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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隱峯全書卷十三] 己 卯 遺 蹟◈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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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봉전서(隱峯全書)안방준(安邦俊)

[隱峯全書卷十三]

◈ 己 卯 遺 蹟 ◈

성명생년몰년자호본관시호

안방준(安邦俊)
1573년(선조 6)
1654년(효종 5)
사언(士彥)
빙호(氷壺), 우산(牛山), 은봉(隱峯)
죽산(竹山)
문강(文康)

[편찬및간행]

저자의 시문은 1680년대 쯤에 門人南川 徐景翬編次한 것으로 보인다. 尹拯이 쓴 題不立黨師友淵源說後(明齋遺稿 卷32)에는 隱峯門人 徐景翬隱峯遺文을 편차하여 牛山集 5권을 만든 뒤에 平日言行을 모아서 尊聞錄 2권을 만들었으며 또 先生章疏書尺 가운데에서 朋黨論斥한 글을 뽑아 不立黨師友淵源說을 엮었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글은 尹拯의 문집에 1680년대의 글들 사이에 실려 있다.

그 뒤 1769(영조 45)5대손 安昌賢이 문집을 간행하고자 宋德相에게 서문을 받았다. (서문에는 撰者가 지워져 있으나 내용으로 보아 宋德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서문에 의하면, 저자의 저술 가운데 抗議編, 李大源傳, 湖南義錄, 己卯錄, 混定編 등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고 아직 간행되지 못한 家集 약간 권을 간행하기 위해 安昌賢宋德相에게 서문을 청하였음을 알 수 있다. 安昌賢宋德相, 金鍾厚, 李基敬 등의 교정을 거쳐 編次를 정하여 10권의 定稿本을 만들고, 1773(영조 49)에 간행을 마친 뒤 李基敬에게 발문을 받았다초간본이 초간본은 書名牛山先生集이며 105책의 木活字本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산3648-45-24)과 규장각(3428-128)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장본에는 권수에 宋德相이 지은 서문, 권미에 李基敬이 지은 발문과 5대손 安昌賢이 지은 後識가 실려 있는데, 내용 가운데 宋德相李基敬의 이름이 먹으로 지워져 있다. 규장각장본에는 宋德相의 서문이 없으며 安昌賢이 지은 後識에도 宋德相의 이름이 削去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이 초판본이며 규장각장본은 후쇄본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은 7~8, 규장각장본은 3~4가 빠진 缺本이다.

105책의 초간본은 序文跋文 後識가 있고, 序文 다음에는 目錄이 있다. 1에는 오언절구 17, 칠언절구 12, 오언율시 5, 칠언율시 3, 고시 10수가 실려 있으며, 2에는 10, 3에는 23, 4에는 墓文 1, 行狀 1, 遺事 6, 5에는 己丑記事, 6에는 壬辰記事, 7에는 釜山記事, 露梁記事, 晉州敍事, 8에는 三寃記事를 비롯한 記事 3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권9에는 祭文 1, 2, 1, 題跋 8, 1, 1편이 실려 있고, 10에는 雜著 4편이 실려 있다.

初刊할 때에 安昌賢이 쓴 後識, 抗議編, 湖南義錄, 混定編, 己卯錄 등은 別本으로 印出된 것도 있고 분량이 너무 많은 것도 있기 때문에 原集에 함께 싣지 아니한다는 말이 들어 있고, 宋德相이 쓴 서문에도 이 著述들이 이미 세상에 나와 있다고 했으니, 이 저술들은 1769년 이전에 이미 印本 또는 謄寫本으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己卯遺蹟安昌賢이 저자의 自編草稿를 바탕으로 謄寫, 校勘하여 간행을 시도하다가 한 뒤, 安昌賢子 安壽麟이 부친의 뜻을 이어 간행하고자 1799(정조 23)宋煥箕에게 서문을 받았다. 己卯遺蹟의 간행 시기는 미상이나 문집이 重刊될 때에는 간행본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草稿3권이었던 듯하며 저자의 문집 중간본에는 6권으로 편정되어 실려 있다. 混定編錄前集, 後集, 別集, 續集으로 나누어져 있고 189책인데, 6대손 安壽祿이 교정하고 편정하였다. 1799년에 宋煥箕가 서문을 지었으며 1824년에 安壽祿이 발문을 지었다. 卷帙이 많아서 문집 중간본이 간행될 때까지 謄寫本으로 남아 있었다. 抗議新編1614년에 李廷龜가 서문을 썼으며, 1619년에 刊役을 시작하여 1621년에 목활자본 42책으로 간행을 완료하였다. 抗議新編重峯集全篇이 수록되어 있다.

年譜는 저자의 7대손 安命紀가 정리하여 初刊하였고, 그 뒤 6대손 安壽祿子 安命允과 함께 宋子大全年譜에 따라 1836년경에 增刪하고 安命宣을 시켜 剛齋 宋穉圭校正을 거치게 하였다. 原集重刊할 무렵에 다시 安命宣8대손 安橚이 교정하고 安命玄 등과 함께 증보한 뒤 錦谷 宋來熙에게 서문을 청하고 이때에 질정받아 重刊本을 완성하였다. 附錄(遺事)安壽祿安命允增補, 校正하였고, 安橚趙秉悳에게 부탁하여 刪定하였다.

그 뒤 安壽祿 등은 初刊本 牛山集己卯遺蹟, 混定編錄, 抗議新編, 年譜, 附錄 등을 合編하여 隱峯全書(원집 38권 부록 2)定稿本을 만들고 1855년에 鄭胄邦에게 부탁하여 謄本 2을 만들어 간행에 대비하였다. 隱峯全書의 원집은 牛山集과 비교해 볼 때, 일부 증보, 재편이 있었으며, 전체적인 편차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이 정고본을 저자의 宗孫 安永煥族叔 安廷洙, 族兄 安吉煥, 族弟 安琪煥 등과 함께 당시의 寶城郡守 兪建煥의 도움을 받아 1864년에 寶城 大溪書院에서 木活字로 중간하였다.중간본현재 국립중앙도서관(3468-45-18), 규장각(5349), 장서각(4-6394) 등에 소장되어 있다.

隱峯全書合編附錄(年譜, 遺事)1969년에 별도로 三刊되었다. 중간본 隱峯全書附錄과 비교해 보면, 중간본에 실린 내용 이외에 年譜에는 1864년 이후 1969년까지의 내용이 增補되었으며, 遺事에는 尤庵 宋時烈淵齋 宋秉璿이 지은 신도비명, 尤庵이 지은 신도비명에 대해 宋在晟이 쓴 神道碑銘後識가 추가되었고, 1969년에 宋在直이 지은 附錄重刊跋이 실려 있다. 附錄三刊할 때에 續集을 함께 간행하였다. 續集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권수에 續集凡例가 있고, 각 권 권수에는 目錄이 있다. 1에는 遺墨으로 된 23, 2, 1수가 실려 있으며, 2續集附錄으로 募義文, 碑銘, 氷月亭記, 神道碑顚末 9편이 실려 있다.附錄三刊續集初刊本附錄續集大田 以文社에서 간행한 石板本으로 현재 규장각(819.52-Anle-v.1~3),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741)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 외 저자에 관련되는 저술에는 隱峯師友簡牘21책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후손들이 編成한 것으로서 安壽麟淨寫하여 1796년에 宋煥箕에게 서문을 받았다. 刊本은 목활자본인데 간행 시기는 미상이다. 전체가 師友들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이며, 권수에는 師友錄이 실려 있는데 이 師友錄에는 成渾, 朴宗挺, 金長生, 李廷龜, 金瑬, 李貴를 비롯하여 총 59명에 대한 간략한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44-6)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864년에 목활자로 간행된 중간본으로 규장각장본이다. 그중 권5~6, 17~20, 31~34補寫本이어서 동일본인 同館藏本(3428-285)으로 교체하였다.

初刊序(宋德相 撰), 初刊跋(李基敬 撰), 初刊後識(安昌賢 撰), 己卯遺蹟序(宋煥箕 撰), 混定編錄序(宋煥箕 撰), 混定編錄跋(安壽祿 撰), 重刊序(宋來熙ㆍ趙秉悳 撰), 重刊凡例, 隱峯全書記實(安壽祿 撰), 重刊原集後識(安命宣 撰), 年譜附錄後識(安壽祿 撰), 重刊跋(宋近洙ㆍ兪建煥 撰), 重刊後識(安相 撰) 등에 의함

 

[구성과내용]

본 문집은 원집 38, 부록 2권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64(고종 1)宋來熙趙秉悳이 지은 序文이 있고 이어서 隱峯全書凡例目錄이 있다.

138이다. 오언절구, 칠언절구, 칠언율시, 오언고시가 詩體別로 실려 있다. 宋時烈, 金元立, 成文濬에게 준 시 등과 연작시로 五倫歌등이 있다.

211편이다. 辨牛栗兩先生被誣疏1636(인조 14)에 올린 것으로서 蔡振後, 權蹟 등에게 무함을 받은 李珥成渾을 변론하는 글이고, 請罷京大同疏1652(효종 3)에 올린 것으로서 당시에 金堉의 주장으로 서울에서 시행되던 大同法을 폐지할 것을 청하는 상소이다.

323편인데, 成渾, 金瑬, 李廷龜, 吳允謙, 李貴, 尹昉, 趙翼, 李時白, 李植, 兪棨, 宋時烈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4에는 杞平君 兪伯曾神道碑銘, 竹川 朴光前行狀, 저자의 祖父 安舳遺事, 저자의 姊兄 蘭溪 朴宗挺事蹟, 저자의 벗 金德普韓嶠趙完堤에 대한 세 편의 行錄이 실려 있다.

