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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여행★▣

카이로 스핑크스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17.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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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Sphinx]

스핑크스는 원래 동물의 왕 사자에 대한 주물(呪物)숭배(페티시즘)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성격이 달라진다. 즉, 매나 숫양의 머리를 한 것, 서 있거나 앞다리만 가진 것, 또는 왕으로서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 신전(神殿)의 장식에 쓰인 것 등이 있다. 카르나크의 대신전이나 사카라의 세라페이온에는 길 양쪽에 서로 마주보면서 수십 개의 스핑크스가 나란히 서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고대유적]

스핑크스[Sphinx]

힘의 상징, '세세푸우 앙크'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여행자에게 수수께끼를 내서 대답하지 못하면 잡아먹는 괴물로, 인간 머리를 한 사자의 몸에 날개가 달려 있는 괴물로 묘사되어 있다. 이집트에 있는 스핑크스는 비록 날개는 없지만 인간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원래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스핑크스는 이집트 스핑크스가 그 모델로, 시리아와 페니키아를 거쳐 그리스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스핑크스는 흔히 이집트 피라미드 옆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오리엔트 전역에 널리 퍼져 있다.

 

 

이집트를 비롯해 아시리아 등에서도 스핑크스는 왕이나 신 같은 절대 권력자의 상징으로 표현되었으며, 신전과 왕궁, 묘소 등의 입구에 서 있었다. 또 일본에도 스핑크스가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고대 이집트어로 스핑크스는 '세세푸우 앙크' 또는 '세세푸우'라고 불렸다. 직역하면 '살아 있는 닮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왕의 모습을 닮은 것'이라는 의미다. 사자 형상에다 네메스라 불리는 두건을 뒤집어쓴 파라오 얼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은 확실히 '왕의 모습을 닮은 것'이었다.

 

 

그리고 스핑크스의 권위를 빌린 왕의 일화가 스핑크스 다리 사이에 놓여 있는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에 따르면 신왕국 시대 제18왕조 토트모세 4세(B.C. 1392~B.C. 1382년 재위)가 꿈에서 본 이야기가 적혀 있다.

 

 

그가 청년 시절 전차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을 때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다. 당시 머리까지 모래에 파묻혀 있던 스핑크스 옆에서 설핏 잠이 들고 말았다. 꿈 속에서 토트모세 4세는 스핑크스로부터 '이 모래를 제거하면 너를 왕으로 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을 뜬 토트모세 4세는 즉시 모래를 모두 걷어냈다. 그 덕분에 토트모세는 후에 파라오가 되었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이 꿈의 비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당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아몬 신관단과 왕조의 정통 후계자인 토트모세 4세는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태양신 라(Ra)의 화신인 스핑크스의 힘으로 왕이 되었다는 일화를 남김으로써 토트모세 4세는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언제 만들어졌던 것일까?

 

 

전체 길이 60미터, 높이 20미터의 스핑크스 상은 석회암 바위산을 깎아서 만들었다. 피라미드처럼 석재를 쌓아올려서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산에 조각을 해나가면서 바깥쪽으로는 돌을 보강하는 형태로 작업을 했다.

 

 

