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현령 유응형(柳應泂)ㆍ유응시(柳應時)와 정주 목사(定州牧使) 이신(李愼) 등이 대궐에 나아와 변란을 고하였다. 대신ㆍ금부 당상ㆍ양사 장관에게 명하여 대궐 안에서 추국하게 하였다. 유응형 등을 먼저 신문하였는데, 응형이 공초하기를,
“6월20일 이후로부터 병을 얻어 오래도록 생사를 헤매었는데 무겸 선전관(武兼宣傳官) 유전(柳湔)과 파총(把摠) 신대지(申大枝) 등이 자주 와서 문병하기에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달 24일에 다시 와서 문병하고 이어 시사(時事)를 언급하였는데, 운만 떼고 분명히 말하지 않다가 거듭 탐문한 다음에야 비로소 말하기를 ‘나라 안의 호걸들이 역적을 토벌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 뜻이 어떠한가?’ 하였습니다. 신이 역적을 토벌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자, 유전이 말하기를 ‘지금 거의(擧義)한 사람들은 당연히 대비(大妃)를 먼저 받들어 입궐하고 나서 천명이 돌아간 사람을 맞아 세워야 마땅했다. 그런데 금상이 스스로 취한 것은 옳지 않으며, 조정의 사대부가 하는 행위도 지난날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앞으로 상의하여 거사하려 하는데, 혹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사육신(死六臣)에게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그대도 기꺼이 우리를 따르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이 거짓으로 함께 모의하겠다는 뜻을 보이자, 또 말하기를 ‘우리 당의 모사(謀士)는 곧 전 별좌(別坐) 이광호(李光澔)ㆍ한창국(韓昌國)과 전 평사(評事) 이광유(李光裕) 및 신대지ㆍ권대진(權大振)ㆍ최성립(崔誠立)ㆍ유흥원(柳興元) 등 4명의 파총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놀랍고 두렵기 그지없어 곧장 변란을 아뢰려 하였으나 단서를 잡지 못한 것이 염려되었습니다. 때마침 사촌 유응시가 왔기에 이 뜻을 고하였더니 응시가 곧바로 지평 김자점(金自點)과 이상(貳相) 이귀(李貴)를 만나 일의 실상을 갖추어 고하였습니다. 또 모쪼록 흉도의 필적을 얻어 증거를 삼으라고 일러주기에, 마침내 이광유ㆍ유전ㆍ신훈(申) 등에게 편지를 보내어 친필 회답을 얻었습니다.
다음날 광유ㆍ광호ㆍ유전ㆍ신훈 등이 함께 모이자고 부르기에 곧장 가서 만났더니, 그때의 말도 유전이 전날 말한 것과 같았습니다. 광유가 말하기를 ‘모레 광호의 집에서 군사 출동할 시기를 택일하려 한다.’ 하였는데, 광호는 곧 술사(術士)로서 택일 등의 일에 뛰어납니다. 신대지도 24일에 와서 유전이 한 말과 같이 말하기에 신이 이어 말하기를 ‘유전이 모집한 사람은 매우 많은데 네가 모집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하니, 대지가 답하기를 ‘전 부사 허직(許稷)은 애초에는 허락하려 하지 않다가 여러 차례 말하자, 이내 말하기를 「나도 목표하는 일이 있으니 거사할 때에 피차가 합세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하였습니다. 신이 또 유전에게 말하기를 ‘제장(諸將)이 된 사람의 명단을 허직에게 보이면 그 사람이 약속한 사람도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니 모쪼록 명단을 만들라.’고 하자, 유전이 즉시 써서 주기에 이를 가지고 와서 고합니다.”
하였다. 다음으로 유전을 신문하였는데, 유전의 첫 번째 공초에,
“응형이 병이 난 뒤에 사람을 보내어 부르기에 가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응형이 묻기를 ‘서로 믿는 친구 사이에는 함께 도적질을 하려 했다가도 만일 되지 않으면 다만 피할 뿐이다. 어찌 남에게 누설할 수 있겠는가.’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습니다. 응형이 말하기를 ‘지금이 역적을 토벌할 때가 아닌가?’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이른바 역적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하니, 응형이 말하기를, ‘그대가 어찌 모르겠는가. 그대의 말은 거짓이다.’ 하므로 신은 잠자코 물러나왔습니다.
그 뒤에 또 응형을 만났더니 전일에 한 말을 또 내놓으면서 말하기를 ‘기자헌(奇自獻)은 벼슬이 높고 명예가 무거우니 더불어 거사할 만하다.’ 하고는 이어 신이 아는 명사와 재상을 물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였더니, 말하기를 ‘유몽인(柳夢寅)ㆍ유숙(柳潚) 등은 그대의 동성 친척이 아닌가?’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아니다. 유숙ㆍ유역(柳㴒)은 언젠가 한번 서로 만난 적이 있으나 몽인은 면식도 없다.’ 하였습니다. 또 ‘고향 사람과 인척으로서 서울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묻기에, 신이 말하기를 ‘정침(鄭沉)ㆍ심무(沈倵)ㆍ최유건(崔有建)ㆍ유동인(柳東仁) 등 약간 명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신대지ㆍ신훈과는 아는 사이지만 허직은 얼굴도 보지 못했고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연유로 서로 약속한 일을 알겠습니까. 이른바 이름을 써서 책을 만들었다는 것은 응형이 필시 신과 더불어 문답한 사람을 기록하여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도구를 삼은 것입니다. 대체로 신이 역적을 토벌한다는 그의 말을 들었기에, 신이 변란을 아뢰지나 않을까 의심하여 먼저 발설한 것입니다.”
