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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聖經)♡

♣ 2025.06.22.교회창립 56주년(1969년 6월 22일 창립)기념주일(대예배)♣

by 晛溪亭 斗井軒 2025.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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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22.교회창립 56주년(1969년 6월 22일 창립)

기념주일(대예배)♣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해 | 입례송 | 
https://youtu.be/uWKLHGBwX7U?t=107

https://youtu.be/f2MdDXFNr7g?t=40

 

♣임마누엘성가대 찬양 : 주의 축복 내려주소서 ♣

https://youtu.be/tFKp6GX0dCk?t=46

https://youtu.be/ngI_XYZS2VI?t=108

♣위로하고, 칭찬하라
*사도행전교회에 성령받아 나타난 증거: 물질관이 변함[선교 전 구제]

->재물을 동시에 하나님과 섬길 수 없다: 돈은 힘이 있기에

->성령 받은 후 돈은 내 것이 아니 하나님의 것임을 알기에 나누어 쓰고, 돈을 사랑하지 않게 됨

1. 더 큰 헌금을 한 바나바

[행4:36]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행4:37]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집과 밭을 팔아 교회에 헌금한 사람들

->바나바: 사울이 회심하여 변한 바울을 초대교회에 소개한 사람, 항상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우는 영적 지도자가 됨

->바나바의 헌금의 의미: 밭을 팜[규모가 있는 밭, 의미가 있는 좋고 귀한 땅]->부자는 아니지만 제사장 가문으로 가문의 땅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어 놓음

->아무도 헌금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기도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헌신한 바나바->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줌[마리아의 전재산을 들인 옥합을 깬 헌신]

->다른 사람의 헌금액수를 비교하지 않는 본문: 나눔은 개인적, 그 사람에게 준 은혜와 축복의 분량만큼 성령의 감동으로 한것->판단하지 말라[헌신은 은혜 받은만큼 기쁘게 드리는 것]

2. 바나바의 헌신을 질투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행5:1]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아나니아도 인정받는 교인 중 하나->바나바의 인정받음을 부러워함->자신들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땅을 팜

->유대 나라에서도 땅은 중요한 의미->팔았다는 것으로도 대단한 신자임

->목적과 동기가 순수하지 않음: 기쁜 마음으로 내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더 관심이 있음

->사람들의 칭찬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힘->여전히 돈을 사랑->마음이 복잡해짐

 

3. 복잡한 마음에 드린 타락한 헌금

[행5:2]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자신의 재산에 대해 자신이 사용할 권한이 있음, 일부만 바쳐도 문제되지 않음->처음부터 투명하게 해도 무방->하지만 몰래 감추어 "전부"를 드린다고 함

->감추었다: 여호수아 때 여리고 정복전쟁 뒤 아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을 감춤

->드리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드리면서 전부를 드리는 척 위장한 것이 문제[동기가 불순]

->성령의 감동으로 한 헌금이 아닌 바나바를 질투해서 드린 헌금[인정욕구]

->땅을 팔고 보니 돈이 아까움 ->모든 것을 바친 바나바처럼 자신도 모든 것을 바쳤다 하고싶은 인정욕구

->사도들 앞에 일부만 드리는 것을 감춤

->"동기"가 불순하면 "방법"도 나빠짐->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충만한 교회에서 "거짓말"을 하기로 함

->사탄은 처음부터 큰 죄로 다가오지 않고 작은 죄로 시작함->좋은 동기에서 마귀가 시험들게 함

->헌금이나 헌신할 때 그 과정에서 성령의 보호를 받도록 기도하라[시험에 들지 않게]

4. 순수하지 못한 동기를 구별한 베드로

[행5:3]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5: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1)아나니아가 드린 헌금

: 겉으로는 문제되지 않음->성령의 사람 베드로->섣불리 헌금을 받지 않음

->"액수"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닌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킨다[과부의 엽전 두 닢을 기쁘게 받으심]

->성령의 사람인 베드로가 "거짓된 헌신"을 구별함 ->순수하지 못한 동기는 사람을 시험들게 한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믿음->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시139:1-4]1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2)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어찌하여 네가 사탄이 장악하도록 내버려 두었느냐[헬라어 원문]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사탄이 우리 인생의 조종관을 잡을 수 없다[허락했다는 것: 우리 안에 사탄이 기생할 빌미를 준것->죄된 마음을 방치, 해결하지 않음]->미움, 질투, 돈 욕심을 해결하지 않은 아나니아

->우리 안에 남아있는 옛사람의 잔재를 마귀가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시험에 들기 쉽다[빈틈과 기회를 엿봄]

3)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문제: 돈을 적게 드린 것이 아닌 "성령을 속인 것"이 문제

