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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들을 진멸한 날! 존귀하고 창대한 사람~~~모르드개!
[25.03.23.주일예배]
[에스더 9장 1절~19절]
1절 -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2절 -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절 -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절 -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5절 -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절 -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7절 -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절 -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절 -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절 -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1절 -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아뢰니
12절 -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명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
13절 -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14절 -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매달리니라
15절 -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절 -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7절 -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절 -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절 - 그러므로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 주제별 목록 작성
대적들을 제어한 유다 민족
2절 : 모든 민족이 유다인을 두려워함
3절 : 각 지방 통치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함
4절 :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짐
5-10절 : 수산 성의 500명과 하만의 열 아들을 죽임
14절 :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매달음
15-16절 : 수산의 300명과 각 지방의 7만5천 명을 도륙함
17-19절 : 지역별로 잔치를 배설함
* 도움말
1. 도우니(3절) : 정신적인 도움뿐만이 아니라 물적, 인적 자원을 포함한 도움을 말한다.
2. 마음대로 행하고(5절) : 이는 유다인이 위로부터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복수를 했다는 의미다.
3.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13절) : 이는 죽은 자에 대한 또 한 번의 형벌로서 당한 자에게는 치욕과 불명예를, 그것을 목격하는 자에게는 경고를 뜻하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 말씀묵상
1. 진멸의 시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이제 모든 이방 민족은 유다 민족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모르드개의 명성 또한 각 지방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왕의 조서가 효력을 발휘한 12월 13일에는 바사 제국 전역에서 7만 5천 명의 대적이 유다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대적들의 재산을 탈취해도 좋다는 조서의 내용이 있었지만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반복적으로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유다인의 행위가 탐욕에 의해 자행된 약탈이 아닌 정당방위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2. 잔치의 시간
원수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던 날이 오히려 원수를 진멸하는 날이 되었고, 대적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이웃들과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는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이 잔치에서 서로 예물을 주는 행위가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환난을 당한 유다인들이 구원을 기념하는 뜻에서 이미 가지고 있던 자신의 생활필수품에서 귀중한 재산에 이르기까지 그 소유 정도에 따라 일정량을 떼어서 피차 흔쾌히 나누어 가졌다는 뜻입니다. 이들에게 한 동족이자 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유대감이 기쁨과 감격 중에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대적들을 제어한 유다 민족에 대한 내용을 찾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유다인들과 모르드개에 대한 주변 민족들의 반응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2-3절)
* 깊은 묵상
1. 대적을 진멸하는 과정에서 유다인들이 지킨 원칙과 그 이유는 각각 무엇이었습니까?
2.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한 유다인들이 자신의 소유를 아낌없이 서로 나누었다는 사실이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여러분에게 주는 감동은 무엇입니까?
제목:아달월 십삼일, 본문:에9:1-19
주요내용:성령 충만론, 존귀하고 창대한 사람~~~모르드개!
(요약)
아달월 십 삼일은 하만의 아말렉 족속을 진멸한 날로서 객관적으로 성령강림을 주관적으로는 성령 충만을 예표한다. 이는 심판이 시행된 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즉 성령강림은 곧 죄를 소멸하는 날이다. 또 전국민적인 마음의 통일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성령 충만이란 성령의 전인격적 지배이다. 또 사심을 버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성령 충만이란 영적 지체에 대한 회복이다. 그리고 하만의 자손들이 수치를 받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성령의 역사는 회개를 불러온다.
(설명)
☆ 아달월 13, 14일
- 성령강림 혹은 충만의 예표 -
① 심판의 날(마12:18, 행2:18-21) - 죄악 소멸
② 국가적 통일 - 전인격적인 변화
③ 탁월한 정당방위 - 의가 왕 노릇
④ 하만의 열아들 시체를 담 - 죄악을 부끄럽게 알고 회개(행2:37-38)
⑤ 재산을 나눔 - 사랑과 공동체 영성(행2:43-47)
☆ 투쟁하는 아말렉 족속
- 죄악이 드러남 -
① 옛 조서 가지고 싸움
② 그들의 진멸은 대항을 암시
③ 죽은 수효- 수산에서만 1차 500명+2차 300 = 800명
전국 = 75,000명
☆ 13일과 14일
① 13일 = 이 날만 아말렉이 대적할 권리
- 갈등 있으나 승리
② 14일 = 아말렉이 저항할 권리 주어지지 않음
- 갈등 없고 온전한 승리
(본 문)
1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에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 각 읍에 모여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 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인을 죽이고 멸하고 7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1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고하니 12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인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도에서는 어떠하였겠느뇨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또한 시행하겠노라 13 에스더가 가로되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시거든 수산에 거하는 유다인으로 내일도 오늘날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 하소서 14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15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인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 왕의 각 도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인을 도륙하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7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18 수산에 거한 유다인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9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에9:1-19)
(강 해)
오늘은 "아달월 십 삼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달월 십 삼일이란 유다 민족이 아말렉 족속을 멸한 부림절의 첫날을 가리킵니다. 부림절은 아달월 그러니까 12월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서 아말렉 족속을 멸한 날로서 15일까지 3일간 축제로 지키는 날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첫날은 온 나라에서 대적하는 아말렉을 멸한 날이요, 둘째 날은 에스더의 소청에 의해 수도인 수산성에서만 하루 더 연장하여 멸한 날입니다.
