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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조광렬의 사부곡(思父曲)… “죽음을 공부하며 살고 있느냐?”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0. 11. 27.

A4 뉴욕일보·THE KOREAN NEW YORK DAILY 문 화 WEDNESDAY, NOVEMBER 25, 2020

조지훈 선생 탄생 100주년… ‘백년의 詩, 천년의 文化’…‘큰 스승’ 기린다 ⑧
장남 조광렬의 사부곡(思父曲)… “죽음을 공부하며 살고 있느냐?”

◆ 12 아버지가 낭송하신 마지막 노래


돌아가시던 해 어머니 생신 때였나 보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딸, 나의 누이동생 혜경이에게 “내일이 네 어머니 생일이 혜경이 네가 한 번 밥을 지어 봐라”고 하셨다. 아마 그동안 당신의 아내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또한 이제 곧 성년이 될 하나밖에 없는 딸이 직접 지은 밥을 꼭 한 번 잡숴보고 싶어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그때 이미 아버지는 당신이 이제 얼마 못 사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혜경이더러 녹음기를 가져 오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런 추측을 하게 하는 것은 나의 고모님도 생신이 어머니와 같은 날이어서, 그 날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 아버지께서 당신의 시 <절정(絶頂)>을 읊으셨기 때문이다. 그때 우린 그걸 녹음하였다.

 

(이 육성 녹음은 훗날 아버지의 고향, 경북 영양 주실마을에 건립된 ‘지훈문학관’에 비치되어 있다).


그 날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젊어서부터 죽음을 준비해 오신 아버지!


젊은 시절에 쓰셨던 그 시를… 그날로부터 일주일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읊으신 시 <절정>을 소개한다. “나는 어느 새 천길 낭떠러지에 서 있었다 이 벼랑 끝에 구름 속에 또 그리고 하늘가에 이름 모를 꽃한송이는 누가 피워 두었나 흐르는 물결이 바위에 부딪칠 때 튀어 오르는 물방울처럼 이내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그런 꽃잎이 아니었다. 몇 만 년을 울고 새운 별빛이기에 여기 한송이 꽃으로 피단말가 죄지은 사람의 가슴에 솟아오르는 샘물이 눈가에 어리었다간 그만 불붙는 심장으로 염통 속으로 스며들어 작은 그늘을 이루듯이 이 작은꽃잎에 이렇게도 크낙한 그늘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한 점 그늘에 온 우주(宇宙)가 덮인다 잠자는 우주(宇宙)가 나의 한 방울 핏속에 안긴다 바람도 없는 곳에 꽃잎은 바람  일으킨다 바람을 부르는 것은 날 오라 손짓하는 것 아 여기 먼 곳에서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보이지 않는 꽃나무가지에 심장(心臟)이 찔린다 무슨 야수(野獸)의 체취(體臭)와도 같이 전율(戰慄)할 향기가 옮겨온다.


나는 슬기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한 송이 꽃에 영원(永遠)을 찾는다 나는 또 철모르는 어린애도 아니었다 영원(永遠)한 환상(幻想)을 위하여 절정(絶頂)의 꽃잎에 입 맞추고 기리 잠들어 버릴 자유(自由)를 포기(抛棄) 한다.  다시 산길을 내려온다 조약돌은 모두 태양(太陽)을 호흡(呼吸)하기 위하여 비수(匕首)처럼 빛나는데 내가 산길을 오를 때 쉬어가던 주막에는 옛 주인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 이마에 주름살이 몇 개 더늘었을 뿐이었다 울타리에 복사꽃만 구름같이 피어 있었다 청댓잎 잎새마다 새로운 피가 돌아 산새는그저 울고만 있었다.


문득 한 마리 흰나비 ! 나비 ! 나비 ! 나를 잡지 말아다오

나의 인생(人生)은 나비 날개의 가루처럼 가루와 함께 절명(絶命)하기에 ………

"아 눈물에 젖은 한마리 흰나비는 무엇이냐 절정(絶頂)의 꽃잎을 가슴에 물들이고

사(邪)된 마음이 없이 죄 지은 참회(懺悔)에 내가 고요히 웃고 있었다.”

