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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읍 상원리 비리골의 '비리동천(飛鯉洞天, 수월공휘검)'과 '성황당쑤[城隍堂林]' ♣ 영양입향조 11세조 參判公 諱源▣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11. 28.

♣영양읍 상원리 비리골의 '비리동천(飛鯉洞天)'과 '성황당쑤[城隍堂林]' ♣

 ■상원리 비리동 전경 


영양읍 상원리 비리골의 '비리동천(飛鯉洞天)'..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영양읍 상원리 비리골의 '비리동천(飛鯉洞天)'과 '성황당쑤[城隍堂林]'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의 자연마을인 비리골[飛鯉谷]은 수월(水月) 조검(趙儉, 1570~1644) 선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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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의 자연마을인 비리골[飛鯉谷]은 수월(水月) 조검(趙儉, 1570~1644) 선생과 관련하여 지명이 변경된 신비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수월 선생의 할머니인 함양오씨(咸陽吳氏)가 한겨울에 병을 얻어 잉어회를 먹으면 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손자의 간절한 요청으로 하게 된다. 

■효성에 감동하여 잉어를 얻는 장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수월 선생은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잉어를 구하려고 했지만 한겨울이라 불가능했다. 그래서 안타까움에 강변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께 기도했더니 멀리 까마귀가 무리지어 맴도는 곳에서 얼음 사이로 뛰어 오른 잉어를 얻을 수 있었다. 

한겨울 지성으로 기도하여 잉어를 얻게 된 일화는 고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수월 선생을 효자로 칭송하게 되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성황동(城隍洞)이었던 마을의 지명조차 효자를 기념하기 위해 '잉어가 날아 올랐다.'라는 의미의 '비리동(飛鯉洞)'으로 바꾸었다. 

■비리동 마을입구에 세운 비리동천 비석 

각종 문집과 입을 통해서 대대로 전승된 수월 선생의 일화로 인하여 마을의 위상은 크게 고취되었으며, 후손들과 지역민은 결국 비리동을 '효자가 태어난 살기 좋은 곳'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1945년 음력 9월 마을 입구에 '비리동천(飛鯉洞天)'이라는 비석을 세우게 된 것이다. 

■비리동에 자리 잡은 함양오씨와 한양조씨의 입향조 묘 

◐위부터 ①12세조 아들 판윤공 趙光仁 ②장인 함양오씨

오필(吳滭,1493~1553)③11세조 영양입향조 참판공 조원(趙源,1511~1550) 유택◑

비리동은 수월 선생과 관련된 효자의 전설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한양조씨 영양입향조인 참판공(參判公) 조원(趙源, 1511~1550) 선생의 묘를 쓰게 된 이야기로 고을민에게 회자되던 곳이었다. 즉, 참판공이 사망하자 그의 어린 아들들의 정성에 감복한 지관이 '베가 감기듯 자손이 번성할 자리'를 찾아 준 것이다. 

■옥천선생이 사용하시던 거문고(한국국학진흥원 기탁유물) 


비리동의 신비한 일화는 이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후손인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 선생과 연결되며 다시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옥천 선생은 1725년 남인(南人)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辭司諫院司諫疏 사간원의 사간을 사양하며 올리는 소'를 통해서 역적이었던 노론(老論)의 인물을 중용하는 것은 어긋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로 인하여 옥천 선생은 결국 1737년 탄핵을 받아 절도(絶島/濟州島)에 위리 안치(圍籬安置)라는 엄한 처벌을 받게 되며, 만 79세의 상노인이었던 옥천 선생은 무더운 여름 제주도로 가기 위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던 중 전라도 강진에서 병으로 사망한다. 

옥천 선생이 사망한 뒤 10여 일이 지나서야 그의 사망소식이 영양에 전해졌는데, 상원리에 살고 있었던 족제 주강(柱江) 조시광(趙是光, 1669∼1740) 선생에게 한 가지 신비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0여 일 전 자신의 맏아들인 조서규(趙瑞圭, 1711~1770) 선생이 옥천 선생을 현몽한 것이다.