5~8記事이다. 己丑記事鄭汝立 謀叛事件에 대한 전말을 기록한 것이며, 壬辰記事1592년 왜적이 침입하게 되는 배경과 그 과정 및 당시 조정의 상황, 趙憲의 의병활동 등을 기록한 것이며, 釜山記事, 露梁記事, 晉州敍事는 임진란 당시의 李舜臣의 방어 상황, 金千鎰, 崔慶會 등이 지키던 晉州城이 함락되는 경위 등에 대한 기록이다. 湖南義錄은 임진란 때에 호남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崔慶會, 鄭運, 白光彥 16인에 대한 기록이다. 湖南義錄1630년 별책으로 간행했을 당시에 받은 趙翼의 서문이 첫머리에 실려 있다. 壬丁忠節事蹟壬辰丁酉年에 왜적침입에 항전하다가 순국한 宋象賢, 金汝岉, 劉克良, 邊應井, 李潛, 高得賚, 申浩 7인에 대한 기록이고, 三寃記事金德齡, 金應會, 金大仁 3인이 奸人의 모함을 받아 寃死事蹟에 대한 기록이다. 白沙論壬辰諸將士辨1633년에 白沙別集雜著에 실린 白沙 李恒福의 글을 읽고, 白沙가 논한 임진년 여러 장수들에 대한 기록에 잘못이 있음을 논변한 것이다.

9祭文(1), (2), (1), 題跋(3), (1), (1)이다. 그중 牛山田舍記는 저자가 만년을 보낸 寶城田舍에 대해 지리적 위치와 주변 경관을 기록한 것이다.

10雜著 5편이다. 그중 買還問答主客의 문답 형식을 빌어서 成渾柳成龍이 받은 무함을 해명하는 글이며, 牛山答問主客의 문답 형식을 빌어 名賢眞儒에 대해 논한 글로서 우리나라의 眞儒圃隱 鄭夢周 이후로 靜庵 趙光祖, 栗谷 李珥, 重峯 趙憲 세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師友鑑戒師友 관계의 귀감이 될 수 있는 趙憲事蹟을 적은 글이다.

11~16己卯遺蹟으로서 靜庵 趙光祖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別本으로 이루어져 있던 것을 隱峯全書重刊 때에 合編한 것이다. 11(己卯遺蹟 舊本의 권1)에는 앞부분에 1799년에 宋煥箕가 쓴 己卯遺蹟序가 있고 권별로 개략적인 내용소개가 있다. 11과 권12中宗反正이 일어난 과정과 己卯士林의 등장 및 趙光祖經筵 陳說 내용이 실려 있다. 13에는 南袞 등의 告變으로 趙光祖賜死되고 金淨 7인이 귀양가고 安瑭 1백여 인이 처벌을 받은 사건, 李信의 고변으로 金湜이 망명하여 자결하고 河艇 2인이 주벌당한 사건의 전말이 실려 있다. 14에는 宋祀連 고변사건이 실려 있고, 15에는 南袞 등의 奸人들이 몰락하고 기묘제현들이 褒崇된 사적이 실려 있다. 16己卯遺蹟附錄인데, 退溪 李滉이 지은 靜庵 趙光祖行狀, 蘇齋 盧守愼이 지은 神道碑銘, 栗谷 李珥가 지은 墓誌銘道峯書院記熙川兩賢祠記, 朴承宗이 지은 天日臺記가 실려 있다.

17~34混定編錄이다. 混定編錄1810책의 別本隱峯全書重刊 때에 합편한 것이다. 牛溪 成渾栗谷 李珥辨誣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서 前集, 後集, 別集, 續集으로 分集되어 있다. 17(混定編錄 舊本의 권1) 앞부분에 1799년에 쓴 宋煥箕의 서문이 있다. 宣祖 때부터 光海, 仁祖, 孝宗에 이르기까지의 東西分黨의 시말과 李珥成渾을 위해 올린 辨誣上疏가 실려 있다. 끝에는 저자의 6대손 安壽祿1824년에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35~38抗義新編으로서 趙憲遺文 行錄이다. 舊本42책인데, 역시 重刊때에 합편하였다. 앞부분에 1614년에 李廷龜가 쓴 서문이 있고, 이어서 李澄이 그린 畫圖가 실려 있다. 35~36請絶倭使第一封事, 請斬倭使第一封事, 嶺湖備倭之策등으로서 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일본의 침입에 대한 대비책을 논한 글이고, 37起兵後封事, 淸州破賊後狀啓등으로서 왜란이 일어난 뒤에 의병활동을 하면서 올린 글 및 편지와 行錄이며, 38附錄인데 趙憲遺事 贈職敎書, 祭文, 挽詩 趙憲에 대한 후인들의 글이 실려 있다.

原集 권미에 해당하는 권38 끝에는 1773년 초간본 牛山先生集간행 당시에 받은 李基敬의 발문, 초간본 간행 경위를 적은 安昌賢後識가 실려 있고, 6대손 安壽祿1855년에 隱峯全書定稿本을 만든 경위를 기록한 隱峯全書記實1864년에 7대손 安命宣隱峯全書를 간행하면서 그간의 간행 내력을 적은 後識가 실려 있다.

附錄上下 두 권으로 되어 있다. 賜祭文 年譜이다. 賜祭文1704(숙종 30)大溪書院賜額할 때 내린 것이다. 年譜 끝에는 1864大溪書院에서 活字印出한다는 刊記가 있다. 附錄 下에는 門人 徐鳳齡이 기록한 遺事, 兪棨가 지은 行狀, 尹宣擧가 지은 墓誌, 朴世采가 지은 墓表, 金羲淳이 지은 諡狀, 후인들이 지은 祭文 등이 실려 있다. 끝에는 1836년에 安壽祿이 쓴 年譜附錄 後識가 있다.

卷尾에는 1864宋近洙兪建煥이 지은 隱峯全書重刊 跋文, 安相이 지은 後識가 실려 있다.

