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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정 현판 시문
●1736년 신유우(愼惟愚) 시
翼然高閣幸重新 날 듯한 높은 정자 다행히 새로워지니,
見護名區信此辰 명승구 보호됨이 이때임을 믿겠네.
讌飮時開淳風俗 잔치를 때로 열어 풍속을 순화하고,
禮客相戒慕先人 참례객도 서로 말하며 선인을 사모하네.
山連南北千峰玉 산은 남북으로 이어져 천 봉우리가 옥빛이고,
海樹西天萬頃銀 바다는 서쪽 하늘을 심어 만 이랑이 은빛이네.
可使斯亭傳永世 이 정자 영원토록 전해지게 한다면,
額懸邨號豈無因 액자에 걸린 마을이름 어찌 말미암음 없으리.
赤龍季春 愼惟愚 稿 병진년(1736) 3월에 신유우가 지음.
●1736년 최흥재(崔興載) 시
桂柱春來燕賀新 계수 기둥에 봄이 오자 축하가 새로우니,
枌楡生態倍玆辰 분유나무의 생기가 배가 되는 때라네.
西京名義符村號 서경의 명의는 마을이름에 부합되고,
南極星輝應老人 남극성의 광채는 노인을 비추네.
蟾轉丁香光似夢 달은 정향나무에 떠올라 풍광이 꿈속과 같고,
魚勝丙穴色勝銀 물고기는 병혈이 좋아 빛깔이 은보다 낫네.
藍田設約蘭亭會 남전의 향약을 설하고 난정에서 모임하니,
摠是鄕邦舊俗因 모두가 향리의 옛 풍속에 인연한 것이네.
丙辰三月 溪堂 崔興載 1736년 3월에 계당 최흥재 지음.
■1776년 신사준(愼師俊) 시
●題永保亭 영보정에서 짓다
甲乙秊今幾 갑을년이 지금까지 몇 번인가.
三移畵棟新 세 번 옮긴 단청 기둥 새로워라.
光輝閭里倍 마을의 광휘가 배나 더하니,
聚會夏秋頻 모이길 여름과 가을로 자주하네.
人媿先君子 사람들 선군자에게 부끄러워,
亭齊前後辰 정자 앞뒤로 나란할 때이라.
扁名因洞號 편액이름은 마을명에 말미암았으니,
持護可千春 보호하고 지켜가면 천년을 갈 것이네.
丙申仲冬 潛黙 稿 1776년 11월에 신사준 지음 愼師俊 稿
※신사준(愼師俊, 1734~1796) : 자는 경심(景深), 호는 송원(松園)·이회재(二懷齋), 본관은 거창(居昌)이다. 영암(靈巖) 덕진 출신으로, 부친은 신창징(愼昌徵)이다. 1773년 진사(進士)에 합격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1789년 윤5월 22일에 효열(孝烈) 별단에 들고, 특명으로 휘릉참봉에 제수되었다.
1796년에는 정릉직장(靖陵直長)에 제수되었다.
■1811년 군수 이상일(李商一) 시
●謹次永保亭韻 삼가 영보정 시에 차운하다
邨號亭名久益新 마을과 정자이름 오래도록 더욱 새로운데,
群賢修禊在何辰 군현들의 수계는 어느 때에 있었던가.
後前松竹千家落 앞뒤로 송죽에 싸인 마을의 집들,
外內戚親幾姓人 내외 친척은 몇 성씨나 되나.
晩靄歸時山滴翠 저녁안개 산에 모여들 때 푸른빛 방울지고,
邊雲盡處海生銀 변방구름 바다에 다하는 곳에 은빛 생겨나네.
春秋世繞藍田約 봄가을로 둘러앉아 남전의 향약을 시행하니,
永保歡情益有因 영보정의 기쁜 정은 더욱 인연 있으리.
辛未仲秋 知郡 1811년 8월에 군수 (李商一)
■1872년 최양흠(崔養欽) 시
●敬次 삼가 차운함
吾鄕風物舊維新 우리 고을 풍물은 옛것이 새로워져서
回臨斯亭刱建辰 다시 이 정자에 올 때는 창건한 때이네.
香社淸遊能上友 촌사에서 맑게 노닐며 윗사람 벗할 수 있으니,
藍田禮俗約中人 남전의 예속이요 향약 중의 사람이라.
雲歸南岳峰連玉 구름이 돌아가는 남악에는 봉우리가 옥처럼 이어지고,
月照西津浪湧銀 달빛 비치는 서진에는 물결이 은처럼 솟아나네.
槐柳滿庭猶愛惜 회화와 버들 가득한 뜰은 오히려 아낄만 하니,
而今結構古規因 지금의 건물은 옛 법규를 따른 것이네.
壬申暮春 崔養欽 1872년 3월, 최양흠.