◈봉야재(鳳夜齋)◈

■비리골의 성황당 쑤와 한양조씨 재사 '비리재'↔"율수당(聿修堂)"

(36527)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비리동천길 43

 

●율수당[1675년 건립]은 사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두르고 있다. 정면 담장 중앙의 입구를 통하여 비리동천길에서 곧바로 진입하게 된다. 담장 너머 우측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좌측에 이웃 가옥이 있다. 정면 비리동천길 건너편에는 평지의 농경지가 있어 시야가 트여있다. 담장 안의 마당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하였고 ‘ㄷ’자형 대문채와 ‘ㅡ’자형 재사가 튼 ‘ㅁ’자를 이루고 있다.
재사는 정칸 4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며, 중앙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로 온돌방을 배열했다. 마루는 우물마루형식이며, 배면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하였으며, 정면에는 네 짝 들어걸개 세살청판문을 달아 공간을 확장시키도록 하였다. 온돌방은 각 칸에 마루간으로 외여닫이 세살청판문을 달아 출입하였다. 좌우 온돌방은 정면으로 통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재사의 기단은 자연석과 시멘트모르탈을 사용하여 2단으로 축조 하였으며, 안마당 바닥과 기단 바닥, 계단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주초는 자연석 주초이며, 주초 위 기둥은 모두 사각기둥이다. 기둥의 상부는 직절익공형식으로 창방과 도리받침장여, 납도리, 보가 짜 맞춤을 하였으며 창방과 장여 사이에 소로로 수장되어 있다. 재사의 가구는 오량이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 끝은 와구토로 마감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으로 앙토는 회바름으로 마감하였고, 벽면은 회바름으로 마감하고 일부는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목재의 마구리면은 흰색으로 칠했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이며, 대문간을 중심에 배열하고 좌우로 방과, 고방을 배열했다. 대문간 우측의 방은 2간 규모의 방으로 정면에 두 짝 여닫이문과, 외여닫이문을 달았으며, 배면으로 외여닫이문을 달았고 문 앞에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배면의 방은 1간이며, 현재 창고로 사용하고 있고 마당으로 외여닫이문을 달고, 측면으로 걸창을 달았다. 배면에는 고방을 배열했는데 마당으로 두 짝 여닫이 통판문을 달아 출입 한다
대문간의 좌측에는 화장실, 부엌이 위치한다. 화장실은 정면으로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고 배면으로 보일러실을 꾸몄으며 부엌과 통하는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부엌은 마당과 측면으로부터 출입이 가능한 외여닫이문을 달았고, 정면에는 미서기창을 달았다. 배면의 방은 2간은 안마당으로 두 짝 여닫이문,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고 측면에는 걸창을 달았다.
대문채의 기단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하여 외벌대 높이로 만들었으며 자연석 주초를 두었다. 주초 위에 기둥은 사각기둥을 세워 기둥 상부에 장여, 도리, 보를 짜 맞춤을 한 납도리형식을 하고 있다. 가구는 삼량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 끝은 와구토로 마감하였다. 서까래 사이 앙토는 회바름으로 마감하였고, 벽면은 회바름으로 마감하고 일부는 시멘트모르랄로 마감하였다. 목재의 마구리면은 흰색으로 칠했다.
율수당의 재실은 와구토가 대부분 탈락되었고 기와가 노후화되어 유지보수가 필요로 하나 전체적으로 관리상태가 양호하여 향후 유지관리계획을 세워, 이에 따라 활용 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높아질 것이다.

맏아들의 증언에 의하면 꿈에서 옥천 선생이 영양읍 상원리 비리골의 재사 앞에 노닐며 '無恙靑山今又來 변함없는 청산에 이제 다시 왔네.'라고 읊으셨다고 한다. 주강 선생은 아들의 현몽담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는데 10일이 지나지 않아 부고가 전해지자 기이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柱江文集(주강문집)

●趙是光(조시광)

■출생일과 사망일 : 1669年(顯宗9)~1740年(英祖16)

◆출판 연도 1875년

■序·編·跋의 저자 : 序-李敦禹(1875), 後識-趙秉時(1873)

柱江文集序/李敦禹 [序]

卷一

柱江軒韻/趙是光 [詩]

江軒四時吟--春/趙是光 [詩]

