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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조광조,학포양팽손◑

능주의 극과 극, 줄타기의 명수 능성구씨의 관향, 지조와 절개의 표상 조광조 유배지

by 晛溪亭 斗井軒 2025.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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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사람과산_김규순의 풍수이야기 2014년 10월호

능주의 극과 극, 줄타기의 명수 능성구씨의 관향, 지조와 절개의 표상 조광조 유배지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화순적벽 풍류시인묵객의 명승지. 조광조가 사약을 받기 전 열흘정도 머물며 인생을 정리했고, 김삿갓은 말년에 이곳에 살면서 화순적벽을 사랑하다 절명했다. 조광조와 같은 시기에 동복에 유배온 최산두(1483-1536)가 명명하였고, 임억령(1496-1568)은 적벽동천이라 불렀으며 하서 김인후는 적벽시를 남겼다. 호남8경 또는 조선 10경으로 일컬어지는 절경이다.

無等山高松下在 무등산이 높아도 소나무 아래에 있고

赤壁江深沙上流 적벽강이 깊어도 모래위로 흐르네 <적벽가/김병연>

김삿갓이 읊은 적벽강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동복호의 건설로 물이 차서 수심은 25미터나 되고, 적벽도 10미터이상 잠겨서 적벽 본래의 위용을 느끼기에는 2% 부족했다.

화순은 영산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로 나누어진다. 무등산을 기점으로 오산∙천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쪽은 동복천과 동복호가 있는 섬진강수계이고, 능선의 서쪽은 지석천이 흐르는 영산강수계로 물의 흐름이 다르다. 물이 다르면 사람의 기질도 달라진다. 화순은 화기애애한 순리의 고장이다. 동쪽은 산이 높아 절경을 안고 있으며, 서쪽은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화순평야와 능주평야가 드넓다.

생리生利가 확보된 평야를 끼고, 지근거리에 절경을 머금은 산이 높솟아 있고 물이 휘돌아나가며, 교통 좋고 인심 풍부하니 사람 살기 딱 좋은 고장이다.

 

능성구씨綾城具氏 _ 기회포착의 명문가

화순의 중앙에 능주가 있다. 능주의 옛 이름은 능성이었다.능성구씨는 토착성씨로 계유정란으로 수양대군의 신임을 받아 구치관이 영의정까지 올라 가문이 융성해지기 시작했으며, 능성을 관향으로 한 능성구씨가 조선 중앙정치의 주류를 형성한 시기였다. 능성구씨의 시조 구존유의 무덤은 구씨들이 사는 정리마을 입구에 있고, 아들 구민첨의 무덤은 8부 능선에 있다. 이들 묘를 보건데, 그들이 살았던 집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성격이 급하지만 영리하여 판단이 빠르고 과단성이 있다. 과거급제자 562명중 무관이 363명으로 65%를 차지한 조선 10대 무관명문가로서 정변과 반정에 특히 많이 가담한 가문이다.

구치관(9대)은 계유정란 공신으로 정치의 주류 편입에 성공하였고, 동생 구치홍과 구치명은 성종의 정치적 걸림돌인 구성군 이준을 제거하는 수완을 보여 왕의 측근으로 세력을 공고히 하였다. 세조의 총애를 받아 최연소 영의정에 올라 종친의 구심점이 된 구성군(세종의 4남 임영대군의 둘째아들)을 이용하여 남이장군을 제거한 뒤 구성군을 탄핵하였다. 구치홍의 아들 구수영과 구치명의 손자 구현휘(11대)는 중종반정공신이다. 구수영의 아들 구문경(11대)은 연산군의 부마였고, 구사안(13대)은 중종의 부마가 되어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훈련대장 구 굉(14대)과 15대 구인후, 구인기는 인조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는데, 인조의 생모인 인헌왕후의 아버지가 구사맹(13대), 구 굉은 오빠이다. 역사적으로 인조반정은 명분이 없는 성공한 쿠데타였다.

 

능성구씨 시조 묘 화순군 한천면 정리 연곡산 아래, 한천면 정리 구씨마을 입구에 있다. 럭키금성그룹의 구자경 회장이 능성구씨 대종회 회장을 지냈다. 산봉우리 능선이 유연한 지형을 간직하고 있으나, 용맥은 급하고 머무르지 못한 지세이다. 영리하여 판단이 빠르며, 성격이 급하지만 과단성이 있다. 투구모양의 안산이 깔끔하게 보이니 무관의 가문임을 속일 수가 없다.

