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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행복 이야기

▣전남대 김대현 교수, 소쇄원 한시 150수 주제별 정리▣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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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김대현 교수, 소쇄원 한시 150수 주제별 정리▣

한국 민간원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담양 소쇄원(명승 40호)은 남도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교유의 장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와 순응의 의미가 투영돼 있다.

소쇄원이 만들어질 때부터 근대기까지 지어진 한시 150수를 주제별로 정리한 한시선이 발간됐다.

전남대 국문과 김대현 교수가 최근 ‘소쇄원 한시선’을 펴냈다.


김 교수는 당초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방암 양경지의 ‘소쇄원 30영’에 대한 좀 더 완전한 번역을 생각했다. 그러나 소쇄원의 현판 한시, 관련된 작품이 추가되면서 이번 한시선집으로 엮은 것.

알려진 대로 소쇄원의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시원한 어감이나 뜻으로 인해 옛 문인들이 시어로 많이 활용했다. 또한 소쇄원은 기묘사화로 인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던 양산보(1503~1557)에 의해 건립이 시작돼 오늘에까지 이어졌다.

김 교수에 따르면 소쇄원 한시는 1755년 ‘소쇄원사실’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바 있다. 이후 1963년 양만환 등 후손들에 의해 석인본 3책으로 간행됐다.

이번 책에는 양산보의 ‘소쇄옹 제영’과 ‘면앙정 제영’, 송순의 ‘소쇄정’, ‘소쇄처사를 보내면서’ 외에도 임억령의 ‘지암에게 드림’, 김인후의 ‘소쇄원에 드리다’, 양자징의 ‘소쇄원’, 고경명의 ‘만시’ 등의 시와 번역이 담겨 있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호남 지방문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호남누정 기초목록’, ‘광주문화재단 누정총서 10권’ 등 누정 원림에 대한 기초 자료를 정리했다.


한편 김 교수는 “20여 년 전부터 소쇄원에 대한 몇 편의 논문을 썼고, 틈나는 대로 소쇄원을 찾아서 시문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렸다”며 몇 년 전에는 전남대 ‘소쇄원 연구회’ 회원들과 관련 한시를 함께 읽었는데 그때 읽었던 원고가 바탕이 돼 책을 엮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제월당(霽月堂)에 걸린 김인후(金麟厚)의 소쇄원48영(瀟灑園四十八詠)▣

■제1영 작은 정자의 난간에 의지해 

小亭憑欄

소쇄원의 빼어난 경치

한데 어울려 소쇄정 이루었네

눈을 쳐들면 시원한 바람 불어오고

귀 기울이면 구슬 굴리는 물소리 들려라 

瀟灑園中景

渾成瀟灑亭

擡眸輪颯爽

側耳廳瓏玲

 

소정은 소쇄정이다. 소쇄원의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넓은 축대가 있다. 여기에 초가로 작은 정자를 꾸미고 그 축대 옆엔 물길을 내어 작은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놓아먹여, 손님이 오면 낚시로 건져 회 안주를 삼았다고 한다. 이 정자는 작고 낮은 데 위치했으나 소쇄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영롱한 소리는 물소리이면서 선비가 드나들 때 나는 패옥이 부딪히는 소리이다.

* 삽상颯爽 : 바람이 시원스럽게 불어서 마음이 매우 상쾌함.

* 측이側耳 : 귀를 귀울여 자세히 들음.

* 영롱廳瓏 : 패옥이 부딪치는 소리, 광채가 찬 

 

제2영 시냇가의 글방에서 

枕溪文房

창 밝으니 방안의 첨축들 한결 깨끗하고

맑은 수석엔 책들이 비춰 보이네

정신들여 생각하고 마음대로 기거하니

오묘한 계합 천지 조화의 작용이라네

窓明籤軸淨

水石暎圖書

精思隨偃仰

竗契入鳶魚

 

송시열은 양산보의 행장에서 김인후가 소쇄원에 묵으면서 지은 시에 산은 보지 못해도 원하면 나무는 본다는 말을 인용하여 김인후와 양산보가 현인군자임을 말하였다.

* 침계문방 : 침계는 건물이 시냇가에 위치하여 마치 시내를 베고 있는 듯한 모양 을 이르고, 문방은 글방을 뜻함. 지금의 광풍각을 가리킴.

* 첨축籤軸 : 서첨과 서축. 서첨은 책 겉장에 붙이는 표제 또는 그 표제를 적은 종 이이고, 서축은 글씨를 적은 족자를 가리킴.

* 언앙偃仰 : 부침浮沈, 성함과 쇠함

* 연어鳶魚 : 연어비약鳶飛魚躍의 준말. 천지조화의 작용이 오묘함을 이름. 

 

제3영 높직한 바위에 펼쳐 흐르는 물 

危巖展流

흐르는 물은 바위를 씻어 내리고

하나의 돌이 개울에 가득하네.

가운데는 잘 다듬어졌으니

경사진 절벽은 하늘의 작품이로다. 

溪流漱石來

一石通全壑

匹練展中間

傾崖天所削

 

소쇄원 계곡의 승경을 모두 말한 시다. 물의 흐름은 도통의 흐름을 상징한다. 아래로 학문을 해서 상달하는 뜻이 있다. 무이도가의 일곱번째에서 이런 시상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학도의 뿌리가 뻗어 자손 대대로 지치의 경지인 선계가 될 것을 비는 뜻이 있다.

