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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양평의 명가를 만나다… 능말 한양조씨♥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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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명가를 만나다… 능말 한양조씨♥

입력 2015.01.08 17:28

기자명성영숙 기자

 

▲ ‘양평의 명가전’ 개막식이 끝난 후 참석자들이 조찬희 대종회 전례위원의 안내로 전시유물을 둘러보고 있다.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은 지난 6일 ‘제5회 양평의 명가전-능말 한양조씨’ 기획전 개막식을 가졌다. 개막식에는 친환경농업박물관 관장 보인스님, 이부영 부군수, 송요찬 군의원, 윤광신 도의원, 조병옥 종중회장, 조찬희 대종회 전례위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박물관장인 보인스님의 인사말로 개막식이 시작됐다. 내빈 축사에 이어 조찬희 대종회 전례위원의 안내로 전시유물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양평의 명가전은 양평을 터전 삼아 큰 업적을 남긴 가문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로 올해는 능말 한양조씨를 소개한다. 한양조씨 가문은 조선 중기부터 양평읍 도곡리를 중심으로 양평지역에 대를 이어 살아온 가문이다. 1부 한양조씨의 역사, 2부 임진왜란과 위성공신으로 나눠 관련 유물을 전시한다.

 

주요 전시유물은 한양조씨 종중에서 공개한 고문서와 회화, 종중 묘에서 나온 부장품 등이다. 조공근 공신초상화는 조선중기 전형적인 공신초상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로 이번 전시를 통해 학계와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유물이다.

국보 제335: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

‘이십공신회맹축 –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숙종 6) 8월 30일에 개국공신(開國功臣) 이래 보사공신(保社功臣) 까지의 공신과 그 자손들을 모아 회맹제(會盟祭)를 거행한 후 작성한 회맹축이다. 이 회맹축이 작성된 시기는 1694년이다. ‘보사공신’이란 1680년(숙종 6)년 4월에 서인이 다시 집권하게 된 ‘경신환국(庚申換局)’ 때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내린 훈호(勳號)였으나, 1689년에 삭훈되었고 이후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삭훈된 공신들을 복훈(復勳)한 공신들을 말한다. 국보 제335호 회맹축은 이러한 숙종 연간 보사공신의 녹훈-삭훈-복훈이라는 역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물 자료로서 오래 전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공신과 공신의 적장자손(嫡長子孫)에게 반사하기 위해 활자로 간행한 ‘회맹록(會盟錄)’은 많은 복본(複本)을 제작한 결과 전래본이 다수이지만, 국보 제335호는 반사본(頒賜本)이 아닌 어람용이므로 유일본에 해당된다. 공신회맹이 있을 때마다 어람건 회맹축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10년까지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다. 1646년(인조 24)년과 1694년(숙종 20) 제작한 2건과 1728년(영조 4) 분무공신(奮武功臣) 녹훈 때의 이십공신회맹축이다. 이 중 영조 연간 분무공신 녹훈 때의 이십공신회맹축의 실물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정치적 안정을 기하기 위해 역대 공신과 후손을 모아 충성맹세를 받았던 회맹제를 거행했을 때의 회맹문과 보사공신을 비롯한 20종의 공신과 그의 적장자손 총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 및 종묘축제문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제작연대, 제작사유가 명확히 적혀있고 그 위에 국새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어 기록문화적 의미 역시 매우 크다. 숙종 대 녹훈도감(復勳都監)에서 제작한 이 회맹축은 1694년에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을 거치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혼란하였던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 삭훈되었던 보사공신들을 복훈(復勳)하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숙종의 정치적 의도를 엿볼 수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 정치사적 가치가 높다. 아울러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롭고, 장대하게 제작되어 공예, 직물사적으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세로 88.8cm, 가로 2,414cm의 긴 두루마리에 당시 글씨를 잘 썼다고 알려진 서사관 이익신(李翊臣)이 글씨를 쓰고, 국왕을 위해 옥이나 상아, 생초(生綃)나 비단과 같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숙련된 기량을 지닌 관청 소속 경공장들이 솜씨를 발휘하여 형식적인 완성도가 높아 조형 예술적으로도 주목된다. 이 어람회맹축은 이것을 만드는 전말을 기록한 『녹훈도감의궤(錄勳都監儀軌)』를 통해 평남 성천에서 옥축(玉軸)을 진상하거나, 베틀로 생초(生綃)를 직조하고 다회틀로 다회(多繪)를 짜고 상아로 비녀(簪)를 만들었으며, 비단 위에 배접을 3번 바르고 매끈하게 광낸 후, 화원 한후방(韓後邦)이 인찰을 긋는 등 어람용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고급 재료와 도구 및 장인의 기록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왕실공예품의 기술적 수준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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