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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정치' 지목된 유승민 …朴 "왜 나와 거리뒀나 모르겠다" [박근혜 회고록]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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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정치' 지목된 유승민 …朴 "왜 나와 거리뒀나 모르겠다" [박근혜 회고록]

유성운입력 2023. 11. 14. 05:00

“당선된 후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배신의 정치’가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목한 것으로 해석되면서다. 대통령이 여당의 원내 사령탑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은 정치사에서 드문 일이었던만큼 파장은 컸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유 원내대표는 결국 7월 8일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 사태는 이듬해 총선에서 소위 ‘진박 감별사’ 논란과 함께 유 원내대표의 공천 탈락과 무소속 출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 파동’ 등을 촉발했고 결국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거대한 나비효과를 일으킨 ‘배신의 정치’ 발언은 왜 나오게 된 것일까.

박 전 대통령은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의 ‘박근혜 회고록’을 통해 당시 발언의 전말과 함께 김무성·유승민 전 의원과의 관계, 2016년 총선 ‘진박 감별사’ 논란 등을 14~15일 이틀에 걸쳐 술회한다.

박 전 대통령은 2004년 총선에서 유 전 의원을 비례대표 안정권으로 챙겼던 일화를 소개하며 “정치권의 인연으로 따지면 오래된 사이”라면서도 “언제부턴가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고 말했다.

김무성 전 의원과의 소원한 관계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12월 청와대 비공개 만찬에서 그가 빠지게 된 배경 등을 처음으로 밝히며 “당시 좀 어색하더라도 김 대표를 만나는 게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지나고 나면 아쉬운 일이 참 많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새누리당과의 관계를 보다 원만히 풀어가지 못한 건 큰 회한으로 남아있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16일에는 2013년 기초연금 공약 수정과 이에 반발한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등을 다룬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박근혜 회고록의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회고록 주소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6770 입니다.

■ 더중앙플러스 ‘박근혜 회고록’

디터 김정하 유성운 손국희

한국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는 미묘하다. 집권 초에는 청와대와 여당이 일심동체처럼 움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양쪽의 견해차가 점점 심해진다. 더는 선거에 나설 필요가 없는 대통령은 정해진 5년 임기 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을 최우선 목표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선거에 도움이 안 되면 여당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대통령 입장에서 여당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은 성공적인 국정 운영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재임 중에 새누리당과의 관계를 보다 원만히 풀어가지 못한 건 큰 회한으로 남아있다.

당·청 관계에서 전기점이 생긴 것은 2014년 7·14 전당대회였다. 황우여 대표가 2년의 임기를 마친 뒤 새 대표를 뽑는 경선이 벌어졌는데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나는 개인적인 관계로 볼 때 서청원 의원이 여당 대표가 되는 게 당·청 관계에 좀 더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당내 친박계가 주로 서 의원을 밀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경선에 개입하면 부작용이 클 게 뻔해 내 의중을 내비치는 것은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잖아도 서 의원과 김 의원이 세게 충돌하면서 경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나는 경선 당일 잠실체육관에 가 ‘1호 당원’으로서 인사말을 통해 “치열한 경선 과정에서 주고받은 서운한 감정은 잊고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친박 좌장’ 서청원 꺾고 대표된 김무성

뚜껑을 열어 보니 김무성 의원이 29.6%의 득표율로 서청원 의원(21.5%)을 예상보다 큰 격차로 이기고 새 당 대표가 됐다. 당시 경선 결과에 대한 보고를 들어보니 김 의원이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고 공약한 게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상당히 어필했다고 한다. 당원들이 후보를 뽑는 상향식 공천은 정당 민주화라는 대의명분만 놓고 보면 이상적인 제도다. 민주주의의 전통이 굳건한 구미 선진국에선 보편화된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풀뿌리 정당정치 기반이 아직 취약한 한국에선 상향식 공천이 자칫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정치 신인들은 각종 규제로 꽁꽁 묶여 있기 때문에 경선에서 자금·조직력·인지도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현역 의원들이나 당협위원장을 꺾기란 굉장히 어렵다. 나는 그런 부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언론에선 나와 김무성 의원을 애증의 관계로 묘사하곤 했다. 김 의원은 2005년 내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사무총장으로 발탁해 인연이 시작됐다. 2007년 대선 경선 때도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에 소원해졌다. 2009년 5월 당시 청와대가 김 의원을 원내대표에 추대하려고 했으나 내가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김 의원이 세종시 원안에 대한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나는 “가치 없는 얘기”라고 잘랐다. 나는 이른바 ‘친박 좌장’으로 불리는 인사가 세종시에 대해 나와 다른 의견을 얘기하면, 외부에서 내 생각도 달라진 것 아니냐는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① “위안부 합의 들은 적 없어” 윤미향 오리발, 말문 막혔다 [박근혜 회고록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717

② 朴 커터칼 테러때 도착한 쇠고기, 거기엔 아베 편지 있었다 [박근혜 회고록 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960

③ 안 그래도 ‘최순실’ 터졌는데…朴, 왜 논란의 지소미아 집착했나 [박근혜 회고록 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7297

④ 김종인ㆍ이준석 회심의 발탁…朴, 뒤지던 선거판 뒤집었다 [박근혜 회고록 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7978

⑤ ‘이명박근혜’ 신조어 공격까지…그래도 난 MB 버리지 않았다 [박근혜 회고록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8268

⑥ 내가 재계 로비 받은 듯 비난…김종인, 어처구니없었다 [박근혜 회고록 6]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8520

⑦ 안대희ㆍ이완구 다 날아갔다…“가슴 쓰렸다” 총리 잔혹사 [박근혜 회고록7]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9668

⑧ 朴 “내가 혼외자 터뜨려 채동욱 찍어냈다? 황당하단 말도 아깝다” [박근혜 회고록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9967

⑨ 통진당 해산 반대한 문재인…朴 “위기때 실체 드러나는 법” [박근혜 회고록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0295

⑩ “내가 정윤회와 호텔서 밀회?”…朴 직접 밝힌 ‘세월호 7시간’ [박근혜 회고록 10 - 세월호 (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1531

⑪ 세월호 그날 청와대 왜 갔나…朴 밝힌 ‘최순실 미스터리’ [박근혜 회고록 11 - 세월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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