ⓒ 한국고전번역원 | 박헌순(朴憲淳) | 1999

1] 南衮等。告趙光祖與其黨謀不軌。光祖賜死。金淨等七人安置絶島。安瑭等百餘人分輕重論罪。罷薦擧科。復立昭格署。
初衮雖以名節自好。然士類皆先見其不是處。至目之以小人。見輒詆詬。露於言色。衮盡其情禮以順之。士類猶不容受焉。沖菴金淨。未釋褐有詩名。操節特殊。士類咸仰慕。衮爲直提學時。沖菴尙儒士。相遇於友人家。沖菴方醉臥。見衮至。不爲禮。主人蹴之使起。乃始蓬髮而瞪目。視衮曰。何物小子。來醒我夢。衮待之盡敬曰。聞措大名。常如卷中人。欲一奉無因。乃幸得拜於今日。生新得輞川圖障子。願得佳篇。以賁障首。遂命蒼頭取之家以進。沖菴醉墨揮灑。亦不沈思而就。衮再三吟詠。稱善媿謝。然心常快怏。後丁卯年。衮以承旨丁憂。因文士文瑞龜。聞醫官金公著,庶孼朴耕,儒生趙光輔,李長吉等。謀害朴元宗,柳子光,盧公弼。遂與參議柳崇祖,行護軍沈貞,掌樂院正金克成等上變告。獄成。衮陞嘉善。臺諫劾其變告者出於要功。請放公著等妻子。衮遂爲士類所擯。乙亥年。衮以吏曹參判被劾。丁丑八月。爲吏曹判書。陞贊成。己卯春。崇政兼禮判。及靖國功臣廷議時。衮欲避其議。請差英陵香使。出歸後。先生同侍經席。進啓曰。以一品之人。逢此大事。觀望圖避。宰相用心。豈可若是。餘無足觀。上不問。衮慙媿而退。遂詣申用漑第。時用漑呈病在家。引入內。衮曰。近日議論甚激。用漑奮然而答曰。公何以出此言。激之爲言。乃小人之陷君子而亡後漢者也。衮大銜而去。沈貞參靖國功臣。封花川君。乙亥。以吏曹參判駁遞。戊寅四月。安瑭爲吏曹判書。時刑判有缺。僚佐薦貞。瑭曰。花川君足矣。竟不注擬。五月十五日。先生以副提學。焚黃先塋於龍仁。是日。地大震。屋宇盡頹。先先曰。今日。沈貞必判秋部矣。果然。卽日因災變迎訪。爲臺諫所彈而遞。其後判刑曹。凡獄囚不究曲直。惟務剖決。一日朝闕。欲以囹圄空虛啓達。有捕禁肉者。貞曰。鹿肉洽似老牛肉理。吏知其意。以鹿肉報。卽上聞曰。民蒙聖化。幾於刑措。命賜酒。其罔上類此。士類皆唾罵之。洪景舟參靖國功臣。封南陽君。嘗拜左贊成被駁。怏怏含憤。遂與衮等相結。後竟爲贊成。時鄭鵬以弘文校理。累召不起。人問其故。鵬曰。恩命繾綣。不得已強意赴朝。頗有驚心之事。故退歸田里耳。人問有底驚心事。曰。吾以校理拜恩入闕。諸政院門外。有帶犀宰相。前立而背面。余逡巡驚畏。屛息而立。俄乃回顧。認其貌。卽景舟也。問其職。乃贊成也。余忽驚心。奉身而還。自此無意仕宦云。觀此則其爲人可想。而士類旣與衮,貞爲讎敵。又爲景舟所惡。高荊山爲贊成。時先生以大司憲相遇於道。不禮而過。荊山亦切齒。李沆與沖菴爲故舊。沖菴在淳昌時。沆以承旨有求請簡。不書字而具銜著置。且曰。記下云云。沖菴題一絶於其簡後而復之曰。曾同書榻與鑾署。流落南荒一病軀。天上華銜承旨李。臨題還憶故人無。沆以此深銜。尤欲殺之。於是。衮,貞等思所以構陷。而道無所從。日夜聚會。相與謀議。諸公不知矣。時上雅尙儒術。銳意文治。倚先生尤重。先生感不世之遇。便以堯舜君民。興起斯文爲己任。每將入對。必宿齋戒積誠敬。其進侍也。一心肅慮。如對神明。知無不言。言無不讜。上皆虛心傾聽。他人不得措一辭於其間。同侍者亦多忌之。至如奇遵,朴世熹,崔山斗,梁彭孫等。言語支離。朝講或至日昃乃罷。聖體有時疲倦。或欠伸。或改坐。御床戛然有聲。衮等揣知上有厭意。及先生爲大司憲。執法平允。人皆感悅。每出。市人羅伏馬前曰。吾上典至矣。 俗呼其主曰上典 衮等因此合謀。以得人心爲飛語。傳播內外。又潛通朴敬嬪本家問安婢。敎以趙光祖專國爲政。人皆稱善。欲立爲王。使若閭閻間無知之語流入禁中以致宮人疑怖然後使洪景舟敎其女煕嬪。以爲一國人心。悉歸趙氏。日夕開達。上心不能無疑。又以甘汴寫走肖爲王四字於禁苑木葉上。待山蟲剝食成瘡如字畫。有同符讖。採以上聞。上心遂危懼。於是衮等欲擧事。己卯十一月十五日夕。衮以微服着草笠麤布衣。足穿破屨。步至領議政鄭光弼家。呼門者急入告于內。但言客來。門者認其貌。知其爲南衮。入告有客到門。觀其貌。是南判書。但衣冠草草如賤人。鄭相大驚異。顚倒出見。則乃南衮也。怪問曰。公何爲此耶。衮俱道其所以。因曰。此輩若遺一人。其害無窮。上今日必召公議之。公可勉從上意。除去無遺。然後國勢將安。不然。多有後悔。不可不深思處之。或以危言恐動。或以甘言誘之。鄭相正色曰。公以大相爲賤服。歷都市而來。大是可愕事。謀害士林。本非余心。可忍爲此乎。衮大怒。拂衣而去。謂景舟曰。領相固止之。我輩當自爲之。遂使景舟持諺書。稱爲密旨。謀於被屈宰相安潤德,權鈞,宋軼。潤德答以未能。鈞以位卑辭。軼病臥不起。乃與判書金克福,參知成雲,判中樞金銓等。定議擧事。其密書若曰。光祖等請削靖國功臣者。重其綱常也。先除無功者。然後稍存二十餘人名。擅廢燕山之罪。則卿等爲魚肉。禍及于予矣。走肖之輩。姦似莽,卓。得一國之人心。爲百僚之所瞻。一朝有宋祖黃袍加身之變。雖欲辭之。其可已乎。光祖等初請賢良科。予亦意其爲得人也。到今思之。必樹羽黨 或翼 也。思欲翦除。卿之壻金明胤。亦在其中。是可恨也。予之腹心。有幾人哉。光弼心于王室者也。長坤初非如此。今乃附托。小兒輩未可信也。沈貞近雖被論。然有才幹可大任也。予之翦除之意。勿煩他問。以問衮,貞如何。庸謹,韓忠,世熹,自任。俱有武藝。可畏也。朝去此類。夕雖死。必無虞矣。頃於筵席。奇遵曰。如光祖者。可合相位。此則爵命。皆出於此輩也。光祖言恭貌順。意其可人。數年之間。超擢顯用。予乃憾於墮走肖之術中也。欲顯然罪之。臺諫,弘文館,六曹,儒生。盡言不可。則予不能施爲也。不知何以處之。近日以來。食不知味。寢不安枕。瘦骨稜稜。予名爲人君。其實徒守虛器而已。昔庸謹傲視予。必畜無君之心者也。卿等先除後聞可也云云。時李長坤以兵曹判書。兼判義禁。長坤家在興仁門外。衮等以爲擧事之時。無兵判不得號令。衛士闞其亡。逐日三往其家投刺。使之先疑。是日夕。衮馳書曰。國大有事。走馬入來。長坤常乘軺車。蒼黃罔措。借李蔚鞍馬。馳到衮家。衮曰。洪判書景舟承密旨。待命神武門。初昏。景舟因洪嬪告趙光祖與其黨謀不軌。欲上變告。近侍之臣。皆其腹心。事機危迫。請開神武門。乘夜入啓。蓋不欲承旨史官知之也。上大驚。出御便殿。夜二鼓。洪景舟,金銓,金克福,李長坤,高荊山等。詣神武門請開。則上命潛從漏西門而入。衮嗾成其事。而退坐不入。景舟等旣入門。都摠官沈貞,參知成雲。自直所來會。同坐閤門外。列名論啓。其辭曰。鄭光弼,洪景舟,金銓,南衮,李長坤,高荊山,洪淑,沈貞,孫澍,方有寧,尹希仁,金謹思,成雲等。伏見趙光祖等交相朋比。附己者進之。異己者斥之。聲勢相倚。盤據權要。誣上行私。罔有顧忌。引誘後進。詭激成習。以少凌長。以賤凌貴。使國勢顚倒。朝政日非。在朝之臣。潛懷憤歎。而畏其勢焰。莫敢開口。側目而行。重足而立。事勢至此。可謂寒心。請付有司。明正其罪。使景舟啓以金謹思,成雲爲假承旨。沈思順爲假注書。於是上出御思政殿。衮,景舟入對曰。事急不可鞫問。請命速囚承政院,弘文館入直官。是日弘文正字金明胤。懇請修撰沈達源代直。明胤。景舟之壻。已知其事而謀出故也。時承旨尹自任,孔瑞麟。乘月來館。注書安珽,翰林李構等亦來。欲觀星辰。歸簡議臺。俄而。政院下人來報云。漏西門。宰相數人入闕。且於勤政殿中有火光而軍士圍立云云。自任等相語曰。豈有政院不知之事乎。卽詣閤門外。則南陽君洪景舟,工曹判書金銓,禮曹判書南衮,兵曹判書李長坤,戶曹判書高荊山,花川君沈貞,兵曹參知成雲等。張燭而坐。自任前進問曰。宰相入闕。使政院不知。是何事也。左右相目不語。惟長坤且坐且立。如欲言而不敢發。俄而。中使申順剛出。召成雲曰。以雲爲承旨。可速入對。雲輒佩劍趨入。安珽曰。政院不預知。而只以宦寺之言敢入。何也。雲不聽。珽止之曰。雖有急。史官則不可不預。公何敢獨入。姑可遲。雲遂入閤門。珽操筆攀雲帶欲共入。雲擊珽臂而入。順剛罵守門者曰。何不禁雜人。遂共扶珽而出。貞進執珽手曰。天威方盛。姑勿入也。有頃。雲出以袖中小紙授長坤曰。此御筆也。此人等亟下禁府。乃自任,瑞麟,珽,構及應敎奇遵,修撰沈達源等也。順剛譖于上曰。成雲承召入閤門。尹自任使安珽曳出。言且不恭。上益怒曰。自任有武藝。尤可畏也。先令衛士圍於殿陛。景舟等又勸上速命宣傳官禁府都事領軍。逮捕右參贊李耔,刑曹判書金淨,大司憲趙光祖,都承旨柳仁淑,右副承旨朴世熹,左副承旨洪彥弼,同副承旨朴薰,副提學金絿,大司成金湜等。竝拿致闕庭撲殺之。一依靖亂之例。器物已具於殿庭矣。時湜以十六日外家忌祭。與諸表兄弟。齋宿于睦家。或問朝政。湜愀然不樂曰。濫叨非分。已蹈危機。他日會宿亦難必。要與敍舊耳。政敎利害。非所聞也。睦世秤曰。若知禍機。何不遠避。湜曰。旣爲觸藩。進退維谷。禍在朝夕。雖智者無所爲也。祭畢夜尙未艾。禁府都事領軍。已跟尋到門矣。時假注書沈思順未及入來。翰林蔡世英在直所。衮等以世英爲貌恭言遜。急召入侍。使世英書罪黨人敎旨。世英把筆極諫曰。此人等罪犯未彰。不可構成虛辭。枉殺無辜。願聞可死之罪。假承旨成雲。攫世英所持筆欲書之。世英抗聲曰。此史筆。非他人所得把。還奪之。左右肅然。長坤亦極諫曰。人君不可行盜賊之謀。亦不可諱首相而行國家大事也。與首相共議罪之。猶未晚也。反覆極諫。景舟勸上速決。或有起立之勢。則長坤以手揮却曰。公何爲若是。景舟不得售其謀。而上意遂稍弛。夜三鼓。乃召領議政鄭光弼。時政院牌招吏曹上直郞官具壽福。以臺諫,弘文館,承旨注書,翰林盡遞事。促奉承傳。壽福不知首末。問于院吏。院吏亦不知。壽福告于南衮。李長坤曰。臺諫侍從,秉史筆者。皆遞之。則朝廷無耳目。且今夜記注。誰當修之。不知曲折。余何敢著署。衮等大怒。欲論以承傳拒逆之罪。將入啓。鄭相至闕庭。壽福迎告曰。爲政院牌招。促奉臺諫侍從盡遞事承傳。旋聞李耔,金淨,趙光祖,金絿,金湜,柳仁淑,朴薰,朴世熹皆命拿致。入直承旨尹自任,孔瑞麟,注書安珽,翰林李構,應敎奇遵,修撰沈達源等。已下禁府。余未知厥由。不敢著署。意外遭此變。罔知所爲。鄭相曰。諾。觀勢爲之。無一言。遂入賓廳。衮等首擧是事。哮怒咆。鄭相亦大怒。呵呵。衮等怒少洩。及大議抄啓。鄭相曰。主上方震怒。若啓之則年少郞官。必蒙大罪。且如此等事。從而治之未晚。因以遷延。壽福得免大罪。於是鄭相啓曰。年少儒生。不知時宜。妄欲引古施今而已。豈有他意。小垂寬貸。請與三公議罪。涕泣極諫。淚垂兩頰。衣袖盡濕。上怒。遽起還內。鄭相趨進。引御裾叩頭。乃命下光祖等于獄。夜四鼓。召左議政申用漑,右議政安瑭。鄭相旣出賓廳。又啓曰。此人等豈可盡罪。承旨素非本心。而樂從正論者也。李耔。非常人也。國家他日。必大用之人。只罷似當。光祖等有何絲毫之私哉。徒見古人之書。欲效至治。而其間雖或有過激之事。不可深治之也。方今聖代。幸 幸字上恐有不 有殺士之名。則必汚史冊。請令禁府推問其罪。時持平李希閔聞變。馳詣西門。則持平李延慶,弘文正字權穡先到。偕至報漏門前。具壽福自月華門出來。四人共坐。相語失色。兩持平遂入月華門。內部將拒而不納。金謹思又令無使雜人出入。且曰。持平已遞。將何辭而啓乎。希閔憤然咨嗟。與延慶直入賓廳。見鄭相曰。今夜之事。極爲祕密。吾等職雖已遞。久在侍從。觀此大變。不敢恝然退坐。鄭相曰。爾等姑退。上怒甚盛。欲罪光祖等。我輩豈欲殺士哉。當盡力周旋。希閔,延慶遂退。時用漑已病卒。瑭獨詣闕。希閔等相遇於延義門外。延慶趨進曰。國事至此。惟望大相而已。涕泣不已。瑭旣入闕。鄭相獨坐賓廳。瑭問禍由。鄭相揮淚。