->겉으로는 전부를 드린다고 하여 [1]교회지도자를 속이고[2]성도를 속이고 [3]자신을 과신하고 [4]하나님까지 속이려 함

->성령: Holy Spirit[거룩한 영]->하나님의 거룩-> 속이지 못함

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 아나니아가 땅을 처분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때

5)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어떻게 이런 일을 꾸밀 수[생각할 수] 있느냐[이 일을 집행하기 전 "계획단계"부터 보신 하나님]

->잠언의 "네 마음을 지키라"->증오와 미움도 살인과 같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에 "거짓"을 가지고 장난친 것

6)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닌 "하나님"을 속인 것

->엄청난 부흥의 초대교회: 성령, 방언, 기적, 구제, 봉사, 말씀&기도, 핍박도 이겨냄

->부흥의 분위기에 찬 물[거짓과 속임수]을 끼얹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탄: Slander: 비방, 참소->선악과를 먹인 때부터 마귀는 거짓말을 하게 함

5. 심판이 선포됨

[행5:5]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행5:6]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혼이 떠나니: 베드로의 불같은 질책의 말이 끝나나마자 심판이 선포되어 죽은 아나니아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교회

*우리 안에 죽어야 할 아나니아가 있다. 성령을 속이는 거짓된 헌신이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아나니아적 요소를 제거하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을 기억하라!

*우리 안에 거짓과 욕심이 역사하지 못하게 하소서!

*우리의 삶 속에, 가정속에, 교회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거짓의 영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끊겨지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돈을 사용하지 돈을 사랑하지 않게 하소서. 돈 때문에 가정이 부서지지 않게, 돈 때문에 신앙이 타락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령의 불로 정결하게 하소서! 성령의 축복인 정결의 축복을 받게 하소서!

 

금자씨의 친절한기획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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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 격려하며 살기 [사도행전 4:36, 37]

[서론]

여러분은 성경인물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하세요? 신약만을 대상할 때 저는 안드레와 바나바를 좋아합니다. 안드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을 성공시키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2인자로 자족합니다. 축구로 말하면 어시스트(Assist)입니다. 어시스트는 골을 넣기에 알맞은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볼을 패스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을 때 그 팀의 성공률이 높습니다. 교회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또 한 명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안드레와는 달리 뒤에서 밀어주기보다는 앞에서 끌어주며 격려해 주는 사람입니다. 격려는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주는 행위입니다. 위로가 단순히 그 사람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는 소극적인 행위라면 격려는 그를 일으켜 세워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같이 움직이며 앞에서 끌어주며 뒤에서 박수를 쳐 주는 사람입니다.

 

지난 40년동안 늘빛교회 목회자로서 단순히 교회 사이즈를 키우려는 목회를 하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증인이 되어줄 것입니다. 제 관심은 언제나 여러분입니다. 건물보다 사람이 더 아름다운 교회! 이 모토에 제 목회관이 함축되어 있고 그 목회 방법이 ‘친정집 목회’입니다. 친정어머니는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고 다독여주고 들어주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격려해 주는 멘토입니다. 그게 제 목회관이요 방법입니다. 그게 잘 되었는가, 효과를 거두었는가, 하는 점은 별개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이며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과 함께 ‘현대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 합니다.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는 학자입니다. 오히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일본의 1인자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미움 받을 용기’라는 설명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모든 인간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기본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이 열등감을 어떻게,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따라 그의 행복, 업적, 영향력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인간 내면에는 열등감들이 내재해 있습니다.

서울대학생은 서울대학생에게서 열등감이 있고 의사는 의사에게서, 목사는 목사에게서 열등감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열등감이 있습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너요 성공자이지만 자기만의 열등감이 숨겨 있습니다.

 

열등감(劣等感)이란, 남에 비하여 자기는 뒤떨어졌다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입니다. 장애로 인한 신체적 열등감, 학교성적이 나쁘거나 용모가 예쁘지 못함에서 오는 정신적 열등감, 학력, 신분 차별에 의해 생기는 사회적 요소의 열등감이 있습니다. 별 다른 원인 없이도 열등감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우울증의 경우도 많습니다.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무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며 무의식 속에서 자기를 부정합니다. 그러다보니 불안 심리를 동반해서 스스로를 해칩니다. 이게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고 열등감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믿음생활, 교회생활에서 엉뚱하게 분출됩니다.