■1976년 최승효(崔昇孝) 시
●謹次 삼가 차운함
棟宇重修去益新 동우를 중수하여 더욱 새롭게 하니,
先賢遺蹟緬思辰 선현의 유적을 멀리 그리워할 때이네.
風雨多年頹廢地 풍우가 오래되어 퇴락한 곳을,
煙霞勝日落成人 연하가 좋은 날에 낙성하였네.
豈謂凡樓藏玉帛 어찌 보통 누각이 옥백을 감추고 있으리,
若登寶籍勝金銀 보배로운 문적에 오르는 것이 금은보다 낫다네.
來賓祝賀竣工席 내빈 되어 축하하러 준공식 자리에 왔으니,
亭號洞名永世因 정자와 마을 이름 영원토록 이어가리라.
丙辰六月日 康耘 崔昇孝 稿 병진년(1976) 6월에 강운 최승효 지음.
■1976년 최낙선(崔洛璿) 시
●謹次삼가 차운함
巋然棟宇煥然新 우뚝한 건물이 환하게 새로워지니,
適値重修運吉辰 마침 중수 때를 만난 길운일 때라.
行客猶嗟頹廢地 길가는 사람도 오히려 무너짐을 한탄했는데,
戚親相賀落成人 친척들 서로 낙성을 축하하네.
芝峰拱北雲增彩 지봉이 공북하니 구름 더욱 빛나고,
蓮沼堂前露轉銀 연지가 당앞에 있으니 이슬 점점 은빛 되네.
洞與斯亭傳世代 마을과 함께 이 정자 대대로 전해지리니,
名區永保詎無因 명승구의 영보가 어찌 인연 없으리.
丙辰六月日 月南 崔洛璿 稿 병진년(1976) 6월에 월남(月南) 최낙선(崔洛璿) 지음
■1976년 신용호(愼鏞虎) 기
●永保亭 重修를 보고
永保人들의 育英廣場으로 永保亭을 建⽴하신 先賢의 크고 높으신 뜻이 이번 亭閣의 重修를 契機로 되새겨지고 굳혀져 다시 永世에 繼承하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
丙⾠六⽉日 ⼤⼭ 愼鏞虎 稿
●영보정 중수를 보고
영보 사람들을 육영하는 광장으로서 영보정을 건립하신 선현의 크고 높으신 뜻이 이번 정각의 중수를 계기로 되새겨지고 굳혀져서 다시 영원토록 계승하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
병진년(1976) 6월에 대산(大山) 신용호(愼鏞虎)가 지음.
■1977년 신정범(愼正範) 기
●永保亭重修
古有朗州之東⼗⾥許에有一亭子하니名曰永保亭이라創建은李朝⽂宗時 全州崔⽒ 諱는德之요號는烟村 藝⽂館直提學과居昌愼⽒ 諱는後庚 通禮院左通禮와翁婿間에建⽴하여兩門中에서守護管理以來 宣祖后 亭貌頹落되어崔⽒께서는諱는珽이요號는棄井 愼⽒께서는諱는天翊이요號는素隱 官은副提學 更爲現地에移築한바于今三百餘年 歲久顚覆케되어丙⾠秋 ⽉南崔洛璿⽒가過此에亭貌를視察하고愛惜感을不勝하와重修資料를惠擲하온바兩門中에서感心을不勝하여更爲重修한바蓋⽡狀은依俙乎魚鱗之疊連이요巨樑之儀는彷彿乎⿓腰之屈曲 登臨于此에前對⽉出⼭ 後背兄弟峯 左右⽵林은翠屛之狀이라千年喬⽊은彷彿乎⼤盖之樣也와惟有特異하니⽼松一株가⽼⿓鱗匣으로屈曲之樣은一⾒에有再顧之思也 其他百千之像은不可盡數也라靈巖에屈指한此永保亭은幾倍生色이요永遠한寶亭으로誇張케되었습니다
⻄紀 一九七七年丁巳春三⽉ 東隱 愼正範 記
●영보정 중수
옛날부터 낭주의 동쪽 10리쯤에 하나의 정자가 있었으니 이름을 영보정이라고 했다. 창건은 조선시대 문종 때 전주최씨로 이름은 덕지이고 호는 연촌이시며 예문관 직제학을 지내신 분과 거창신씨로 이름은 후경이고 통례원좌통례를 지내신 분이 장인과 사위 사이로서 건립하여 두 문중에서 수호하고 관리해왔는데, 선조 이후 정자의 모습이 퇴락하자 최정(崔珽) 호는 기정(棄井)이신 분과 신천익(愼天翊) 호는 소은(素隱)이고 관직은 부제학이신 분이 다시 현재의 곳으로 옮겨 지은 것이 지금 300여년이 되었다. 그러나 해가 오래되어 무너질 지경이 됨에 병진년(1976) 가을에 월남(月南) 최낙선(崔洛璿)씨가 이곳을 지나다가 정자의 모습을 시찰한 후 애석한 느낌을 이기지 못하고 중수할 자본을 보내주어서 두 문중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중수를 하였다. 기와의 모양은 물고기 비늘이 연이어진 것 같고, 대들보의 모습은 용의 허리가 구불구불한 것과 같다. 특이한 것이 있으니, 노송 한 그루가 노룡의 비늘을 한 채구불구불한 모양은 한 번 봄에 다시 돌아보고 싶게 한다. 그 밖의 백천 가지의 모양은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영암에서 손에 꼽는 이 영보정은 몇 배가 더 빛이 남에 영원한 보배 정자로서 과장하게 되었습니다.
