러운 등로로 변하고 있다.

낙엽속에 얼어 있는 등로가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북사면을 지날 땐 더욱 조심하는 산행 시간이다.

잠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지난 구간 넘었던 사별산과 오늘 걸었던 등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니 삼각점과 정상 이정표가 있는 갈전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갈전산은 산청군 관내에서 제일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칡이 많아 갈전산이라고 하며 등산로는 잘 나 있지 않지만 산청 북쪽의 산행지로 권하고 싶은 산이다.
갈전산 등산로는 산청읍에서 3번 국도를 타고 함양방면으로 가다가 생초면 소재지의 어서리 입구에서 1034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포장이 끝나는 향양리 6 Km 지점의 어원동 마을의 오른쪽 임도를 따라 1 Km를 가면 임도가 끝나고 본격 갈전산 등산로 초입이며 갈전산 정상은 왼쪽 높은 봉인데 여기부터는 글자 그대로 칡밭이다.

이 칡밭을 따라 1.5 Km를 가면 갈밭재 갈림길이 있는데 여기서 바른쪽은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 넘어가는 길이고 왼쪽이 정상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600미터인데 정상에 서면 덕갈산, 매봉산, 보록산, 바랑산 등 산청 북쪽의 거창 지역 산들이 전부 조망된다.

갈전산은 거리가 짧아 아쉬운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정상에서 매봉산을 거쳐 건너편의 덕갈산으로 가서 630봉과 645봉을 지나 내려서면 향양리의 어원동이니 두루 운행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그러나 산길이 희미하고 거리가 어원동에서 원점 회귀하면 12 Km이니 독도에 자신이 있어야 멋진 산행이 된다.

 

특별한 조망도 없기에 갈전산 정상에서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을 한다.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등로 옆에 녹슨 철조망이 따라오고 살펴보니 등로 우측 철조망 넘어에는 입산금지 송이관리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아마도 송이 채취시에는 산행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무엇보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견물생심에 초연해야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소나무에 출입금지 경고판이 붙어 있고 우측으로도 뚜렷한 등로가 열려 있어 잠시 지도 꺼내 정독을 한 후 그 경고판 아래의 직진 등로를 타고 계속 이어가 본다.

 

다시 소나무들과 낙엽진 활엽수들이 적당히 섞여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건너고 묘지 하나를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지나온 등로가 올려다 보이고 잠시 올려다 보며 살펴보니 방금 전 다녀 온 매봉산이 저 멀리 우뚝하다.

그 매봉산을 지나 이어진 산줄기 하나도 제법 그럴듯한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그 산줄기도 제법 고도를 유지하며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오랫만에 다시 얼굴을 내민 햇살 아래 728봉과 전위봉이 쌍봉을 이루며 서 있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임도 한쪽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갈전마을 하산 등로가 열려 있는 곳으로 바로 갈밭재이다.

경남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는 청용과 수동이란 마을의 앞자에서 한글자씩 따서 청수리라 했다는데 마을로는 청용, 수동 그리고 대안이란 3개 마을이 있다.

갈전이란 마을은 대안 위에 있는 마을로서 대안은 옛날 순흥안씨가 마을을 열었다하여 이름이 붙여졌고 6.25 동란 때 불탄 것을 1953년 다시 세웠다고 전해진다.

 

갈밭재 역시 여름철 산행 시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그런 풍경으로 남겨진다.

그 갈전 갈림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파란 물통이 보이고 우측 능선으로 오르려는데 그 입구에도 또 다른 이정표 하나가 서 있고 살펴보니 지나 온 갈전산까지의 거리 표시가 다르게 되어 있어 헷깔린다.

능선으로 오르며 지나온 등로를 올려다 보니 이제 매봉산과 갈전산 등로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 지나 소나무 군락지가 열려 있고 넓은 공터를 지나 갈전산에서 1.7 Km 지나왔고 철마산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잠시 간벌된 나무들이 등로 주위에 흩어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지만 오래전 일인듯 산행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 이정표와 간벌된 구간을 지나니 이제 제법 굵은 소나무 몇개가 듬성 듬성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진달래 꽃 나무 군락지가 마치 잡목 구간을 연상시키듯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에 잡목이 우거진 곳을 오르니 앞에 묘지가 보이는데 등 뒤로는 이제 잡목 사이로 지나온 갈전산과 그 우측으로 매벙산 줄기가 뚜렷히 올려다 보인다.

 

묘지를 지나 이어가니 묘지 우측으로는 제법 큰 바위가 서 있고 공터같은 정상부를 지나 넘으니 활엽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을 넘는다.