 

지난번에 ‘옥토(沃土) 만들기’ 설교를 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오래고 좋다 해도 내 마음에 감정이 굳어버린 길가 마음, 돌로 눌린 돌짝밭, 가시로 채워진 가시밭이 있으면 옥토가 될 수 없습니다. 이걸 치유하지 않으면 박토(薄土)가 되고, 쓸모없는 사막이 됩니다. 그러면 내 안에 있는 나는 성장하지 못해 ‘성인아이’가 되어 아파하고 남몰래 울고 외로워합니다. 그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니까 남들에 대한 비판과 공격으로 상처를 주게되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이 곧잘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지 행복한 자존감으로 차 있으면 여간한 소리에 상처 받지 않고 남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잘 넘어가면서 오히려 스스로를 진주를 만들어 냅니다. 교회는 바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런 옥토신자들을 만들어 내는 학교입니다. 옥토신자의 특징이 격려입니다.

 

레이건이 대통령 시절, 프랜시스 그린이라는 83세 노파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살았지만 매월 1불씩 공화당을 위해 후원금을 냈습니다. 어느 날 백악관에서 모급파티를 위한 초청장이 왔습니다. 할머니는 내용을 모르고 그냥 갔는데 백악관 로비에서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했습니다.

 

“명단에 없다. 기부금을 안 냈다?”

“무슨 말이냐? 나는 매월 1불씩 낸다!”

1불이면 1200원 정도입니다. 그걸 냈다고 매월 후원금을 냈다는 것입니다. 옥신각신하는데 비서가 지나가다 듣고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안내했습니다. 놀랍게도 레이건은 40분을 독대했습니다. 기라성 같은 재벌들이 와 있는 데 대통령이 나오지 않자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40분 후, 대통령이 웃으며 나오자 비서실장이, “사람들이 기다리는 데 1불짜리 후원자를 어찌 40분이나 격려하는가?” 볼멘소리로 말하자 레이건 대통령이 정색하며 말합니다.

“내가 노인에게 격려 하다니? 아니오! 내가 격려를 받았소. 선거를 눈앞에 두고 나를 향해서 쇼를 한다느니 배우나 하라느니 별소리 다하는데 이 할머니의 순수한 사랑을 듣고 나니 신바람이 났소. 나는 선거에서 이길 것이오!”

 

레이건은 배우출신이고 성공한 배우도 아닙니다. 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대통령이 되었을 때 모두 놀렸습니다. 그러나 2001년 2월 CNN과 갤럽은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레이건이 1위를 차지했고 케네디와 링컨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레이건이 재직했던 8년은 위기가 꼬리를 물었던 격동기입니다. 이 기간 레이건은 ‘레이거노믹스’로 미국과 세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든 위인 하나가 무명 시골노파요, 1불짜리 격려였습니다.

이 세상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일국의 대통령도 위로가 필요하다면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이 누구라 있겠습니까? 그 격려는 꼭 큰 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그 위로는 1불의 사랑이면 됩니다. 아주 하찮은 것에서 사람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런 사람이 초대교회의 중심을 이루었던 지도자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격려에 뛰어난 사람입니다. 바나바의 원 이름은 요셉입니다.

 

36절, 이름은 요셉이라…. 그런 그를 사도들이 바나바로 개명을 해주었습니다.

36절,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격려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기에 사도들이 그에 합당한 이름으로 그의 공을 기린 것입니다.

 

바나바는 누구를 위로해 주었습니까? 사도들을 격려했습니다. 사도들은 위로를 해주는 사람, 남을 격려해 주는 사람이지 위로를 받거나 격려를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초대교회가 시작되던 때는 초라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지위도 없었고 건물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요주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런 때 요셉이라는 사람이 사도들 앞에 나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밭을 팔아 교회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 일은 사도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인정해 주는 것도 감사한 데 재산을 가져왔습니다.

 

사도들은 바나바의 믿음 앞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자기들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은 주님을 좇을 때 빈손으로 좇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사도들은 너무도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름을 ‘위로자’ ‘권면자’라는 뜻의 ‘바나바’로 명명해 주었습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을 위로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위로를 받기 원했습니다. 도움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거꾸로 사도들에게 힘이 되었고 사도들에게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위로자였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격려했습니다. 바나바가 초대교회의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그는 큰 교사도, 행정가도 아닙니다. 권능을 행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평범한 목회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명성은 초대교회에 점점 높아갔습니다. 그는 위로에 능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바나바 때문에 교회를 찾아왔고 부흥된 것입니다.

 

그때 초대교회에 미묘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울이 개종한 것입니다. 사울은 예수를 이단이라며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처형당할 때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개종하자 그의 개종이 음모일 것이라 의혹의 눈길을 보였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사울 입장에서는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이겠습니까? 이런 때 누가 보증을 서 준다면? 그러나 그가 강성인물이고 유대교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에 누구도 그의 진실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잘못 편을 들다가는 같이 망신당합니다.