* 위암危巖 : 깎아지른 듯이 절벽을 이룬 높은 바위. 

 

제4영 산을 등지고 있는 거북바위 

負山鼇巖

등뒤엔 겹겹의 청산이요,

머리를 돌리면 푸른 옥류(玉流)라

긴긴 세월 편히 앉아 움직이지 않고

대와 각이 영주산 보다 낫구나. 

背負靑山重

頭回碧玉流

長年安不抃

臺閣勝瀛州 

 

소쇄원 북동쪽 담장 밖에는 산을 배경으로 '오암'이 있다. 이곳에서도 소쇄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 옆엔 매대가 있고 저 아래 숲속에 선계처럼 광풍각이 보인다.

1영에서는 소정을, 2영에서는 공부하는 모습을, 3영에서는 소쇄원의 핵심인 계곡의 전경을, 4영에서는 소쇄원의 온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 벽옥碧玉 : 푸른 빛이 나는 고운 옥, 석영의 일종

* 영주瀛洲 : 봉래蓬萊, 방장方丈 등과 함께 전설상 삼신산으로 일컫는 신선 세 계의 하나. 

 

제5영 위험한 돌길을 더위 잡아 오르며 

石逕攀危

시냇물 돌을 씻어 흘러내리고

한 줄기 바위 온통 골짜기에 깔렸는데

한 필의 비단인가, 날리는 폭포 그 가운데 펼쳤어라

멋있게 기울어진 낭떠러지 하느님이 만든 거라네 

一逕連三益

 攀閑不見危

塵蹤元自絶

苔色踐還滋

 

소식은 매, 죽, 석을 찬양하면서 '매화는 차가워도 빼어나고, 대나무는 여위어도 오래 살고, 돌은 추해도 문기가 있으니 이것이 삼익의 친우가 된다' 라고 하였다.

* 석경石通 : 돌이 맣은 좁은 길, 또는 돌이 많은 산길.

* 영주瀛洲 : 봉래蓬萊, 방장方丈 등과 함께 전설상 삼신산으로 일컫는 신선 세 계의 하나. 

 

제6영 작은 연못에 고기떼 놀고 

小塘魚泳

네모진 연못은 한 이랑도 되지 못되나

맑은 물받이 하기엔 넉넉하구나

주인의 그림자에 고기떼 헤엄쳐 노니

낚싯줄 내던질 마음 전혀 없어라 

方塘未一畝

聊足貯淸猗

魚戱主人影

無心垂釣絲

 

물고기와 주인의 화순한 모습을 그렸다. 상류에서 나무홈통으로 뽑아내린 물이 소정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흘러든다. 여기서 고기들은 주인과 더불어 즐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사람은 '도'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관어도觀魚圖의 일단이다.

 

* 청의淸漪 : 맑고 잔잔한 물결.

* 어희魚戱 : 물고기가 흥이 나서 놀음. 고기가 헤엄치며 노는 것. 

 

제7영 나무 홈통을 뚫고 흐르는 물 

刳木通流

샘 줄기의 물 홈통을 뚫고 굽이쳐 흘러

높낮은 대숲 아래 못에 내리네

세차게 쏟아져 물방아에 흩어지고

물 속의 인갑들은 잘아서 들쭉날쭉 해 

委曲通泉脉

高低竹下池

飛流分水碓

 鱗甲細參差

 

소쇄원도에 의하면 소정 옆 소당小塘에서 계곡쪽에 모형 물레방아가 걸쳐 있고, 그 아래 바로 소당의 두배쯤되는 큰 못이 있다. 이 못엔 순나무도 자라고 물고기도 있었다.

* 고목刳木 : 나무에 홈통을 파서 만든 홈통나무.

* 비류飛流 : 세차게 흐르는 것. 또는 폭포.

* 수대水碓 : 물방아

* 인갑鱗甲 : 비늘과 껍데기. 물고기와 조개 종류를 함께 이름.

* 참치參差 : 길고 짧거나 들쭉날쭉하여 같지 않음. 

 

제8영 물보라 일으키는 물방아 

舂雲水碓

온종일 줄줄 흐르는 물의 힘으로

찧고 찧어서 절로 공을 이루네

직녀성이 짜놓은 베틀의 비단

조용히 방아소리를 따르네. 

永日潺湲力

舂來自見功

天孫機上錦

舒卷擣聲中

 

이 시는 농촌을 풍경을 사실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양씨 가문의 자손 번성을 기리고 있는 듯하다. 운雲자의 뜻은 8대 후손이라는 의마도 있다. 모형 물레방아의 제작의미를 생각해보고 제목에 구름 '운' 이 쓰인 것을 보아 짐작함이다. 7영과 8영이 또 짝을 이루고 있다.

* 용운舂雲 : 구름을 두고 절구질하는 듯한 모양.

* 천손天孫 : 직녀성을 달리 이르는 말. 사기史記에 직녀는 하늘의 여손女孫이라고 하였다. 

 

제9영 통나무대로 걸쳐 놓은 높직한 다리 

透竹危橋

골짜기에 걸쳐서 죽림으로 뚫렸는데

높기도 하여 하늘에 둥둥 떠있는 듯

숲 속의 연못 원래 빼어난 승경이지만

다리가 놓이니 속세와는 더욱 멀어졌네 

架壑穿脩竹

臨危似欲浮

林塘元自勝

得此更淸幽

 

무이도가 중에는 도통이 끊김을 단교斷橋로 표현했다. 이 시에서는 다리를 놓아 더욱 경치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이는 학도學道의 기운이 소쇄원뿐만 아니라 세속에까지 이어질 조짐을 암시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단서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시에서 나타난다.

