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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행복 이야기

양숙(良淑) 양숙리 청송 부남면 남서쪽 골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양숙리(陽宿里)는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 : 양계정(陽溪亭)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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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숙리에는 자연마을로 전주류씨가 처음 일으켰다는 덕골,

원래 강줄기가 흘렀지만 세월이 지나며 가의 위치가 바뀌면서 생겼다는 새말,

그리고 거두산 마을이 있다.

청송 부남면 남서쪽 골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양숙리(陽宿里)는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다.

또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이 착해서 양숙(良淑)이라고 했다가 

일제강점기에 일제 침략자들이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잘될 만큼 해가 잘 드는 곳이라 해서 양숙(陽宿)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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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숙리(陽宿里) : 양지바른 땅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양숙리다.

조용한 마을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산(葛山) 기슭 중봉 아래 오수처럼 앉은 

정자 양계정(陽溪亭)이 있다. 주변으로 논밭이 꽤 펼쳐진 양지바른 곳이다.

양계정은 생육신 경은 이맹전의 9세손인 양계공 이태신을 추모해 지은 정자다. 

양계공의 아버지 이여해는 1596년에 영천에서 출생해 조부인 대암 이희백에게 수학아였는데 

숨어 살면서도 몸가짐이 맑고 검소하여 사우들이 받들어 중히 여긴 인물이었다. 

이여해는 만년에 가솔들을 이끌고 청송 양숙으로 이거했는데 별세하기 전 

넷째아들인 양계공 태신에게 종가의 보전을 명했다. 

양계공은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고, 학자였고, 비범했으며, 글씨는 용이 날아가는 듯했다고 전해진다.

맞배지붕을 올린 한 칸 재문은 고방(庫房)이 있어 약간 넓다. 

대문 막새에 국화가 피었고, 봉황이 난다. 양계정은 정면 3칸, 측면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1964년(단기 4297년)에 상량했다. 

모든 기둥이 둥글고 공포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누마루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는데, 난간의 다리 머리에도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후손들은 진흙 속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연꽃이 양계공과 같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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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면 알수 없다.

마을 안쪽에 있기 때문에 눈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양계정 담장이 철재펜스 왠지 철장속에 양계정이 갇혀있는 듯 마음이 아팠다.

 

양계정의 기둥은 모두 둥근 모양으로 이루어 져 있었다.

 

맞배지붕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문짝이 떨어져 있고 창호지도 다 찢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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