咄咄不忍言。但曰。器物已具殿庭云。因與瑭共請與朝廷議罪。反覆論啓。遂召參議以上多官。共議伸救。上不聽。命南衮草傳旨曰。予惟不明于德。徒切求治之志。而罔有知人之哲。用捨之際。大有謬誤。予甚恧焉。頃有趙光祖,金淨,金絿,金湜,尹自任,奇遵,朴世熹,朴薰俱在侍從。以性理之學。朝夕勸講。予念其爲人。可與輔成予治。擇美官而處之。超資序而薦之。予之所以待遇之者。可謂無負矣。不期光祖交相締結。附己者進之。異己者斥之。聲勢相依。盤據權要。謂祖宗之法不足守。謂老成之言不足用。引誘後進。詭激成習。至於議事之際。稍立異同。則必極口排沮。要使折之而同己。以致國論顚倒。朝政日非。在朝之臣。潛懷憤歎。畏其勢焰。莫敢開口。察其所爲。歸於亂政。事狀己著。終難可貸。固當按律治罪。以明示百官。第念前日侍從之故。特從末減。光祖等以下。各以罪罪之。此豈予之得已也。惟爾議政府。布告中外。咸知予意。案中。初有誣上行私之言。鄭相啓而去之。李耔名在金湜之上。鄭相亦救而脫之。時假承旨成雲,假注書沈思順入侍。寫訖進于前。覽畢。傳曰。案已就。只囚光祖等八人。餘悉放之。仁淑,彥弼,達源,珽,構,麟瑞。耔等七人。皆蒙放。翌日。構入侍啓曰。昨日之事。何以至此乎。欲書于史草。不知其根因也上曰。事之根因。史官欲聞之乎。其日。洪景舟等聚于神武門外。予命自西門而入。史官權輗啓曰。如此之事。大臣當會于都堂。白日之中爲之可也。夜則陰也。晝則陽也。君子爲陽。小人爲陰。中夜擧事。事甚非便。神武門。亦非擧事之地也。上不答。承旨尹殷弼啓曰。今茲之事。不覺傷痛。臣昨夜四更。聞之驚愕。至西門外。欲上啓微誠。而命牌外不許入。故退去也。時有持平欲入者。軍士捽出。衣襟盡裂。臣見之不覺流涕。三司盡命遞之。故皆着笠而環坐門外。豈料有如此事乎。趙光祖等。若謂之中道則未也。使之成就。則豈易得哉。一朝待之如反逆。不知有何事。夫人臣密告。非奸則佞。古書不云不由中書耶。國家元氣。自此㓸喪矣。時淸流一網打盡。朝著殆空。上命鄭相爲政事。御筆除南衮吏曹判書。鄭相等退至賓廳。鄭相熟視衮而不語。衮退語人曰。鄭光弼之目也。鄭相以全州府尹李思鈞爲副提學。前忠淸監司柳雲爲大司憲。諸公旣下獄。皆以爲必死。相與酌酒永訣。是夜。長天無雲。明月滿庭。沖菴有詩曰。重泉此夜長歸客。空留明月在人間。金絿吟古詩曰。埋骨白雲長已矣。空餘流水向人間。又詠曰。明月長天夜。沖菴和曰。嚴冬惜別時。皆從容自得。期於快飮忘懷。獨先生痛哭。諸公相與勉之曰。當從容取義。何哭泣耶。更相侑酒痛飮。先生曰。從容取義。吾豈不知。但不得復見吾君耳。若見吾君。豈至如此乎。終夜痛哭不止。十七日。諸公自獄中上疏陳情曰。臣等俱以狂疏愚戇。遭遇聖明。出入經幄。得近耿光。但恃吾君聖明。展竭愚衷。冒犯群猜。只知有君。不計其他。欲使吾君爲堯舜之君。豈爲身謀。天日照臨。無他邪心。臣等罪固萬死。但士類之禍一開。將不念後日國家命脈耶。天門阻隔。無路達懷。閔默長辭。實所不忍。幸一許躬問。萬死無恨。情溢辭蹙。不知所云。 金淨所撰。或云金絿。未詳。於是。館學生李若水,申命仁,朴光佑等。相繼上疏。明諸公無罪。詣闕者無慮千餘人。會于光化門外。莫知所爲。申命仁倡言曰。香徒人皆欲上疏。以伸其冤。況我諸生。日出而會。日中而不爲草疏。士氣之渝薄。一至此哉。余當任其辜。遂秉筆草疏。諸生坌集。書疏將上達。爲門者所拒。諸生慷慨發憤。排闥闌入。生員朴光佑,申命仁被傷。流血滿面。諸生或脫巾者。或被髮者相半。號哭闕庭。聲徹大內。上問哭聲從何而來。政院對以實。傳曰。儒生之事。甚驚愕。場中濫入。亦有其罪。況於闕庭。豈可徑入而痛哭乎。千古所無之事也。其囚五六人。且令禁軍驅出之。命仁於衆中挺身勵聲曰。古者楊震被囚。太學諸生三千人。守闕號哭則有之。殿下今日之事。誠千古所無之事也。信小人之說。何至於此極耶。承旨佯爲不聞。若水以疏頭。與尹彥直,朴世豪,金遂性,黃季沃等五人下獄。於是。諸生爭先就囚。如恐不及。囹圄已盈。械杻亦乏。以藁索繁頸者。屯聚鍾樓下。翌日。生員林鵬等數百人。又上疏。力救諸公。且曰。昨日儒生等下獄。臣等不可晏然。獨不就也。皆待命於獄門外。第三日。禁府啓曰。人衆獄窄。不得盡囚。大臣亦啓。儒生不知事體。只欲暴白情素。請姑勿問。上乃命放若水等。答疏略曰。光祖等初豈欲誤國事。自上亦佇觀至治。近來此輩多有過激之事。故不得已罪之。大臣亦欲安靜朝廷。非讒邪排斥君子也。坊里鄕約諸人。亦上疏伸冤。詣闕者不知其幾人。時朴光佑被傷裹頭。坐于都堂外廡。下典醫監。前銜李城,蒙學訓導鄭哲賢,李世孫,樂工宋同忠,贊衛鄭義孫,李自逸,安崇福,書吏崔仁碩,李中立等。皆以疏頭。各率其類。求文於光佑者簇立於前。其時李參判粲,金僉知魯。皆年少善寫。光佑使二人執筆臨紙。左酬右答。文辭湧涌出。金,李猶未及書。一時所製凡十餘篇。李城等七人。各決杖奪告身。崔仁碩等二人。各決杖。弘文館奴鶴年,宗室孼產未贖身者。請王子諸君。亦伸救。先生及諸公。決杖贖流。判中樞金銓,判義禁李長坤,知義禁洪淑,承旨成雲等。鞫問諸公。沖菴供曰。臣年三十四。年少戇愚。性又褊迫。濫側六卿。常自兢愼。思報國恩。凡論思之際。務欲一出於正。日夜憂念而已。交相朋比。詭激成習。使國論顚倒。朝政日非。臣實無之。金湜供曰。臣年三十八。濫蒙天恩。擢爲臺諫。及登第累遷。陞授大司成。欲效絲毫之補而已。不居權要之地。專無進退人物。至於互相朋比。詭激成習。使國論顚倒。朝政日非。臣所不爲。先生供曰。臣年三十八。士生斯世。所恃者君心而已。妄料國家病痛。在於利源。故欲新國脈於無窮而已。頓無他意。奇遵供曰。臣年二十八。自少讀古人之書。頗知向方。以爲在家則盡孝悌。在國則當竭其忠義。與同志之士。講劘古道。欲使吾君爲堯舜之主。世道期臻至治。以盡微誠。且人之善者許之。不善者疾之而已。豈敢私相和附。光祖等。志同道合。故相與交好。未知爲詭激也。金絿供曰。臣年三十二。性本庸愚。志慕古人糟粕。與同志之士交遊耳。進退人物。非下類所爲。善者好之。不善者惡之。徒持公論。相與是非而已。朋比詭激。國論顚倒。朝政日非。非臣之情。尹自任供曰。臣年三十二。性本愚狂。但讀古人書。粗知是非。當國家論思之際。或與趙光祖,金淨,金湜,金絿相同。仍與之交遊而已。其所論議。至於詭激。私相比附。臣實無之。薰,世熹供辭。缺不錄。推官取諸公招辭入啓。請加刑訊。傳曰。此事已定議。不可用刑。照律可也。推官金銓等照啓。當以奸黨之律。斬其身。籍其家。帑其妻子。上下敎曰。光祖,淨,湜,絿。賜死。其餘竄遠方。承旨金謹思聞命逡巡。史官蔡世英請更議大臣處之。鄭相等在賓廳。謹思出傳上旨。時日已昏矣。鄭相驚愕捫燭嗟惋。卽力請入對。啓曰。小臣等在職亦久。豈料今日有如此之事乎。此人等。但以愚戇。不識事理。以致如此。若干重罪。則臣等豈不請之乎。上曰。此果重事。當更思爲之。召承旨成雲敎曰。光祖等四人。決杖遠方安置。自任等四人。減杖付處。鄭相退賓廳。又啓曰。此人等旣免死。是天地之仁也。但皆病弱。若杖而遠去。則死於中道。未可知也。恐朝廷得殺士之名。而無減死之實也。凡五啓皆不允。夜三鼓。諸公自獄還家。十八日早朝。出東小門外人家。又命還聚八人於禁府。使成雲傳聖旨曰。汝等俱以侍從之臣。本欲君臣同心。佇觀至治。汝等人物。亦不爲不良。但近來凡事過誤。使不平常。朝廷事日非。故不得已罪之。然予心何安。朝廷大臣。亦何有私意哉。汝等之事至此者。皆予不明。不能先防其微也。若罪以律。則必不止此。特爾等非有私心。但爲國事而不自知其過激之過也。故特用寬典。末減罪之。汝等知之而去。雲到禁府傳敎後。回啓曰。他人則無所言。惟趙光祖曰。臣雖此去。君心豈不知乎。臣等所爲。果爲過激矣。是日。出宿于東小門外。先生綾城。沖菴錦山。奇遵牙山。金湜善山。金絿開寧。尹自任溫陽。朴世熹尙州。朴薰星州。諸公決罪時。都人聞者莫不咨嗟涕泣。見者不覺失聲痛哭。成守琮與士人洪奉世。解衣賂杖者得輕。是日。景舟與金銓,南衮等入侍。景舟啓曰。十四日。臣往金銓家。語及時事。銓曰。年少輩擢居大臣之列。凡耆舊之臣。幸有微過。極口排之。朝政日非。人心不安。我朝啓此意。夕雖被罪。於心寧矣云云。臣已嘗上意。故悉陳之。又見南衮。衮曰。近日小兒輩。恃上隆待。極論時政。專不以耆舊爲饒。使朝廷日非。後雖不免以小人殺君子之名。吾欲啓此意。具朝服而還止云云。臣知上意。故盡言之。衮又曰。欲啓此事。當先問鄭相而處之。其日。往鄭相家語及。鄭相曰。欲起士林之禍耶。我則愚感。計不及此。余不敢更言而退云云。臣曰。鄭相雖止之。我輩當自爲之。十五日初昏。臣入自北門密啓云云。景舟之冀受重賞。自誇其功如此。諸公旣竄。群小得志。黃季沃往見魚叔均。謂曰。吾欲上疏救趙大憲等。已具疏單。子其寫之。遂出諸袖中示之曰。疏意若何。答曰。此疏甚佳。非公好善。安能及此。仍極口勸之。季沃不寫而去。後數日。季沃與尹世貞,李耒等三人上疏。請斬先生等八人。辭極凶慘。表憑亦上疏。請斬先生等。以快輿情。季沃。牧使㻶之子也。初以伸救諸公繁獄。未踰月。又請殺無赦。其心術之無狀如此。副提學李思鈞聞命卽上途。時先生及沖菴方赴配所。聞思鈞行色曰。吾輩當死於這漢之手。辟易遠避。思鈞親問所在。必皆尋訪。謂先生曰。子於中庸。尙未熟讀。況可做唐虞之事業乎。中庸不言乎。愚而好自用。賤而好自專。生乎今之世。反古之道。未有不災及其身也。宜乎子之不免也。子年少。正好讀書。努力自愛。握手痛哭而去。及至京。力救諸公。無所畏避。大司憲柳雲自湖西入來。急於救禍。未及行臺中相會禮。率府僚執義尹世霖,掌令李謙,任樞,持平趙光佐,申抃及諫院官司諫吳潔,獻納李忠楗,正言尹漑,兪炯等。竝不就職。同辭啓曰。趙光祖等。俱以疏狂。只恃聖上言聽計用。而一朝加罪。臣等莫知其由。前日臺諫之無故盡遞。亦不知其由。殿下復用光祖。君臣如舊。則臣等當就職。不然則請斬臣頭。以快奸人之心。且刑人于朝。與衆共之。當光明正大。不可詭祕也。初謂此事出於奸邪之徒密啓。今聞自上密諭於洪景舟云。今趙光祖等羽翼已成矣前日請設賢良科予意以爲甚好。到今思之。蓋欲樹羽翼而爲之也。今欲盡除去賢良科之人。但以卿之壻金明胤。亦在其中。故不果耳。此言騰播人口。以人主之勢。加罪二三書生。亦何有難。而昏夜之間。祕密爲之。何若是耶。外親信光祖。而內有翦除之心。君心如此。此危亡之兆也。臣等不勝痛哭。上答曰。此臺諫誤聞之言也。當初洪景舟於南衮,宋軼,金銓等之家。聞有武士結黨。欲除文士之言。因共議以爲如此。則將生大變。自朝廷如此爲之。則於光祖等爲福也。今茲之事。乃朝廷遠慮。欲使安靜之也。蓋思鈞,雲兩人。內有志槩。外無拘檢。曾爲諸公所斥。雲出忠淸監司。思釣出全州府尹。時罷敎坊。禁女樂。持平李延慶誤聞雲携妓宴樂。又駁罷之。衮以兩人忤先生不疑也。故鄭相薦之時。人服鄭相之識鑑。時巴陵君儆。聞變卽詣賓廳。涕泣力諫。且呼長坤曰。希剛搖尾孤鼠間。同害良善。大聲責之。前承旨柳仁淑,孔瑞麟,洪彥弼,前大司諫李成童,司諫李淸,獻納宋好智,正言金釴,權碩等。以微服詣闕。請與先生同就獄被罪。終日不退。掌令李英符亦上疏極諫。上皆不聽。典翰鄭譍憤甚。率館員抗疏力爭。其疏曰。伏以人生有體。得爲男子。立於天地之間。一幸也。不淪滯隷圉。役走糞土。拔身爲士。二幸也。服業文字。粗知義方。不迷所向。三幸也。居不于危亂而于治平。沐浴休澤。四幸也。遭聖明登身近列。出入周圍之中。五幸也。精交意會。脗然相得。瀝竭肺肝。蒙人主首肯。六幸也。凡此六幸。固人之所大願欲。而有其一二者無幾。況乎兼之者哉。其生