* 청유淸幽 : 속세와 떨어진 조촐하고 고요한 곳. 

 

제10영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千竿風響

하늘가 저 멀리 이미 사라졌다가

다시 고요한 곳으로 불어오는 바람

바람과 대 본래 정이 없다지만

밤낮으로 울려 대는 대피리 소리 

已向空邊滅

還從靜處呼

無情風與竹

日夕奏笙篁

 

도통이 잘 이어져 자연의 음악이 울리는 선경이다. 대나무가 높이 자라서 대나무 윗부분은 바람에 흔들려 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선계의 음악으로 듣는다.

* 생우笙竽 :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 

 

제11영 못 가 언덕에서 더위를 식히며 

臺納凉

남쪽 고을은 무더위가 심하다지만

이 곳만은 유달리 서늘한 가을

바람은 언덕 가의 대숲에 일고

연못 물 바위 위에 흩어져 흐르네 

南州炎熱苦

獨此占凉秋

風動臺邊竹

池分石上流

 

48영 중에는 여름을 노래한 것이 특히 많다. 소쇄원은여름을 지내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을 아끼며 더위를 피하기 위한 제일의 장소로 여기는 이 시에서 김인후는 양산보에 대한 부러움마저 가지고 있다.

* 납량納凉 : 더위를 식힘. 

 

제12영 매대에서의 달맞이 

梅臺邀月

나무숲 쳐내니 매대는 확 트여서

달 떠오는 때에 더욱 알맞아

구름도 다 걷혀감이 가장 사랑스러운데

차가운 밤이라 아름다운 매화 곱게 비추네 

林斷臺仍豁

偏宜月上時

最憐雲散盡

寒夜暎氷姿

 

제 11영이 지대를 노래했으니 그 댓구로 매대를 노래했다. 구름을 헤치고 내민 반가운 달의 모습이 얼음에 비치는 모습에 청초한 선비의 기상을 나위없이 드러내고 있다.

* 매대梅臺 : 심어놓은 매화가 자라는 언덕. 

* 빙자氷姿 : 氷姿玉質. 옥처럼 맑고 깨끗한 살결과 아름다운 자질. 매화의 이칭. 

 

제13영 넓은 바위에 누워 달을 보며 

廣石臥月

나와 누우니 푸른 하늘에 밝은 달이라

넓은 바위는 바로 좋은 자리가 됐네

주위의 숲에는 그림자 운치 있게 흩어져

깊은 밤인데도 잠 이룰 수 없어라 

露臥靑天月

端將石作筵

長林散靑影

深夜未能眠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바위에서 이슬을 맞으며 밝은 달을 쳐다본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라기 보다는 너무나 좋은 자연에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예찬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노와露臥 : 비나 이슬을 가리는 물건도 없이 그대로 눕는 것. 

* 청영淸影 : 솔이나 대나무 등의 그림자를 운치 있게 이르는 말. 

 

제14영 담장 밑구멍을 뚫고 흐르는 물 

垣竅透流

한 걸음 한 걸음 물을 보고 지나며

글을 읊으니 생각은 더욱 그윽해

사람들은 진원을 찾아 거슬러 가지도 않고

부질없이 담 구멍에 흐르는 물만을 보네 

步步看波去

行吟思轉幽

眞源人未沂

空見透墻流

 

지금도 담장 밑에 도랑을 내어 예전처럼 물이 흐르고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줄기를 두고 그 위에 담을 쳐놓음은 하나의 신기에 속한다. 오곡류는 바로 그 아래이며 좌측으로 오곡문을 지나면 뒷산으로 이어진다.

* 투류透流 : 透墻流. 담을 뚫고 흐르는 물. 

* 행음行吟 : 거닐면서 글을 읊는 것. 

 

제15영 살구나무 그늘 아래 굽이도는 물 

杏陰曲流

지척에 물줄기 줄줄 내리는 곳

분명 오곡의 구비 도는 흐름이라

당년 물가에서 말씀하신 공자의 뜻

오늘은 살구나무 가에서 찾는구나 

咫尺潺湲池

分明五曲流

當年川上意

今日杏邊求

 

'상생相生'의 원리를 노래했다.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주인만에서 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물이 굽이쳐 흘러감을 노래한 것으로도 생각된다. 오곡수는 내원의 상류로서 담장 바로 아래부터 시작한다. 물이 흐름을 처음부터 상생으로 축복한 뜻이 있다. 동봉의 살구나무는 약효가 있다는 고사가 있는데, 여기서 행림은 의원을 뜻한다. 불로장생은 누구나 바라는 꿈이다.

* 잔원潺湲 : 물이 줄줄 흐르는 모양. 

* 천상의川上意 : 공자가 川上에서 ‘세월은 물과 같아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간 다’고 한 말의 뜻. 

 

제16영 석가산의 풀과 나무들 

假山草樹

인력을 들이지 않고 만든 산이지만

조물造物이라 도리어 석가산 됐네

형세를 좇아 우거진 숲을 일으켰구나

역시 산야 그대로 이네. 

