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陶庵) 이재(李縡)가 지은 ‘심곡서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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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 이재는 왜 ‘심곡서원학규’를 지었나!
심곡서원은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단행했을 때도 존치됐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따라서 용인지역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서 전통을 지속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서원은 향사(享祀)와 강학(講學)을 아우른 교육기관이다. 매월 삭망(朔望)과 춘추 중정일(中丁日)에는 향사를 봉행했다. 한편으로는 정기적인 날짜를 정해 강학했다.
조선시대 서원의 강학이 제도화된 것은 17세기 초이다. 정구에 의해 강회에 관한 별도의 규정인 강규(講規)와 강의(講儀)가 제정, 시행되면서 서원의 강학제도가 정비된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러 강회가 서원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확대됐다. 서원의 학규 중 강회 관련 내용이 증가하고, 강규 또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강회 관련 학규가 도암 이재가 지은 <심곡서원학규(深谷書院學規)>와〈용인향숙절목(龍仁鄕塾節目)>이다.
<심곡서원 학규>는 기호학파의 맹주라 칭송되는 이재가 지은 심곡서원의 강회 규정이다. 현재 심곡서원 강당에 현액되어 있다. 도암 이재는 서문에서 <심곡서원학규>를 지은 취지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배움이라 함은 사람됨을 배우는 것을 말함이다. 사람다워지는 방도는 모두 《소학》한 책에 있다. 주자께서 말씀하기를 “그것이 사람의 모양을 만든다.” 하였는데 무릇 선비가 배움에 뜻을 가졌다면 이 책을 제하고는 어디서 찾겠는가? 우리 문정공 선생은 실로 동방 도학의 종주이시며, 그의 배움은 곧 《소학》을 위주로 하여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에 이른 것이다. 대개 듣는 바로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자처하였다.
선생은 젊었을 때 한훤당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기 때문에 이 책을 독실하게 믿는 것이니, 연원이 저절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 향리는 다행히 여러 번 선생이 머물렀던 곳으로 묘소가 있으며, 향사를 모시고 있으니, 우리 봉액지사(縫掖之士)가 어찌 흥기하여 돈독하게 하지 않으리오. 이제부터 선생의 서원에서 배우려는 자는 마땅히 선생이 읽으셨던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선생께서 읽으시려고 했던 글을 읽으려면, 또한 마땅히《소학》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찌 서로 면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심곡서원은 정암 선생의 학통을 계승하는 만큼, 선생이 강조했던《소학》을 유학의 기본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한 글이다.
<심곡서원학규은 서원교육의 표본>
<심곡서원학규>는 서문과 총 18개 절목으로 구성돼 있다. 내용을 보면 독서의 차례, 장의와 직월의 임무, 서원 내에서의 행실, 강설 불참자에 대한 체벌과 상벌에 관한 사항, 원장이 해야 할 일, 서원 운용과 재정에 관한 사항, 서원 내 장서의 반출과 수납 관리에 관한 사항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또한 춘추 향사에 관해 선비들이 습득하고 행해야 할 의식과 유생 상호간에 지켜야 할 예의, 서원의 전곡 수납에 관한 사항, 강학할 서책의 복습과 예습에 관한 사항, 강회 참여 유생의 출석과 근태 등을 세세히 열거했다. 구체적인 18개 조목을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一. 독서하는 차례는 먼저《소학》을 읽고, 다음은 《대학겸혹문(大學兼或問)》《논어》《맹자》《중용》《시경》《서경》《역경》을 읽는다. 그리고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 등 여러 책은 혹은 먼저 읽기도 하고 혹은 뒤에 읽기도 하여 순환해 읽어간다.
一. 장의(掌議)는 별도로 문학과 덕행이 있는 선비로서, 선비들에게 신망받는 자를 뽑는다. 직월(直月) 역시 덕행이 있는 사람을 뽑아 강회 일을 맡게 하며, 연고가 있지 않으면 절대로 교체를 허락하지 않아서 오랫동안 맡아서 성공을 책임지우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한다.
一. 서원의 일은 국학이나 주학(州學)과 다르므로 비록 벼슬에 두루 통한 사람이라도 재임은 마땅히 임명해 채우고 굳이 전례의 유무에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一. 강생(講生)은 종전 강회에 참여했던 인원으로 하며 강안(講案)을 초성(抄成)한다. 강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기거하며 공부하기를 원하면 허락한다.
