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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최영장군사적비문(崔瑩將軍史蹟碑文)】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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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忠信崔瑩將軍奇峰影堂


기봉영당은 철종 5(1854)에 창건하였으며, 1970년대 청주 공군 비행장 건설로 인하여 1978년 현 위치로 복원하였다.
이 곳은 팔도도통사 철원부원군 기봉 최영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으로 음력 3中丁日9中丁日에 후손들이 제향을 올리고 있다.
소재지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 150-44 번지

최영장군사적비문(崔瑩將軍史蹟碑文)

장군의 성은 최씨요 본관 동주(東州)이며 휘는 영()이고
호는 기봉(奇峰)이요 시호는 무민(武愍)이시다.

관작(官爵)은 고려조 진충분의 좌명 정란 안사공신 도형벽상 훈일등 벽상삼한삼중대광 문하시중 령삼사사 판밀직사사 상장군
겸 판중방사 팔도도통사 철원부원군이시고 배는 삼한국대부인
문화유씨(文化柳氏)이시다.
장군은 고려개국공신 태사(太師) 휘 준옹(俊邕)의 후 문숙공
(文淑公) 휘 유청(惟淸)의 오세손이며 동원부원군 휘 원직(元直)
아들로 단기 3649(충숙왕 3) 병진에 개경에서 탄생하셨다.
장군은 처음 무인으로 양광도순문사 휘하에서 여러차례 왜구를
토벌 생포하는 등 남다른 무용이 뛰어나서 공민왕 원년 27세에
시위(侍衛)로 발탁된 후 조일신난(趙日新亂) 토벌의 공으로 호군에
특진하시고 동 3년 중국 고우의 장사성난(張士誠亂)때는 대호군으로
원정하였을 때 용전하니 중국에 국위와 명성을 떨쳤다.

9년에는 평양윤 겸 서북면순문사로 홍건적(紅巾賊)을 정벌
하셨고 동 12년에는 금용(金鏞)의 난을 평정하셨다. 14년에는
간신 신돈(辛旽)의 참소(讒訴)로 좌천되셨다가 동 20년에 문하부
찬성사로 복직하셨다. 23년에 팔도도순찰사로 왜구를 통영에서
섬멸하시고 제주 목호(牧胡)의 난을 토벌하셨다.
우왕 27월에 유명한 홍산대첩(鴻山大捷)의 전공으로 왕이
철원부원군에 봉하고 홍산파진도를 그리게 하여 목은(牧隱) 이색
(李穡) 선생에게 찬문(讚文)을 짓게 하였고 승천부전에서는 안사공신
(安社功臣), 진포운봉전에서는 철권작(鐵卷爵)과 친묘위토를 받았다.
7년 수시중(守侍中)이 되시고, 이듬해에는 영삼사사(領三司事)
책봉되셨다. 14년에 문하시중에 오르시고 가 영비(寧妃)
책봉되었다.
이해 명나라가 고려의 북방땅을 복속(服屬)시키기 위하여 철령위
(鐵嶺衛)를 설치하므로 조정은 국토의 실지회복을 위한 요동정벌
(遼東征伐)을 결정하고 장군을 팔도도통사로 삼고 출정케 하였으나
친명파(親明派)인 우군도통사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위명(違命)
회군함으로써 실패하니, 국왕은 페출(廢黜)되고 장군은 고양, 합포
등지로 유배를 당하시다가 개경에서 遇害하니 향년 73세라, 그 죄목은
"은 고려 전국을 덮을 만큼 크나 명나라 천자에 반하였으니
그 죄가 천하에 가득찼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천추에 통한이로다.
死之日에는 온 국민이 철시하고 애읍통곡(哀泣痛哭)하였으며, 행인
도 하마하고 연일 조객(弔客)이 줄을 이었고, 미두포지(米豆布紙)
섬부(贍賻)하였다.
오호라. 장군께서는 문무충효를 겸전(兼全)하신 당대의 위인이셨으니,
사회가 어지러웠던 그 시대에 무인으로 수많은 大小戰亂마다 百戰無敗
승전으로 나라를 지키시고, 문인으로서는 名相으로 朝野信望을 한
몸에 받으니, 장군의 걸출(傑出)하신 위풍은 변방에까지 미치어 평화를
가져다 주고, 도적떼와 간신배들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니, 그 명성은
참으로 一世를 뒤덮었다 할 것이다.
특히 부친의 "너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여겨라. 汝當見金如石"
유훈을 지키시매 淸白 剛直하셨고, 우해(遇害) 시에는 태연하신 자세
로서 "만약 平生貪慾의 마음을 가졌었다면 내 무덤위에 풀이
날것이요, 그렇지 않았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셨는데 장군의 묘에는 이조 500년 동안 풀이 나지 않아 世人들이
적분(赤墳)이라 명명하며 後世人들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태조
5년 장군의 공로와 충성을 추모하여 무민(武愍)이라 시호를 내리고
관동(館洞)圖形立祠하여 진영(眞影)을 안치하고 제사지내게 하였다.

