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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題詠 특정 대상을 상대로 시를 짓고 읊는 것)..
조선의 삼정승, 홍천에서 시를 쓰다!
- 기자명 더뉴스24
- 입력 2021.04.05 10:55
- 수정 2021.04.05 11:00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홍천읍지 이야기]
제영(題詠)은 특정 대상을 상대로 시를 짓고 읊는 것을 말한다. 제영은 『홍천현읍지』 12수, 『신증동국여지승람』 1수, 『관동지』 33수, 『강원도지』 1수 등 총 47수의 제영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강원도지』의 제영은 강릉판관과 원주목사,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조선 초기 문신 이맹상(李孟常)이 홍천에 관한 단상을 짧은 시로 표현했고, 『홍천현읍지』와 『관동지』 제영은 모두 범파정(泛波亭)에 관한 것이다.
시는 두 번의 창작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 창작은 시인의 몫이고, 두 번째 창작은 독자의 몫이다. 한시의 해석은 시를 지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 시를 짓게 된 배경, 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가치관, 인용된 고사 등 다양한 요소들을 이해해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제한된 글자 수로 인해 상징과 은유가 많고, 의역의 영역이 넓어 독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오역의 가능성도 높다. 제영 번역은 성균관 대외협력실 오병두 실장의 도움을 받았다. 제영 중 몇 수를 소개한다.
鄭惟吉 詩
山水中間松桂林
聞君閑臥濯煩襟
洞天形勝惟高閣
太守風流只一琴
黃鶴可招知異境
白鷗相近絶機心
春來定有桃花浪
入岸魚舟恐不禁
정유길 시
산수 한 가운데 아름다운 소나무 숲
듣자니, 한가로이 누워 번뇌를 잊기 좋다 하네.
풍광 좋은 곳에 멋스러운 누각이 펼쳐지니
태수의 풍류는 거문고 하나로 족하다.
황학이 날아올라 이색적인 풍광 연출하고
흰 물새 가까이 하니 거짓된 마음 사라진다.
순리대로 봄이 오니 복숭아 꽃 물결치고
언덕가 드나드는 낚싯배 멈추지 않는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홍천현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범파정 제영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은 모두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이 중 이덕형이 범파정을 찾아 시 한 수를 남겼다.
雪沙氷練帶平林 衙罷孤亭快散襟
詩思有時生憑檻 政聲終日在鳴琴
山芋石蜜官居味 白葛烏紗吏隱心
龍瀨八峰連一水 月明敀艇意難禁
눈과 얼음이 모래처럼 이어져 숲을 이루고
공무 마치고 외로운 정자에 오르니 상쾌하다.
난간에 기대니 시상이 떠오를 뿐
세상 일은 거문고 소리에 묻힌다.
산토란과 석청은 공직자의 맛이고
백갈과 오사는 관리자의 마음이다.
용처럼 긴 여울은 팔봉산으로 이어지고
달 밝은 밤, 배 저어 돌아가니 품은 뜻 접기 어렵다.
이덕형은 홍천현감을 지내지 않았다. 겨울에 공무로 홍천현을 찾았다가 일을 마친 후 범파정에 올라 지은 시인 듯 하다. 백갈과 오사는 약재의 일종이다.
좌의정, 우의정에 오른 정유길(1515~1588) 역시 범파정에 관한 시를 남겼다.
山水中間松桂林 聞君閑臥濯煩襟
洞天形勝惟高閣 太守風流只一琴
黃鶴可招知異境 白鷗相近絶機心
春來定有桃花浪 入岸魚舟恐不禁
산과 강 그 가운데 아름다운 소나무 숲
듣자니, 군자 한가로이 누워 번뇌 잊기 좋다 하네
풍광 좋은 곳에 멋스러운 누각이 펼쳐지니
태수의 풍류는 거문고 하나로도 족하다.
황학이 날아올라 이색적인 풍광 연출하고
흰 물새 가까이하니 거짓된 마음 사라진다.
순리대로 봄이 오니 복숭아꽃 물결치고
언덕가 드나드는 낚싯배 멈추지 않네.
동천(洞天)은 신선이 살만큼 풍광이 좋은 곳을 말하며 형승(形勝)은 지세나 풍경이 매우 뛰어남을 말한다. 당시 범파정이 있던 주변의 풍광이 가히 절경이었던 듯싶다.