江軒四時吟--夏/趙是光 [詩]

江軒四時吟--秋/趙是光 [詩]

江軒四時吟--冬/趙是光 [詩]

柱江十六詠--江中砥柱(內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獺巖玩魚(內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鶻巖看花(內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中峯晚雲(內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雨樓觀漲(內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東臺秋月(內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鳳臺丹壁(內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松壇暮雪(內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仙遊窟(外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宿雲亭(外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玉仙臺(外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靈穴寺(外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採蓮洲(外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滌襟臺(外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別鶴巖(外八景)/趙是光 [詩]

柱江十六詠--魚蔚巖(外八景)/趙是光 [詩]

戊子春遣閒/趙是光 [詩]

聞家食新麥戲題/趙是光 [詩]

朝食蓮笋羹/趙是光 [詩]

伏次曾王考沙月府君絕筆韻/趙是光 [詩]

次鄭塤叟玉澗亭韻/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兩岸桃花紅紅白白(春)/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綠隂如海黃鳥上下(夏)/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處處楓林堆錦疊繡(秋)/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磵邊寒松欝欝含翠(冬)/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日晏宿霧未捲(朝)/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花前落照晻靄(暮)/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客少人閒或把釣或擕琴上槎(晝)/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月照前潭浮光躍金(夜)/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山雨初過溪響吼怒(雨)/趙是光 [詩]

次玉澗亭十景韻--瓊林琪樹玲瓏可愛(雪)/趙是光 [詩]

次權大而知足堂(二首)/趙是光 [詩]

題再從兄喚仙堂韻/趙是光 [詩]

仙遊窟次贈白耳應韻/趙是光 [詩]

次吳景叔三龜亭韻/趙是光 [詩]

洗心巖思申子直/趙是光 [詩]

雷澤亭敬次葛菴李先生觀水韻/趙是光 [詩]

又次兩絕/趙是光 [詩]

滌襟臺次贈族姪/趙是光 [詩]

次族兄霖巖翁金日春歌/趙是光 [詩]

次吳達夫醉隱堂韻/趙是光 [詩]

病中次李龜厓見寄韻/趙是光 [詩]

病中贈霖翁乞生梨/趙是光 [詩]

相思吟一絕贈霖翁兼示族姪妝綏彥/趙是光 [詩]

詠盆梅贈李仁伯求和/趙是光 [詩]

詠梔梅/趙是光 [詩]

雨中贈李君直/趙是光 [詩]

贈別李君直/趙是光 [詩]

題贈鄭塤叟/趙是光 [詩]

次李士直(二首)/趙是光 [詩]

李茅山壁上賦幾字/趙是光 [詩]

次金汝修金敬天韻/趙是光 [詩]

次李直長寄晨字韻/趙是光 [詩]

又用前韻直長說懷/趙是光 [詩]

次李仲華/趙是光 [詩]

粟粥飼李仲華/趙是光 [詩]

無聊中柳介仲金汝修金振于歷訪因步其韻/趙是光 [詩]

次蒼雪齋權公楮谷三勝韻(四首)/趙是光 [詩]

關東逢金進士權一甫李天源因次其韻/趙是光 [詩]

聞龜茅兩翁自海上徑歸戲題/趙是光 [詩]

次金振伯韻/趙是光 [詩]

次權叔章權翼卿權景三石泉賞春韻(二首)/趙是光 [詩]

七夕贈金敬天金汝修兩兄韻/趙是光 [詩]

次李仁伯四時韻--春/趙是光 [詩]

次李仁伯四時韻--夏/趙是光 [詩]

次李仁伯四時韻--秋/趙是光 [詩]

次李仁伯四時韻--冬/趙是光 [詩]

贈徐進士訥軒韻/趙是光 [詩]

呈姜使君菊圃解官之行/趙是光 [詩]

聞族兄玉川翁鄰訃音有感/趙是光 [詩]

聞金吾郎夢有感/趙是光 [詩]

月潭軒板上次蒼石李先生贈沙月府君韻(二首)/趙是光 [詩]

飛鯉齋重修落成韻/趙是光 [詩]

輓密菴李公/趙是光 [詩]

輓鄭塤叟(二首)/趙是光 [詩]