다시 이어지는 잡목 구간을 조심하며 진행하니 봄이 와 진달래 꽃이  만개하면 참으로 곱고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 온다.

그저 이름이 없어도 이렇듯 숨어 있는 좋은 등산로가 얼마나 많은지 오늘 같은 날 산행을 하면서 또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다시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고 진행하니 이제 철마산이 0.4 Km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그곳에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 옆에 나즈막한 높이의 하얀 이정판에 우측으로 임도 갈림 이정표가 또 하나 서 있고 이제 정상까지는 0.2 Km란 거리 표시가 눈에 거슬린다.

방금 전 0.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에서 채 5미터도 진행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상까지 0.2 Km가 남아 있다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제작해 세워 두려면 제대로 하던지 하니면 차라리 세우지 않는편이 나을 듯 싶기도 하다.

 

그 안부를 넘으니 다시 묘지 하나가 보이고 그 묘지 넘어 철마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가파른 등로도 눈에 들어 온다.

묘지와 안부 지나  미끄러운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억새풀이 말라있는 평이한 등로가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그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산청군 생초면 향양리 마을이 미세먼지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헬기장을 만나고 큰 바위 2개가 서 있는 전망바위에 도착해 살펴보니 가야 할 마루금 우측 저 멀리 언젠가는 올라야 할 산청의 왕산과 필봉산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그 존재감을 알리지만 그 이상의 조망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주위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금새 산청군 생초면의 해발고도 744미터인 철마산에 도착을 해 증명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리고 이곳 거창과 산청 경계에 있는 철마산의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철마산이란 산 이름은 우리나라 전국의 산 이름에서 제법 많은 산 이름중 하나로서 이 산객이 알고 있는 철마산만 하더라도 약 5개나 되고 있으니 모르는 것까지 합치면 얼마나 많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곳 철마산은 해발고도 744미터로서 경남 산청군 생초면과 거창군 신원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그 의미는 정확하지 않지만 말발굽형태를 지닌 산이란 뜻도 있고 말을 탄 장군이 탄생한 곳이란 뜻도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 뜻인지는 이 산객도 모르겠다.

다만 이곳 철마산 정상은 6.25때 지리산빨치산과 국군토벌부대인 107연대와 대치했던 곳으로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에는 빨치산을 근원적으로 차단한다는 미명아래 인근주민 700여명이 학살되었던 비극적인 장소이기에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곳 철마산 정상에서의 조망이 특히 좋다고 알고 올랐지만 오늘은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제한된 시야이니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 아름다운 조망을 바라 볼 뿐이다.

북쪽으로는 지나온 갈전산과 매봉산 넘어 저 멀리 희미하지만 함양 4개산인 기맥, 금원, 거망 황석산이 희미하게 다가 온다.

등로 우측 서쪽으로는 생초면 향양리 넘어 백두대간 백운산과 그 옆 장안산이 아주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희미한 실루엣으로 지리연봉이 다가오지만 분간조차 하기 힘들 정도이고 좌측 동쪽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마루금 넘어 저 멀리 황매산이 다가온다.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지만 이것이 자연인 것을 다음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약간의 남동쪽으로는 지나야 할 바랑산과 소룡산 넘어 저 멀리 소황매산(할미산)과 황매산이 흐릿한 박무속에서도 뚜렷히 각인된다.

미세먼지로 인해 더욱 멀리 보이지만 저 황매산 직전 떡갈재까지는 가야 하기에 조바심 없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 보자 마음 먹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발 두발 걷다 보면 목표로 했던 그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지만 내일 산행이 더욱 고민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조금 더 진행하다 등로 우측의 전망바위로 가니 더욱 뚜렷히 등로 우측의 조망이 펼쳐지지만 역시나 박무와 미세먼지로 아쉽기만 하다.

전망바위 바로 아래에 산청군 생초면 향양리와 구평리가 펼쳐져 있고 그 위쪽으로 화양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연화산과 승화산 넘어 저 멀리 백두대간 마루금과 그 우측으로 함양의 4개산이 보이지만 분간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니 더욱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조망을 마음속으로 찾으며 한참을 전망바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철마산 정상부로 올라 가 네려 놨던 배낭을 둘러메고 이곳 전망바위 좌측의 바위 너덜길이 아닌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철마산 정상부에서 진행하며 내려가다  보니 돌로 쌓아 올린 산성터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 와 인터넷과 그곳 지자체 자료를 모두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등로를 타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조금 내려오니 그 등로는 자꾸만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결국은 전망바위 아래 바위 너덜길 아래로 이어지고 있다.