정유길의 외손자이면서 우의정에 오른 김상용, 좌의정에 제수된 김상헌 형제도 범파정을 찾았다. 김상용이 지은 범파정 제영이다.
憑虛高閣出靑林 倦客登臨覺爽襟
遠峀浮螺開錦帳 淸灘戛玉勝瑶琴
飛昇不待冷風馭 冲漠還生太古心
擬卜莬裘終老此 一江烟月有誰禁
솟아 오른 누각, 푸른 숲을 뚫고
지친 나그네 누각에 오르니 가슴까지 상쾌하다.
술잔에 비친 산봉우리 비단 휘장을 열고
옥처럼 맑은 여울 소리 거문고 소리를 잠재운다.
날아오르길 기대하지 않아도 찬바람 일어
광활하게 솟아 다시 태어남은 태고의 마음이다.
풀과 짐승 털로 옷을 만들어 입고 노년을 보낸다 한들
강에 피어오르는 물 안갯속 달빛 누가 마다할까
김상헌 역시 범파정과 자연, 그리고 여흥을 시 한수로 남겼다.
官居淸絶似山林 亭舍翛然可濯襟
好事已應留謝屐 風流誰復載胡琴
雲烟變態時開畵 魚鳥親人更會心
他日小舟明月夜 雪中乘興定難禁
한없이 깨끗한 관아는 숲을 닮았고
날아오를 듯한 정자는 마음 다스리기 제격이다.
즐거운 일 응당 나막신에 남아있지만
누가 다시 풍류로 비파를 탈까?
구름과 안개가 변해 때때로 산수화 펼쳐지고
물고기, 새와 어울리며 다시 마음을 잡는다.
여느 날 작은 배 달밤에 띄우고
내리는 눈에 취한 흥 멈추기 어렵다.
우의정 김상용의 사위이며 인선왕후의 아버지였던 장유는
학이 날아가다 깃털을 떨구었다는 우령에 관한 이야기도 범파정 제영에 담았다.
檻外晴川水外林 樓居淸絶愜踈襟
澄波淡淡鋪纖練 爽籟冷冷當素琴
靑嶂晩陰生樹頂 白雲凉影落潭心
仙禽墮羽今千載 悵望琳霄思不禁
난간을 감싸 도는 맑은 개울, 물 밖은 숲이니
누각에 머무름이 더없이 맑아 마음까지 상쾌하다.
맑은 물결 욕심 없이 흐르니 비단 깔아놓은 듯 곱고
맑은 퉁소 소리 소박한 거문고와 조화롭다.
산봉우리 넘어가는 해 그림자 숲 정수리 비추고
흩날리는 흰 눈의 쓸쓸함, 연못 깊은 곳으로 내려앉는다.
학이 깃털을 떨어트린 지 천년이 지났건만
옥빛 하늘만 바라보며 부질없이 생각이 깊어진다.
이 외에도 홍천 현감을 지내고 후에 좌의정에 오른 심희수, 학문과 명망이 높아 과거를 거치지 않고 높은 벼슬에 등용되었던 안중관 홍천 현감 등이 쓴 제영 역시 『홍천현읍지』에 남아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강원도지』의 제영은 강릉 판관과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이맹상이 홍천의 자연에 대한 읊은 짧은 시 한 구절이다.
山水成雙簇. 云云 烟嵐是四隣. 『신증동국여지승람』
山水成雙 簇烟嵐是四隣 『강원도지』
산과 물 어우러져 한쌍을 이루고.
밥 짓는 굴뚝 연기와 피어오르는 산안개가 사방으로 퍼진다.
범파정 제영을 지은 사람들의 면면이 만만치가 않다. 한시(漢詩)의 특성상 과장이 없지 않지만 제영을 통해 떠오르는 범파정 주변의 풍광은 과히 절경이었던 듯싶다. 범파정을 복원한다고 하니 기대해 봄직하다.
