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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우리는 같은 민족고려인 입니다.독립운동가의 후손 고려인!!!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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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민족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고려인!!!

우리는 같은 민족, 고려인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고려인이 빈곤과 무국적의 굴레를 끊을 수 있도록

여러분이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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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후손 고려인

굿네이버스 고려인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독립운동가 최재형, 최봉설... 이들은 모두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활동하던 고려인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고려인들은 지금도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마음에 품은 채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아닌 빈곤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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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이주의 아픔을 겪은 고려인

굿네이버스 고려인

정거장에 내려서 땅굴을 파서 한 호에 한 가정씩 살았어요. 지붕 같은 걸 만들어서 한 집씩 나눠서 그렇게 살았어요. 풀 캐먹고 언 감자를 먹고 살았어요.
고려인 강제 이주 피해자들의 증언

▲고려인 강제 이주 경로

1937년 소련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타버린 강제 이주 열차. 정차역마다 죽은 고려인들의 시체를 버려야 했던 지옥 같은 열차를 벗어났지만, 도착한 우슈토베는 또 다른 지옥이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혹독한 겨울을 버텼던 고려인들

고려인들은 영하 40도의 날씨 속 직접 파낸 토굴에서 가족과 이웃의 죽음을 지켜보며 겨울을 버텨야 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유슈토베,  우슈토베에 발을 딛고 고려인묘지와 첫겨울을 났던 토굴기념비 앞에 선 순간 간신히 참았던 슬픔이 파도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Ushtobe)의 2km 북쪽 바스토베(Bastobe) 언덕 정상에서 바라본 고려인 공동묘지와 들판. 1937년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역에 내린 고려인들은 추위를 피해 바스토베 언덕으로 와 토굴을 파고 겨울을 보냈다. 이듬해 봄 토굴에서 나온 고려인들은 맨손으로 황무지를 옥토로 일궈내는 등 강인한 생명력으로 새롭게 일어선다.

출처: https://sugisa.tistory.com/15720692 [晛溪 斗井軒 Sugisa:티스토리]

 

◇토굴서 시베리아 추위 버텨

우슈토베역에 짐짝처럼 버려진 고려인들은 혹독한 추위부터 피해야 했다. 이 시기는 한국에선 가을이지만, 시베리아와 인접한 카자흐스탄은 겨울이었다. 더구나 우슈토베 지역은 온통 평지였다.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아줄 언덕부터 찾았다. 가장 가깝게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몰려갔다.

‘바스토베’ 언덕이다. 우슈토베역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언덕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고려인들은 언덕의 경사면을 바람막이로 삼아 토굴을 파고, 주변의 갈대로 지붕을 만들어 겨울의 추위를 이겨냈다. 추위와 굶주림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희생이 많았다. 고려인 중 도착 첫 해와 이듬해 출생자가 다른 해에 비해 유독 적을 정도였다.

 

토굴 옆은 바로 공동묘지가 됐다. 많은 고려인들이 묻혔다. 맨 앞줄에는 1세대들의 한글 묘지명이 나란하다. 쇠로 만든 묘지명은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풍파를 오롯이 간직한 듯 붉은 녹만 가득하다.

봄이 오자 토굴에서 나온 고려인들은 지금의 우슈토베 마을로 옮겨왔다. 황무지를 일궈 논밭을 만들고 소중히 간직한 종자로 농사를 지었다. 멀리 떨어진 카라탈강에서 물을 끌어왔다. 한 알의 씨앗이 많은 결실을 맺듯이 그렇게 고려인들은 고난의 삶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황무지로 버려져있던 수백만평이 농토로 변했다. 고국에서 보던 황금벌판이 다시 펼쳐졌다. 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다시 끌어올렸다. 블라디보스톡의 위도가 43도이고 우슈토베가 45도이니 2도를 끌어올린 것이다. 이런 자긍심 때문인지 묘지 비석은 하나같이 지평선까지 뻗어있는 드넓은 농토를 향해 있다. 죽어서도 자신들이 일군 땅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싶었던 듯하다.