당시에 파사에 유다인이 약 70만 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다인들이 아말렉 족속을 죽인 수가 수산에서만 1차 500명에 2차 300이니까 800명이요, 전국에서 75,000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아말렉인들이 끝까지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대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인들에게는 오직 정당방위에 한해서만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죽은 듯이 가만히 있고 대적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무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많이 죽은 것은 그들이 그렇게 끝까지 대적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의 속성들입니다. 죄악의 속성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맥을 못 춥니다.
그런데 아달월 13, 14일에 아말렉이 다 죽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옛 조서를 가지고 대적한 자들만 죽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렇지 않고 아직도 살아 남아 있는 아말렉이 더 많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70만이었다면 아말렉인들도 그 만큼은 되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죄악의 속성들은 기회만 있으면 다시 고개를 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변화되었다 했더니 옛 속성이 하나도 죽지 않고 그대로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옛 속성들은 은혜 아래 있을 때에만 죽어지지 은혜 떨어지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착각하고 방심하는 순간 또 다시 죄악의 아말렉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은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부림절은 한 마디로 성령강림의 예표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날마다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을 보고 변화되어갔지만 그들이 결정적으로 변화된 때가 있었는데 그 때가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이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의 세속적인 것은 제거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이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 부림절은 성령강림 주관적으로는 성령 충만을 예표하는 날입니다.
1. 놀라운 심판이 시행된 날이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1절에 "아달월 곧 십이월 십 삼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에" 라고 했습니다.
여기 아달월 십 삼일은 아말렉 족속으로 보면 아말렉의 날이지만 유다인들 편에서 보면 유다인들의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쌍방이 서로를 멸하게 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날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왕의 조명을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인들의 자위권 행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니까 이 날은 결국 유다인들의 날이요 아말렉을 심판하는 날임을 암시합니다. 즉 그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심판의 시행령이 주어지는 날이 바로 아달월 십 삼일입니다.
이처럼 성령강림은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란 점입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토록 강조하던 여호와의 심판의 날의 당도는 곧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나아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강림의 사건은 죄악에 대한 직접적인 심판이기 때문에 우리를 죄악에서 용서하여 주실 뿐 아니라 죄악의 속성까지도 모두 소멸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12:18에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알게란 경험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행2:18-21에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했습니다.
2. 마음적인 통일이 임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2-4절에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 각 읍에 모여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저희를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각 도 모든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당시 유다인들의 명성과 기세가 얼마나 높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에 아말렉을 제어하는 일에 있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고 온 나라의 관리들이 모두 군사비와 병력까지 지원하여 유다인들을 도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다가올 정치적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 막강한 온 나라가 작은 민족 아말렉을 대적한바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아말렉이 유다인들을 대적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역부족일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그 무엇이라도 모두 하나되어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순절의 역사는 전인격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날입니다. 당시 오순절에는 성령의 내외적인 이중적인 성령 충만이 동시에 주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마음과 영혼과 육신의 어느 한 부분 즉 세포 하나라도 성령을 거슬리는 속성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성령에 지배되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온전한 신앙고백과 헌신을 다짐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행2:40-42절).
3. 의가 권세를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5-10절에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인을 죽이고 멸하고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여기 유다인들이 마음대로 행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뜻은 무차별적 살상을 뜻함이 아니오 정당방위를 함에 있어서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수산성에서 오백 인을 죽이고 하만의 열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재산에 손대도 좋다는 허락이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재물에 손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한 강력한 영적 세력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행2:43-47절에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한 이 엄청난 권세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가난한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 물질 내놓는다는 것은 기적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힘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처럼 억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자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고 변화 받은 삶이 이것이라고 나타내는 즉 복음의 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공동체 영성의 시작입니다. 우리 모두 신앙이 성장하여 이 수준에까지는 와야 합니다.