爲山不費人

造物還爲假

隨勢起叢林

依然是山野

 

광풍각 아래 물가에 생긴 조그만 가산假山이 있다. 여기에 작은 화초와 나무들을 심어 산처럼 꾸몄다. 가산은 축소된 자연으로 인공적인 수식을 가하여 감상하는 우리네 조상들의 취미였다.

* 가산假山 : 석가산石假山의 준말. 정원 등에 돌을 모아 인공적으로 만든 산. 

* 총림叢林 : 잡목이 우거진 숲 

 

제17영 천연의 소나무와 바윗돌 

松石天成

높은 뫼에서 굴러 내린 조각 바위들

뿌리 얽혀 서있는 두어 자 소나무

오랜 세월에 몸엔 꽃을 가득 피우고

기세 곧아서 하늘 높이 솟아 푸르네 

片石來崇岡

結根松數尺

萬年花滿身

勢縮參天碧

 

소쇄원 가장자리는 대나무를 심고 그 안쪽으로 소나무를 심어 풍치를 돋운 것을 알 수 있다. 소나무도 대나무와 같은 시적 상상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 천성天成 : 자연스럽고 도리에 맞는 일. 

* 숭강崇岡 : 높은 산. 숭산. 

* 참천參天 : 공중에 높이 솟아 늘어짐. 

 

제18영 바윗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 

遍石蒼蘚

바윗돌 오랠수록 구름 안개에 젖어

푸르고 푸르러 이끼 꽃을 이루네

흔히 구학을 즐기는 은자들의 본성은

변화함에는 전연 뜻을 두지 않는다네 

石老雲煙濕

蒼蒼蘚作花

一般丘壑性

絶義向繁華

 

오를 때 밟을수록 재미있던 이끼가 바위에 덮힌 모습을 그윽하게 묘사하고 있다. 김인후는 이 시를 통하여 여기야말로 '도통'이 끊기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17영의 송석에 대하여 18영에서 편석으로 짝을 맞췄다.

 

* 구학丘壑 : 언덕과 골짜기. 은자隱者의 주거住居 또는 그 즐거움을 비유. 

 

▣제19영 평상바위에 조용히 앉아 

榻巖靜坐

낭떠러지 바위에 오래도록 앉았으면

깨끗하게 쓸어가는 계곡의 시원한 바람

무릎이 상한 데도 두렵지 않아

관물하는 늙은이에겐 가장 알맞네 

懸崖虛坐久

淨掃有溪風

不怕穿當膝

便宜觀物翁

 

'탑암'은 소정과 광풍각 중간쯤 계곡 아래에 바로 물이 흐르는 곳에 접해있는 바위인데 여기 앉으면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다. '세상 구경하는 늙은이'는 송의 안빅낙도하던 요윤공에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소옹의 책 관물편을 말한 것으로 신선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허자虛坐 : 음식을 취하지 않고 속을 비우고 앉아 있는 것.컫는 신선 세 계의 하나. 

 

제20영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 비껴 안고 

玉湫橫琴

소리내는 거문고 타기 쉽지 않는 건

세상에는 종자기같은 친구 없어서라

맑고 깊은 물에 한 곡조 울리고 나면

마음과 귀만은 서로 안다네 

瑤琴不易彈

擧世無種子

一曲響泓澄

相知心與耳

 

이는 양산보와 김인후의 사귐을 나타낸 것 같다. 사귐을 고귀하게 생각하면서 '도'로 맺어진 우정을 나타냄이다. '옥추횡금'은 조담 바로 위에 편편한 바위에서 그 아래 폭포소리를 들으며 거문고를 타는 풍류를 나타낸 말로 진실한 옛 사람의 사귐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 옥추玉湫 : 구슬처럼 맑고 깨끗한 연못, 또는 폭포. 

* 요금瑤琴 :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거문고. 

* 홍징泓澄 : 물이 깊고 맑음. 

 

제21영 빙빙도는 물살에 술잔 띄워보내며 

洑流傳盃

물살 치는 돌 웅덩이에 둘러앉으면

소반의 술안주 뜻한 대로 넉넉해

빙빙 도는 물결에 절로 오고가니

띄우는 술잔 한가로이 서로 권하네 

列坐石渦邊

盤蔬隨意足

洄波自去來

盞斝閒相屬

 

조담槽潭과 폭포 사이에 물이 소용돌이 치는 곳이 있다. 이 주위에 지기知己와 둘러 앉아 풍성한 소채를 안주 삼아 술을 즐긴다. 술잔을 물에 띄우면 잔은 물결을 따라 저절로 한바퀴를 빙돌아간다.

* 전배前盃 : 술자리에서 술잔을 전함.

* 수의隨意 : 자기 뜻대로 하는 것. 뜻을 좇아서. 

 

제22영 평상바위에서 바둑을 두며 

床巖對棋

평상바위 조금은 넓고 평평하여

죽림에서 지냄이 대부분이라네

손님이 와서 바둑 한판 두는데

공중에서우박이 흩어져 내려 

石岸稍寬平

竹林居一半

賓來一局碁

亂雹空中散

 

소정에서 폭포를 건너면 '상암'이 있다. 이 시를 보면 소쇄원의 주인이 마치 자기인 양 시를 쓰고 있다. 양산보와 거의 함께 이곳에 기거하였음을 이런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바둑알을 놓는 소리가 우뢰로 비유된 시원한 이 시는 사귐과 복류에서 술을 나누고 상암에서 바둑으로 즐기는 신선같은 삶의 표현이다.