단기4324辛未 10월 일 謹立
20代孫 前 遠南國民學校長 在崇 謹識
礪山後人 宋海碩 謹書
21代孫 二代 統代議員 昌鎬 謹竪

 

 

奉次鐵原府院君在盈德所著詩韻(봉차철원부원군재영덕소저시운)

철원부원군(최영장군)께서 영덕에 계실 때 지으신 시운을 삼가 차운하여 지음.

 

賜玦暫時吟澤畔(사결잠시음택반)

▼임금이 내리신 결(상금, 옥)을 받아들고 잠시 못가에서 읊조리다가

 

請缨去歲過淮邊(청영거세과회변)

▼임금께 끈(적장을 잡아 묶는것)을 받아 쥐고 지난 해에 회변을 지났도다

 

忠勤定國新開府(충근정국신개부)

▼충성으로 나라를 안정시켜 개부를 새롭게 하였고

 

淡泊爲家只俸錢(담박위가지봉전)

▼청렴으로 가정을 다스리며 봉전(봉급)만 받았네

 

擧義撻川增士氣(거의 달천증사기)

▼달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사기를 드높혔고

 

成功鴻野更人煙(성공홍야갱인연)

▼홍야에서 성공하여 인연(인가에서 나는 연기)을 회복했네

 

欲知終始心中事(욕지종시심중사)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그 마음을 알고져 하거든

 

看取昭昭日在天(간취소소일재천)

▼밝고 밝은 하늘에 있는 저 태양을 쳐다보라.

 

정몽주(鄭夢周.1337~1392) : 고려 말기 충신, 유학자. 호는 포은(圃隱)

 

 

판삼사(判三司) 최상국(崔相國 최영장군)이 왜적과 싸워 적을 퇴각시킨데 대하여 하례하다

 

鯨波萬里振威風(경파만리진위풍)

큰 바다 물결 만리에 위풍을 떨치어라

 

雪鬂霜頾兩頰紅(설빈상자양협홍)

흰머리 흰수염에 두 볼은 붉으레하네

 

更喜一朝安社稷(경희일조안사직)

하루아침에 사직 편케 함이 더욱 기뻐라

 

大山功上大山功(대산공상대산공)

태산 같은 공위에 태산 같은 공을 더했네

 

이색(李穡, 1328~1396) : 고려 말기의 문신, 학자 호는 목은(牧隱)

 

牧隱李穡 崔瑩將軍 哀悼詩文(목은 이색 최영장군 애도시문)

奉呈(봉정) 시 한 수를 삼가 받들어 올립니다.

 

喬木三韓宥世臣(교목삼한유세신)

삼한의 거목으로 대대로 공을 세운 집안

 

聖君恩重顯雙親(성군은중현쌍친)

성군의 은혜 중히 받고 양친을 현양했네

 

焚香先壟忠誠激(분향선농충성격)

북받치는 충성심으로 선영에 향 피우고

 

垂白都堂德化淳(수백도당덕화순)

도당에 백발 드리우고 덕화를 펼치도다

 

已信江山鍾秀氣(이신강산종수기)

수려한 기운이 모여든 강산인 줄 알겠거니

 

須知黍稷感明神(수지서직감명신)

밝은 신령도 서직을 받고 흠향을 하셨으리

 

病難郊迓空吟咏(병난교아공음영)

병으로 교외에 못 나간 채 괜히 읊는 노래

 

頌美飜慚語不新(송미번참어불신)

찬미하는 시구가 새롭지 못한 게 부끄럽소.

 

門下侍中 崔瑩將軍 詩調

문하시중 최영장군 시조

 

錄駬霜蹄(록이상제)

살지게 먹여 시내물에 씻겨 타고

 

龍泉雪鍔(용천설악)

들게갈아 등에 둘러메고

 

丈夫(장부)의 爲國忠節(위국충절)을 세워 볼가 하노라

 

작가 : 최영

 

출전 락학십령 청구영언(가람본) 442

한국문학전집 1 시조1 P36

 

해설 : 무인다운 기상이 넘쳐나는 시조다.