一. 서원은 본래 선비들이 함께 거쳐하며 학문을 연마하게 하기 위해 설치했는데, 근래에 서원을 출입하는 자들은 다만 봄·가을로 제향에 참석하는 것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서원이 다만 선현을 향사하는 곳이 되었으니, 서원이라는 명칭만 있고 학문을 강론하는 실제가 없다. 때때로 혹은 거처하며 공부하는 자들이 있으나 과문(科文)을 익히고 잡서(雜書)를 보는데 불과해 강습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루 다 탄식할 수 있겠는가! 이후에 거처하며 공부하는 자들은 성인의 글이 아니면 읽지 말 것이며, 또한 재중(齋中)에서는 과업문자(科業文字)를 짓지 말고 다만 오로지 의리의 설에만 뜻을 두어 아침저녁으로 익혀야 한다.
一. 백록동(白鹿洞)은 서원의 효시이며 주자의 학규는 말은 간략하면서도 뜻은 다했다. 모든 학생들이 스스로 닦는 방법은 율곡 선생의 <학교모범(學校模範)>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은병정사(隱屛精舍)의 학규와 약속도 함께 써서 벽 위에 붙여놓고 기거하거나 출입하는 자는 한결같이 이것으로 법을 삼아 혹시라도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一. 기거하는 유생은 매일 새벽에 상복으로 사당에 나가 참배하되 중문은 열지 말고 다만 두 번 절만 하고 동서로 나누어 서서 마주 향해 읍례를 행한다.
一. 매달 초하루에 분향한 뒤에 장의와 직월은 기거하는 유생과 함께 강회를 연다. 강안에 등록된 사람은 비록 항상 기거하지 않는 자라도 또한 시간에 맞춰 강회에 참석해야 한다. 강회할 때에는 먼저 벽에 걸려있는 여러 글을 읽는다. 한 사람이 큰소리로 소리 내어 읽고 모든 유생들은 조용히 듣는다.
一. 매월 강회 때는 강독할 편목을 사람들에게 추생(抽栍)하게 해 이어서 강독하는데 한 장(章)으로 기준을 삼는다. 강독할 사람은 많고 장이 적으면 한 편을 다한 뒤에 또 다시 추생해 강독하지 못한 사람은 다시 제1장으로부터 순환해 강송(講誦)해서 강독을 마치고 그친다. 강독할 사람은 적고 장이 많으면 강독을 마친 뒤에 또 다시 추생해 이미 강독한 사람이 계속 그 아래를 강하여 한 편을 다 마친 뒤에 그친다.
一. 매 강회 때마다 한 달 안에 읽어야 할 장수를 아무 장에서 시작해 아무 장에서 그칠 것을 정해, 다음 번 강회 때는 그 가운데에서 한 장을 뽑아 강송한다. 40세 이하는 배송(背誦)하며, 장의와 직월은 함께 출생(出生)하여 고하를 정한다. 40세 이상은 임강(臨講)을 허락하고 또한 출생한다. 장의·직월은 출생하는 자이므로 강독에서 제외하도록 하며, 유사는 나이가 많으면 강독하지 않도록 한다. 색장(色章)은 여러 유생과 같이 강독한다.
一. 삭일(朔日)에 만일 연고가 있어서 강회를 미루게 되면 유사가 기한보다 앞서서 글을 발송해 강회에 응하는 모든 유생에게 기별해 알려준다.
一. 강할 때는 재임과 모든 유생은 서로 읍한 뒤에 앉으며, 강을 마치고 나서 다시 읍하고 일어난다.
一. 매번 강회 때마다 강안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차례대로 적고 이름 아래에 시작한데부터 그친데까지와 통(通)·약(略)·조(粗)·불(不)의 따위를 기록해 하나는 서원에 비치해두고, 하나는 원장에게 올려 각각 그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살필 수 있도록 한다.
一. 한 달 안에 학습하기로 한 장수는 모름지기 많아서도 안 되고 적어서도 안 되며, 요컨대 익숙히 읽고 정밀히 연구하는 것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강회 때 다만 한번 읽고 지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여 문의(文義) 상에 나가 반복해 토론하고, 직월은 그 의리의 큰 것을 기록해 원장에 올려서 옳고 그른 것을 질정해 뒤에 강회에 참석하는 자들로 하여금 참고할 수 있게 한다.
一. 매년 12월 강회 때는 다음해 매달 초하루마다 강할 글을 분배한다. 예를 들면 정월에는 입교(立敎), 2월에는 명륜(明倫)과 같은 따위이다.
一. 강안에 등록된 사람은 대단한 사고이거나,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일 외에는 감히 공연히 불참해서는 안 된다. 불참한자는 장의가 연고가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 이유 없이 불참했으면 문책해 벌을 준다.