* 난박亂雹 : 어지럽게 내리는 우박. 

 

제23영 긴 섬돌을 거닐며 

脩階散步

차분히도 속세를 벗어난 마음으로

소요하며 섬돌 위를 구애 없이 걷네

노래할 땐 갖가지 생각들 한가해지고

읊고 나면 또 희로 애락의 속정 잊혀지네 

澹蕩出塵想

逍遙階上行

吟成閒箇意

吟了亦忘情

 

흥이 나서 읊고 구태어 기억하려 애쓰지 않고 곧 잊는 것이 부담없이 무젖은 '달도達道'의 삶이다. 만사가 지루할 때 툭툭 털고 산보에 나서는 유유자적한 여유가 그윽하다. '도'에 젖으면 이런 무연의 즐김이 있을까.

* 수계脩階 : 길게 쌓아올린 섬돌.

* 담탕澹蕩 : 차분하여 침착한 모양. 

 

제24영 홰나무 가 바위에 기대어 졸며 

倚睡槐石

몸소 홰나무 가의 바위를 쓸고서

아무도 없이 홀로 앉아 있을 때에

졸다가 놀래어 일어서는 건

의왕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라 

自掃槐邊石

無人獨坐時

睡來驚起立

恐被蟻王知

 

당나라 사람 이공좌가 남가기 라는 글을 지었는데, "순우분은 광릉에 사는 사람으로 그 집 남쪽에 오래된 홰나무가 있었다. 분은 자기 생일에 실컷 취하여 그 홰나무 아래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괴안국에 이르러 남가태수가 되어 20년을 봉직하고 장가들어 5남 2녀를 낳았으며 영화와 영달을 마음껏 누렸으나, 나중에 적과 더불어 싸우다가 패배하고 공주도 세상을 떠나 자신도 상처를 입어 돌아왔다. 깨어보니 동자가 빗자루로 뜰을 쓸고 있고 해는 아직 떨어지지 않고 술동이는 그대로 있었다. 홰나무의 구멍을 찾아보니 남가군이라는 괴수 나뭇가지 밑에 개미구멍이 있었으며, 꿈에서 본 왕이란 곧 의왕으로, 즉 개미왕을 나타내었다." 후세 사람들이 꿈을 들어 '남가'라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짐짓 남가일몽이 아니라 현세에서 누리는 신선을 자부한다. 23영과 함께 제 2단락의 결사로서 선계의 감상을 노래했다. 김인후는 소쇄원을 찾아온 나그네이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노래 했다. 이것만 보아도 둘의 사귐이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2영가지인 제 1단락보다 더욱 무르익은 선경을 그리고 있다.

* 의수倚睡 : 의괴수倚槐睡를 말함. 홰나무에 기대어 졸음.

* 의왕蟻王 : 개미의 왕. 중국 당나라의 이공좌가 지은 대괴안국의 고사와 의왕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어구임. 

제25영 조담에서 미역을 감고 

槽潭放浴

맑은 조담 깊어도 바닥이 보이고

미역을 감고나도 맑기는 여전해

미덥지 않은 건 인간 세상이라

염정을 걷던 발 때도 씻어버리네 

潭淸深見底

浴罷碧粼粼

不信人間世

炎程脚沒塵

 

기수에서의 목욕을 이렇게 실현하고 있다. 목욕에도 의미를 부여하였다. 세상 일엔 좋은 것처럼 보이나 해로운 것도 있고, 해로운 것처럼 보이나 좋은 경우도 있다.

* 조담槽潭 : 커다란 말 구유통 모양의 물이 담긴 연못.

* 인린粼粼 : 물이 맑아 바닥의 돌이 보이는 모양.

* 염정炎程 : 찌는 듯한 여름날에 걸어가는 길. 

 

제26영 다리 너머의 두 그루 소나무 

斷橋雙松

콸콸 소리내며 섬돌 따라 흐르는 물

다리 너머에 두 그루 소나무 서 있네

옥이 나는 남전은 오히려 일이 분주해

그 다툼은 조용한 여기에도 미치리라 

 

무이도가 중에서는 '도'를 전하고 싶어도 단교가 되어 사람이 찾아들지 않음을 노래하였는데, 이 시에서는 세속의 번거로움이 선지에 스며들까 하여 오히려 단교를 다행으로 여기는 심사가 있다.

 

제27영 낭떠러지에 흩어져 자라는 소나무와 국화 

散崖松菊

북쪽의 고개는 층층이 푸르고

동쪽 울타리엔 점점이 누런 황국이라

낭떠러지 장식하여 여기저기 심어 있고

세밑 늦가을 풍상에도 버티고 섰네 

北嶺層層碧

東籬點點黃

緣崖雜亂植

歲晩倚風霜

 

임금을 향한 충성을 실토했다. 아득히 임금 계신 곳을 바라보아 푸른 기상으로 수놓고 도잠의 국화꽃으로 충정을 호소하고 있다.

* 세만歲晩 : 세밑. 한 해의 마지막 무렵. 

 

제28영 받침대 위의 매화 

石趺孤梅

매화의 신기함을 바로 말하려거든

모름지기 돌에 꽂힌 뿌리를 보아야 해

맑고 얕은 물까지 겸하고 있어

황혼이면 성긴 그림자들 드리우네 

直欲論奇絶

須看揷石根

兼將淸淺水

疎影入黃昏

 

매화의 굳센 절조를 노래했다. 27영의 소나무, 국화와 짝을 맞춘 것은 선비의 본분을 강조한 뜻이다. 25영, 26영에서 백성과 임금과 근심하며 살아가는 선비의 모습을 나위없이 표현하고 있다.