4. 나아가 죄악의 잔재를 수치스럽게 여김에서 그렇습니다.
13-15절에 "에스더가 가로되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시거든 수산에 거하는 유다인으로 내일도 오늘날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 하소서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달리니라" 했습니다.
여기 왕은 에스더의 소청에 의해 또 다시 수산에서 원수들을 죽이고 하만의 열 아들들을 매달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다음 날에도 수산성에 국한하여 원수 삼백 인을 죽이고 하만의 아들들의 시체를 매달게 됩니다. 이것은 또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철저히 본보기로 응징함과 아울러 하만의 가문을 크게 수치스럽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한 회개의 역사의 특징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자 사람들은 설교를 듣고서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이 회개란 숨기는 그런 회개가 아닙니다. 하만의 아들들은 자범죄를 상징합니다. 즉 하만의 아들들을 매단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결코 자기를 의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은혜를 못 받으니까 내가 잘했다 네가 잘했다 다투지 은혜 받으면 민족의 죄까지도 다 내 잘못으로 돌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순절에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2:37-38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월 십 사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여기 예물을 주더라는 것은 그저 기뻐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가 아닙니다. 원문에 '예물'을 '메나트'라고 했는데 이 용어는 관례나 법률에 의한 '할당'이나 '몫'을 의미하는 말로서 저울에 달아서 똑같이 나누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을 계기로 얼마나 민족적인 결속이 강화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한 민족 한 형제 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니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산다니 이게 될 말이냐?' 하면서 모두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 버린 것입니다. 5. 18 광주의거 때도 미약하지만 그런 비슷한 현상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 촌촌 고을 고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이 현상이 저 파사의 첩첩산중 고을에까지 일어났다면 그 민족적인 결속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에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변합니다.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이 공동체 영성까지 나아갈 때 전도의 문은 열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 부림절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다" 는 22절의 말씀처럼 성령의 충만하심이란 그냥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애써 부르짖는 해산의 수고가 따라야 하는데 성도들이 순종하지 않으니까 온갖 시련 속에서 이와 같은 축복의 동산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속거나 감추지 말고 그러므로 믿음의 훈련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1:6-9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습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유다 민족에게 최고의 기쁜 날 부림절처럼 우리에게도 진정한 부림절이 오게 하십시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는 놀라운 성령 충만의 날이 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원수 죄악의 지배에서 벗어나 은혜와 축복과 자유와 형통과 평안함을 누리는 변화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TS TV QT에서 옮겨왔습니다>
1.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본문해석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1절).
<아달월 십삼일>이란 원래 하만이 내린 조서에 의해 유다인들을 대량학살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럴뿐 아니라 후에 모르드개가 내린 조서에 따라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해치려는 세력들에 대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결정한 날이기도했습니다(8:11-12).
따라서 그날은 유다인들과 그들을 해치려는 대적들간의 충돌이 불가피한 날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반포된 하만의 조서가 당시 바사 왕국의 관례상 취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유다인들의 자위권을 보장하는 모르드개의 조서가 내려졌으므로 유다인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세력들이 하만의 조서에 근거하여 유다인들을 치려할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달랐습니다.
<유다인들이 …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 그들을 두려워하여 막을 자가 없고 …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2-4절).
사람들은 도리어 유다인들을 두려워했고, 관리들은 대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잽싸게 유다인들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졸지에 절대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된 모르드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모두가 유다인들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 섰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명성이 점점 더 창대하여 각 지방에 퍼졌다>는 말씀은 반전된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의 운명과 위상이 이제는 누구도 더 이상 대적하거나 해칠 수 없을 만큼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죽음의 날이었던 <그날>이 도리어 그들의 존귀와 명성을 널리 떨치는 날이 된 것입니다.
집단 학살이 예고됐던 날이 은혜와 감사가 샘 솟는 삶의 새로운 시작의 날로 변화된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하만이 유다인들을 멸절하려 한 날이 언제였습니까?
-모르드개의 조서가 유다인들의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날은 언제였습니까?(8:11-12)
-지방관과 대신들이 유다인들을 도운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하만이 유다인들을 집단 학살하기로 한 날 도리어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해치려는 자들을 응징했기에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며 관리들은 유다인들을 도왔다고 했습니다.
하만이 그토록 죽이기를 원했던 모르드개는 그 명성이 각 지방에 퍼졌고 지방관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했다고도 했습니다.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었다>고 했는데 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기에 감히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완벽한 하나님의 연출이었기에 그토록 놀라운 반전이 가능했음을 믿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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