기력이 다 하여 숨이 가쁘고 탁하고 쉰 목소리로 “ 흰 나비 ! 나비 ! 나비 ! ” 하시던

그 애처로운 음성이 지금 내 귓전을 때리고 있다.

 

그 시를 읊으신 후에는 나의 고모님, 곧 당신의 누이동생과 함께 시 <낙화(落花)>를 읊으셨다. 맨 마지막 연에 가서는 오누이가 약속이라도 하신 듯 “꽃이이 지느은 아치임은 우우울고 싶어어라 ~ ” 하며 곡조를 붙여 읊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도 당신이 그리울 때면 혼자서 소리 내어 그렇게 읊어보곤 하는 걸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아시는지…...


◆ 13 아버지와 나만의 추억으로 남은 삽화


아버지가 그리워질 때면 늘 떠오르는 나만의 추억, 아름다운 삽화 한 폭이 있다. 대구 피란 시절 아버지는 첫 시집을 펴내셨다. 그 시집의 제목을 <풀잎 단장(斷章)>이라고 붙이고, 나에게 그 글씨를 쓰게 하셨다. 아버지가 써 주신 제목을 한옥 대청마루에 엎드려 나는 빨강 크레용으로 보고 베꼈다. 쓴 게 아니라 그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삐뚤빼뚤하게 보고 그린 글씨를 만족해 하시며 첫 시집의 표지로 삼으셨다. 그리고 표지 뒷면에 낙타천으로 만든 고급 양복을 해 입히고 찍은 나의 사진을 싣고, 표지 글씨를 쓴 당신의 장남 광렬이라고 소개하셨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아이의 글씨는 훗날 내가 보아도 애교 있고 자못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그 시집이 지금은 내 수중에 남아있지 않으니 이 아쉬움을 어찌 달랠까. 생전부귀(生前富貴) 사후문장(死後文章)이라 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48년이라는 짧은 삶을 통해 그것을 이루셨다. “죽어서 사는” 아버지의 뜻이 여기 있었다. 아버지는 죽지 않으셨다. “마음이 가난해야 참 부귀를 아는 법”이라는 말씀의 뜻을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음이 부끄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밝은 태양만을 향해 사셨던 아버지 ! 

지금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방안 가득히 울리는 것 같다. “광렬아! 죽음을 공부하며 살고 있느냐?”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기억의 서랍을 조용히 닫으면서, 지난 5월 17일, 아버지 52번째 기일(忌日)을 맞아 집안의 장남으로서 한국에 있는 식구들과 공유했던 나의 추모의 글 일부를 여기 옮기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올해는 아버지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쉰 두번째 기일인 이 특별한 날을 맞이하여 우리 가족들은 어떤 삶이 의미 있고 행복삶일까?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 가지 명제의 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 인생을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건강한 삶을 위해 삶에서 죽음을 보아야 한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 그리 해야만 위의 세 가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즉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이 행복한 일인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깨달을 수 있으며, 스스로 진정한 가치를 찾은 뒤에, 그것을 목표로 삶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한다. 또한 잘 죽어야 한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삶을 바라보면,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게 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죽음에 관한 다양한 경우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두자. 그것이 잘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각자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을 미루지 말고 지금 하자.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삶, 유한한 삶,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자. 우리가 살고 떠난 뒤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기는 일, 이름을 남기는 일도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나이를 살고 보니, 그보다 더 중요하고 값진 일은, 생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사랑을 남기고 떠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아버지 기일 52주년을 맞아, 나는 내 스스로 지나온 날들을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진정한 성공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내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말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과 공유하고 싶다. 우리는 비록 아버지와 같이 명예롭고 의로운 이름과 큰 족적을 세상에 남기고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죽은 후에, 생전에 맺은 인연들에게 잊지 못할 ’사랑의 기억‘,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를 듬뿍 남기고 떠날 수 있는 진정으로 성공한 삶, 행복한 우리 가족 모두가 되어 주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해 새 출발, 새 마음, 새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버지께서 남기신 시 <마음의 태양(太陽)>을 공유하고자 한다.”


꽃다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라.
가시밭길을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肉身)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에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苦難)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르노라.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라”


<조광렬의 ‘사부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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