輓李龜厓(二首)/趙是光 [詩]

輓李君直/趙是光 [詩]

輓金司直/趙是光 [詩]

輓李士直/趙是光 [詩]

輓李國卿/趙是光 [詩]

輓申子直(二首)/趙是光 [詩]

輓李挺甫/趙是光 [詩]

輓南上舍/趙是光 [詩]

輓霖巖族兄(二首)/趙是光 [詩]

輓尹鶴巖(二首)/趙是光 [詩]

輓吳孝子/趙是光 [詩]

月潭軒次宗兄韻/趙是光 [詩]

寄再從弟奉以/趙是光 [詩]

靈穴次姜菊圃/趙是光 [詩]

夜夢密菴李公/趙是光 [詩]

朝中示長兒/趙是光 [詩]

移寓/趙是光 [詩]

閒中賦七禽--鷰/趙是光 [詩]

閒中賦七禽--鷄/趙是光 [詩]

閒中賦七禽--烏/趙是光 [詩]

閒中賦七禽--鵲/趙是光 [詩]

閒中賦七禽--鸎/趙是光 [詩]

閒中賦七禽--鴈/趙是光 [詩]

閒中賦七禽--鷺/趙是光 [詩]

憶金振伯在謫作相思曲三闋--一闋正律/趙是光 [詩]

憶金振伯在謫作相思曲三闋--二闋檀律/趙是光 [詩]

憶金振伯在謫作相思曲三闋--三闋吳體/趙是光 [詩]

次月松亭板上韻/趙是光 [詩]

次望洋亭板上韻/趙是光 [詩]

次浩祭亭韻/趙是光 [詩]

育英樓癸丑暮春會詩/趙是光 [詩]

達夫壽席次奉以韻/趙是光 [詩]

贈朴見卿/趙是光 [詩]

次朴肅而藏頭體/趙是光 [詩]

輓趙大叔/趙是光 [詩]

輓金維城(二首)/趙是光 [詩]

次金鳴叔清涼韻/趙是光 [詩]

族姪綏彥見訪/趙是光 [詩]

題吳孝子旌閣/趙是光 [詩]

山牕為風雨所閉/趙是光 [詩]

次奉以三巖亭韻/趙是光 [詩]

將入關東道上口占/趙是光 [詩]

踰蔚屯嶺/趙是光 [詩]

閒中漫興/趙是光 [詩]

聽風琴/趙是光 [詩]

次李懶隱題寄新曆詩韻/趙是光 [詩]

次內弟權希彥/趙是光 [詩]

次康節六十三韻/趙是光 [詩]

輓徐訥軒二首/趙是光 [詩]

輓龜城李進士季實/趙是光 [詩]

輓勿老堂金進士/趙是光 [詩]

題寄松石堂/趙是光 [詩]

輓金剛叔/趙是光 [詩]

次金北牕二首/趙是光 [詩]

憶從弟在水月炷灸/趙是光 [詩]

寓舍重午日得村醪有感/趙是光 [詩]

風旱聞榖苗多枯/趙是光 [詩]

得關東八景續和/趙是光 [詩]

行中偶吟二首/趙是光 [詩]

問歸鴈/趙是光 [詩]

歸鴈答/趙是光 [詩]

梅問主人/趙是光 [詩]

遇春歉請糶不得有吟/趙是光 [詩]

次族兄吹螺山城韻/趙是光 [詩]

次佛洞居士金仲會韻二首/趙是光 [詩]

柳參議金汝修柳台彥諸賢設立春會於于暮山寺俯賜要速未果赴因次會中韻/趙是光 [詩]

贈族兄/趙是光 [詩]

次擊壤集天津橋韻二首/趙是光 [詩]

詠玉梅二首/趙是光 [詩]

詠葵/趙是光 [詩]

詠蓼/趙是光 [詩]

蓼菊逢雨增色口占一絕/趙是光 [詩]

次金士章玉溪亭韻/趙是光 [詩]

劒磨寺次金汝恊/趙是光 [詩]

劒寺會中次汝恊濃字韻/趙是光 [詩]

次族從華伯/趙是光 [詩]

次權君畊/趙是光 [詩]