* 석부石趺 : 조각품이나 비석 등의 받침.

* 소영疎影 : 드문드문 비치는 성긴 그림자. 

 

제29영 좁은 길가의 밋밋한 대나무들 

夾路脩篁

눈에 덮인 대 줄기 곧아서 창창하고

구름에 싸인 대 끝 솔솔바람에 간드러지네

지팡이 짚고 나가 묵은 대껍질 벗기고

띠를 풀어서 새 줄기는 동여준다네 

 

길을 넓히느라고 띠로 새줄기를 동인다. 지기들의 왕래를 위해서다. 대밭의 묘사를 실감나게 하고 자연귀의의 몰입경을 그리고 있다.

 

제30영 바위틈에 흩어져 뻗은 대 뿌리 

迸石竹根

흰 대 뿌리 티끌에 더럽혀질까 하면서도

시시로 돌 위에 뻗어 나오네

어린 대 뿌리 몇 해를 자라났는고

곧은 마음은 오랠수록 더욱 모질다네 

霜根牌染塵

石上時時露

幾歲長兒孫

貞心老更苦

 

소나무, 국화와 매화를 노래하고 나서 대나무는 두 수나 불렀다. 28영에서 매화화 물의 조화를 노래하듯 이 시에서는 대나무와 바위를 어울리게 지었다. 변하지 않는다는 바위에 절조의 대나무가 뿌리를 서려 두어 '곧은 속은 갈수록 쇤다'고 소쇄원 주인의 인간적 성숙을 기렸다.

* 정심貞心 : 정조를 굳게 지키는 마음. 또는 정절한 마음. 

 

제31영 낭떠러지에 집 짓고 사는 새 

絶崖巢禽 

벼랑 가에서 펄펄 나는 새

때때로 물 속에 내려와 노네

마시고 쪼는 건 제 심성 그대로요

본디 잊었다네, 백구와 저항하기를 

翩翩崖際鳥

時下水中遊

飮啄隨心性

相忘抵白鷗

 

새가 천성대로 사는 즐거움은 바로 양산보의 삶이다. 순천의 이치로 살아가는 한마리 물새가 되어 있는 실상이 오붓하다. 낭떨어지에 나는 새가 물에 비치니 물 속에서 노니는 것으로 보인다.

* 소금巢禽 : 둥지에 사는 새. 소조巢鳥.

* 음탁飮啄 : 새가 물을 마시고 모이를 쪼음. 

 

제32영 저물어 대밭에 날아드는 새 

叢筠暮鳥 

바위 위 여러 무더기의 대나무 숲

상비의 눈물 자국 아직도 남았어라

산새들 그 한을 깨닫지 못하고

땅거미 지면 제 깃 찾아들 줄 아네 

石上數叢竹

湘妃餘淚班

山禽不識恨

薄暮自知還

 

높은 경지에 대한 열열한 갈망을 노래한 시다. '상비'는 중국 요임금의 딸인 아황과 여영으로, 순임금에게 시집가 순임금이 죽은 뒤, 상수에 몸을 던져 신이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 총균叢筠 : 총죽叢竹. 무더기로 난 대.

* 상비湘妃 : 상군湘君, 또는 상부인湘夫人을 말함. 상수湘水의 여신.

* 박모薄暮 : 땅거미. 해가 진 뒤의 어스름. 

 

제33영 산골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 

壑渚眠鴨

하늘이 유인에게 부쳐준 계책은

맑고 시원한 산골짜기 샘물이라네

아래로 흐르는 물 모두 자연 그대로라

나눠 받은 물가에서 오리 한가히 조네 

天付幽人計

淸冷一澗泉

下流渾不管

分與鴨閒眠

 

물은 무이도가에서 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려지듯,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윗 성인으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통서에 힘입어, 한마리 오리가 타고난 대로 조는 도취경이 묘사되었다. 자연과 '도'와의 혼열일체로 이렇게 태평한 세상이다.

* 학저壑渚 : 산골짜기 물가.

* 유인幽人 : 어지러운 속세를 피하여 깊숙한 곳에 숨어사는 사람. 

 

제34영 세차게 흐르는 여울물가의 창포 

激湍菖蒲

듣자니 여울 물가의 창포

아홉 마디마다 향기를 지녔다네

날리는 여울 물 날로 뿜어대니

이 한가지로 염량을 꿰뚫는다오 

聞說溪傍草

能含九節香

飛湍日噴薄

一色貫炎凉

 

선경이야 아홉 가지 향기가 그득하고 더위와 추위의 구별이 없을 것이다. 권세에 아첨하였다 해도 세력이 꺾이면 푸대접 받는 것이 세속의 일이다. 세속에서 소쇄원을 일러 이렇게 기린다는 뜻이 은연중 담겨져 있다.

* 격단激湍 : 몹시 세차게 흐르는 여울.

* 염량炎凉 : 더위와 서늘함을 뜻하여 세력의 성함과 쇠함을 비유. 

