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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사미정일기(四未亭日記)◈≪명칭≫봉화 사미정(奉花 四未亭)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11. 30.

  ◈사미정일기(四未亭日記)◈  

≪명칭≫봉화 사미정(奉花 四未亭)

≪소재지≫경북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554번지

≪문화재분류번호≫경북 유형문화재 제477호(2013년 4월 8일 지정)

 

『사미정일기(四未亭日記)』는 옥천(玉川)조덕린(趙德隣:1658-1737)이 만년에 학문을 강마하기 위해 아들에게 시켜 丁未年 丁未月(6월) 丁未日(22일) 丁未時에 지은 정자의 전말을 한 책으로 기록한 것이다. 누실(陋室) 이중연(이중연(李重延,1711~1794)이 마을의 몇 분과 함께 사미정의 영조(營造)와 수리 내역, 내방객의 면면을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미정(四未亭)에 대한 기록을 후배들에게 남겨 징험(徵驗)자료로 삼고자 하기 위함이다.

다덕약수는 봉화에서 춘양을 가는 국도변에 있다. 탄산이 많이 함유된 약수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잔 마시면 탄산의 싸한 기운이 혀를 치는데, 이 물로 백숙요리를 하면 기름기가 적고 국물이 시원하다고 한다.

 

사미정은 춘양 삼거리를 지나, 옥천삼거리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옥계정 있는 마을 길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하나 넘어야 나온다. 사미정은 굽이돌아 흐르는 계곡물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소박한 정자다. 사간원 사간을 지낸 옥천 조덕인(1658-1737)선생이 1727년에 지었다. 조덕인은 유배되어 있을 때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丁未年 丁未月(6월) 丁未日(22일) 丁未時에 당하여 집을 짓게 했다. 이때를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이때에 모든 이를 경영하면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사미(四未) 또한 부자유친, 군신유의, 붕우유신, 형우제공(兄友弟恭)을 뜻하는 말로, 이 도를 행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서 학문에 더욱 정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얀 반석 위를 타고 내려가는 사미계곡 물이 좋아서, 잠시 세상을 잊고 머무를 만한 곳이다.

사미정(四未亭)은 조선 후기의 문신 조덕린(趙德隣:1658∼1737)이 만년의 수양 생활을 위하여 명승지(名勝地)를 찾아 건립한 것이다.

 

조덕린(趙德隣)은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택인(宅仁), 호는 옥천(玉川)이다. 1677년 사마시, 1691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 그후 교리(校理)·사간(司諫)을 역임하고, 1728년 동부승지에 올랐다. 당쟁의 와중에 휘말려 여러 번 유배당하였으나, 높은 도학(道學)과 절의로 명망이 높았다.

 

정자의 현판 〈사미정(四未亭)〉과 내현판(內懸板)인 〈마암(磨巖)〉의 글씨는 정조 때의 명상(名相)인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친필로 전해진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경사진 대지에 위치하는 사미정(四未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형식의 정자이다. 정자 건물의 평면은 어간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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