一. 강학 외에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장의는 곧바로 중벌을 내린다.
一. 매번 여름과 겨울의 마지막에 강생(講生)의 획수를 통계해 혹은 상을 주고 혹은 벌을 준다. 40세 이하만 시행한다. 관자(冠者)로서 획장(劃壯)이 한사람, 획말(劃末)이 한사람 나왔으면, 획장은 장지(壯紙)한 묶음, 백지 두 묶음과 필묵을 각각 2개씩 상을 주고, 획말은 만좌한 자리에서 대면해 책망한다. 동몽(童蒙) 중에 획장 이하가 세 사람, 획말 이상이 세 사람 나왔으면, 획장은 관자와 똑같이 상을 주고, 그 다음은 백지 두 묶음과 필묵을 각각 하나씩 주고, 그 다음은 백지 한 묶음과 필묵을 각각 하나씩 준다. 획말은 회초리로 일곱 대를 때리고, 그 다음은 다섯 대, 그 다음은 세 대를 때린다. 순통(純通)이 둘인데 획통(劃通)이 같으며 만약 획의 숫자까지 같으면 순통인 자가 마땅히 으뜸이 되고 순약(純略)은 한 획을 순조(純粗)는 반획을 준다.
一. 원장은 다른 연고가 없으면 때때로 서원에 가서 모든 학생들을 모아놓고 시강해 부지런하고 게으름을 살핀다.
一. 강학할 때는 반드시 모름지기 예산을 넉넉하게 해 뒤에 선비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유사가 이일을 전담하며 반드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직책을 잘 수행하는 자를 지극히 정밀하게 선택해 오랫동안 맡게 한다. 서원의 전곡(錢穀)은 비록 유사도 사사로이 칭대(稱貸)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이것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극벌(極罰)을 준다.
一. 서원의 재력이 줄어들어 기거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진질로 음식을 제공하기에도 어렵게 되면 강회 때 굶주림을 방비할 만한 재정을 힘에 따라 마련한다.
一. 서원 안에 있는 서책은 일일이 기록해 한 책으로 만들어 둔다. 재임이 서원에 올 때에 때때로 햇볕에 쬐이고 검사한다. 비록 재임이라도 마음대로 한권의 책이라도 서원문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범하는 자는 문책해 벌을 준다.
一. 연말에 1년 동안 쓴 돈이나 물품 및 그때까지 남아있는 수량을 유사가 기록해 성명을 기입해 원장에게 보고한다.
一. 봄·가을 향사 때 입재(入齋)한 모든 유생들은 먼저 제의(祭儀)를 익히고, 다음은 퇴계 선생이 지은 행장(行狀), 혹은 율곡 선생이 지은 지문(誌文)을 읽는다.
충렬서원도 <심곡서원학규>를 준용하다.
포은 정몽주를 배향하고 있는 충렬서원의 학규도 <심곡서원학규>를 그대로 준용했다. 다음 글에서 보면, 충렬서원의 강회 규정에 대해 서문만 기록하고, 구체적인 절목은 “심곡서원의 강규에 상세하다.”고 해 생략했다.
「지금 선생의 학문에 뜻을 두고 선생의 글을 읽고자 하면 마땅히 주자의 독서에 따라 차례를 매겨야 하니, 《소학》을 먼저 하고 사서를 그 다음에 하여 입도(入道)하는 문로로 삼는다. 만일 이것으로 인해 학문을 일으키고 풍속을 착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면 이 또한 선생이 내려주신 것이리라. 그러니 어찌 서로 더불어 그것에 힘써서 서원의 강규를 절목마다 상세하고 깊이 있게 하지 않으리오. 절목은 심곡서원의 강규에 상세하다」
충렬서원이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훼철됐고, 이후 사당만 복원해 향사만 이어왔음을 전제하면, 용인지역의 전통교육은 심곡서원에서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심곡서원의 배향인물인 정암 조광조 선생이 우리나라 도학의 정통을 이었으며, 근대시기에도 정암의 학맥이 계승됐음은 매우 의미가 깊다.
특히 우리나라 서원 교육의 구체적인 면모를 가늠할 수 있는 <심곡서원학규>의 현판과 기록이 전하고 있음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심곡서원학규>가 매우 소중한 유교 자산이면서도 이제까지 소홀히 했음에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심곡서원학규> 18개 절목을 번역해 소개한 것은 이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인 분석과 실천적 계승 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홍순석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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