也幸。其出也幸。其行也亦幸。不於是焉竭忠畢誠。極義盡知。而遲回隱默。耽寵沽悅。苟私其身而已。孤人主辱知。負平生志願。仁人志士之所不忍爲。抑人主之所深病。國家何利焉。昔比干刳心。子胥賜劍。斯二人者。身遭暴亂。忠犯非君。卒就陵夷。而義士猶且悲之。至今痛惋。況夫遭遇聖理。見知明主。爲依歸矣。一動移之頃。天威遽震。煩刑更極。箠毒將竄囚以困殛之。噫。殿下之高位以寵祿之。崇長以優容者。果安在哉。燕雀焚而仁鳥增逝。愚夫戮而智士遠擧。況忠義之士。結君臣之義。人主之所嘗親寵眷之。親體任之。而又從而親暴戮之。雖有廓大之才。忠耿之徒。亦安肯盡忠信趨闕下。以蹈其危機哉。此鮑焦之所以立枯。屈平之所以沈湘也。夫國之有士。猶人之有元氣。氣散而人亡。士亡而國喪。建寧之黨禍起。而漢祚遂非。元佑之正士銷。而宋室遂危。斯固已然之明鑑。而前轍之旣覆者。抑殿下之所洞照而驚惕乎平昔者也。臣等俱與數三臣僚。同命於殿下養育之中。已逾年紀。況今忝侍經幄。密邇天聽。天地神祇。亦所共臨。死生榮辱。義不可苟。伏願殿下垂察