능성구씨는 세조이후 연이은 한 번의 정란과 두 번 반정에 성공함으로써 조선정치의 주류를 꿰었다. 그러나 정조 10년, 형조판서를 역임한 훈련대장 구선복具善復의 상계군 이담常溪君 李湛 추대역모사건이 발각되어 1786년 12월9일 능지처사 당하고, 아들 구이겸은 효시 되고 조카 구명겸은 주살된다. 능성구씨의 줄타기는 한 번의 실패로 333년간 무관가문이 쇠퇴의 길을 맞이했고 조선정치의 주류에서 멀어졌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라는 격언처럼, 반정으로 일어선 가문이 역모로 쓰러졌으니, 명문가도 흥망성쇠의 갈림길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능성구씨 2세 구민첨의 묘 화순군 한천면 정리 연곡산. 시조 묘에서 우측으로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8부 능선위에 상하 쌍분으로 부부무덤이 있다. 산봉우리 능선이 유연한 지형을 간직하고 있으나, 용맥은 급하고 머무르지 못한 지세이다. 영리하여 판단이 빠르며, 성격이 급하지만 과단성이 있다. 투구모양의 안산이 깔끔하게 보이니 무관의 가문임을 속일 수가 없다. 럭키금성그룹의 구자경 회장이 능성구씨 대종회 회장을 지냈다.

능성구씨 정리마을 입구대문

같은 능성 다른 느낌, 조광조의 적려유허지

능성은 충절이나 명분보다는 기회포착의 명수이자 줄타기 달인의 유전자를 지닌 능성구씨의 관향이다. 바다에서 멀지 않으면서 산악지대를 배후로 한 평야에 위치한 능성은 해양성과 대륙성의 중간 지점이다. 상반된 물질문화 사이에서 항상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요구되었다. 산이 필요하면 산으로 들어가고 바다가 필요하면 바다로 나가는 그들의 선택은 삶의 핵심이었다.

또 한가지 물은 고장의 기질이기도 하다. 같은 강물을 마시고 사는 사람들은 기질도 비슷하다. 산악지대를 흐르는 섬진강과 평야를 가로지르는 영산강은 그 성격이 다르다. 두 강이 같은 무등산에서 발원하지만 같은 듯 다른 강물인 것은 여지가 없다. 이 두 물을 다 가질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을 갖춘 곳이 능성이다.

반면에 능성은 정암 조광조의 유배지이며 사약을 받고 절명한 곳이기도 하다.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유교적 이상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급진개혁을 추진하다가 훈구파에 의해 꿈이 좌절된 절개와과 지조의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인 희생물이 되었지만 대유학자로서 그가 없는 조선유학은 존재하지 못할 정도로 상징성과 영향력은 지대하다. 능성에 유배당한 정암은 자신의 처지를 순리대로 받아들인 채, 비록 타의에 의해 정해진 절명의 땅이었지만 화순능성에 안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목욕재계하고서는 절명시를 남긴 뒤 사약을 들이켰다.

憂國如憂家 나랏일 집안 걱정하듯 했고

愛君如愛父 임금을 아버지 섬기듯 하였네

白日照丹衷 밝은 해가 붉은 마음 비추니

昭昭臨下土 기꺼운 마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리 <절명시>

조광조 적려유허비 정암 조광조의 유배지이며, 사약을 받고 절명한 곳.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다.

능주 고을 능성은 화순군 능주면의 옛 지명이다. 마을 뒷동산인 비봉산에 기댄 능주 고을이 평화롭게 보이는 곳이다. 이곳이 능성구씨의 관향이자 정암 조광조 선생의 유배지로 사약을 받은 곳이다.

죽수 서원 조광조와 양팽손을 기리는 서원. 양팽손은 조광조의 친구로 목숨을 걸고 역적으로 몰린 조광조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죽수서원을 찾아 들어가는 길은 농로로 이어진 듯한 협소한 길을 따라가야하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확실하게 찍고 가야 한다. 능주에서 한천면으로 가는 길에 29국도 고가 아래를 지나자마자 우측에 서 있는 죽수서원이라는 표지판을 지나치지말고 좌회전해야 한다.