贈金汝恊/趙是光 [詩]

寄李仁伯旅榻/趙是光 [詩]

用李天欽豪字韻贈龜翁/趙是光 [詩]

樂山齋/趙是光 [詩]

栢麓紅旭/趙是光 [詩]

松關翠靄/趙是光 [詩]

長沙漁篴/趙是光 [詩]

廣坪農歌/趙是光 [詩]

鰲巖苔磯/趙是光 [詩]

龍潭霞月/趙是光 [詩]

鶴汀煙沙/趙是光 [詩]

自樂吟/趙是光 [詩]

宗兄壽席不赴有感/趙是光 [詩]

贈懶息大師/趙是光 [詩]

息師軸中次密翁韻/趙是光 [詩]

別息師/趙是光 [詩]

與洪參奉直卿宿鳥嶺關/趙是光 [詩]

新興寺與柳參奉柳知禮呼韻賦花柳/趙是光 [詩]

洪希天壁上賦貫串/趙是光 [詩]

與洪希天權翼卿詠春陽經碧桃/趙是光 [詩]

遣懷/趙是光 [詩]

卷二

上密菴李公/趙是光 [書]

別紙/趙是光 [書]

上荷塘權公/趙是光 [書]

與蒼雪齋權公/趙是光 [書]

與李龜厓/趙是光 [書]

答李君直李士直/趙是光 [書]

與李君直/趙是光 [書]

答鄭塤叟鄭篪叟/趙是光 [書]

答鄭塤叟/趙是光 [書]

與鄭塤叟/趙是光 [書]

答金振伯/趙是光 [書]

與金振伯/趙是光 [書]

與姜菊圃/趙是光 [書]

答姜菊圃/趙是光 [書]

答徐訥軒/趙是光 [書]

上族兄玉川公/趙是光 [書]

與吳達夫/趙是光 [書]

與權希彥/趙是光 [書]

與李仁伯/趙是光 [書]

與南圭瑞/趙是光 [書]

與朴肅而權大而/趙是光 [書]

答奉以/趙是光 [書]

與鄭開玉/趙是光 [書]

答奉兒/趙是光 [書]

答瑞奉兩兒/趙是光 [書]

卷三

庚寅稧序/趙是光 [序]

育英樓癸丑暮春會詩序/趙是光 [序]

紙上良晤序/趙是光 [序]

訥軒詩序/趙是光 [序]

宿雲亭重修記/趙是光 [記]

藏六窩記/趙是光 [記]

滌襟臺記/趙是光 [記]

洗心巖記/趙是光 [記]

上樑文

宿雲亭重修上樑文/趙是光 [上樑文]

祝文

禱興霖山祈雨文/趙是光 [祝文]

杜稷壇祈雨文/趙是光 [祝文]

禱日月山文/趙是光 [祝文]

瘞白骨文/趙是光 [祝文]

祭文

祭密菴李公文/趙是光 [祭文]

祭鄭塤叟文/趙是光 [祭文]

祭李龜厓文/趙是光 [祭文]

祭李君直文/趙是光 [祭文]

祭李仁伯文/趙是光 [祭文]

祭申子直文/趙是光 [祭文]

祭族兄玉川公文/趙是光 [祭文]

祭族兄霖巖公文/趙是光 [祭文]

祭宗兄文/趙是光 [祭文]

祭季父文/趙是光 [祭文]

行錄

僉正權公兩世行錄/趙是光 [行狀]

墓誌

五代祖考贈工曹叅判兼同知義禁府事府君墓誌/趙是光 [墓誌銘]

行狀

曾王考資憲大夫中樞府事沙月府君行狀/趙是光 [行狀]

奉先儀式/趙是光 [行狀]

庭誡/趙是光 [序]