글 백승호(벌력 콘텐츠 연구소 대표)
한자(漢字)를 옮겨 적었기에 오자나 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역이나 틀린 부분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확인 후 바로잡겠습니다. 다른 곳에 옮기실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beollyeog@gmail.com
[홍천현(洪川縣)의 학명루(鶴鳴樓)에 대한 기문]
{서거정(徐居正, 1420년~ 1488년)은 조선 문종, 세조, 성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
나는 어려서 영서(嶺西)에 유학하면서, 원주에서 춘천으로 갈 때에 재차홍천을 지나다녔다. 그때에 그 고을이 그윽하고 밝으며 산수가 맑고 기이하며 백성이 많고 물산이 풍부하며 나무들이 울창한 것을 보고 흐뭇해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번 올라가서 경치를 감상할 누대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정통무진년(1448,세종30)봄에 윤후(尹侯)가 선발되어 수령으로 왔는데, 한 달도 안 되어 정사가 매우 잘 이루어 졌다. 3년째가 되던 경오년(1450,문종즉위년)가을에 비로소 객관의 동쪽에 누대를 세우고 그 누대 앞으로 못을 파고 연꽃을 심어, 공무를 보는 여가에 올라가 경치를 둘러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곤 하였다.
하루는 고을의 노인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며 낙성식을 하고, 누대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를 물었다. 노인들이 말하기를, “객관 앞 수 십 걸음쯤 되는 곳에 옛날에 학교(鶴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처음다리가 이루어졌을 때에 학이 와서 울었는데, 그것으로 이름을 삼은 것입니다. 학은 우리고을의 상서입니다. 이것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여, 윤후가 그 말을 따랐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이‘학명루(鶴鳴樓)’라는 세 글자 편액을 써서 누각을 빛나게 했다.
이해겨울에 윤후가 서울에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대저《춘추》에 토목공사는 반드시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백성의 일을 중요하게여긴 것입니다. 지금 우리수령들은 대부분 백성을 고생시키고 군중을 동원하며 어려운 때인데도 호사스러운 일을 벌입니다. 누대하나를 세우거나 정자하나를 세우면, 반드시 장황하게 써서 일과능력을 떠벌리니, 이것이 무슨 의리 입니까? 나는 이러한 이름을 싫어합니다. 다만 그대는 과대하게 칭찬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누대가 지어진 내력이나 기록해두려고 한 마디 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였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아름답게 여겼다. 이어 그를 위해 다음과 같이 글을 짓는다.
“대저누관을 짓는 것은 단지 보기에 아름답게 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그 것 으로 왕인(王人)을 높이고 빈객을 접대하며 시절을 점치고 농작을 살펴, 백성과 더블어함께 즐기려는 뜻을 붙인 것이니, 어찌 작은 일로여길 수 있겠는가. 하물며 누관이 보수되느냐 황폐해지느냐 하는 것은 한 고을이 흥성하는지 쇠퇴하는지가 그것에 연관되며, 한 고을이 흥성하느냐 쇠퇴하느냐 하는 것은 수령이 현능한지 그렇지 못한 지가 그것에 관련된다. 대체 누가 이것을 하찮은 일로여길 수 있겠는가. 일으킨 공사가 어떤 것인지를 보아야할 뿐이다. 윤후는 이번 일을 하면서 재물을 손상하지도 않았고 때를 어기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백성을 부리기를 때에 맞게 한다.’ 라는《춘추》의 뜻을 깊이 체득하였으니, 성인이 포폄한 사례로 볼 때에, 마땅히 크게 특별히 적어서 찬미해야 할 일이다. 내가 사양하고자 한들 될 수 있겠는가. 지금 윤후의 말 한 마디를 들어보니 윤후의 사람됨이 더욱 미덥다. 내 또 들으니,《시경》에, ‘학이 구고(九皐)에서 우니 소리가 하늘에 까지 들린다.’ 하였다. 구고는 매우 깊숙한 곳이고, 구천(九天)은 매우 광활하고 먼 곳이다. 참으로 지극하면, 아주 깊숙한 곳에서도 오히려 광활하고 먼 곳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이제 홍천이 비록 작은 고을이지만 윤후의 명성이 이와 같이 빛나니, 끝내는 틀림없이 온 나라에 소문이 날것이고 군주에게까지 알려져 부름을 받아, 높은 벼슬에 올라 한 시대에 이름을 날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되면 윤후가 누대에 그러한 이름을 붙인 것이 어찌 더욱 징험이 있지 않겠는가. 윤후는 시서(詩書)에 능통하고 문아(文雅)를 좋아하는 통달한 사람이다. 그러므로《시경》과《춘추》에 있는 말을 아울러 써서 기문을 짓는다.”
경오년(1450,문종즉위년)겨울. 四佳亭
아양정(峨洋亭)
홍천군 화촌면 아양정길 77-10 (군업리 산2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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