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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영양 하담(荷潭) 조언관(趙彦觀, 1805-1870) 하담고택(荷潭古宅) 경북 문화재자료 제441호◑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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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하담(荷潭조언관(趙彦觀, 1805-1870) 하담고택(荷潭古宅) 경북 문화재자료 제441호◑

이 고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공을 세워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사월(沙月) 조임(趙任, 1576-1644)의 손자인 시벽(是壁, 1670-1753)이 1710년 경 건립하였다고 하며, 조선 후기의 학자인 하담(荷潭) 조언관(趙彦觀, 1805-1870)이 태어난 곳이다. 시벽의 아들이 심은 회나무가 있다하여 쌍괴당(雙槐堂)이라고도 한다.

고택은 ㅁ자형 건물로 정면 좌측에 팔작지붕의 사랑채가 높게 솟아있고 그 뒤편에 안채가 다른 집과는 달리 지붕이 독립된 구조로 길게 놓여 있다. 영양읍 하원리와 상원리에 있는 한양조씨(漢陽 趙氏) 사월파(沙月波) 종택인 월담헌(月潭軒) 사고종택(沙皐宗宅)과 더불어 문중의 역사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사월 조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2번에 걸쳐 군자금으로 써달라고 전재산을 내놓고 ‘홍의장군’ 곽재우의 지휘 하에 의병에 참여하는 등 누구보다 애국심이 컸는 분입니다.

담고택이라는 이름은 조임의 후손이며 조선 후기의 학자 하담 조언관의 호를 딴것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담 조언관(1805~1870)은 벼슬길에는 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어릴 적 큰아버지인 조홍복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당대 글이 밝기로 소문났다고 합니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먹고 살기 어려워 마을 주민들이 죽어나가자 직접 다니면서 시체를 치우는 등 봉사를 많이 해서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하담 조언관은 봉사활동에만 그치지 않았으며 하담고택에서 북쪽 1시 방향에 있는 하담정에서 선비를 양성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습니다.

대문간채는 맞배지붕으로 사랑채 마루에 ‘하담고택 荷潭古宅’ 편액이 있다. 안채 마루간에도 ‘삼악헌 三巖軒’ 편액이 있다. 사랑채는 전퇴 형식으로 대문간을 중심으로 동측에는 온돌방, 광이 있고 서측에는 사랑방 2개와 사랑마루간이 있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인데. 남방식 구석기, 신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고인돌 총 3개가 있다. 그래서 ‘삼악헌’이라 불리기도 하며 구멍이 뚫려 있어 별자리를 기록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영양은 밤하늘의 투명도가 다른 곳에 비해 좋아 육안으로도 별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론 다산과도 관련되어 있다.

마당에는 보호수로 지정(지정번호:06-24-1)된 회화나무가 서 있는데요, 회화나무는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어 궁궐이나 서원등에도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합니다. 향나무가 멋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향나무는 '믿음'을 상징하기에 믿음을 갖고 우애하며 살아가자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 두그루의 나무는 조시벽의 아들인 농수 조백규(1697~1762)가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담고택 주변에는 “못이 세 곳이 있다”라는 의미의 “삼지수변공원”이 있다. 세 못은 각각 피대지, 연지, 원당지로 피대지에서는 넓게 조성된 연꽃을 볼 수 있다. 데크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가벼운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영양의 자연 속을 거닐며 산책할만한 곳을 찾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하담고택: 학봉가14대종부이신 故 조필남 여사님 생전모습>

 

♥안동 의성김씨 학봉가 14대 종부 조필남 여사님 친정집(21世 언관彦觀,號 - 荷潭)

출처: https://sugisa.tistory.com/entry/『망운집望雲集』조선-후기의-학자-조홍복趙弘復-1773∼1841의-시문집 [晛溪 斗井軒 Sugisa: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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