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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행복 이야기

“장례도 간소하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절차는[교황 선종]

by 晛溪亭 斗井軒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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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도 간소하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절차는[교황 선종]

동아일보 업데이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 부활 미사 때 신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진. 하지만 교황은 하루 만인 21일 선종했다. AP 뉴시스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면서 교황청은 장례 절차에 돌입하게 됐다. 가톨릭 교회 최고 수장의 장례인 만큼 성대하게 치러지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간 ‘소박한 장례’를 계속해서 강조해 왔기에 과거 교황 때보다 절차나 형식이 간소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추기경 중 추첨으로 뽑힌 인원들이 추기경 특별회의를 연다. 여기에서 애도 기간을 얼마나 가질 지를 정한다. 통상 4~6일 간 애도기간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관행이 유지되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도 7일장 안팎으로 치러지게 된다.

2013년 3월 새 교황에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발코니에 나와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교황은 “다른 사람을 위해, 세계를 위해,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바티칸=EPA 연합뉴스 동아일보 DB
애도 기간에는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 교황의 시신이 일반에 공개된다. 추모객들이 교황의 시신을 직접 보고 추모할 수 있다.

본격적인 장례는 입관식부터 시작된다. 맨 처음 삼나무관에 교황의 시신을 뉘인다. 이 관 안에는 교황의 업적을 수록한 두루마리 등을 함께 넣는다. 교황 얼굴에 비단이 덮이면 입관 끝난다.

입관 절차가 끝나면 십자가를 앞세운 교황의 유해가 성베드로성당 광장 제대 앞으로 운구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단이 뒤를 따른다. 장례미사에 참석한 가톨릭 신자들이 입당 성가를 부르면서 교황을 떠나보내는 장례미사가 시작된다.

삼나무관이 조문객 사이를 지나갈 때 조문객들은 박수를 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의식이다. 조문객을 지난 관은 대성당 앞 광장에 놓인다. 2005년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의 장례미사 때는 관이 바닥에 놓였다. ‘낮은 곳에 임한다’는 성경 구절에 따른 의식이다.

2014년 8월 방한 당시 충남 당진 김대건 신부 생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동아일보 DB
이후 장례미사는 일반 천주교 신자의 장례 미사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통상의 미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독서(평신자가 성경을 읽는 것)-화답송(독서에 이어지는 미사 참여 신자들의 성경 낭독)-복음(집전 사제의 성경 낭독)이 이어지고,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는 교황의 업적과 가르침을 되세기는 강론을 한다. 이어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는 천주교 미사의 핵심인 ‘성찬 전례’도 통상의 미사와 같이 이어진다.

성찬 전례가 끝나면 성가대가 교황을 향해 ‘성인 호칭 기도’를 부른다. 가톨릭 성인들에게 교황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탄원하는 내용이다. 동시에 추기경단과 성직자들이 교황의 관에 가까이 가 안식기도를 바친다. 마지막으로 대표 추기경이 교황의 관에 분향을 한다.

분향이 끝나면 다시 운구가 시작된다. 성베드로 대성당의 종이 울리는 가운데 관이 대성당 안으로 옮겨진다. 이 과정에서 장례미사에 참석한 가톨릭 신자들은 “산토 수비토(Santo subito)”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지금 바로 시성(諡聖·성인의 반열에 올림)을’ 이라는 의미다.

대성전 안으로 들어온 교황의 관은 지하 석굴경당으로 옮겨진다. 여기서 교황은 아연으로 만든 두 번째 관, 호두나무로 만든 세 번째 관에 한 번 더 입관된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 때는 이 과정에서 그의 고향인 폴란드에서 공수한 흙을 덮었다. 마지막으로 납골묘에 교황의 시신이 안치되면 교황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된다.

2014년 8월 방한 당시 충남 당진 김대건 신부 생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동아일보 DB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장례절차 간소화를 지속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 같은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교황 장례 예식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세 개의 관에 차례로 입관하지 않고 목관에 한 번만 입관도록 하고, 장례 절차도 일반 신자들의 장례예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교황들이 성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되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산타 마리아 마조레)에 매장하기를 바란다고 언급해 왔다. 통상 교황들은 ‘제1대 교황’인 베드로 사도의 유해가 안치된 성베드로 대성당에 같이 매장되지만, 평소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수시로 이 성당을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장지로 이 곳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황 선종#프란치스코 교황#추기경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교황청, 2022년 6월 작성된 유언장 공개
교황 “바티칸 밖 로마 성당 지하에 묻어달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AP통신은 21일 오전 7시 35분(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8월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영접 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25.4.21/뉴스1“무덤은 땅속에 있어야 한다. 단순하고 특별한 장식 없이 오직 프란치스쿠스(프란치스코의 라틴어명)란 비문만 있어야 한다.”

21일(현지 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6월 29일 이러한 내용의 유언장을 남겼다고 바티칸뉴스는 전했다.

유언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묻어달라고 했다. 전임 교황은 대부분 사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됐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장례 비용을 기부자들이 제공한 것으로 처리해 달라고 했다.