 

焉。柳雲彈大司諫尹希仁素無物望。又不能匡救黨人。以長湍府使李蘋代之。蘋。沈思順之妻父也。蘋又劾雲不行相會禮。遽卽彈駁。失臺諫古例。代以慶尙左監司李沆。時沆與右監司文瑾期會。聞朝廷變起。瑾失色愀然。先就客舍。坐而達曙。沆揚揚自得。終夜宴樂。而沆知瑾有不平之意。深銜之。俄而承召。卽上道。咸陽郡守文繼昌以詩贈之曰。明公此去似登仙。盤錯須憑利器剸。畋獵豈無三窟兔。會看一鶚上靑天。沆喜而受之。其詩傳播。士類側足。沆十二月十一日。還朝。十三日。與李蘋等合司詣闕。請加罪先生等。又請罪左議政安瑭,左贊成崔淑生,左參贊李耔,右參贊金安國,大司憲柳雲,黃海監司金正國,持平趙光佐,吏曹正郞李忠楗,南道兵使柳庸謹,承旨申光漢,全州府尹鄭順朋,忠淸水使韓忠,典翰鄭譍,舍人崔山斗,檢詳張玉,吏曹正郞李希閔,舍人李淸,弘文校理梁彭孫,吏曹佐郞 或正 具壽福,吏曹正郞鄭浣,弘文校理李延慶,吏曹正郞李若氷,修撰權磌,弘文校理宋好智,縣監宋好禮,全羅都事金匡復,吏曹佐郞曺彥慶,承旨柳仁淑,刑曹正郞尹光齡,弘文博士權檣,監司文瑾,參議李成童,黃海都事申抃,佐郞柳成春,巴陵君璥,詩山正正叔,長城守儼,崇善副正灇,江寧副正祺等。書于單子啓之。又以薦擧科諸人不可。續續彈劾。請罷其科。上引見兩司長官。示季沃等請斬先生等疏。敎曰。朝廷若有得。公論。則儒生安爲。此論也。又召領議政鄭光弼,右議政金銓入臺。示臺諫單子及季沃等疏曰。近日災變疊出。此請罪事。何以爲之。鄭相陳其不可。金銓亦以爲根本旣已罪之。其餘何必歷歷治之也。上疑不決。翌日。傳曰。當初能治其首魁。則餘黨雖不治。而趨向自爾正矣。大臣視國家事。如他家之事。徘徊顧望。不定是非。此不過觀勢。以彼人被罪之輕重。爲後日自處之計耳。比之治木。根本旣斷。則枝葉自瘁矣。臺官不務治根本。而徒欲治枝葉。是不知務也。領左相其亟遞之。長坤亦罷。十六日。御筆特除南衮,李惟淸爲左右相。卽召對于丕顯閣。敎以加罪諸公之意。又召禁府沈貞,孫澍等。敎以光祖,淨,湜,絿賜死。自任,遵,世熹,薰絶島安置。衮,惟淸,貞等啓以四人中當有分別。其魁首罪之足矣。孫澍請竝於絶島安置。以示好生之意。上敎曰。光祖死無所疑惜。詔獄不恭之事。亦可死也。賜死。餘竝絶島安置。淨珍島。湜亡命。絿南海。薰義州。自任北靑。世熹江界。遵穩城移配。先生賜死。命下。弟崇祖奔往。哭於路傍。有老嫗自山谷哀哭而來。問曰。郞君何事而哭也。答曰。吾喪兄故哭。嫗則何哭也。曰聞國家殺趙光祖。賢人死矣。民必不得生故哭之。禁府都事柳淹至綾城。先生沐浴更衣。從容謂都事曰。主上賜臣死。合有罪名。請恭聽。都事無應。先生北面再拜。跪受敎旨。問上體若何。次問三公六卿臺諫侍從姓名後。修家書無差誤。遺命歸葬先人兆。都事有迫促之意。先生歎曰。古之人有抱詔書。伏哭傳舍者。何其異耶。正席就坐曰。愛君如愛父。憂國若憂家。又曰。白日臨下土。昭昭照丹衷。遂仰藥猶不絶。省人事。府卒欲就縊之。先生曰。聖主欲保微臣之首領。汝何敢如此。益飮毒酒而臥。五臟消融。血出于七竅。卽十二月二十日矣。年三十八。故事。凡賜死大臣。不用御寶文字。只奉王旨施行。都事宣旨。先生以爲國家待大臣。不可若是草草。其弊將使奸人。得以擅殺所惡者。欲疏進一言而竟不果。初鄭相務修舊規。先生欲復古道。兩人持議不合。而鄭相出死力相救。人推其德量。明年。歸葬先生于龍仁縣深谷里。路過光州。朴訥齋祥挽曰。無等山前初識面。牛車草草返荊扉。他年地下相逢日。休說人間謾是非。及葬。成守琮與洪奉世,李忠楗,李延慶等臨穴會葬。有祝獻以奠。相携長慟而返。衮等旣殺先生。又與李惟淸等。於御前議定兩司請罪之人。分輕重罪之。韓忠,鄭浣,崔山斗,鄭譍,柳庸謹,巴陵君璥等。外方付處。崔淑生,李耔,李若氷,梁彭孫,李希閔,李延慶,尹光齡,李忠楗,趙光佐,宋好智,宋好禮,崇善副正祺,長城守儼,詩山正正叔等。削奪。安瑭,金安國,柳雲,金正國,權磌。李淸,文瑾,李成童,申抃,柳成春,鄭順朋,具壽福,曺彥慶等。罷職。張玉,金匡復,柳仁淑,權檣,申光漢等。補外。後又論吏曹判書申鏛。禮曹參判權橃,承旨鄭忠樑,副提學李思鈞。兵曹參判朴英。刑曹參判尹世豪,禮曹參判崔命昌,左贊成李繼孟,評事李弘幹,弘文校理趙佑,弘文著作慶世仁,李翊,佐郞李阜,朴公達,尹衢,房貴溫,尹漑,高雲,鄭瑗,弘文博士任權,金明胤,安處謹,承旨成世昌,府使朴祥,翰林申潛,姜㶏,金神童,申遵美,鄭源,都事盧㻶,閔世貞,閔懷賢,李世蕃,洪士俯,縣監安處順,崔祥,朴遂良,崔澐,同知許伯琦,司諫朴紹,及第成守琮,察訪金泰巖,弘文修撰安處諴,承文正字柳貞,縣監金大有,成均學諭安處謙,判官朴璨,醫師安瓚,監察李思儉,師傅睦希曺,呂希臨,郡守李誾,參奉奉天祥,盧大明,金錫弘,金萬億等相繼罷斥者。不可勝記。又議罷薦擧科時吳準,李英符。同爲持平。英符曰。此科若罷。則當終身禁錮。可用之人。豈宜盡棄。準曰。我不意君輩至於此也。兩司遂駁罷英符,準。執義柳灌進啓曰。此科初選時。各擧所知。而異者則排棄之。及試取之日。禮曹以爲此人等。必不入場。至使書吏請入。安有如此寒心之事乎。雖其中有可用者。然無行者亦多。參試場之事。亦甚不公。速罷之。以正欺君之罪。正言趙琛曰。首謀此科者。安瑭也。鄭相曰。初設此科之時。臣意以爲不可。而不能止之。及取之。果多賢良之人。大抵我國人心。不如中國之人淳朴。後弊必多。故不欲開端。然薦擧不公之事。臣未之聞也。謂安瑭主之者。不然也。申用漑,崔淑生。力主其議。安瑭於其子參選之時。以爲無顯行避嫌矣。豈有爲其子而設此科乎。其後用漑亦悔之。語臣我之初計誤矣。特進官韓亨允曰。此科初欲廣取。故自上信而從之。終乃抄略其數。類皆趨時之人也。其建議者。皆盛氣焰。張順孫,曺繼商。因言時事。竝斥去。在朝者皆愛身而不敢言。大臣初誤建議。今知其弊。宜速啓罷。而言不可罷。安有如此痛憤之事乎。鄭相曰。初設時以非祖宗之規。又有後弊。故謂不可爲也。及旣取之。多可用之人。故惜其才而謂不可罷。此臣之意也。論議豈可苟同乎。大司憲李沆曰。金湜等。初非厭科之人也。才行短淺。必不能及。故數少抄選而試取也。今不罷此科。則權臣之欲植奸黨者。必藉此也。灌曰。湜全不知書。承旨金希壽曰。豈可云金湜全不知書。臣見其古文最難解處。必能剖釋之。修撰李芃 後改名薇芑之弟也 曰。祖宗陰佑。聖心開悟。知爲亂而治之。大臣無一爲殿下子孫萬代之計。頃者靖國功抄。削非大關。至率百官請追改。而今社稷大計危亡。所繫之事。不力爲之。鄭相曰。臣迷劣。不知何以則國事好也。必罷賢良科。而後可也。今者率百官諫爭之事。臣不能料也。其欲率百官而請加彼人之罪乎。聖明之下。安可如此乎。上初命不罷科。只不敍顯職。竟罷之。時封世子。仁宗 方設翊衛。一日金明胤訪申潛。言吾輩當更着紗帽矣。潛曰。何故。明胤曰。竊聞朝廷以罷人。充諸翊衛僚屬。潛以其言語洪裕孫。裕孫笑曰。是誰之言。必是欲自爲者探君意耳。居數日。明胤果拜洗馬。俄陞副率。時金世弼以賀正使赴京。及還拜刑曹參判。以特進官。入侍經席。講論語至過則勿憚改章。因啓曰。人不能無過。知其有過而勇於悔悟速改。則當爲忠厚之君子人也。或吝於改過而不遷。則終至於暴棄之域。是故。夫子旣曰過則勿憚改。又曰過而不改是爲過矣。蓋苟安於有過而憚於改之。然後方可謂過矣。則夫子之許其改過。而自修遷善之意至矣。頃者。趙光祖輩欲效唐虞之治。殿下尊寵而信任之。於是新進之士。必於一朝革舊更新。以施三代之政。殿下過用其人。反貽今日之憂。此等人皆一世之名勝。雖有過擧之失。不過引古之善政。徒煩欲速之誠。而但當警責其過激。導之以溫柔和緩而更化。則殿下涵容之德。將同符於古昔聖王。而乃加竄逐。根連鉤黨。殿下好善之心。不免於偏一之歸耳。古人有以乘舟喩其偏重顚覆之患者。伏願殿下亦勿憚勇改前愆。毋使有過之人。將不及於改過自新之路。其明日。金銓,南衮,李惟淸等詣闕。請遂下獄鞫問。削奪官爵而黜之。先生旣沒。衮等盡罷其施設。又議復立昭格署。不果。至是。慈殿未寧。召大臣議之。鄭相等議以旣罷不可復立。上令更議。鄭相等再三以爲不可。最後啓曰。自上非不知其不可。而爲慈殿如是下敎。臣等不敢獻議。遂復立。先生被罪。畿輔連歲旱蝗。壬午年。海西尤甚。康翎縣三人俱鋤禾。一人曰。旱勢如此。今年亦必不稔。頃者。趙宰相某爺極淸簡。百僚敬畏。各道郡邑。絶無簡請。以此鄕里之中。亦無叫呼之吏。今被竄以死。天災恐由於此。其一人來京告之。卽拿拷置極典。賞告者綿布。不告者抵罪。當初先生之被選也。先生叔父文節公元紀。以書戒先生及其甥洪議政子美曰。美之投閒。眞男兒事也。叢怨之地。豈敢久處。騎虎善下。自古所難。雖敗亦榮。況典簿閒雅之地乎。直之被薦。眞希世事而誠可賀也。惟叟之無咎無譽。足自安保。雖無可謂之榮與賀矣。而其所以終至於無憂。則信可樂也。直之被薦。喜與憂騈。敢有別告云。薦在我用在天。夫人之進止。特盡其在我者也。盛名之下。其實難副。夫旣有譽之者。則毀之者又從而擠之矣。有譽則有毀。此古今通患也。操履之愼。於前尤難。若色言狂驕。害己敗身之戒。則吾於孝直。不當警也。惟吾之所憂。則不在是也。凡人群居天地之中。不可以高飛遠走。則必須小同於俗。庶免爲衆所嫉。昔杜祁公嘗戒門人曰。切當韜晦。毀方瓦合。無露圭角。不然。無益於事。而秖足取禍爾。今吾之識。不及於杜之涯涘。而汝之知。有裕於杜之門人。則宜不以此警於汝也。然今之時。與杜之時。又加邈矣。而世路險巇。又萬倍焉。則吾之所戒。豈無所見而然也。去秋四館之議。亦其一驗也。當其時。不有一二君子沮而抑之。則其能無窘於砭者之鋒耶。今聞被薦而求免於選用。汝之心。必以爲一繫名韁。恐不專所業而然也。然吾家世。自先祖以廉謹自守。計不求足。而兄又早逝。汝之兄弟三人。俱業儒未成。寡妹偪側。言可寒心。吾亦自甲子亂離來。盪家業幾盡。雖復見天日。猶以迂拙。殆不能還成家業。轉轉僑寓。劻勷倍昔。今則邈守萬里。無意家事。辛勤萬狀。未易殫記。躬不自閱。況望顧他仕。不爲貧而有時爲貧。爲貧之仕。豈非今也其時乎。以家貧親老。比不能專業。則爲有間矣。況前聖以爵祿之辭。至比於蹈刃。凡人之樂於好事者。安知不以此爲矯情之誚耶。此吾所憂也。然則是擧非喜也。乃所以憂之也。惟無咎無譽。眞所謂保身之道也。昔馬伏波在交趾。爲書以戒兄子嚴敦。今汝之所趨。雖不類於嚴敦。而吾之所以使汝曹欲不失令名。成家業全門戶之意。則未始不同於馬將軍也。敢以是警之。其先見之明如此。時有一皮匠。與先生相知。先生就而問學。時或與共宿。勸之仕。不應。問其姓名。亦不言。蓋賢而隱者也。嘗謂先生曰。公之才。足以經濟一世。然得君而後可爲也。方今主上雖以名用公。實不知公也。萬一小人間之。則公必不免矣。至是果驗。人皆歎服。

