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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행복 이야기

식빵언니’의 은퇴사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유상건의 라커룸 안과 밖]

by 晛溪亭 斗井軒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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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언니’의 은퇴사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유상건의 라커룸 안과 밖]

  • 동아일보 2025년 4월 22일 08시 39분 

8일 2024∼2025시즌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에서 통합 우승한 뒤 메달에 입을 맞추는 김연경. 인천=뉴시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청춘예찬’을 쓴 우보 민태원은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고 했는데, 은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말’이다. 청춘의 피는 끓지만 은퇴의 피는 식었고, 인생의 황금기가 청춘이라면 은퇴로부터는 동면기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할까. 은퇴의 사전적 의미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낸다’이지만 요즘의 은퇴는 꼭 그렇지는 않다. 베이비부머의 ‘1차 은퇴’(주된 일자리 퇴직)가 이미 시작됐는데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아 한가할 여유도 없다.

기실 은퇴는 소홀히 할 수 없는 삶의 이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은퇴는 흔적이 남지 않는 ‘개인적 철수’에 가깝다. 은퇴식의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는 데다 은퇴를 선언하는 순간의 형식과 과정이 생략되기 일쑤다. 누구나 겪을 일인데 은퇴자를 보내는 예의와 배려에 아쉬움이 든다.

한국 배구계 최고의 스타였던 김연경이 2024∼2025시즌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에 통합 우승으로 ‘라스트 댄스’를 마쳤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2005∼2006시즌 신인선수상, 정규리그와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싹쓸이했다. 마지막 해에도 정규리그와 챔프전에서 ‘만장일치’ MVP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배구의 모든 것을 이룬 선수다. 지난해에는 국가대표 은퇴식을 가졌고 다음 달 이벤트 경기인 ‘KYK 인비테이셔널 2025’에서 은퇴식을 치를 예정이다. 이런 김연경은 과연 어떤 내용의 은퇴사를 할까 궁금해졌다.

스타 선수의 은퇴식은 경력의 끝이 아니다. 새로운 사회적 역할로 이동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완벽한 끝맺음이 필요하고, 은퇴사를 통해 새출발을 선언해야 한다. 대중과의 소통, 공감, 공유를 통해 코트 안을 정리하고, 코트 밖의 삶을 설계해야 한다. 그래서 은퇴사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어야 한다. 가족과 구단, 그리고 팬들에 대한 감사는 물론 은퇴 후에 전개할 자기 삶의 정당성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 착상, 배열, 표현, 기억, 발표의 체계를 거쳐 새로운 관계에 대해 설득해야 한다.


김연경은 호방한 ‘식빵언니’로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예선 경기였다. 8강 진출이 쉽지 않은 4세트 상황에서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를 외쳤다. 투혼을 독려하는 사자후였고 한국 대표팀은 4강이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일상에서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난다.

그의 선한 영향력은 강력하기까지 하다. 김연경은 “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지는 아직 모른다. 앞으로 그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소녀와 여성이 많이 나올 것이다. 이들에 대한 응원과 함께 우리를 향한 격려도 은퇴사에 담겼으면 좋겠다. 김연경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않은가.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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