이때 바나바가 나섰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사울을 소개했고 보증했습니다(행9:26-30).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 신자들이 사울의 개종을 인정했습니다.

 

바나바의 신뢰와 격려가 사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의 격려를 받은 사울은 믿음생활 잘하고 초대교회의 거목으로 성장하고 13권의 성경을 집필합니다. 바나바의 격려가 없었다면 사울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갔을 것이며 초대교회는 큰 손실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큰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믿어주는 그 한 마디가 어떤 도움보다도 큰 격려가 됩니다.

제가 지난 36년 간 목회하면서 가장 큰 힘은 “목사님, 요즘 힘드시지요.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하 그 한마디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삭개오, 향유를 부은 여인,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킨 여자… 이들을 격려했습니다. 남을 인정하고 말 한마디라도 남에게 잘 해준다는 것은 큰 격려입니다.

설교하고 나면 반응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이런 때의 말 한마디 “오늘의 설교는 저를 위한 것이었어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큰 격려가 됩니다.

 

말 한마디는 하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줄이 됩니다. 격려 한 마디로 걱정을 잃어버립니다. 때로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크게 낙심케 합니다. 우리는 남을 인정해주는 말을 하며 삽시다. 커트라인을 낮추면 격려의 말이 나옵니다.

 

바나바는 여러 사람들을 격려했습니다. 바나바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의 사역은 권면하고 위로하는 사역입니다. 가는 곳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행 13:43)고 권면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 시험 당한 사람들, 자기의 욕심에 끌리어 사욕을 좇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그의 권면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성전 중심의 레위지파 출신이기에 그의 위로는 더욱 무게가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위로의 사람입니다. 십자가에서 한쪽 강도를 위로했습니다. 십자가 아래의 어머니를 위로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격려자입니다. 우리는 격려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격려 받기 보다는 격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위로에 목표를 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되어 제가 위로를 받고 삽니다. 교인들이 보여주는 그 깊은 사랑 앞에 저는 많은 위로를 받으며 인생의 크고 작은 산들을 넘어왔습니다. 남을 위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천사의 말을 하고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결론]

미국 유명 연예인 중에 지미 듀란테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참전 용사들을 위한 위로 쇼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너무 바빠 시간을 낼 수 없다 거절했는데 하도 사정하기에 짤막한 원맨쇼만 약속했습니다. 막상 그 날에 10분, 20분, 30분을 했습니다.

듀란테가 인사하고 무대에서 내려오자 쇼 기획자가 물었습니다.

“어쩐 일입니까? 나는 당신이 몇 분만 설 줄 알았는데… ”

“나도 그럴 계획이었소, 그러나 결코 그럴 수가 없었소. 저기를 보시오”

기획자는 무대 틈 사이로 관객석을 바라보았습니다. 무대 맨 앞에 참전 용사가 앉아있는 데 둘 다 전쟁에서 한쪽 손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팔을, 한 사람은 왼팔을 잃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팔을 마주쳐가며 지금도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듀란테에게 격려가 되고 마주자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한 모두에게 격려가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갑자기 부흥된 교회입니다. 베드로의 불같은 설교, 사도들의 능력… 이런 것들로만 부흥된 것은 아닙니다.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이 중심이 된 교회는 위로와 격려가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교회에는 율법만 있었고 판단과 시시비비와 지적질만 있었습니다. 여기에 질려있던 사람들이 따듯한 불을 찾아오듯이 위로가 교회에 있어 불나방처럼 모여들고 찾아왔다가 십자가의 능력 앞에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제대로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모두 남들이 위로하며 사니 초대교회가 그 수를 더해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 부흥! 간단합니다. 교회가 서로 위로의 체제, 격려 분위기로 가면 됩니다. 남들이 하는 일에 손뼉을 쳐주고 칭찬해 주면 됩니다. 이게 없어 우리가 신자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 격려의 하나님입니다. 어려움 중에 있는 이들을 능히 위로해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 되십니다(고후1:4). 우리는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을 ‘보혜사’라 합니다. 보혜사라는 뜻은 ‘위로자’ ‘상담자’ ‘격려자’입니다. 성령은 격려하시는 분입니다. 성령 충만은 위로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위로라는 것은 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고, 박수 한번 열심히 쳐주고, 설교를 경청하는 그 눈길, 진지함. 그것은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위로와 용서와 사랑과 격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기의 똑똑함을 드러내 위한 곳이 아닙니다.

요즈음처럼 어려운 시절, 서로 격려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안타키아[안티옥]성베드로동굴교회[자료보완청색글.. : 네이버블로그

 

안타키아[안티옥]성베드로동굴교회[자료보완청색글씨]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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