고왕국 시대 제4왕조 카프레 왕의 파라미드와 신전 앞에 있는 스핑크스는 B.C. 255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조사에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선 카르페 왕의 신전과 스핑크스는 제작 방법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사용된 석재의 산지와 공법도 전혀 달랐다. 그리고 스핑크스를 올려놓은 받침대는 신전보다 5미터 이상 더 깊게 땅을 파서 만들었다. 또한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 쪽으로 나 있는 길은 신전을 향해 곧게 만들어져 있지만, 카프레 왕의 신전에서 피라미드로 향해 나 있는 길은 스핑크스를 비켜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는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관련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조사에서는 새로운 견해를 이끌어낼 만한 발견도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스핑크스 주위에 있는 벽면에서 세로로 난 홈들이 무수히 많이 발견되었다. 지질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이 홈들은 큰비나 홍수에 의해 생긴 것으로 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큰비가 지금부터 1만 년 내에는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만 년 전이라면 빙하기가 끝날 무렵이다. 그 무렵에 스핑크스를 건설할 정도의 문명의 존재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스핑크스는 언제 만들어졌던 것일까? 스핑크스는 그런 모든 의혹을 숨긴 채 오늘도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기자에서는 피라미드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또 하나가 있는데, 카푸레 왕의 피라미드 앞을 수 천년이 넘도록 굳건히 지키고 있는 거대한 스핑크스이다. 전체 길이 약 70m, 높이 약 20m, 폭 약 4m에 달하는 거대한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도 가장 크다. 사람머리와 사자의 몸으로 형성을 이루고 있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그대로 조각한 작품으로, 아랍어로‘아부 엘-홀(Abu el-Hol)’이라 하며,‘공포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태양신의 아들이라 불린다. 아랍군의 침입 후에는 코가 깎여 나갔고, 영국군에 의해 수염이 무참히 뽑혀 나가, 현재의 모습 흉한 모습으로 공포의 모습은 찾아 볼수 없게 되었다. 뽑혀 나간 수염은 런던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앞다리 사이에 투트모세 4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꿈의 계시로 인해 모래 속에 파묻힌 스핑크스를 발굴 하고 그 꿈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카푸레 왕의 의해 BC 2500년경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핑크스에 풀리지 않는 새로운 의문점이 제기 되고 있다. 많은 양에 의한 침식의 흔적 때문이다. 그 정도의 침식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를 필요로 하는데 지금처럼 바짝 마른 상태의 이집트를 보면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 화려한 조명, 웅장한 효과음과 함께 등장하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등장하는 매일밤 열리는 소리와 빛의 쇼도 잊지 않아야할 관광 코스이다. 요일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므로 미리 확인해야 하며, 여름이라도 저녁엔 쌀쌀하므로 겉옷과 벌레의 물리지 않도록 모기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스핑크스[Sphinx]

 

 

 