庭誡--孝父母/趙是光

庭誡--友兄弟/趙是光

庭誡--刑室家/趙是光

庭誡--敬長老/趙是光

庭誡--信朋友/趙是光

庭誡--謹祭祀/趙是光

庭誡--惇宗族/趙是光

庭誡--睦鄰里/趙是光

庭誡--教子孫/趙是光

庭誡--嚴內外/趙是光

庭誡--御婢僕/趙是光

庭誡--恤困竆/趙是光

庭誡--慎言語/趙是光

庭誡--祟禮義/趙是光

庭誡--勵廉恥/趙是光

庭誡--禁奢侈/趙是光

庭誡--節喜怒/趙是光

庭誡--窒嗜慾/趙是光

庭誡--養正直/趙是光

庭誡--祛驕吝/趙是光

庭誡--勿苦貧賤/趙是光

庭誡--勿趍權勢/趙是光

庭誡--勿言人過失/趙是光

庭誡--勿是非政法/趙是光

雜著

二白鴨說/趙是光

先祖襄烈公事蹟辨/趙是光

五湖載西施辨/趙是光

金奴石婢傳/趙是光

卷四 附錄

行狀/趙述道

墓碣銘/柳台佐

[柱江文集跋] /趙秉時[跋]

 

■주강 선생이 지은 부음유감 

▣영양출신 한양조씨 학자인 주강 조시광(柱江 趙是光, 1669~1740) 선생의 문집인 [주강문집(柱江文集)] 木板本 4卷2冊▣

●영양출신 한양조씨 학자인 주강 조시광(柱江 趙是光) 선생의 6대손 趙秉轍·趙秉時 형제 등이 편집 간행한 문집인 [주강문집(柱江文集)] 木板本 4卷2冊 완질본으로 권두에 上之十一年乙亥(1875) 李敦禹의 序와 권말에 癸酉(1873)仲春上澣六代孫秉時謹識의 跋이 있다.

<참고> 주강문집(柱江文集)

●주강 조시광(柱江 趙是光. 1669~1740)의 詩文集으로 6대손 秉轍·秉時 형제 등이 편집 간행했다. 趙是光의 자는 戒滿, 본관은 漢陽. 1712년(肅宗 37) 司馬試에 합격했으나 과거의 뜻을 버리고 여생을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바쳤다. 같은 학자인 鄭萬陽과 가까이 지내면서 經學을 토론했고 金聖鐸, 李𪜆 등과 交友, 道義之交를 맺었다. 李敦禹의 序와 趙秉時의 跋이 있다. 卷①:詩 149수. 卷②:書 26편. 卷③:序 4편(庚寅稧序, 育英樓癸丑暮春會詩序, 紙上良晤序, 訥軒詩序), 記 4편(宿雲亭重修記, 藏六窩記, 滌襟臺記, 洗心巖記), 上樑文 1편(宿雲亭重修上樑文), 祝文 4편(禱興霖山祈雨文, 社稷壇祈雨文, 禱日月山文, 瘞自骨文), 祭文 10편(祭密菴李公文, 祭鄭塤叟文, 祭李龜厓文 등). 行錄 1편(僉正權公兩世行錄), 墓誌 1편(五代祖考贈工曹參判墓誌), 行狀 1편(曾王考資憲大夫沙月府君行狀), 奉先儀式, 庭誡, 雜著 4편(二白鴨說, 先祖襄烈公事蹟辨, 五湖載西施辨, 金奴石婢傳). 卷④:行狀(趙是光에 관한 것), 墓碣銘. 書는 주로 交友, 敎育, 家事에 관한 것들이나 <上密菴李公(李栽)書>에는 ≪朱子書節要≫를 읽고 의문나는 7항목(朱書問目)과 祭儀에 관해 의문나는 점 6항목(祭儀問目)이 別紙로 첨부되어 있다. 李栽의 答書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나 朱子와 祭儀에 관한 어떤 문제가 당시에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료이다. <僉正權公兩世行錄>은 丙子胡亂 때 中軍將으로 雙嶺전투에 참여했다가 戰死한 權克常(1587·1637)에 관한 것이다. 그의 字는 彛叔, 武科에 丙科합격. <奉先儀式>은 漢陽 趙氏의 祭禮에 관한 규범을 정리해서 후손들의 지침이 되도록 한 것으로 魚肉, 茶禮, 新物, 寒食, 端午, 秋夕 등 19개항에 걸친 祭禮 규범내용이 설명되어 있다. <庭誡>는 후손을 訓誡한 家訓으로서 주로 孝悌修睦之道에 관한 24개의 지침에 설명을 가한 것이다. 祭禮와 가정규범 내지 당시의 社會 氣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그래서 꿈에 옥천 선생이 읊었다는 1행의 시를 참고하여 7언 절구의 4행시를 짓고 그 전말을 기록하게 된다. 이 글이 바로 『주강문집(柱江文集)』 에 실린 '聞族兄玉川翁德鄰訃音有感 족형 옥천옹 덕린의 부음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이다. 