서기 1977년 정사년 봄 3월에, 동은(東隱) 신정범(愼正範)이 기록함.
■1991년 최낙정(崔洛定) 기
●永保亭重修記
夫物久而毁는 理所固然也요 隨毁而補는 人所當然也이다
惟我永保亭은 朝鮮朝 ⽂宗年間에 創建한 後 宣祖壬丁後에 이곳에 移築하고 數次에 繼而重修하니 ⾃凡厥五六次則 此非久而毁毁而補乎 아
그러나 또한 歲深星移하니 蓋⽡는 께어져 滲漏가 床床하고 壁破門裂하여 風雨가 直入하며 礎陷材朽하여 隨傾而斜地하여 朽狀이 漸漸하니 筆不可形⾔ 而外內兩門之齎恨이요
⾏路之嗟嘆이 厥有年久러니 去迬庚午(一九九○)에 商⼯部防衛産業局⻑ 崔公圭培의 周旋力勞로 國費五千萬원의 支援을 얻어 ⽡上坐土를 擧箒而掃去하고 壁間穿隙을 命匠而符合하여 同年五⽉에 始役而冬⼗⽉曁⾄數⽉에 功告訖하니 棟椽之朽敗를 去舊易新하고 壁之毁裂을 塗而完之하였으며 榱⽡之滲漏를改以縫之하니 可謂煥然復新하여 亭貌維新이 例如雲破白日하고 雨洗靑⼭하니 惟我洞中⽂風이 不墮地振于古而致此耶아
此事之成은 鄙族祖圭培甫의 首功이요 乃兩門諸員의 念願賢勞之力 而非余之功이나 是役에 始終參與하여 敦事董役故로 兩門諸丈이 命余而記實하니 余忘其因陋하고 記其始終하여 以俟後隨毁隨補之計云爾하노라.
⾟未林鍾⽉에 全州 崔洛定 記
●영보정중수기
대저 물건이 오래되면 훼손되는 것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요, 훼손되는 대로 보수하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것이다. 우리 영보정은 조선시대 문종 연간에 창건한 뒤로 선조 때 임진과 정유왜란을 거친 후에 이곳에 옮겨 세우고 수차례에 걸려 계속해서 중수를 하였으니, 지금까지 5~6차가 된다. 이것이 오래되면 훼손되고 훼손되면 보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또한 세월이 깊어갈수록 기와는 깨어져서 비가 자꾸 새어들고, 벽은 깨지고 문은 갈라져서 풍우가 곧바로 들이치며, 주춧돌은 꺼지고 목재는 썩어서 기우는 대로 땅에 빗기어 썩은 모양이 점점 더해가니, 붓으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내외 두 문중이 한을 품은 것이요, 행인들이 탄식하는 것이 오래되었다.
그런데 지난 경오년(1990)에 상공부 방위산업국장인 최규배 공이 주선하고 힘쓴 것으로 인해 국비 5천만원의 지원을 받게 되어 기와 위에 앉은 흙을 비를 들어 쓸어내고 벽사이 틈새는 장인을 시켜 붙이게 했다. 그해 5월에 시작하여 몇 달만인 10월에 일을 끝내니, 기둥과 서까래의 썩은 것은 제거하거나 새롭게 바꾸고 벽의 무너지거나 갈라진 곳은 흙손질하여 완벽하게 하였으며, 기와가 깨져 비가 새는 것을 고쳐서 이으니, 눈부시게 다시 새롭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정자의 모습이 곧 새로워진 것이 예를 들면 구름을 뚫은 백일이나 비에 씻긴 청산과 같으니, 우리 동네의 문풍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옛날부터 떨치게 되어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일의 이루어짐은 우리의 일가인 규배씨의 공이 가장 크고 두 문중의 여러 사람이 염원하고 힘써서 그런 것이지 나의 공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고 일을 감독하였기 때문에 두 문중의 어른들이 나에게 명하여 사실을 기록하라고 하니, 내가 비루함을 잊고서 그 전말을 기록하여 훗날 훼손되는 대로 보수하는 계책을 기다린다.
신미년(1991) 6월에 전주인 최낙정(崔洛定)이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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