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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대동야승(大東野乘) 제1,2권■■난중잡록(亂中雜錄) : 선술(善述) 산서공(山西公) 조경남(趙慶男)■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4. 1. 23.

■대동야승(大東野乘)  제1,2권■

대동야승(大東野乘)은 ‘위대한 東方 朝鮮의 野史와 傳承’이라는 의미로서, 조선(朝鮮) 세종(世宗)부터 인조(仁祖)까지의 제가(諸家)의 저술(著述) 속에서, 53동을 추려서 편찬(編纂)한 야사집(野史集)이다.
편자(編者)는 미상(未詳)이며, 72권 72책으로 구성되었다.
종래에 사본 72권 72책으로 전해오던 것을, 1909에서 1911년 사이에,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13책으로 출판하여 널리 퍼졌고, 1968년 이것을 다시 전 4책으로 영인, 출판하였다.
1971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정부 지원에 의한 고전국역총서계획의 일환으로, 원문이 포함된 번역본 17책을 간행한 바 있다.
대동야승(大東野乘)은 총 59종의 잡록을 모아 놓은 것인데, 각각의 성격이 같지가 않다.
역사적 사건을 일정하게 變改하여 기록한 것에서부터, 士大夫 사회와 民間의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기록하거나, 나아가 거기에 허구적 요소를 덧붙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같은 잡록에 실려 있는 敍事體들도 그 성격이 단일하지가 않다.
야사(野史)·일화(逸話)·시화(詩話)·소화(笑話)·만록(漫錄)·수필(隨筆) 등에 해당하는 단편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중 주요 잡록집들을 편찬자의 생존연대를 기준으로 하여, 시대순으로 배열하면,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김안로(金安老, 1481~1537)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까지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편찬된 조선 초기 잡록집이라면, 안로(安?, 16세기 후반)의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에서 편찬자 미상의 일사기문(逸史記聞)까지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편찬된 조선 중기 잡록집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중기 잡록집에는, 사회·경제·정치적 격변의 흔적이 나타난다. 사화(士禍)·옥사(獄事)에 대한 기록이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대한 기록들은 중요한 史料가 된다.

대동야승 제2권

제1편 기옹만필(畸翁漫筆)
1. ‘정홍명’의 ‘불구가 된 늙은이가 잡다히 적다’
2. ‘리기’에 관하여
3. 사계 김장생
4. 여윤 최명룡
5. 일학 노숙
6. 우계 성혼
7. 남명 조식
8. 하서 김인후
9. 토정 이지함
10. 중봉 조헌
11. 중용 대학
12. 동사강목 자치통감
13. 사문난적 학파들
14. 소재 노수신
15. 모재 김안국
16. 세상살이 이런저런 화를 당하다
17. 한세상 술에 취하다

제2편 난중잡록(亂中雜錄)
1. ‘기정진’의 서문
2. ‘최시옹’의 서문
3. ‘조경남’의 자서
4. ‘난중잡록’을 쓰기 시작하다
5. ‘니탕개’가 침입하자, ‘신립’이 생포하여 목을 베다
6. 명나라 ‘대명회전’의 오류 수정을 요청하다
7. 명나라에, ‘회동관’ 실화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하다
8. 왜적과 북방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다
9. 서울 선비들의 미친 짓 괴이한 짓 천태만상
10. 일본이 통신사를 요청하자, 중국에 보고하다
11. ‘정여립’이 반란을 일으키다
12. 예절을 모르는 ‘개돼지 일본’의 외교적 결례
13. 통신사 ‘김성일’이 일본 측의 무례에 대해 전하다
14. 외교적 결례에 대한 책임으로 가마꾼의 목을 베다
15. 정명가도를 주장하는 ‘풍신수길’의 답계
16. ‘풍신수길’의 답계를 보고서 ‘김성일’이 대노하다
17. ‘김성일’이 일본은 출병할 기세가 없다고 보고하다
18. 명나라 간첩 ‘허의후’의 일본에 관한 보고서
19. 대마도 작은 두목 ‘귤광련’
20. 임진왜란이 발발하다
21. 동래부사 송상현 죽다
22. 조선의 장수들은 대부분 겁이 많고 탐욕스러웠다
23.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키다
24. ‘신립’이 대군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25. 왜적에게 항복하고 ‘죽패’를 받은 백성들
26. ‘신립’이 패전하여 죽다
27. 조선 백성의 피해 상황
28. 임금이 서울을 버리고 도망가다
29. ‘고경명’의 격문
30. ‘이광’의 격문
31. 우리 ‘소중화’는 지정학적으로 변란이 많다
32. ‘김성일’의 격문
33. 의병을 모집하는 글
34. ‘이순신’과 ‘원균’
35. 왜적이 ‘선릉’과 ‘정릉’을 파내다
36.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다
37.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다
38. 병법을 모르면 참된 선비가 아니다
39. 중국에게 구원병을 요청하다
40. ‘곽재우’의 격문
41. ‘곽재우’와 ‘김수’의 싸움
42. 임진왜란 중 서로 내부 총질하는 진흙탕 싸움

조경남은 1579년(선조 12) 10세에 유인옥에게 입문해 글을 써 남들을 놀라게 했으며 13세에는 난리를 예견하여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8세에는 조헌의 문하로 들어가 의리와 도덕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는 군문에 들어가려 했으나 뜻대로 하지 못하고, 1598년(선조 31) 29세에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 막하에서 명나라 군대와 합세하여 금산·함양 등지의 왜군을 무찔렀으며, 1608년(선조 41) 39세에는 향시, 양장에, 1614년(광해군 6) 45세에는 삼장에 합격하는 쾌거를 거둔 대단한 인물이였더라구요!!

그러나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비난하고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인조반정 후 1623년 54세에 겨우 진사에 등과했으나 세상과 인연을 끊고 방장산 용추동에 별장을 짓고 산서병옹이라 자처하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며 삼학사의 심양순절소식에 충의를 읊은 인물입니다. 조경남은 1641년(인조 19년) 세상을 떠났고, 초동마을에 묘와 의충사가 위치해있습니다!! 

(우) 55723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초촌길 110-9

(지번)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 706-5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 산 140-1

■난중잡록(亂中雜錄) : 선술(善述) 산서공(山西公) 조경남(趙慶男)■

조경남이 집필한 난중잡록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중심으로 하여 1582년 12월부터 1610년 2월까지 저술한 것이고,

제1권이 1582년 12월부터 1592년 7월까지,

제2권이 1592년 8월부터 1593년 6월까지,

제3권이 1593년 7월부터 1598년 12월까지,

제4권이 1599년 1월부터 1610년 2월까지의 분량의 4권 2책으로

이후 저자가 광해군과 인조시기 경험한 사건들을 속잡록이라 하여 난중잡록에 덧붙여 기록하였는데

속잡록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을 중심으로 하여 기록한 것으로

제1권이 1611년 1월부터 1621년 12월까지,

제2권이 1622년 1월부터 1628년 11월까지,

제3권이 1628년 12월부터 1635년 12월까지,

제4권이 1636년부터 1638년 12월까지의 분량이다.

총 4권 2책으로 난중잡록과 속잡록을 합쳐 총 8권 4책으로 구성된

임진왜란기를 중심으로 조선 중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당쟁, 외교, 군사 등을

총체적으로 기록하여 남긴 사료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일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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