 

초장은 주(周)나라 목왕이 탔던 준마인 녹이와 상제같은 좋은 말을 잘 먹여서 맑고 깨끗한 시냇물에 씻겨 타겠다는 말이고,

 

중장은 옛날 중국의 장수들이 쓰던 아주 좋은 보검인 용천검의 날카로운 칼날을 세워서 둘러메어 무장의 위의를 갖추겠다는 말이다.

 

즉 좋은 말과 날카로운 칼을 갖춘 다음에 무장은 비로서 싸움터에 나갈 수 있게 된것이다.

 

이런 준비를 갖춘 후 종장에서 대장부가 나라를 위한 충절을 세우겠다고 하여 자신의 행동 방향을 밝혔다. 그의 씩씩한 기상이 그대로 배어나오느 듯하다. 굳세고 용감한 자세로 고려에 충절을 바쳤던 그의 일생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재상 경복흥과 최영의 시 연귀(聯句)

최영장군은 전시분망한 중에서도 이따금 시(詩)를 읊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어느날 저녁에 여러 재상과 연귀를 지었는데 재상 경복흥(慶復興)이 부르기를

 

天是古天人不古(천시고천인불고)

하늘은 옛 하늘이지만 사람은 옛 사람이 아니로다.

 

하자 최영이 대구를 놓아 말하기를,

 

月爲明月相無明(월위명월상무명)

달은 명월이로되 재상들은 밝지 못하구나.

 

라고 하였다.

 

남이 정의에 배반하는 것을 보면 깊은 증오로써 통열히 배격하였다. 당시 이인임, 임견미가 정방제조로 있으면서 정권을 마음대로 독판치고 변안열 등이 마음에 맞아 권세를 부렸다. 어떤 사람이 벼슬을 요구하였을 때 최영이 말 하기를 "네가 장인바치(工人)나 장사꾼이 되었으면 벼슬은 저절로 얻어질 것이다"라 했다. 이 말은 정권을 잡은 자와 뇌물을 쓰는 무리를 비난한 것이다.

 

최영장군 시조 "외솔"

눈 맞아 휘었노라 굽은 솔 웃지 마라

춘풍(春風)에 피인 꽃이 매양(항상)에 고울소냐.

풍표표(風飄飄) 설분분(雪紛紛)[바람 휘날리고 눈 어지럽게 날림]할새 네야 나를 부르리라

작가 : 최영

 

 

운곡 원천석: 최영에 대한 시()

 

六道都統使崔相夢謁大明皇帝 皇帝以各色衣腹賜之 仍呼韻命製相國遂韻奏呈云

육도도통사최상몽알대명황제 황제이각색의복사지 잉호운명제상국수운주정운

☞육도 도통사 최영이 꿈에 명(明)나라 황제를 알현하자, 황제께서 각색 의복을 하사하시면서 운자(韻字)를 불러 시를 지으라고 명하시니, 상국이 그 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色色羅衫着我肩感恩狂興醉如顚百千萬載爲民傅四海民巢子子傳聞之奉次韻作二絶以備忘云

색색나삼착아견감은광흥취여전백천만재위민부사해민소자자전문지봉차운작이절이비망운

☞최영 비단옷을 제 어깨에 걸치니 은혜에 감격하고 흥에 겨워 쓸어질 듯 하옵니다. 백천 만세에 백성의 어버이 되셨으니 온 천하 백성 집에 자자손손 전하리다.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삼가 차운하여 절구 두 수를 지어 비망으로 삼으려 한다.

 

特立朝端絶幷肩 光浮紅頰照華顚 一身忠膽紅河壯 天子恩光夢褢傳

특립조단절병견 광부홍협조화전 일신충담홍화장 천자은광몽회전

☞조정에 뛰어나 어깨 견줄 이 없으시니 붉은 뺨에 빛이 떠올라 이마까지 비추네

한 몸의 충담이 바다같이 넓고 장해 천자의 은혜 빛이 꿈속까지 전했네.

 

釰在腰間弓在肩 邦家隉机卽扶顚 一宵夢應千年業 至德膚功史筆傳

일재요간궁재견 방가얼궤즉부전 일소몽응천년업 지덕부공사필전

☞칼은 허리에 활은 어깨에 한 나라 운명을 혼자 짊어 지셨네

하룻밤 꿈이 쳔년 왕업에 응했으니 지극한 덕과 훌륭한 공을 사필로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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