 

제35영 빗긴 처마 곁에 핀 사계화 

斜簷四季

정작 꽃 중의 으뜸으로 치는 사계화

사시로 청화함을 갖추어서인가

초가지붕 비스듬해 더욱 운치 있어라

매화와 대나무도 곧 알아준다네

定自花中聖

淸和備四時

茅塹斜更好

梅竹是相知

 

사계라는 꽃을 찬미한 시다. 매화, 대나무와 맞먹는 좋은 꽃으로 칭송했다. 강희안의 화목구품에 의하면, 일품에는 송, 죽, 연, 국, 매이고 '사계'는 3품에 속한다. 이는 사계화를 매죽의 위계로 추기는 노래이다. 사계화는 장미의 일종인데 3, 6, 9, 12월에 개화하여 '사계'라는 이름을 얻었다.

* 사첨斜簷 : 비스듬히 빗껴 보이는 초가 지붕의 처마.

* 사계四季 : 사계화를 말함. 월계화月季花, 장춘화長春花 

 

제36영 복숭아 언덕에서 맞는 봄 새벽 

斜簷四季

복숭아 언덕에 봄철이 찾아드니

만발한 꽃들 새벽 안개에 드리워 있네

바윗골 동리 안이라 어렴풋하여

무릉계곡을 건너는 듯하구나 

定自花中聖

淸和備四時

茅塹斜更好

梅竹是相知

 

안개에는 '도'에 이르는 아득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이구곡'에 표현되어 있다. 여기 무릉은 도학의 경지이지 선교의 도원이 아니다. 무이도가의 아홉번째에서 말한 '별유천지'일 뿐이다.

* 도오桃塢 : 도화오桃花塢를 말함. 복사꽃 핀 언덕 

 

제37영 오동나무 언덕에 드리운 여름 그늘 

桐臺夏陰

묵은 오동 줄기 바위 벼랑까지 이어 있어

우로의 혜택이라 항시 맑게 그늘지네

순임금의 은혜 길이길이 밝혀져서

온화한 남풍 지금까지 불어주네 

巖崖承老幹

雨露長淸陰

舜日明千古

南風吟至今

 

제 4단락의 첫 시다. 제 1단락에서는 '도'에 나아가는 실상을 노래했다면 이 단락에서는 무젖은 도취의 즐김을 노래했다.

이 무르익은 선경은 요순시대를 말하는 이상세계다. 우로는 임금님의 은덕이요 순일과 남풍은 '도'가 실천되던 시대를 말하고 있다.

* 순일舜日 : 중국 순임금이 나라 다스리던 태평한 때.

* 남풍南風 :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으로 임금의 덕이나 은혜를 비유. 

 

제38영 오동나무 녹음 아래 쏟아지는 폭포 

梧陰瀉瀑

무성한 나뭇가지 녹엽의 그늘인데

어젯밤 시냇가엔 비가 내렸네

난무하는 폭포 가지 사이로 쏟아지니

돌아보건대 봉황새 춤추는 게 아닌가 

扶疎綠葉陰

昨夜溪邊雨

亂瀑瀉枝間

還疑白鳳舞

 

무이도가의 일곱번째에서 온고지신하는 전통의 맥락을 그린 것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는 학도의 전통을 상징한다. 오동나무를 심는 뜻은 봉황을 기다림이다. 오동나무 사이로 보이는 폭포를 봉황의 춤으로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 사폭瀉瀑 : 쏟아지는 폭포.

* 부소扶疎 :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무성하게 뻗어가는 모양. 

 

제39영 버드나무 물가에서의 손님 맞이 

柳汀迎客

나그네 찾아와서 사립문 두드리매

몇 마디 소리로 낮잠을 깨었네

관을 쓰고 미처 인사드리지 못했는데

말 매놓고 버드나무 물가에 서 있네 

有客來敲竹

數聲驚晝眠

扶冠謝不及

繫馬立汀邊

 

버드나무를 심고 거기서 손님을 맞이 하였다. 벼슬은 양산보와는 무관한 것, 찾아오는 이도 세속의 문제를 안고 오는 이가 아니다. 남도 부러워하는 승지에서 '도'와 더불어 사는 양산보를 기린 시다.

* 고죽敲竹 : 고죽비敲竹扉. 叩門으로, 집앞에 이르러 대사립문을 두드림. 

 

제40영 골짜기 건너편 연꽃 

隔澗芙蕖

조촐하게 섰는 게 훌륭한 화훼花卉로다

한가로운 모습 멀리서 볼 만하고

향긋한 기운 골짝을 건너와 풍기네

방안에 들이니 지란보다 더 좋구나 

淨植非凡卉

閒姿可遠觀

香風橫度壑

入室勝芝蘭

 

주무숙이 애련설에서 '진흙구덩이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사롭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비의 바른 모습이다. 양산보를 꽃에 비유하였다.

* 부거芙蕖 : 부용芙蓉. 연꽃을 달리 이르는 말. 

 

제41영 연못에 흩어져 있는 순채 싹 

散池蓴芽

장한이 강동으로 귀향한 후로

풍류를 아는 이 그 누구던고

반드시 사랑하는 농어회 같이하지 않더라도

기다란 순채 싹 맛보고자 하네 

張翰江東後

風流識者誰

不須和玉膾

要看長氷絲

 

순나물은 진의 장한이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했을 때의 고향 맛이다. 농어회야 없지만 그래도 그에 버금할 만큼 즐길 수 있다는 풍류를 앞세운 주장이다. 예전에는 고기가 놀고 순나물이 자라던 작은 인공 못을 표현함이다.

* 순아蓴芽 : 순채의 싹.

