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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달래주는 향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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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 손곡 이달의 제자 : 허균(許筠)의 作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의 券八 전(傳)에 들어 있다.■

●蓀谷山人李達字益之(손곡산인리달자익지) : 손곡산인(蓀谷山人) 이달(李達)의 자는 익지(益之)로
●雙梅堂李詹之後(쌍매당리첨지후) : 쌍매당(雙梅堂) 이첨 의 후손이다.
●其母賤(기모천) : 그는 어머니가 천인(賤人)이어서
●不能用於世(불능용어세) : 세상에 쓰여질 수 없었다.
●居于原州蓀谷(거우원주손곡) : 원주(原州)의 손곡(蓀谷)에 살면서
●以自號也(이자호야) : 자신의 호(號)로 하였다.

●達少時(달소시) : 달(達)은 젊은 시절에
●於書無所不讀(어서무소불독) :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綴文甚富(철문심부) : 지은 글도 무척 많았다.
●爲漢吏學官(위한리학관) : 한리학관이 되었지만
●有不合(유불합) : 합당치 못한 일이 있어
●棄去之(기거지) : 벼슬을 버리고 가버렸다.
●從崔孤竹慶昌(종최고죽경창) : 고죽 최경창과
●白玉峯光勳遊(백옥봉광훈유) : 옥봉 백광훈을 따라 노닐며

●相得懽甚(상득환심) : 서로 마음이 맞아 아주 기뻐하고
●結詩社(결시사) : 시사(詩社)를 결성하였다.
●達方法蘇長公(달방법소장공) : 달은 한창 소장공을 본받아,
●得其髓(득기수) : 그 요체를 터득하여
●一操筆輒寫數百篇(일조필첩사수백편) : 한번 붓을 잡으면 문득 수백 편을 적어 냈으나
●皆穠贍可詠(개농섬가영) : 모두 농섬(穠贍)하여 읊기에 좋은 시들이었다.

●一日思菴相謂達曰(일일사암상위달왈) : 하루는 사암 정승이 달에게 말해주기를
●詩道當以爲唐爲正(시도당이위당위정) : "시도(詩道)는 마땅히 당시(唐詩)로 하는 것이 정도(正道)가 되네.
●子瞻雖豪放(자첨수호방) : 자첨의 시는 호방(豪放)하기는 하지만
●已落第二義也(이락제이의야) : 이미 당시의 아래로 떨어지네."하였다.
●遂抽架上太白樂府歌吟(수추가상태백악부가음) : 그리고는 시렁 위에서 이태백(李太白)의

♥악부(樂府)ㆍ가음시(歌吟詩)♥
●王孟近體以示之(왕맹근체이시지) : 왕유(王維)ㆍ맹호연(孟浩然)의 근체시(近體詩)를 찾아내서 보여주었다.
●達矍然知正法之在是(달확연지정법지재시) : 달은 깜짝 놀란 듯 정법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다.
●遂盡捐故學(수진연고학) : 드디어 전에 배운 기법을 완전히 버리고,
●歸舊所隱蓀谷之莊(귀구소은손곡지장) : 예전에 숨어 살던 손곡(蓀谷)의 전장(田莊)으로 돌아갔다.

●取文選太白及盛唐十二家(취문선태백급성당십이가) : 《문선(文選)》과 이태백 및 성당(盛唐)의 십이가․
●劉隨州(류수주) : 유 수주
●韋左史曁伯謙唐音(위좌사기백겸당음) : 위 좌사와 백겸의《당음(唐音)》까지를 꺼내서
●伏而誦之(복이송지) : 문을 닫고 외었다.
●夜以繼晷(야이계귀) : 밤이면 날을 새운 적도 있었고,
●膝不離坐席(슬불리좌석) : 온종일 무릎을 자리에서 떼지 않기도 하였다.
●凡五年(범오년) : 이렇게 하여 5년을 지내자
●悅然若有悟(열연약유오) : 어렴풋이 깨우쳐짐이 있었다.
●試發之詩(시발지시) : 시험삼아 시를 지었더니
●則語甚淸切(칙어심청절) : 어휘가 무척 청절(淸切)하여
●一洗舊日熊(일세구일웅) : 옛날의 수법은 완전히 씻어졌었다.