陰崖 李耔別號 日錄曰。耔以不幸。早中科第。歷事廢朝。黽勉從事。爲便養出爲聞韶倅。天日重明。釐革庶政。首召侍從。疏外之跡。輒肆狂瞽。屢蒙天奬。出入十載。感激承恩。超取顯美。當時同輩。已側目矣。自視歉焉。思糜身報效。第學無經據。性復頑疏。兼以卒起人不見信。推賢好士。處之無方。馴致不測之禍。特蒙天恩。竢罪田廬。一時士流。亦皆貶竄。趙公孝直。受君命而死。嗚呼。人之云亡。豈無所謂乎。公性至孝。自少慷慨有大志。逮捷高科。躡盡淸顯。凡所設施。不撓於人。不離於道。士林咸推重焉。當國家中興之運。朝野望其維新之治。故公獨凝然建白。請復先王之法度。知無不言。言無不從。自以爲不世之遇。修明敎條。庶幾更張。天眷日隆。擢用不次。特除大憲。以副群望。把握紀綱。令行禁止。然後來諸賢。年少氣銳。改絃無漸。觸冒險阻。物情大乖。公與申大用,權仲虛等欲調適兩間。不至敗闕。而新舊惎之。以至今日。斯豈人謀之不臧哉。噫。是非雖混於一時。情狀畢露於後日。何必云云也。如耔者。爲人無狀。罪釁交積。詆呵萬端。尙能張口待哺。向人言笑。豈非頑然一醜物乎。吾與趙公最親且知。死生以之者也。今當垂死。恐吾子孫不知我交情之不負幽明。故庚寅除夕。乘醉信筆書之。
摭言 金正國所撰 曰。臺諫請革昭格署。累日不允。弘文館亦逐日論啓。一日。趙大憲光祖以副提學自製疏。率僚員詣政院。謂同僚曰。今日未蒙允。此不可退家。日暮。臺諫皆退。玉堂仍留論啓。至鷄鳴不止。上不得已允之。承旨等倚案熟睡。皆懷厭苦。大內嚴密之地。中使撤夜出入。煩啓不已。人君豈無厭聽之理哉。人臣諫君。當納約自牖。未有逼迫如此而無事者也。又曰。趙大憲光祖被寵遇。每賜對。必引喩義理。縱橫出入。言無停輟。他人無得措一辭於其間。雖隆冬盛夏。日午不止罷。其對所言。無不允之。同侍者甚苦。皆有厭色。嘗以大憲仕衙。途遇贊成高荊山。不禮而過。疾之者切齒。按漢史。蕭望之爲御史。意輕丞相。遇之無禮。張湯爲御史。每朝奏事。日昕乃罷。丞相充位而已矣。天下事皆決於湯。二人賢否雖不同。均之倨傲。專擅而取禍。古今一轍。君子處身。持敬謙遜。享福之基。可不愼哉。
僭言 鄭士元所撰 曰。金思齋摭言。有以靜菴先生論啓昭格署。至鷄鳴不已。爲犯人君厭聽之意。非納約自牖之道。愚竊以爲不審賢者事君之誠意。而泛以常人之情而度之也。夫君子之事君。務引之以當道。以至誠而回君之心而已。豈計其他哉。若逆料其君之厭聽。以待後日。則豈君子急於致君之心哉。方先生之知遇於中廟也。知無不言。言無不從。至有以先生之一言。而却擧朝之衆議。則其得君。可謂專矣。惟彼昭格之革。亦正君之一事也。累月論啓。尙未蒙允。則必其回天之誠。有所未盡。故先生激其敬君之義。擴其未盡之誠。累啓不已。至於夜艾。精誠所格。卒能感天。想其伏閤之時。必能齋宿豫戒。潛思存誠。冀以感動。如程夫子進講之誠意。而非常人之所能窺測也。且其啓辭。雖未及見。必因其明處而啓迪之者。無所不至矣。豈強之以所難能之事乎。昔明道召對。報午而始退。晦菴在朝。進講奏事。言無不盡。先生所爲。亦若是也。又曰。每賜對。言無停輟。他人不得措一辭於其間。是皆先生反覆講論。欲使義理習熟於聽聞。涵養薰陶。以就聖德於罔覺也。而況上之所眷注者先生。則其可不盡其所知而推之他人乎。昔伊川之進講。常於文義之外而反覆推明。聞者歎服。先生之所爲。亦若是也。賊衮媒孼。殄滅忠賢。何與於先生。而乃曰未有如此而無事者也。疾之者皆切齒。蘇軾之徒。仇視伊川。其可以程子爲有見疾之過乎。至於蕭望之,張湯事。又不知賢否之不侔。邪正之異類。其爲不經甚矣。學術不明。人不知道學之爲貴。妄以常情而議賢者。甚至於此。孰謂金公之正人而所見若是乎。
謹按。靜菴先生方被寵遇。經席之上。每以崇道學。正人心。法先聖。興至治之說。反覆啓達。辭旨勤懇。中廟傾聽。一歲中。超拜副提學。先生遂以致君經濟爲志。知無不言。多引淸流。布列朝廷。欲革近代拘常之習。以遵古先哲王之軌。于時流俗。大臣多不悅而莫敢言。士林興起而間有好名者雜進。論議大銳。作事無漸。先生以爲做事不可卒迫。當以漸進。與申公鏛,李公耔,權公橃。每抑儕輩之喜事者。於是。浮薄之徒。反以先生爲依違苟循。跡同憸邪。至有欲彈劾者。先生自知事必敗。白上曰。臣學術不足。而爵位過高。欲得一閒僻之郡。讀書進學。然後乃復立朝。而聖明不許。故眷戀遲回。臣罪大矣。嘗一日。先生與金公湜,金公絿諸友會話。崔猿亭壽城自外至。立而不拜。急呼金湜曰。老泉可飮我一器酒。卽與之。快飮曰。吾乘敗船幾溺。心甚怖悸。今飮酒釋然也。亦不辭徑去。座中怪之。先生曰。敗船之喩。指吾輩也。顧諸君不知耳。然則先生非不知時之不可爲。道之不可行。而猶未敢決意遠擧。卒之身陷大戮。國隨以亂。使後人反以爲深戒。不復有爲。天實爲之。謂之何哉。雖然。吾東方理學無傳。麗季鄭圃隱始發其端。規矩不精。我朝金寒暄接其緖。而猶未大著。及先生倡道。學者翕然推尊之。今之知有性理之學者。皆先生之力也。然則先生之道。雖不顯於一時。其有功於後世。可謂盛矣。