인간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진 괴수. 고대 스핑크스의 미술ㆍ문학상의 표현은 이집트, 그리스, 메소포타미아에서 보이며, 그 기원은 최고기의 이집트에서 구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카이로 교외 기자 언덕의 피라미드군과 함께 자연암으로 조각된 거대한 스핑크스상이 잘 알려져 있는데, 소형의 것은 이집트 각지의 유적에서 보인다. 나일강 중류 테베유적의 대안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에서는 피론(앞문) 입구에 이르는 참도 양측에 몇십 개의 소형 스핑크스가 서 있어서, 고대 이집트인에게 스핑크스는 친숙한 것이었다. 기자의 스핑크스는 큰 파리미드가 건설된 제4왕조 이전의 것이라고 하며, 기원전 26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것, 또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가끔 동물이 신격화되어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에서, 스핑크스의 원형은 이집트에서 생겼다고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백수의 왕으로서의 사자가 신격화된 왕 파라오와 합체해서 왕권의 상징이 되었다. 신왕국시대가 되면 스핑크스는 사자의 신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전파된 스핑크스 숭배에 다른 요소가 합체해서 이집트에 역수입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이집트에서의 스핑크스에 대한 관념이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는 증거로서 스핑크스를 나타내는 고대 이집트어의 용어의 다양성이 있다. 고대기의 <피라미드 텍스트>에서는 2마리의 사자를 루티라고 읽어서 스핑크스를 나타낸 것에 대해서, 중기 문서에서는 쉐세프 앙크(혼의 상)라고 한다. 또한 신왕국시대에는 날개 있는 스핑크스가 푸르나, 프론(셈계의 태양신을 나타내는 말)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역수입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스핑크스 조상의 대표로서는 북이라크의 니물드(앗시리아 왕국 유적) 우물바닥에서 발견된 상아제가 있는데 날개를 가진 여성 스핑크스로, 그 외에도 동종의 소형 장식품이 발견된다. 날개있는 공상적 동물은 그 외에도 있으며, 그 중 대표는 앗시리아 왕국 입구에 있는 거대한 라마스(인두유익괴상)이다. 그 인두에는 3중으로 수소의 뿔이 달려있는데, 신체는 확실히 사자이다. 같은 시기(기원전 9세기)의 북시리아의 하라프 문화 출토품에도 고출풍 스핑크스상이 있는데, 이는 새의 다리와 전갈의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날개달린 괴수의 기원은 반드시 확실하지는 않지만, 수메르, 아카드의 원통인장에 보이는, 반 신격화된 맹수와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수메르계 폭풍의 신 앙즈새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태양신으로서의 맹수숭배로 발달했다. 앗시리아의 라마스와 같은 날개 있는 괴수상은 고대 페르시아미술, 특히 아케메네스조기 채색 부조에 보인다. 이들 신화적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사자의 변형으로서 동방에 전파되고, 결국에는 일본의 당사자가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날개있는 신으로서의 각종 천사상, 나아가서는 동양의 비천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그리스의 전설에서는 스핑크스를 사녀(蛇女) 에키드나와 개의 오르토로스의 자식이라고 하는 것, 테베왕 라이오스의 딸(서자)로 하는 것 등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오이디푸스 전설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에 의하면 스핑크스는 여신 헤라에 의해서 테베 서방의 피키온산에 놓여졌다. 이 스핑크스는 여행자에게 수수께끼를 내서 풀지 못하는 여행자를 잡아 먹었다고 한다. 오이디푸스가 다가오자 스핑크스는 언제나처럼 <하나의 목소리를 가지고,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냈다.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인간이다(갓난 아이는 네 발로 기고, 성인이 되면 두 발로 걷고, 노인은 되면 지팡이를 짚기 때문에)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산에서 몸을 던져서 자살했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아름다운 얼굴과 가슴을 가진 날개있는 여성으로서 표현되며, 이것이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스핑크스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스핑크스와 유사한 공상적 동물로서 괴수 그리프스(영어로는 그리폰)가 그리스의 전승 중에 몇 번인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사자의 몸을 가진 것으로,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3권에 의하면 이 괴수는 북방의 나라에서 황금을 수호하고 있다고 한다. 스핑크스와 그리프스와의 관계는 현재도 확실하지 않지만, 이집트에서 탄생한 스핑크스가 다양화되어서 메소포타미아에서 북방을 경유해서 그리스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한 변형이라고 생각된다. 스핑크스는 중세에는 거의 잊혀졌으나, 근대의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가끔 <의문>, <슬픔>, <남자에게 도전하는 여자> 등의 주제로 재등장했다. 회화에서는 앙글루, G. 몰로, D.G. 세티 등의 것이 있으며, 하이네는 『노래의 책』에서 스핑크스의 슬픔을 대표시켰다.

 

 

 

스핑크스를 자세히 관찰하면 흥미로운 점들이 보인다. 스핑크스의 앞발은 피라미드처럼 수천개의 돌덩이로 구성됐다. 반면 상체와 머리는 하나의 거대한 암석을 깎아서 만들었다. 이 거대하고 수많은 돌들을 어디서 구했을까. 연구 결과 스핑크스는 기자 고원에 있는 자연석을 깎아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다음은 어떻게 만들었을까다. 기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석공으로 일한 일꾼으로 하여금 실제 미니 스핑크스를 만들어 보도록 했다. 고대 연장을 고스란히 재현한 뒤 이 연장으로 직접 만들어 본 것이다. 몇주간의 고된 노동 끝에 미니 스핑크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조그만 스핑크스 제작에도 그토록 많은 품이 드는데 거대한 스핑크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이 동원됐을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스핑크스[Sphinx]

사자의 몸통에 인간의 머리를 지닌 스핑크스는 두 개의 피라미드를 지키고 있다. 여기엔 두 명의 파라오가 묻혀 있다. 아버지인 쿠푸 왕, 그리고 아들인 카프레 왕이다. 학자들은 스핑크스의 얼굴이 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얼굴에서 따왔을 것으로 본다. 누구의 얼굴이냐를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린다. 얼굴만 가지고 따지는 게 그렇다면, 다른 증거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의문을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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