●卽倣諸家體而作長短篇及律絶句(즉방제가체이작장단편급률절구) : 그리하여 당 나라 여러 시인들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장편(長篇)ㆍ단편(短篇) 및 율시(律詩)ㆍ절구(絶句)를 지어냈다.
●鍛字聲揣律摩有不當於度(단자성췌률마유불당어도) : 글자와 구절을 단련(鍛鍊)하고 성음(聲音)과 운율(韻律)을 췌마(揣摩)하면서, 법도에 부당함이 있으면
●則月竄而歲改之(칙월찬이세개지) : 달이 넘고 해가 가도록 개찬(改竄)을 거듭하였다.
●凡著十餘篇(범저십여편) :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 10여 편을 지어서
●乃出而詠之諸公間(내출이영지제공간) : 비로소 세상에 내놓고 여러분들 사이에서 읊자,
●諸公嗟異之(제공차이지) : 모두 감탄해 마지 않으며 깜짝 놀랐었다.
●崔白皆以爲不可及(최백개이위불가급) : 최고죽(崔孤竹)ㆍ백옥봉(白玉峯) 등도 모두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고,
●而霽峯荷谷一代名爲詩者(이제봉하곡일대명위시자) : 제봉․ 하곡과 같은 당대의 시로 이름난 분들이
●皆推以爲盛唐(개추이위성당) : 모두 성당(盛唐) 풍의 시를 짓는다고 추켜 세웠다.

●其詩淸新雅麗(기시청신아려) : 그의 시는 청신(淸新)하고 아려(雅麗)하여
●高者出入王孟高岑(고자출입왕맹고잠) : 수준 높게 지은 것은 왕유ㆍ맹호연ㆍ고적(高適)ㆍ 잠삼(岑參)에 버금하고,
●而下不失劉錢之韻(이하불실류전지운) : 수준이 낮은 것도 유장경(劉長卿)ㆍ전기의 운율을 잃지 않았다.

●自羅麗以下(자라려이하) : 신라(新羅)ㆍ고려(高麗) 이래로
●爲唐詩者皆莫及焉(위당시자개막급언) : 당시(唐詩)를 지었다고 하는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寔思菴鼓舞之力(식사암고무지력) : 정말로 사암(思菴)이 고무시켜 준 힘이었으니,
●而其陳涉之啓漢高乎(이기진섭지계한고호) : 그것은 진섭이 한 고조(漢高祖)의 창업을 열어 준 것이라고나 할까.

●達以是名動東國(달이시명동동국) : 달은 이 때문에 이름이 우리나라에 울렸고,
●貴之而捨其爲人(귀지이사기위인) : 귀하게 여겨져 그의 신분은 놓아두고도
●稱譽不替者(칭예불체자) : 칭찬해 마지 않는 분들로
●詞林三四鉅公也(사림삼사거공야) : 시문(詩文)에 뛰어난 3-4명의 거장(巨匠)들이 있었다.
●而俗人之憎嫉者(이속인지증질자) : 그러나 속인(俗人)들 중에는 증오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比肩林立(비견림립) : 줄줄이 이어 있어,
●屢加以汚衊(루가이오멸) : 여러 번 더러운 누명을 덮어씌우며
●寘之刑網(치지형망) : 형벌의 그물에 밀어 넣었지만
●卒莫能殺而奪其名也(졸막능살이탈기명야) : 끝내 죽게 하거나 그의 명성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達貌不雅(달모불아) : 달은 용모가 아담하지 못하고
●性且蕩不檢(성차탕불검) : 성품도 호탕하여 검속(檢束)하지 않았다.
●又習俗禮(우습속례) : 더구나 시속(時俗)의 예법에 익숙하지도 못하여
●以此忤於時(이차오어시) : 이런 것들 때문에 시류(時流)에 거슬렸었다.

●而善談今古(이선담금고) : 그는 고금(古今)의 이야기를 잘했으며,
●及山水佳致(급산수가치) :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면
喜酒(희주) : 술을 즐겨 마셨다.
●能晉人書(희주능진인서) : 진(晉) 나라 사람에 가깝도록 글씨도 잘 썼다.
●其中空洞無封畛(기중공동무봉진) : 그의 마음은 툭 트여 한계가 없었고,
●不事產業(불사산업) : 먹고 사는 생업에는 종사하지 않아서
●人或以此愛之(인혹이차애지) : 사람들 중에는 이 때문에 더 그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平生無着身地(평생무착신지) : 평생 동안 몸을 붙일 곳도 없어
●流離乞食於四方(류리걸식어사방) : 사방으로 유리(流離)하며 걸식(乞食)까지 했으니,
●人多賤之(인다천지) : 사람들이 대부분 천하게 여겼다.
●窮厄以老(궁액이로) : 그렇지만 궁색한 액운으로 늙어갔음은,
●信乎坐其詩也(신호좌기시야) : 말할 나위도 없이, 그가 시 짓는 일에만 몰두했던 탓이었다.
●然其身困而不朽者存(연기신곤이불후자존) : 그러나 그의 몸이야 곤궁했어도 불후(不朽)의 명시를 남겼으니
●豈肯以一時富貴(기긍이일시부귀) : 한 때의 부귀로
●易此名也(역차명야) : 어떻게 그와 같은 명예를 바꿀 수 있으랴!

