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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玄谷集序[申欽] 玄谷集序[李景奭] 玄谷集敍[趙絅] 玄谷集序[鄭斗卿]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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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서원(東溟書院) 충현사(忠賢祠)

襄烈公愚溪趙先生神位

嘉川齋趙公神位

강원 양양군 양양읍 서원길 44-9 (지번) 양양읍 조산리 543

※1999년 5월 가천재공 현감공파 조성보(成甫26세, 경북 영천시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산48-8번지 "포은로2424-128번지" 거주, 신도비 건입 : 아버지인 中衡중형씨 유언으로)종인이 사재로 양렬공 신도비를 동명서원 앞에 세웠는데, 이는 남북통일이 되면 개풍군 흥교면 사곶리 공의 묘소로 옮길 계획이다.

[해월정터임:편집한정자사진임!]

[次歸去來辭]

歸去來兮。世不我知可以歸。自古不遇者非一。吾何爲乎傷悲。仰孤雲之高標。邈淸風之難追。瞻頭流之幽邃。絶人間之是非。催潘岳之秋興。拂張翰之征衣。涉漢水之浩溔。辭終南之翠微。浩然而歸。策馬南奔。朝發京華。夕至衡門。玉堂金馬。匪我思存。可以供老。樂我瓢尊。念誰昔之嬰禍。羌魄悸而汗顏。食同魚而滅耳。豈人心之所安。饕薄祿而營生。縱軀命之所關。較得失於平生。盍遐擧而大觀。矧年老而多病。可卷懷而求還。世雖棄乎君平。道卽存於蜺桓。歸去來兮。聊卒歲而優游。臥一壑之煙霞。竟何慕而何求。當粱肉於晩食。替榮華於無憂。古人先我而實獲。欽往迹而爲疇。顏闔鑿坏。管寧浮舟。或潛身於滄海。或絶響於林丘。雖出處之異路。蓋明哲之同流。顧余志之異是。但有意於歸休。已矣乎。人生富貴在何時。歲月如流不可留。吁嗟乎。舍此將安之。唐虞不復見。巢,許非所期。甘終身而倘佯。趁春耕而夏耔。遡長風而放歌。迎素月而哦詩。旣得所而定居。肯從詹尹決所疑。

●次歸去來辭 : 현곡 조위한 [玄谷 趙緯韓]

歸去來兮世不我知可以歸自古不遇者非一吾何爲乎傷悲仰孤雲之高標邈淸風之難追瞻頭流之幽邃絶人間之是非催潘岳之秋興拂張翰之征衣涉漢水之浩溔辭終南之翠微浩然而歸策馬南奔

朝發京華夕至衡門玉堂金馬匪我思存可以供老樂我瓢尊念誰昔之嬰禍羌魄悸而汗顏食同魚而滅耳豈人心之所安

 

고향으로 돌아가세,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돌아가도 되느니라. 예로부터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하나가 아니니라 내가 어찌하여 슬프기만 한가. 외로운 구름의 높은 기개 우러르며, 맑은 바람이 따르기 어렵게 아득히 먼 두류산(頭流山)의 그윽하고 깊숙한 곳을 우러러 보며, 인간 세상의 시비를 단절하니, 진나라 반랑(潘郞) 같이 반백이 되었고, 장한처럼 나그네 옷 떨쳐입고, 끝없이 넓게 펼친 한강을 건너가며, 한양 남산의 푸름을 말하노라. 호탕한 마음으로 즐거이 돌아가네. 채찍질에 말 달려 남쪽으로 바삐 향하니

 

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여 저녁에 거처에 도착했다. 홍문관 규장각이야 날 그리워 않겠지만 어른들을 봉양할 만하고 나를 즐겁게 했던 술잔이었다. 닥쳤던 옛 불행을 생각하자니 혼백이 두려워 땀낼 모습이었지만 같은 자리를 그저 먹어치울 뿐이었다. 어찌 사람들 마음이 편안했겠는가?

 

朝發京華。夕至衡門。玉堂金馬。非我思存。可以供老。樂我瓢尊。念誰昔之嬰禍。羌魄悸而汗顏。食同魚而滅耳。豈人心之所安。<次歸去來辭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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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여 저녁에 거처에 도착했다.

홍문관 규장각이야 날 그리워 않겠지만

어른들을 봉양할 만하고 나를 즐겁게 했던 술잔이었다.

닥쳤던 옛 불행을 생각하자니

혼백이 두려워 땀낼 모습이었지만

같은 자리를 그저 먹어치울 뿐이었다.

어찌 사람들 마음이 편안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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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註

“같은 자리를 먹어치울 뿐이었다.”: 치열했던 자리다툼을 은유합니다.

