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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1)조종악(趙宗岳)의 구암정(龜巖亭), 2)조종대(趙宗岱)의 자암정(紫巖亭), 3)조홍기(趙弘紀)의 서은정(西隱亭)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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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리 청통면 청송부사공파종회♣ 

한양조씨 영천입향조 자계 조문림(紫溪, 趙文琳)의 자계정(紫溪亭)

중종 때의 학자이며 참봉을 역임한 조문림이 그의 스승인 조광조 선생이 기묘사화로 참화를 당하자 이곳으로 피신해 두문불출하며 경학을 연구하며 강론한 곳이며 임진왜란 때는 포은 선생의 영정과 향교 5성위의 위패가 잠시 피난한 곳이기도 하다.

조종악(趙宗岳)의 귀암정(龜巖亭) 금호읍 성천리 401-1

귀암정(龜巖亭)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조종악(趙宗岳, 1566∼1633)을 기려 후손들이 세운 집이다. 조종악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노모를 동생 조종대(趙宗岱)에게 부탁한 뒤 영천 의병에 뛰어들어 한천 전투, 영천성 수복 전투를 치렀다. 특히 영천성 수복 전투에서는 군대의 관향(管餉)을 맡아 군수 참모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함으로써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

조종악은 영천 수복 후 권응수의 명에 따라 청송 지역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이경천(李擎天)과 함께 청송으로 간 조종악은 군량을 모으고 의병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에 전력을 쏟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권응수는 조종악의 지략과 용맹을 장하게 여겨 청송진(靑松陣)에 보내어 군사를 일으키게 하였고 이로 인해 청송 지방이 병난(兵難, 전쟁의 피해)을 입지 않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조종대(趙宗岱)의 자암정(紫巖亭)

자암정(紫巖亭)은 영천성 수복 전투에 직접 참가하여 왜적과 싸웠고, 청송에서 군량과 의병을 모집 중인 형 조종악을 돕기 위해 곡식 200곡과 병사 30명을 보내는 등 임진왜란 당시 구국 활동에 열성을 보였던 교수(敎授) 조종대(趙宗岱, 1569∼1635)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형 조종악의 귀암정에서 3km가량 북쪽에 있다.

특히 조종대는 임고서원의 정몽주 영정과 영천향교의 오성(五聖,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위패를 종전 때까지 안전하게 모신 것으로 이름이 높다. 1593년(선조 26) 자양의 계정에 이들을 숨겨 4년 동안 안전하게 모셨던 조종대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다시 피란시켜 무사히 지켰다. 조종도는 전투 참전, 모병과 모곡, 성현 수호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전쟁이 끝난 후 선무랑(종6품)의 벼슬을 받았다.

조홍기(趙弘紀)의 서은정(西隱亭)

조홍기(趙弘紀)는 위 조종대의 둘째아들이다.

소암정(小巖亭)

[출처] 한양조씨 - 영천입향조 자계정, 귀암정, 자암정, 서암정, 소암정|작성자 허생

1)조종악(趙宗岳)의 구암정(龜巖亭)

경북 영천시 금호읍 성천리 401-1

(도로명)경북 영천시 금호읍 성천앞길 47-5

2)조종대(趙宗岱)의 자암정(紫巖亭)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덕동길 20-3

(지번)경북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105-2

일소일빈 (daum.net)   : https://blog.daum.net/thddudgh7/16557860

 

추산정, 소암정, 자암정, 정덕재(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blog.daum.net

출처: https://sugisa.tistory.com/entry/▣청통면-덕산마을-자암정소암정▣ [晛溪 斗井軒 Sugisa:티스토리]

3)조홍기(趙弘紀)의 서은정(西隱亭)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174-6

(지번)경북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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