●所著殆失盡(소저태실진) : 지은 글들이 거의 다 없어질 지경인데
●不佞粹爲四卷以傳云(불녕수위사권이전운) : 내가 가려서 4권으로 만들어 전해지게 하였다.

●外史氏曰(외사씨왈) : 외사씨(外史氏)는 논한다.
●朱太史之蕃(주태사지번) : 태사(太史) 번은
●嘗觀達詩(상관달시) : 일찍이 달의 시를 보았다.
●讀至漫浪舞歌(독지만랑무가) : 만랑무가(漫浪舞歌)라는 시를 읽고서는
●擊節嗟嘗曰(격절차상왈) : 격절차상(擊節嗟賞)하면서 이르기를
●斯作去太白(사작거태백) : "이 작품이 이태백(李太白)의 시에서
●亦何遠乎(역하원호) : 또한 어찌 멀리 있겠는가."했으며,
●權石洲韠見其斑竹怨曰(권석주필견기반죽원왈) : 석주(石洲) 권필도 달의 반죽원(斑竹怨)이라는 시를 보고서,
●置之靑蓮集中(치지청련집중) : "청련의 시집 속에 넣어도,
●具眼者不易辨也(구안자불역변야) : 안목(眼目) 갖춘 사람일 망정 판별하기 쉽지 않으리라."했었다.
●此二人者(차이인자) : 이 두 사람이
●豈妄言者耶(기망언자야) : 어찌 망언(妄言)을 할 사람이겠는가.
●噫達之詩(희달지시) : 슬프다, 이달의 시야말로
●信奇矣哉(신기의재) : 진실로 기특 했었다.

[출처]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허균(許筠)

■[구성 및 형식]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8 전(傳)에 들어 있다. ‘손곡산인’은 곧 조선 중기의 시인 이달(李達)이 강원도 원주 손곡에서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제목이다.

■[내용]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손곡산인전」 주인공 이달은 그의 어머니가 미천 하였으므로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시재(詩才)가 뛰어나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시풍이 송시(宋詩)에서 당시(唐詩)로 들어가기까지 오랜 기간 수련과정이 필요했다. 이달의 성격은 매우 특이하였다. 그는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도전적인 언행을 자행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그를 증오하거나 질투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시에 대한 재주가 뛰어나서 그의 불손한 행동을 감싸고도 남았다. 「손곡산인전」의 구성은 이달의 생애와 외사씨(外史氏)의 평으로 되어 있다. 외사씨의 평은 곧 작자 자신의 목소리이다. 평을 빌려 자신의 말을 하는 전문학(傳文學)의 전통적 구성방법을 그대로 빌려쓰고 있다. 이 작품은 내용이 너무 짧다.

그래서 사건전개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작자의 주인공에 대한 관찰과 묘사의 특이함이 특기할만하다. 이 점은 작자가 주인공의 시제자(詩弟子)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손곡산인전」의 주제는 주인공의 불우한 일생을 통하여 당시의 모순된 사회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작자는 적서차별에 의하여 능력은 있으나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불우한 일생을 작품으로 형상화시켜 모순된 사회를 비판하려고 하였고, 불우한 한 시인의 특이한 일생을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손곡산인전」은 작자 허균의 사회개혁사상의 문학적 반영하였다. 허균의 나머지 4편의 전과 함께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모든 계열의 한문단편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寺在白雲中(사재백운중)
☞흰 구름 가운데에 절이 있어
◐白雲僧不掃(백운승불소)
☞스님은 흰 구름 쓸지 않네
◐客來門始開(객래문시개)
☞객이 와서 문을 열어보니
◐萬壑松花老(만학송화노)
☞온 골짜기마다 송화 가루 날리네

참고문헌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허균전집(許筠全集)』(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1972)
『이조한문소설선(李朝漢文小說選)』(이가원, 민중서관, 1971)
「허균적사상급기문학(許筠的思想及其文學)」(이가원, 『동방학지』 25, 1980)
「허균(許筠)의 전(傳)에 대한 고구(考究)」(강동엽, 『한국한문학연구』 2, 1977)
「허균(許筠)의 한문소설연구(漢文小說硏究)」(김무헌, 『강릉교육대학논문집』 5, 1973)