* 장한강동張翰江東 : 중국 진나라의 장한이 자기 고향의 명산인 순갱과 노회를 먹 기 위해 벼슬을 그만 두고 강남으로 귀향했다는 고사.

* 옥회玉膾 : 좋아하는 맛있는 회. 여기서는 농어회.

* 빙사氷絲 : 고기 비늘 모양의 무늬가 있는 비단의 뜻. 여기서는 순채의 싹. 

 

제42영 산골물 가까운에 핀 백일홍 

櫬澗紫薇

세상엔 무성히 자란 꽃이라도

도무지 열흘 가는 향기 없다네

어찌하여 산골 물가의 배롱나무만은

백일 내내 붉은 꽃을 대하게 하는고 

世上閒花卉

都無十日香

何如臨澗樹

百夕對紅芳

 

소쇄원 계곡에서 식영정 앞에 이르는 시냇물가에는 자미(백일홍)가 줄지어 곱게 피어 있어 이 내를 자미탄이라 부른다. 이런 승경에서 소쇄원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무궁함을 자랑했다.

* 화훼花卉: 꽃이 피는 풀. 꽃. 

 

제43영 빗방울 떨어지는 파초잎 

滴雨芭蕉

어지러이 떨어지니 은 화살 던지는 듯

푸른 비단 파초잎 높낮이로 춤을 추네

같지는 않으나 사향의 소리인가

되레 사랑스러워라. 적막함 깨뜨려 주니 

錯落投銀箭

低昻舞翠綃

不比思鄕廳

還憐破寂寥

 

파초는 본래 고향을 떠나온 식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상을 담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즐기기 위하여 심은 파초이기에 적막을 깨는 것도 밉지 않다. 비를 은화살로, 파초잎의 흔들림을 푸른 비단 춤으로 비유하고 있다.

* 착락錯落 : 뒤섞임.

* 저앙低昻 : 낮아졌다 높아졌다 하는 것. 또는 낮추었다 높였다 하는 것.

* 적료寂寥 : 고요하고 쓸쓸한 것. 

 

제44영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 

映壑丹楓

가을이 드니 바위 골짜기 서늘하고

단풍은 이미 서리에 놀래 물들었네

아름다운 채색 고요하게 흔들리니

그 그림자 거울에 비친 경치로다 

秋來巖壑冷

楓葉早驚霜

寂歷搖霞彩

婆娑照鏡光

 

장설의 시에 이라고 한 것을 바탕으로 하였다. 고요한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나무가지를 거울에 비친 것으로 비유하여 맑게 묘사하고 있다.

* 적력寂歷 : 적막寂寞. 고요하고 쓸쓸함.

* 파사婆娑 : 그림자 흔들리는 모양 

 

제45영 평원에 깔려 있는 눈 

平園鋪雪

산에 낀 검은 구름 깨닫지 못하다가

창문 열고 보니 평원엔 눈이 가득

섬돌에도 골고루 흰눈 널리 깔리어

한적한 집안에 부귀 찾아들었네 

不覺山雲暗

開窗雪滿園

階平鋪遠白

富貴到閒門

 

겨울을 배경으로 한 노래로 두 영이 있는데 그 중의 한 작품이다. 축복의 서설이다. 부귀는 덕이 높은 이나 가질 수 있는 혜택으로 믿었던 김인후가 소쇄원을 찬양하였다.

 

제46영 눈에 덮인 붉은 치자 

帶雪紅梔

듣건대 치자꽃 여섯 잎으로 핀다더니

사람들은 그 자욱한 향기 넘친다 하네

붉은 열매 푸른 잎과 서로 어울려

눈서리에도 맑고 곱기만 하여라 

曾聞花六出

人道滿林香

絳實交靑葉

淸姸在雪霜

 

치자의 꽃과 향기, 열매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눈서리가 앉은 붉은 치자 열매는 높은 절조의 단심이 아닌가. 선비의 마음을 표현한 시다.

* 육출六出 : 치자꽃. 육출화六出花(꽃잎이 여섯인 꽃)인 치자를 가리킴.

* 임향林香 : 다북다북 풍기는 향기. 자욱하게 많이 풍기는 맑은 향기. 

 

제47영 애양단의 겨울 낮맞이 

陽壇冬午

애양단 앞 시냇물 아직 얼어 있지만

애양단 위의 눈은 모두 녹았네

팔 베고 따뜻한 볕 맞이하다 보면

한낮 닭울음소리가 타고 갈 가마에 들려 오네 

壇前溪尙凍

壇上雪全消

枕臂延陽景

鷄聲到午橋

 

고요와 한가에서 '도'를 깨우치는 실상이 보인다.

* 동오冬午 : 겨울에 맞는 낮. 겨울의 점심 때.

* 양경陽景 : 태양의 빛. 또는 햇볕. 

 

제48영 긴 담에 써 붙인 소쇄원 제영 

長垣題詠

긴 담은 옆으로 백 자나 되어

하나하나 써 붙여 놓은 새로운 시

마치 병풍 벌려 놓은 듯하구나

비바람만은 함부로 업신여기지 마오 

長垣橫百尺

一一寫新詩

有似列屛障

勿爲風雨欺

 

47영과 48영은 제 4단의 끝이자 48영 전체의 결사이기도 하다. 무르익은 '도'의 승경이 영원하기를 비는 마음이 빚은 시다.

* 장원長垣 : 긴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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