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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행사자료❀

저항 정신의 선비, 조지훈의 탄생 100주년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0.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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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왕조의 고궁 소재 '봉황수'
나라 잃은 울분·수심 표현한 작품
망국의 슬픔 노래하며 비애 절제
일제말 견딤으로 파시즘에 대항했던
그 나름의 현실이해 방식이었을 것

 

 

 

올해는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1920~1968)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훈은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할아버지 아래서 한학을 배웠고 정규 학교는 다니지 않다가 16세에 상경하여 조선어학회에 출입하였으며 혜화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하였다. 한학 교양이 몸에 밴 조숙한 청년 지훈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적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만났으며, 시인 가운데는 지사 황매천과 한용운을 가장 존경하였다. 이름난 선비였던 할아버지는 인습 개혁에 앞장섰고 자녀들을 도쿄에 유학시켰는데, 해방 후 제헌의원이었던 조헌영이 지훈의 아버지다.

 

지훈은 열일곱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열아홉 되던 1939'고풍의상''승무'<문장>에 추천을 받았다. 선자(選者)는 정지용이었다. 시집 '고풍의상' 후기에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애수, 민족 정서에 대한 애착이 나를 이 세계로 끌어넣었다"라고 했듯이, 지훈의 초기시에는 전통적 시어 속에 단아한 민족 정서가 담겨있다. 해방 후 그는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공동시집 <청록집>(1946)을 펴냈으며, <풀잎단장>(1952)을 시작으로 모두 네 권의 시집을 냈다. 해방 후에는 학자 혹은 논객으로서 더 인상적인 활동을 폈다. 그는 순전히 독학으로 문학, 철학, 사회과학을 탐독했고 그 결실 <한국문화사서>, <한국문화사대계> 등 방대한 기획을 실행하였다. 자유당 시절 이승만의 송시 청탁에 대해 "나는 누구든 살아있는 사람의 송시는 쓰지 않는다"라고 거절하였고, 1960년대에는 한일협정 비준반대 교수로 나서는 등, 시에서는 전통적 순수의 세계를 추구한 반면 정치적으로는 지조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나는 그가 남긴 많은 시편 가운데 선비정신과 애수가 함께 깃들인 '봉황수'와 낭만적 풍류가 가득한 '완화삼'을 제일로 친다. 일제 말기에 쓰여진 '봉황수(鳳凰愁)'를 한번 읽어보자.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몰락한 왕조의 고궁을 소재로 하여 나라 잃은 울분과 수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봉황수'란 망국의 우수를 뜻하는데, 이는 고궁을 퇴락시킨 요소인 '벌레', '산새', '비둘기'가 곧 망국의 요인임을 암시한다. 방치되어 퇴락한 고궁의 모습과,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친 추녀 끝 풍경은 한결같이 봉황의 모습을 참담하게 만든다. "큰 나라 섬기던 거미줄 친 옥좌"라는 구절은 망국의 요인이 사대주의였음을 암시하면서 '봉황'이라는 환상의 새와 확연한 대조를 구축해준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이라는 구절은, 나라 잃기 전의 왕조 역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음을 암시해준다. 푸른 하늘 밑에서 대궐 앞길에 깔아놓은 '추석'을 밟고 가는 그림자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더욱 비감하기만 하다. 그리고 다음 문장들은 "없었다"의 반복을 통해 화자의 비감한 심정을 더욱 고조해준다. 패옥 소리도 들리지 않고, 벼슬의 주인공들도 간 곳이 없다. 그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느낀 화자의 눈에는 눈물이 복받치지만, 그는 '눈물이 속된 줄'을 깨달아간다.

 

덧없이 무너진 옛 왕조의 역사를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것이 부질없는 감상(感傷)임을 깨닫는 데서 이 시편은 복고적 향수나 비애를 넘어 예리한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데로 나아간다. 망국의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막상 그 비애를 절제할 줄 아는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일제 말기에 느림과 견딤의 미학으로 파시즘에 저항했던 지훈 나름의 현실 이해 방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저항정신의 선비, 조지훈의 뜻깊은 탄생 100주년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지훈 조동탁 탄생100주년 & 김난희여사 백수년 기념

영양군 문인협회지부 주관 지훈예술제(5월중)

남양주시 문인협회지부 주관 제10회 조지훈문학제(10월중)

탄생100주년 2020123

▲감난희여사 백수년(5월중)

 

왼쪽부터 삼남 태열, 딸 혜경, 장남 광렬, 부인 김난희 여사, 차남 학렬

조지훈 시비 건립기

    - : 최동호(고려대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1920123일 경북 영양군 일월면에서 출생한 조지훈(趙芝薰)[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한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어학, 역사, 민속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광범한 관심을 가진 박학다식한 학자였으며 불의에 가득 찬 현실개혁에 참여한 지성인이었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민족문화 진영의 선두에서 현대시의 지향점을 밝혔으며,

1948년 고려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후진을 양성했다.

 

또한 지훈은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를 과감히 비판하는 지성인의 선봉장으로 활약하여 19604.19혁명을 촉발시키는 데 기여했다.

 

문단, 학계, 사회 참여 등 다방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던 지훈은 지병이 악화되어  

1968517일 만 48세로 지상에서의 생을 마치고 마석의 송라산 언덕에 영면의 자리를 마련했으니 이 또한 깊은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지훈의 사후 44년 만에 남양주 시민들의 뜻을 모아 그의 영혼이 굽어보는 이곳에 시비를 세우게 된 것은 시인 지훈의 업적과 유훈을 우리 모두의 사표로 삼기 위함이다.

 

시비 건립은 남양주시의 적극적인 후원과 남양주 문인협회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고와 헌금에 힘입은 것으로서 그 정성과 열의를 여기에 기록해 두지 않을 수 없다.

 

20121020

남양주시 조지훈시비건립추진위원회

 

 

■ 출연 : 오도창 영양군수

■ 방송 : BBS 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2020년 2월 21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 오도창 군수 : 문향의 고장, 영양의 자부심을 살리고자 대한민국 문학사 거장들의 흔적과 숨결을 느끼고 담아낼 수 있도록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대 문학의 거장, 이문열 선생의 작품세계를 한 곳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문학관 조성에 본격 나섭니다.

장계향 예절관과 이문열 선생의 학사채와 도서관을 바탕으로 올해 문학관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조지훈 선생 탄생 100주년을 올해 맞이합니다. 기존에 개최되는 조지훈 예술제와 함께 다양한 기념사업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특히 한국현대문학사의 큰 별인 조지훈 선생의 시와 사상을 재조명하여 우리 영양군 곳곳에 살아 숨 쉬는 문학의 기운을 관광객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훌륭한 영양 문인들의 삶과 정신을 다양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도록 문학 자판기를 설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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