 

선종 하루 전인 20일(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서 부활절을 맞아 전 세계에 전하는 축복 메시지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에)’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교황은 인사말 부분만 직접 낭독했고, 이후 강론은 디에고 라벨리 대주교가 대독했다. 바티칸=AP 뉴시스프란치스코 교황은 “내 평생, 그리고 사제이자 주교로서 나는 언제나 주님의 어머니, 복된 동정 마리아에게 내 자신을 맡겼다”라며 “내 마지막 여정이 고대 마리아 성당에서 끝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이 나를 사랑했고 계속 나를 위해 기도할 모든 이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내리기를 바란다”라며 “내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 고통을 주님께 올리니, 세계 평화와 사람 사이의 형제애를 베풀어주시길 기원한다”고 했다.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 성남시 수정구 서울공항을 나서며 기아 쏘울에 탑승해 환영객들에게 손흔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초기부터 방탄차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며, 실제 한국 방문 때도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는 뜻을 한국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방한 기간 중 교황은 기아자동차의 1600cc급 소형 승용차인 쏘울을 탔다. 2014.8.14/뉴스1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현지 시간)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날 오전 7시 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라며 “그는 우리에게 복음의 가치를 충실히 하고, 용기를 갖고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가르쳤다”고 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올 2월 폐렴 진단을 받고 한때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 이후 상태가 호전돼 지난달 23일 38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했다. 선종 전날인 20일 부활절 대축일에는 성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 부활절 메시지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현지 시간)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날 오전 7시 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라며 “그는 우리에게 복음의 가치를 충실히 하고, 용기를 갖고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가르쳤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 2월 폐렴 진단을 받고 한때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 이후 상태가 호전돼 지난달 23일 38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했다. 선종 전날인 20일 부활절 대축일에는 성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 부활절 메시지를 전했다.

바티칸이 공개한 유언장 전문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아멘.

나의 지상 삶이 저물어감을 느끼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고한 희망 안에서, 나는 오직 내 묘소의 위치에 관한 마지막 뜻을 밝히고자 합니다. 나는 평생 동안, 그리고 사제와 주교로서의 사목 직무를 수행하는 내내, 언제나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겨왔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육신이 부활할 날을 기다리며 로마 성모대성당(Basilica of Saint Mary Major)에 안치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나의 마지막 지상 여정이 바로 이 오래된 성모 성지에서 끝나기를 원합니다. 나는 사목 방문의 시작과 끝마다 이곳에 들러 기도하며, 나의 뜻을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맡기고, 그분의 자애롭고 모성적인 보살핌에 감사드리곤 했습니다.

나는 나의 무덤이 대성전 내 로마 백성의 구원 경당(Pauline Chapel)과 스포르차 경당(Sforza Chapel) 사이 복도의 묘지 공간에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첨부된 도면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무덤은 지면 아래에 마련되어야 하며,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고 ‘Franciscus’라는 이름만 새겨지길 원합니다. 장례 비용은 내가 로마 성모대성당에 이체하도록 지시한 후원금으로 충당될 것입니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롤란다스 마크리카스 추기경에게 필요한 지시를 이미 전달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시고,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께 주님께서 마땅한 상을 내려주시길 기도합니다. 나의 삶의 마지막 시기 이 고통을, 나는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형제애를 위하여 주님께 봉헌합니다.

2022년 6월 29일,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프란치스코

정봉오 기자 bong087@donga.com

교황 “무덤 장식없이 묘비엔 이름만…바티칸 외부 성당에 묻어달라”

  • 동아일보 2025년 4월 22일 13시 10분 

검박한 보통 사람으로 살기를 바랐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접 택한 묘지 역시 남달랐다. 웅장한 성 베드로 대성당 대신 바티칸 밖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아무런 장식이나 비문 없이 교황명인 ‘프란치스코’만 새겨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홈페이지바티칸이 21일(현지 시간) 공개한 유언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묘지를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에 마련해달라고 했다. 교황은 유언에서 “내 일생동안, 그리고 사제와 주교로서의 사목 활동 중 나는 언제나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나 자신을 맡겨 왔다”며 “내 마지막 지상 여정이 내가 모든 사도적 순방의 시작과 끝에 항상 들러 기도하며, 그분의 온유하고 자애로운 보살핌에 감사 드렸던 이 고대의 마리아 성지에서 마무리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홈페이지교황은 대성당 내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 측랑 묘소에 안장되기를 원한다며 위치까지 지정했다. 묘지에는 어떤 장식도 없이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만 새기기를 바란다고 명시했다. 교황은 “묘소 준비 비용은 직접 마련했다”며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전달되도록 조치해뒀다고도 밝혔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로마의 4대 대성당 중 하나로, 5세기경 지어졌다.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유일한 고대 기독교 성당이다. 로마 내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성모 마리아가 귀족 조반니와 교황 리베리오의 꿈에 나타나“눈 내리는 에스퀼리노 언덕에 성당을 지으면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고, 한여름인 8월 5일 정말 에스퀼리노 언덕에 눈이 쌓여있어 이곳에 성당을 짓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눈이 내린 8월 5일을 기념해 매년 이날 미사를 열고 하얀 장미 꽃잎을 눈처럼 흩뿌리는 의식을 진행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약 100명의 역대 교황이 묻힌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이곳을 묘지로 정한 것은 의외이면서도, 교황답다는 평가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의 성당에 묻히는 것은 약 120여 년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이 성당을 좋아해 취임 후 100회 이상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2013년 취임식 다음날 첫 외부 방문지로 이 성당을 택해 비공개 기도를 드렸고, 해외 순방을 전후에 로마로 돌아오면 항상 이 성당을 찾았다. 또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 뒤 바티칸으로 돌아올 때마다 성당을 찾아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따르면 이곳에는 성 비오 5세 등 7명의 역대 교황이 안장돼 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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