하였다. 국청(鞫廳)이 유전과 유응형을 면질(面質)시키고 책을 쓴 필적을 신문하였으나 유전은 그래도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고 잡아떼었다. 즉시 이광호에게 확인시키니 ‘이는 유전의 필적이다.’고 하였다. 다시 엄하게 형신을 가하면서 국문하니, 비로소 말하기를,
“응형이 역적 모의한 일을 전적으로 신에게 돌렸으므로 마음이 진실로 통분한 나머지 이름 기록한 일을 굳이 감추었는데, 이는 과연 신이 직접 쓴 것입니다. 이 일의 대략은 이러합니다. 신이 응형을 만났을 때, 응형이 말하기를 ‘세력을 잃은 사람은 남의 시기와 의심을 받는 것이니 내가 변란을 아뢰어 공을 세우고 스스로 편안할 방도를 취하려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어떤 사람을 고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하기를 ‘기자헌ㆍ유경종(柳慶宗)ㆍ유몽인ㆍ이광호ㆍ한창국ㆍ이광유ㆍ허직은 모두 세력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 무리들만 쓰면 사람들이 필시 의심하지 않을 것이고, 훈련 도감의 장관까지 아울러 쓰면 더욱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는 미워하는 사람을 쓰면 될 것이다.’ 하고, 이어 신이 원망하는 사람을 묻기에 신도 정침ㆍ심무ㆍ유동인 등을 말하였습니다. 각 사람의 이름 아래에 내봉(內鋒)ㆍ외봉(外鋒)ㆍ별원(別援)ㆍ입참(立斬) 등등의 말을 기록한 것은 이를 가탁하여 그 일을 사실화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였다. 국청이 그가 종잡을 수 없이 바뀌고 흉측하게 속인다는 것을 이유로 다시 형신을 가한 뒤에 그대로 정형(正刑)에 처할 것을 청하였다.
유몽인은 변을 듣고 도망했다가 양주(楊州) 지방에서 체포되었는데, 그의 첫 번째 공초에,
“역도에게 무함을 당하였는데, 도망한 것이 아니라 지금 자수하려고 상경하던 중에 길에서 체포당한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사실을 증거로 국문하자 도망한 실상이 밝게 드러났다. 다시 형신을 가하면서 신문하자 비로소 자복(自服)하기를,
“아들 유약(柳瀹)이 하루는 와서 ‘무신 정기수(鄭麒壽)가 말하기를 「사병(私兵)을 모으면 약간 명을 얻을 수 있는데, 성우길(成佑吉)이 일찍이 훈련 도감의 대장으로서 사졸의 마음을 얻었으니 거사할 만하다.」고 하였고, 유흠(柳𢡮)도 그 일을 찬성했다.’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말하기를, ‘이는 크게 그렇지 않다. 수하에 아무 군사도 없고 보면 한 고조(漢高祖)나 명 태조(明太祖)로서도 큰일을 이루기 어려운 법이다. 지금 너희들이 옛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헛되이 죽을 뿐이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폐세자(廢世子)가 죽게 되자 아들 약이 성우길ㆍ정기수ㆍ유흠 등과 더불어 강화(江華)로 좇아 가서 함께 그 일을 이루려 하였는데, 마침 장마로 성우길의 군사가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신이 늦게야 그 말을 듣고 앞으로 화가 닥칠 것을 알고 패역스런 자식의 행위를 고하려 하였으나 마음으로 차마 하지 못할 바였습니다. 그리고 신이 일찍이 상부탄(孀婦歎)이라는 시를 짓기를,
일흔 살 늙은 과부가
혼자서 규방을 지키누나
사람마다 개가를 권하는데
무궁화 꽃 같은 멋진 남자였어라!
여사의 시 익히 들었기에
태임(太妊)ㆍ태사(太姒)의 훈계 조금은 알았지
센 머리에 젊은 얼굴 단장함이
화장품에 부끄럽지 않을까!
‘七十老孀婦, 單居守閨壼, 人人勸改嫁, 善男顔如槿。
慣聽女史詩, 稍知妊姒訓,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하였는데, 이 자식이 이 시를 좋아하여 이런 짓을 하였으니 다시 할 말이 없습니다.”
하였다. 국청이 몽인에게 기자헌(奇自獻)ㆍ유전(柳湔) 등의 역모를 묻자 ‘이는 꿈에도 듣지 못한 일이다.’ 하였고, 또 성우길(成佑吉)ㆍ정기수(鄭麒壽)ㆍ유흠 등과 서로 아는지의 여부를 묻자 ‘성우길ㆍ정기수는 대략 알지만 유흠은 얼굴도 알지 못한다.’ 하였다. 이에 정형을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