그냥 배낭 메고 전망바위로 올라 조망을 즐긴 후 이어지는 바위 너덜길을 타고 진행하면 무리가 없었을 것을 괜시리 내려갔다 오르기를 두어번 하고서야 정상 등로를 차장 이어가 본다.

 

바위 너덜길을 내려 와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조망을 즐겼던 전망바위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내려가니 묘지 앞에 바위 하나가 서 있는 장소를 지나 잠시 잡목 사이를 걸어 본다.

그렇게 내려가니 이제 철마산에서 0.4 Km 내려왔고 좌측으로 예동마을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기는데 이제부터 저 예동마을을 좌측에 두고 한동안 진행을 해야 한다.

그 이정표 옆에는 또 다른 키작은 하얀 이정판에 노은과 정상 0.3 Km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어느것이 맞는지 헷깔리기만 하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그 이정표들을 지나자 곧이어 거창463이란 글이 적혀 있는 삼각점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705.1봉인데 이곳 삼각점 안내판에는 706.1봉으로 적혀 있다.

 

다시 소나무들과 잡목이 잘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전진하니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나타난다.

그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내려가니 그 포장 임도가 U자형으로 툭 튀어 나온 산마루를 돌아 흐르고 있는 모습이다.

내려 와 산행 들머리를 찾아 보지만 그 포장 임도를 가로 질러 급경사 내리막에 등로 같은 뚜렷한 길이 있지만 정황상 그곳이 정상 기맥길 같아 보이지는 않아 한참을 정상 등로 찾아 이리 저리 왔다리 갔다리 해 본다.

그래도 찾지 못해 결국 지도를 놓고 정독을 하면서 나침판으로 방향을 확인하니 그 콘크리트 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돌아 진행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잠시 더 걸어가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바로 흰머리재라 생각되는 곳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바라보니 직진 방향으로 예동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오르막 밭을 따라 철마산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정상 등로는 우측 콘크리트 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 좌측에 밭을 두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넓은 공터로 오른 후 능선으로 진입하는 방향으로 추측이 된다.

우측으로 밭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면 밭 가장자리에 녹색 그물망이 쳐져 있고 그 녹색 그물망을 바로 등로 좌측에 두고 비포장 임도를 따르면 될 것이다.

흰머리재는 산청 생초면 노은리에서 거창 신원면 중유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로서 등로 좌측으로는 신촌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신촌마을 지나 큰 예동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밭을 좌측에 두고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이제 막 얼었던 임도가 녹으면서 여간 미끄럽지 않다.

더욱이 그 녹아 있는 표면 아래에는 아직 얼었던 얼음이 남아 등산화에 진흙이 달라 붙을뿐 아니라 미끄럽기까지 하니 체력 소모가 평소의 2배는 족히 되는듯 싶다.

그렇게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엔 억새가 사람 키보다 더 자랐다 말라 있어 진행에 여간 어렵지 않다.

그 억새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하나 둘 보이고 그 능선으로 진입하기 직전 뒤돌아 보니 철마산에서 705.1봉 지나 흰머리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뚜렷하게 펼쳐져 있다.

 

능선으로 올라 잡목을 헤치며 전진하니 금새 검정 차단막이 둘러쳐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휘어져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예동마을과 721.6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721.6봉 우측 저 멀리 한동안 함께 진행하던 월여산이 멀어져 가고 있다.

중유리를 찾아 보니 느릅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유곡의 중간에 자리하므로 중유리라 하며 이 중유리에는 하유, 중유, 상유, 예동, 신촌 및 유항 등 여섯마을이 있는데 예동마을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올라 보지 못한 월여산이기에 조만간 꼭 한번 올라 오늘을 추억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월여산은 경남 거창군 남쪽 지맥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인근 사람들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해서 삼봉산으로도 부른다.

이 산은 산세가 좋아 무학대사가 금계포란형이라 지목하여 유명한 풍수가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거창의 지형으로 보아 거창지역의 모든 물줄기는 거창읍을 거쳐 남하면에서 합수하여 합천호에 이르지만 월여산이 위치한 신원천만은 그 아래쪽으로 독립되어 흐르고 산이 높아 골 또한 깊어 수량이 풍부하다.

그 물이 맑아 월여산을 찾는 이들을 반기는데 정상 서쪽면은 층암절벽이 관목과 어우러져 가을 단풍이 특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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