 

고려인들의 교육열은 동토에서도 식지 않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이들부터 가르쳐야 한다며 학교를 세웠다.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교육이라 생각했다. 마을 입구 제일 좋은 땅에 학교를 지었다. 이름은 ‘원동학교’, 강제이주 전 연해주에 있던 학교이름을 그대로 썼다.

▲고려인이 살았던 바스토베 토굴. 현재 복원중이다.

고려인의 최초 정착지 우슈토베

그곳에 살고 있는 고려인 후손들

굿네이버스 고려인

한 겨울 영하 55도까지 내려가는 우슈토베에는 고려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석탄은 생활필수품이자 생명줄입니다. 한 고려인 가족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석탄의 양은 약 6톤입니다.

매달 3만 원이면 고려인 가족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지만 한 달을 꼬박 일해도 30만 원을 버는 상황에서 매달 3만 원의 난방비는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도시가스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도시가스를 연결하기 위한 비용 200만 원. 석탄을 사기에도 빠듯한 형편에 도시가스는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인부를 고용해 석탄을 창고로 옮겨야 하지만, 빠듯한 형편에 온 가족이 동원되어 석탄을 옮기고 쪼갭니다. 마스크도 없이 석탄을 쪼개는 아이들.

석탄을 쪼갤 때마다 나오는 석탄가루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고려인 부모들은 애써 외면하며 아이들과 함께 석탄을 쪼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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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고려인의 삶

굿네이버스 무국적 고려인

무국적 고려인은  소련 해체 이후 정보 불충분, 서류 분실, 체제 전환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고려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학교를 다닐 수도 없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으며 혼인신고도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사망 후에는 사망신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무국적 고려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무국적 고려인의 기구한 삶이 대물림된다는 점입니다.

무국적 고려인 김유리 씨 가족

대물림되는 무국적 고려인의 가혹한 현실

김유리 씨가 무국적 고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녀들도 무국적 고려인이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에 떔질, 집 수리 등 가리지 않고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려 하지만 빈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교육이 필요하지만,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학교조차 다닐 수 없던 김유리 씨, 17살까지 읽고 쓰고 계산하는 법을 몰랐던 형제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당장 생활비도 없기에 그 꿈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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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고려인 이 비탈리 씨 가족 대물림되는 무국적 고려인의 가혹한 현실

무국적 고려인 이 비탈리 씨도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는 현실에 이웃의 일을 대신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지만 생활비와 아픈 아내의 병원비와 약 값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 비탈리 씨의 아들은 자신이 무국적 고려인이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국적을 가지게 된다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집에서 공부를 하며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 무국적 고려인.

의료보험에 가입이 어려워 사고가 나도 병원에 갈 수 없기 때문에 편하게 돌아다닐 수도 없습니다.

무국적 고려인들의 꿈은 국적을 회복하고 남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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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민족 고려인입니다.

굿네이버스 고려인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있는 우리의 동포, 우리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고려인들 생계의 전쟁터로 떠밀리지 않도록 이제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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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네이버스는 우리 민족 고려인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지원할 예정입니다.

생계지원 | 국적회복, 생계비 및 난방비 지원

주거지원 | 주거환경 개선, 도시가스 지원

교육지원 | 도서 등 학습 용품 및 교육비 지원

"유라시아 자동차 평화랠리2019'

 

"서울에서 출발해 모스크바까지의 랠리입니다. 판문점을 지나 평양을 통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울란우데,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카자흐스탄 세메이, 유슈토베, 알마티,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러시아 사마라, 니즈니노브고로드, 모스크바까지 달릴 예정입니다. 그 길은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18만 한인들의 통한의 길입니다. 그 눈물의 길이 이제는 한반도 통일의 길과 유라시아 평화의 길로 거듭나는 행사이기도합니다. 판문점이 언제 열릴지 모르겠지만 이 평화랠리는 언젠가는 꼭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어요. 놀라지 마세요. 그 평화랠리의 여정에 이안수선생님이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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