 

饕薄祿而營生。縱軀命之所關。較得失於平生。盍遐擧而大觀。矧年老而多病。可卷懷而求還。世雖棄乎君平。道卽存於蜺桓。歸去來兮。聊卒歲而優游。臥一壑之煙霞。竟何慕而何求。當粱肉於晩食。替榮華於無憂。古人先我而實獲。欽往迹而爲疇。顏闔鑿坏。管寧浮舟。或潛身於滄海。或絶響於林丘。雖出處之異路。蓋明哲之同流。顧余志之異是。但有意於歸休。已矣乎。人生富貴在何時。歲月如流不可留。吁嗟乎。舍此將安之。唐虞不復見。巢,許非所期。甘終身而倘佯。趁春耕而夏耔。遡長風而放歌。迎素月而哦詩。旣得所而定居。肯從詹尹決所疑。

 

[贈三休趙敎官休]

聞君携小弟。문군휴소제。來駐廣陵庄。래주광능장。

感舊身難去。감구신난거。徒然泣數行。도연읍수행。

막내 동생 손잡고 온 소식 들었고,

광릉의 별장지에 와서 머무다.

옛 느낌에 이 몸은 가기 어려워,

부질없이 두어 줄의 눈물 흘리네!

[玄谷集序]

玄谷集序[申欽]

玄谷趙子之詩若文。爲卷者九。而衆體俱焉。朱絃自韻。天璞不制。可謂奇矣。異時採摭風謠。其不爲登壇之一人也耶。趙子恢疏倜儻。有氣義重然諾。於書無所不覽。而尤好莊周氏。槪其趣造。在於八極之表。而顧局於埃壒中。知者少。不知者多。與余同罹癸丑之禍坐廢者十年。而更化之初。起爲臺憲。又斥補外郡。其時命之不諧耶。然趙子之才豈止於此。余旣賞其文。而復爲之一嘅。

天啓六年丙寅殘臘。象村居士書。

한양조문 현곡(玄谷)의 시() 약문(若文)이다. ()을 만드는 것은 아홉 가지가 되는데, 여러 가지 본체는 모두 갖추어진다. 주현(朱絃)은 운() 자로 했으며, 천박(天璞)은 조정하지 못 하였다. 기이하다고 이를 만 합니다. 훗날에는 풍요(風謠)를 채취아며, 등단(登壇) 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는가? 현곡(玄谷)는 도량이 크고 뜻이 크면서, 의기(義氣)가 있어 중단하였다. 쓰는 것은 보지 않음이 없는 것이 없다. 그리고 더욱 장주(莊周)의 주씨를 좋아하였으면서, 대개 그 취향(就向)을 개괄한다. 팔극표(八極表)에 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먼지가 티끌 속에 묻혀 있었는데, 아는 사람은 적으며,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나와 함께 계축(癸丑)의 화에 해당하는 것은 10년이 되었다. 그러나 즉위하신 초기에 즉위하신 초기입니다. 일어나 사헌부가 되었다. 또 외군(外郡)에 보임(補任) 시키기도 하였으며, 그때 명이 합치되지 않은 것인가? 그러나 자손의 재주가 어찌 이에 그쳤겠는가! 내가 이미 그 글을 상으로 주었으며, 그러나 다시 한 번 탄식하도다.

 

천계(天啓) 6년 병인년에 왜랍(殘臘)이다. 상촌(象村)에 사는 선비가 삼가 시문을 짓다.

玄谷集序[李景奭]

赤洲之上。有樹而珠。聯綴璀璨。世之譚連枝之秀者。取以況焉。文章。小技也。而能之者鮮。一世不數人。況在棣萼。交輝齊美者。尤不易得。機,雲,軾,轍。曠代一有。豈不益復可奇也哉。公與季氏玄洲。蚤以能文章鳴。自未釋褐時。已與諸作者。竝驅詶唱。氣摩詩壘。雄篇大作汪茫奮肆者。直從馬史中來。詞律聲章淸健贍蔚者。得之於杜,韓。蓋其韻宇疏曠。風流豪逸。於書無所不覽。先秦,兩京。魏,晉之文。擷英嚌胾。涵涵而停。秩秩之積。其吐辭而注於手也。如水之挹於河。藻思媚趣。類其風槪。有非飾采澤鬪靡麗者所可侔擬。相與莫逆而雲龍氣合者。權石洲,李東嶽。賞音而交口吹奬者。車五山滄洲也。玄軒申相公。嘗爲之序。語省而意該。一時諸名公巨匠之所推許也如此。崔簡易亦嘗贈公以文。有曰。先生見說爲文章。當使時人着黃面卷看。固已壯而信之矣。及屬就鴨島觀。銍艾日治詩於吾。愛其風雅韻致。夫以簡易之具眼。旣信而愛之矣。又以公之才學。方諸良玉利刀。孰玉之良刀之利而不爲人所珍也哉。如余者。宜無所贅焉。抑余竊有所睹記。公之可稱者。獨文乎哉。公素俶儻負氣義。脫人於厄而不自色。在昏時爲世所齮齕。幾危得醳。絶迹仕塗。浮游湖海。東登蓬萊。南窮方丈。栖遲於帶方之野。癸亥改玉之後。始登臺閣。由玉堂入銀臺。以亞卿增壽秩拜知樞。公與先伯兄忠敏公最相善。時時爲昆弟飮。公微醺輒放歌。其聲雅而亮。白鬚韶顔。皓鶴如也。其益老而病也。余造候焉。尙能倚枕。手綱目不釋。時年踰八袠。其志氣未嘗衰也。然此亦末也。本之則行惇百源。南陔白華之詠。使人興感。早見稱於宗族鄕黨。先生之所嘉歎。當宁之所褒異。表厥門閭。事光簡策。亦可謂彬彬然矣。公諱緯韓。字持世。自號素翁。晩又號曰玄谷。屬余剞劂之而徵弁語者。公之胤高山倅億也。

