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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조종악(趙宗岳, 13世조, 문림 高孫, 호:龜巖)구암정(龜巖亭)▣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2. 9.

▣조종악(趙宗岳, 13世조, 문림 高孫, 호:龜巖)구암정(龜巖亭)▣

▲ 조종악을 기리는 귀암정은 영천시 금호읍 성천리 401-1 도로변에 건립되어 있다.

귀암정(龜巖亭)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조종악(趙宗岳, 1566∼1633)을 기려 후손들이 세운 집이다. 조종악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노모를 동생 조종대(趙宗岱)에게 부탁한 뒤 영천 의병에 뛰어들어 한천 전투, 영천성 수복 전투를 치렀다. 특히 영천성 수복 전투에서는 군대의 관향(管餉)을 맡아 군수 참모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함으로써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

조종악은 영천 수복 후 권응수의 명에 따라 청송 지역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이경천(李擎天)과 함께 청송으로 간 조종악은 군량을 모으고 의병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에 전력을 쏟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은 '권응수는 조종악의 지략과 용맹을 장하게 여겨 청송진(靑松陣)에 보내어 군사를 일으키게 하였고 이로 인해 청송 지방이 병난(兵難, 전쟁의 피해)을 입지 않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105-2 자암정은 조종대를 기려 세워진 건물이다.

자암정(紫巖亭)은 영천성 수복 전투에 직접 참가하여 왜적과 싸웠고, 청송에서 군량과 의병을 모집 중인 형 조종악을 돕기 위해 곡식 200곡과 병사 30명을 보내는 등 임진왜란 당시 구국 활동에 열성을 보였던 교수(敎授) 조종대(趙宗岱, 1569∼1635)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형 조종악의 귀암정에서 3km가량 북쪽에 있다.

특히 조종대는 임고서원의 정몽주 영정과 영천향교의 오성(五聖,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위패를 종전 때까지 안전하게 모신 것으로 이름이 높다. 1593년(선조 26) 자양의 계정에 이들을 숨겨 4년 동안 안전하게 모셨던 조종대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다시 피란시켜 무사히 지켰다. 조종도는 전투 참전, 모병과 모곡, 성현 수호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전쟁이 끝난 후 선무랑(종6품)의 벼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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