●第九接人章 凡接人에 當務和敬이니 年長以倍어든 則父事之하고 十年以長이어든 則兄事之하고 五年以長이어든 亦稍加敬이니 最不可恃學自高, 尙氣陵人也니라.
◎번역: 무릇 사람을 대할 때에는 응당 온화함과 공경함을 힘써야 하니, 나이가 나보다 배가 많으면 부모를 섬기는 것처럼 하고, 10년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것처럼 하고, 5년이 많으면 조금 공경을 더해야 하니, 배운 것을 믿고 스스로 높은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짓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출전≪격몽요결(擊蒙要訣)≫ <제9(第九)>

●친목하지 않으면 오품(五品)이 화순하지 않다
●聖人(성인)이 有憂之(유우지)하사: 성인이 이것을 근심하여
●使契爲司徒(사설위사도)하사: 설契(요임금의 신하)을 사도司徒(관직의 명칭)에 임명하여使(부릴 사)
●敎以人倫(교이인륜)하시니: 인륜人倫(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道理)을 가르치게 하니
●父子有親(부자유친)하며: 아버지와 아들은 친애함親이 있고
●君臣有義(군신유의)하며: 임금과 신하는 의리義가 있으며
●夫婦有別(부부유별)하며: 남편과 아내는 분별別이 있고
●長幼有序(장유유서)하며: 어른과 아이는 차례序가 있으며
●朋友有信(붕우유신)이니라: 벗 사이에는 믿음信이 있다고 하였다.

●舜命契曰(순명계왈): 순舜임금이 설契(요임금의 신하)에게 명하시기를
●百姓不親(백성불친)하며: 백성들이 서로 친親하지 않고
●五品不遜(오품불손)일새: 5품五品이 불손不遜하니
●汝作司徒(여작사도)니: 그대汝(너 여)를 사도司徒로 만들었다.

●卒啄同時 (줄탁동시)
◎卒啄同時 (줄탁동시) 어미가 품에 안은 알 속에서 조금씩 자란 병아리가 있다. 이제 세상 구경을 해야 하는데 알은 단단하기만 하다. 병아리는 나름대로 공략 부위를 정해 쪼기 시작하나 힘이 부친다. 이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닭은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 준다. 답답한 알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병아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줄 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것을「탁 啄」이라 한다. 그리고 이 일이 동시에 발생해야 어떤 일이 완성된다는 것이「줄탁동시(啐啄同時)」이다.
- 벽암록 (碧巖錄) 에서 -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님의 성학십도(聖學十圖)
◎ [聖學十圖 解說 (성학십도 해설)]
♠ 聖學十圖(성학십도)
■제1도 태극도(太極圖): 도(圖)와 도설(圖說)이 주돈이(周敦頤) 저작이다.
■제2도 서명도(西銘圖): 장재(張載)의 글이고 도(圖)는 정임은(程林隱)의 작품이다.
■제3도 소학도(小學圖): 글은 주자(朱子)의 말이고 도(圖)는 이황(李滉)의 작품이다.
■제4도 대학도(大學圖): 글은 주자(朱子)의 말이고 도(圖)는 권근(權近)의 작품이다.
■제5도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글은 주자(朱子)의 말이고 도(圖)는 이황의 작품이다.
■제6도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상도(上圖)와 도설(圖說)은 정임은(程林隱)의 저작이고 중도(中圖)와 하도(下圖)는 이황(李滉)의 작품이다.
■제7도 인설도(仁說圖): 도(圖)와 도설(圖說)은 주자(朱子)의 저작이다.
■제8도 심학도(心學圖): 도(圖)와 도설(圖說)은 정임은(程林隱)의 저작이다.
제9도 경재잠도(敬齋箴圖): 글은 주자(朱子)의 말이고 도(圖)는 왕노재(王魯齋)의 작품이다.
■제10도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 글은 진무경(陳茂卿)말이고 도(圖)는 이황(李滉)의 작품이다.

* 선조 등극 원년(1568년 선조1년) 즉 첫해 즉위할 때에 선조나이가 17세였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님은 68세였습니다. (율곡 이이는 선조원년에 33세) 이황은 어린 임금께서 성군(聖君)이 되어 불쌍한 백성을 잘 보살펴 달라는 의미에서 성학십도를 만들어 마지막 봉사(奉仕)로서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 상소(上疏)를 올렸습니다

그 내용은 천도(天道)의 근원에 대해서 5가지 이치와 심성(心性)의 근원에 대한 5가지의 오륜(五倫)인 인륜(人倫)에 대하여 밝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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