[주-D001] 瑞 : 瑞麟

 

2]李信告金湜與其黨謀害大臣。湜因亡命自殺。河艇等二人被誅。餘皆徙邊。

學倡徒。長髮從遊。築土宇於其家墻外。爲學不倦。湜嘉其意。盡心敎誨。如待親子弟。及湜被竄。信適在外。追至配所。庚辰二月。湜聞加罪事。喟然歎曰。燎原之火。迫于四郊。將與所舍。同就燒盡而已。適有客曰。奸人之事。不可測也。徒死何益。當投隙觀勢。若知加罪出於主上。則死無遺恨。湜曰。凶謀有所不測。挺身赴難。以報不世之遇。所素願也。遂與客縱飮大醉。不省人事。客與李信輩謀曰。安忍坐視無罪而就死於奸人之手乎。不如竊負而逃。僥倖保全。乃使家僮唵山負持。行數十里。猶鼾睡如初。及曉乃覺。業已到此無可奈何。遂與李信,唵山投靈山李中家。中適上京。其弟庸深藏于內房。數日後。中還。湜留十餘日。與中卜藏身吉凶。爻辭有山人毀事之語。不欲向山寺。中曰。信本緇徒。卽是山人。而性又不順。且人衆難容。不如先出送。庸曰。爲大事者。不顧小仁。若或疑之。當滅口。豈可先送。湜曰。不可以卜筮先疑未萌之心。不如資其糧餉。樹恩善別。可也。卽與之別曰。逮捕日嚴。吾三人勢難同行。汝須先行。探問朝報。期會於茂朱吳希顏家。時湜子德純,德秀兄弟與德純妻乳母義子朴年中。俱亡匿。以德秀有武略。年中爲驍倢。追捕益急。信直抵京城告曰。金湜今在靈山李中家。使其子德純,德秀與其門徒朴年中等。謀害大臣。禁府都事馳到李中家。則湜前一日。已出去矣。湜晝伏夜行。艱至茂朱界。吳希顏亦已被拿而去。四顧無依。由山谷間。欲抵智異山。到居昌縣修道山之南。不得食者已數日矣。一日。在高梯院之東北山麓。採薇欲治食。使唵山求火於村舍。題一絶於巖上曰。日暮天含黑。山空寺入雲。君臣千載義。何處有孤墳。遂自縊。唵山蘊火而返。已無救矣。卽庚辰五月十六日也。湜衣帶中。有疏草。唵山持告于縣。縣啓聞。命所在診驗。然後放夫人之囚。籍沒家產。或云。是時朴訥齋祥。居廬于光州。湜往陳亡命之由。祥曰。南衮。小人之雄。處事奸巧。使人主蠱惑。不自覺其端倪。豈可居中用事。致人相窺而議己也。湜悔恨喪心。卽定一死。遂至自盡云。其疏曰。亡命臣金湜。謹拜手稽首。吐露微臣寸忱于主上殿下。臣旣負殿下爲亡命。極知無露情悃於殿下。徒爲喋喋。但臣之亡命。亦非徒然。則不忍不略吐謬見。使殿下長慮也。臣雖無狀。粗識古人行己大方。則非不知偸生之可恥。守節之可尙。必此冒恥而爲之者。見凶賊之將危宗社。欲效區區之忠義。非負殿下。願殿下小垂察焉。豈特知臣之情而已哉。當初被罪時。詳聞起禍之由。沈貞本一貪饕無厭。兇狡難狀小人。不爲淸議所容。積怨于胷。思欲作亂者久矣。第無其隙。因光祖知遇聖上。學者同趨。小民稱善。乃以不經讖文。潛撓上旨。又嗾被屈不逞數三宰相。遂構士林之禍。士有一名。皆編黨籍。遂聚頑鈍嗜利無恥之輩。充諸朝廷。用其姻李蘋爲館長。臺官稍有淸論。令蘋擊去之。俾上聾瞽。又與南衮多聚武士。朝夕盈門者。志豈止於翦除士林而已哉。然則朝廷非殿下之朝廷。乃貞之朝廷也。殿下之勢。不亦孤哉。不亦危哉。臣故隱忍亡命而竢之。姦凶危逼於君上。則挺身赴難。以報殿下不世之遇。此臣之素志也。且臣深知殿下之疑光祖。非本心也。罪臣亦非本心。故爲此區區也。願殿下幸深察微臣情素而觀其勢。則可以知姦凶之情迹。若殿下不悟。則祖宗奈何。社稷奈何。盡殺名士而國存者未之有也。微臣一身。非所恤也。以臣之故。延及無辜。卽當爲殿下訣。敢以是上達。時河艇爲金海府使。李允儉爲寧海府使。皆武人。信告金湜在逃。投宿金海衙軒。遣禁府都事與昌寧縣監安希文。馳到金海。則艇已逃。朝廷以爲都事與縣監。故放致逃。皆杖流極邊。及艇被拿鞫問。與金湜所議事。逐日刑訊。仍誣服。被誅籍沒。信又告金湜在逃日。嘗言容我者。惟寧海府使李允儉及崔澐而已。拿囚允儉訊問。以無驗得免歸鄕。憂憤而卒。允儉。希閔之父也。澐拿推。全家徙江界而卒。洪順福拷掠得情。當以杖流。臺諫爲其供辭多引時政。觸犯不諱。請加罪。擬以死律。臨刑。索朽再絶。順福顧謂監刑官曰。君奉王命監刑。以朽索繫罪人頸耶。辭色不變。沈灃。湜之姨子。以湜母夫人生辰。到其家。適逮捕德純,德秀兄弟。而德秀變着女服。伏於夫人中。官人見容貌矮弱。手足纖細。以爲處子得免。遂與德純逃躱。故澧獨被拿。質諸李信。則信曰。金湜家親信之人。鞫問時。不知所言。以謀害沈貞爲供。杖流鐵山。李中以容匿承服。罪止竄配。沈貞必欲殺之。使人私謂中曰。率妻子徙邊。不如自殞杖下。嚴加訊杖。中高聲大言曰。容接旣以承服。不須更杖。乃止。全家徙富寧。後蒙赦。金胤宗聞禍起。來在北長 或丈 寺。因避入俗離山。大軍隨而至。遂被拿。其僕泣而進飯。胤宗曰。我以將死者不泣。汝何泣爲。從容盡食。略不畏怯。流明川。死于謫所。柳淇,朴仁誠,權緯,權經等。亦皆杖流。緯,經。校理景裕之庶子也。後皆蒙赦。尹光溢。杖配徒役。士人尹漬之庶子也。以理學稱。然爲性多拗。不能該貫微妙云。崇善正。先生畏友也。以金德純妻父。杖流寧海。夫人欲往從。而不能跨馬。習騎於家庭。卒能行遠。聞者酸鼻。吳希顏。徙碧潼。後蒙赦。朴年中。亡匿蒙赦。後終不出。囚人之族親問候者金鳳年,呂海等。亦被訊杖。李中弟庸。每冬。收綿布於各邑臧獲。率壯奴十餘。自靈山往見其兄於謫所。明春出來時。留其奴使之力農。歲歲相遞者凡十九年。而終始不怠。其友愛如此。庚辰秋。金湜尸舁至忠州。夫人往迎斂棺。不能返葬。權厝于其地。信受賞後歸其鄕。爲強盜被囚。郡守金文瑞杖殺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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