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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贈純忠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交陽府院君盧公之墓▣노물재(盧物載) ( ? -1446)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6. 29.

=경기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산 60-5번지 =

=경기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산 60-5번지 =

노물재(盧物載) ( ? -1446)▣贈純忠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交陽府院君盧公之墓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에 있는 동지돈녕부사 노물재의 묘소다. 부친은 의정부 우의정을 지낸 공숙공 효사당 노한, 조부는 대호군을 지낸 노균, 증조부는 노진이다. 어머니는 여흥민씨로 태종의 국구이자 의정부 좌의정을 지낸 여흥부원군 문도공 어은 민제의 딸이다. 따라서 공은 태종의 처남으로 권력을 남용하다가 숙청되었던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의 생질이다. 부인은 청송심씨로 세종의 국구이자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의 딸이다. 따라서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공숙공 심회는 공의 처남이다. 공은 4남 5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여흥부사를 지낸 노회신, 차남은 예빈시 정을 지낸 노유신, 삼남은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문광공 보진재 노사신, 막내는 선공감 감역을 지낸 노호신이다. 또한 의정부 우찬성을 지낸 국일재 노공필, 돈녕부 도정을 지낸 노공유는 공의 손자들이다.

노물재는 정승의 아들이자 태종의 처조카이고 세종의 동서였다. 이처럼 막강한 배경을 가졌던 공은 과거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음보로 출사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만년에는 당상관으로 승차하여 첨지중추부사, 동지돈녕부사에까지 올랐으며 1446년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 아들의 현달로 의정부 영의정에까지 추증된 노물재는 왕실의 인척으로 아경의 반열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묘소는 삼성리를 지나는 도로 가드레일 안쪽에 있어 차를 타고 가다가 유심히 주위를 살피지 않으면 찾기 힘든 곳에 위치[=경기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산 60-5번지 =]하고 있다. 능선에 장대석을 옆으로 놓아 땅을 평평하게 한 후 봉분을 조성하였는데 봉분은 조선 전기 무덤에서 자주 보이는 둘레석을 쌓은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그 앞쪽으로 묘표, 상석이 놓여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이수(螭首) 문양의 머릿돌을 지닌 묘표 앞면에는 贈純忠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交陽府院君盧公之墓 라고 되어 있어 사후 아들이 익대공신에 책록되면서 보조공신에 추증된 노물재의 것임을 알 수 있다.

* 교하노씨는 경기도 파주의 교하를 관향으로 하고 신라로 귀부한 노씨의 도시조 노부의 둘째 아들인 교하백 노오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는 가문이다. 조선조 12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하였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의정부 우의정을 지낸 공숙공 효사당 노한,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문광공 보진재 노사신, 13대 대통령 노태우 등을 들 수 있고 현재에도 6만 명의 후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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