화순적벽和順赤壁은 고종명考終命의 땅인가

화순적벽이 명승지라고 해도 믿지 않았다. 화순적벽은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일어, 귀찮음을 무릅쓰고 광주광역시 용연정수사업소에 공문을 보내어 일주일 만에 출입허가 승인을 받았다. 임도를 따라 5km를 가면서 동복호의 멋진 경치를 즐겼지만 어느 호수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임도의 끝자락 망향정에 도달하니 높다란 옹성산 자락에 적벽이 떡하니 버티고 나를 반겨준다. 수 억 년의 세월이 만든 작품에 탄성이 절로 난다. 사람들은 경치가 좋으면 명당인지 착각한다. 최고의 흉지도, 최고의 길지도 절경을 지닌다. 흉지로 분류되는 절벽위에 올라가보라 경치는 더할 나위 없다. 이런 곳에 살면 우울증 환자와 자살자가 속출할 것이다. 이런 곳이 조광조와 김병연에게 생을 마감하는 종명지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김병연 종명지_창원정씨 댁 안동김씨 김병연이 방랑을 멈추고 머물다가 죽은 창원정씨 사랑채. 김삿갓은 김병연의 예명이다. 그는 방랑시인으로, 지금의 어느 연예인보다 인기가 있었다. 그의 아들 익균이가 전해지는 소문으로 계룡산과 경상도 산촌, 진주에서 아버지를 찾아냈으나 그 때마다 김삿갓은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김삿갓이 죽은 지 3년 만에 동복에서 영월로 이장을 하였으니,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기에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겠는가. 비록 시였지만, 서민들의 속마음을 대변해주었고 그들의 애환에 동참한 김삿갓은 최고의 인기인이었으므로 아들은 영월에서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해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죽을 자리를 찾았던 김삿갓은 행복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정암 조광조는 능성에 유배를 당한 가운데에서도, 배를 타고 적벽을 바라보며 인생의 마지막 주어진 시간을 정리한 곳으로 유명하다.

김삿갓 김병연(1807-1863)은 안동김씨 가문으로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투항한 연유로 멸문지화가 닥쳐 영월로 숨어살았다. 그는 벼슬길로 나갈 수 없음을 비관하여 반항과 방랑의 인생을 살며 선문답과 같은 시를 남긴 천재시인이다. 그의 방랑벽을 멈추게 한 곳이 화순적벽이다. 그가 한 번 화순적벽을 다녀간 3년 후 다시 화순적벽을 찾아들어 적벽아래 사공도 없이 홀로 배를 띄어놓고 난간에 기대어 적벽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타인에 의해 종명지가 되었고, 또 한사람은 자유의지로 종명지를 택했다. 서경에 의하면 고종명은 오복의 하나이다. 사유종시事有終始, 죽음은 생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시각에서 떳떳하게 홀가분하게 자유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적벽이 종명지로서 길지가 아니겠는가.

동복호 망향정 동복호는 1985년에 준공되었다. 동복호로 인해 물의 깊이가 25m에 달하여 십 수개의 마을이 잠겨 실향민이 생겨났다. 망향정은 그들을 위한 기념물이다. 그들은 명절 직후에 여기에서 모여, 이곳을 팔아먹은 그 당시 화순군수를 씹으며, 다시 돌아가고 싶은 20년 전의 적벽 절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산강 구역에 살고 있는 광주시민이 섬진강물을 마시며 살고 있는 아이러니를 발견하였다.

극과극의 인물이 선택한 화순적벽.

조광조는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충절과 지조를 대표한 인물로 사대부의 표상이 되었고, 김삿갓 김병연은 반역의 후손으로 조선의 폐해를 손가락질하며 반항적인 시로 서민들의 한을 대변한 인물이다.

적벽은 조광조에게 무엇이라 말하였기에 白日照丹衷을 읊조리며 사약을 들이켰으며, 적벽은 김삿갓에게 무엇이라 말하였기에 방랑길을 되돌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는가.

깨어지고 부서져도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적벽이 절개의 상징일수도 있지만, 바람과 물의 스침을 자연스런 아름다움으로 간직한 적벽이 선가의 상징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화순 적벽에서 숙제를 안고 돌아간다.

쌍봉사 통일신라시대부터 실존한 천년고찰. 국보 제57호 철감선사탑과 보물 제170호 철감선사탑비의 석물조각이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좌청룡우백호가 물의 흐름을 제어하니 욕심이 없다. 절의 인심도 좋아 찾아온 모든 방문객에게 공양하고 가라고 큰소리로 공지한다.

운주사 천불 천탑의 사찰. 백성의 염원인 미륵불이 누워있는 사찰. 들어오는 입구가 열려 있어 절이 유명한 만큼 살림은 윤택하지 않을 것이다.

1985년 광주광역시가 인근의 땅을 매입하고 동복호를 만들면서 수원지보호명목으로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화순적벽이다. 광주광역시 는 영상강 수계에 있지만 섬진강물을 먹고 사는 것이다.

광주시 용연정수사업소의 허가를 받아서 출입을 해보니 조선10경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그 동안 민원이 폭주하여 2014년 10월23일부터는 한정적이기는 하나 관광객을 받는다는 소식이다.

화순적벽은 화순군에서 관리하는데, 사전예약으로 망향정 임도로 통행하게 된다. 전용차량을 이용하여 주 3회, 1일 2회 일반인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겨울철에는 임도가 위험하여 개방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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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_화순] 능성구씨의 관향, 지조와 절개의 표상 조광조 유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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