 

■상원리 비리골의 성황당쑤 전경 


글에 의하면 1737년 비리재의 재사를 완공해서 낙성식을 가질 때 80의 노인이 된 옥천 선생도 내방하여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비리재 일대의 하천변 중에 술자리를 마련할 곳이라면 당연히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마을의 쑤가 적당한 장소이다. 

◐한양조씨 영양입향조 諱源과 위묘는 아들 광인(仁) 墓◑

함양오씨(氏諱滭,源의 장인墓) 한양조씨 영양입향조 諱源 墓 

성황쑤 뒤편 오른쪽 산정에는 한양조씨 영양 입향조와 선대의 묘가 자리잡고 있기에 옥천 선생은 쑤의 그늘에서 조상의 묘를 우러러 본 뒤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조상에 대한 존경심이 지극했기 때문에 옥천 선생은 죽어서 혼령이 되어도 고향(주곡)으로 돌아가기 전에 조상에게 먼저 오셨던 것이다. 

상원리 비리동은 이와 같이 한양조씨 영양입향조부터 옥천 선생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사건들이 얽힌 장소이기에 일화 및 주강 선생의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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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族兄玉川翁德鄰訃音有感 
丁巳鯉齋落成會 公年已八耋 以耆德壓席意日講劘 翼日又命席溪邊 瞻拜松楸 仍設數巡野酌 公因醉起舞 極歡而罷 是年七月有廣南之命 在途病發 未到謫所濱海而歿 前十餘日長兒瑞圭獻夢於余曰 昨夜承宣公來臨齋舍徘徊 詠詩曰 無恙靑山今又來 聽者異之 未滿十日 皐音忽至 蓋公不忘昔日逍遙行樂之地 魂歸故山先到于此也 遂感而爲之詩 芳草萋萋露欲晞 靑山無恙旅魂歸 可憐昔日歌舞地 惱却虛樑落月輝 
정사년(1737) 비리재(飛鯉齋)의 낙성식때 공은 이미 80대의 노인으로 상석에서 당일 강론하고, 다음날 하천변에 자리를 마련하여 조상의 묘를 우러러 본 뒤 몇 순배 술을 마시셨다. 그로 인해서 술기운에 공은 일어나 춤을 추셨고, 기쁨이 지극하여 그만두셨다. 이해 7월에 남쪽으로 가라는 명을 받고 가시는 길에 병이 나셔서 제주도에 도착하지도 못하시고 바닷가(강진)에서 사망하셨다. 10여일 전에 맏아들인 조서규(趙瑞圭, 1711~1770)가 현몽하여 나에게 말하기를 “지난 밤에 승선공(承宣公)이 재사에 오셔서 배회하시며 ‘無恙靑山今又來 변함없는 청산에 이제 다시 왔구나.'라고 시를 읊으셨습니다.”라고 하여 듣고는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로부터 채 10일이 안되어 부고가 홀연히 도착했다. 모두 공이 옛날 다니시며 즐기셨던 곳을 잊지 못하셔서 혼백이 고향으로 돌아가며 먼저 이곳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느끼는 바가 있어서 시를 지었다. 

●芳草萋萋露欲晞●

무성한 향초가 이슬이 마르기를 원하니 
靑山無恙旅魂歸

변함없는 청산에 나그네의 혼령이 돌아왔구나. 
可憐昔日歌舞地

가련하구나! 예전에 노래하고 춤추던 곳이여 
惱却虛樑落月輝

괴로움이 그친 빈 들보엔 지는 달만 빛나는구나.

https://blog.naver.com/yjmuse1/221499630818

 

영양읍 상원리 비리골의 '비리동천(飛鯉洞天)'과 '성황당쑤[城隍堂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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