丁酉冬十月。白軒李景奭序。

玄谷集敍[趙絅]

昌黎氏論文章曰。水。氣也。言。浮物也。水大而物之浮者。大小畢浮。蘇長公亦曰。昌詩不如昌其氣。不佞於是迺知文章以氣爲主之說。古今不可易也。吾宗人玄谷翁。生當隆,萬盛際。稟氣固厚。才結髮。喜文章。文非先秦兩漢。不讀也。詩非開天大家數。不眼之也。其所嚌胾。最深於太史氏及戰國弘辯之說。以助其氣。以資其筆勢。繇是名噪一國。人不敢顔行抗其氣。掉鞅藝苑。破的澤宮。名標一頭。殆無虛歲。主司以得失翁爲憂樂。同進之士以莫先翁爲戒。顧坐時命。屢屈公車。至髮種種。乃始得之。然翁則猶然笑之。不少挫其氣。八角磨盤之勇。愈往愈壯。天啓年間。不佞忝入玉署。與翁同儤惠。是時翁年過耳順矣。聽其譚論。則河決而峽潰也。視其符彩。則巍然靈光也。叩其竹素之業。則惠施五車。不足當其意也。不佞作而面歎者良久。翁沒十年于玆。嗣子億氏宰南縣。附翁集于剞劂氏。爲不朽計。卷凡九。致禮千里外。徵不佞以序引甚勤。不佞披其編。讀之曰。多乎哉。詞賦。上規相如。下襲仲宣。飛章走檄箋誄銘頌。俱有奇氣。其他庭對大策。步驟鼂董之域。朝天記行。方丈,蓬萊幽討有韻之作。譬如騏驥脫馽。怒氣橫空。率是以往。累百餘篇。未見其氣之餒而竭而躓。翁之於斯術。可謂盡矣。噫。豐城劍氣。出古獄而貫牛斗者。始籍昆吾之鑄而終借雷煥之眼。觀翁之師友之間。亦猶是也。汀皐,溪院諸老先生。折輩行許以少友。石洲,東嶽,五山車氏以能詩聲。最鳴於世。而與翁結爲詩社。磨礱浸灌。婆娑娛嬉。戲笑怒罵。無非養翁之氣而揚翁名也。翁之甚老而疾病也。不佞往造焉。翁已倦於言語。而資治一卷。尙在枕邊。隱隱眉睫間。有好氣象不肯泯者奇哉奇哉。不佞今借玄晏之序三都。則舍翁文氣。無他適也。翁弟玄洲公亦以文雄竝峙。翁實昌其氣而及於友于哉。

著雍閹茂大簇上浣。柱峯散人趙絅。謹敍。

玄谷集序[鄭斗卿]

孔子曰。邦有道貧且賤焉。恥也。邦無道貴且富焉。恥也。信哉。是言也。自古以來。未有君子窮于治世。通于亂世。小人窮于亂世。通于治世者也。何則。世亂則讒諛得志。是君子道消之時。雖欲不窮。得乎。世治則俊乂列位。是君子道長之時。雖欲不通得乎。故在亂見用。可知其讒諛矣。在治見棄。可知非俊乂矣。孔子之言。豈不信哉。玄谷趙公以倜儻奇偉之資。貫穿百家語。發爲文章。詩名與權石洲,李東岳相埒。及登第。時際昏虐。倫紀滅絶。姦佞滿朝。公橫罹罪網。屛處于湖南之帶方郡十有餘年。癸亥反正。擢置臺省。出入論思。致身宰列。以公德言之。位雖不滿。亦不可謂不顯者矣。若公眞可謂邦無道窮。邦有道通者哉。公以孝旌門。百行原孝。行己其有本矣。斗卿以故人子。常侍門下。已過四紀。公氣像之豪逸。談論之高爽。追慕至今。今公胤子高山明府億。先集序囑余。余以爲公文章。尹月汀,黃芝川,崔東皐,車五山。皆眼空一世。到公未嘗不服。稱絶代奇作。前輩有定論。余不更贅。只志公出處。爲玄谷集序。

溫城鄭斗卿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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