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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된 가정 (시 133:1-3) ♥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이 시간에 “화목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화목하며 사는 길이 쉬운 일일까요? 쉽지 않는 일일까요? 옛날 장공예라는 사람의 집안은 9대가 함께 살아 식구가 천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화목하기로 소문이 나서 임금이 친히 그 집에 가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임금에게 수십 개의 큰 항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독에는 참을 '인'자를 쓴 종이들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식구들이 분이 나서 참지 못하거나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있을 때마다 참을 ‘인’자를 써서 광의 독 속에 넣고 참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화목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교훈입니다.
화목이 쉽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요일2:2). 하나님을 모시며 살려면 첫째는 믿음이고 다음은 거룩과 화목입니다. 히12:14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는데, 어떻게 화목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을 오늘 본문이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 시편 133편은 다윗의 시로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데, 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랬습니다. 몇 사람이 함께 동거하기도 쉽지 않은데 절기를 맞이하여 전 국민이 함께 모여 온전히 하나 되어 기쁨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며 동거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화목의 비밀이 나타납니다.
1. 화목의 비밀은 사랑입니다.
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여기 형제라는 말씀 속에는 사랑이 깊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잠17:17에 “형제는 위급 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한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랑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아가페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또 사랑은 용납입니다. 용납이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지만 받아주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욕심도 사상도 그 무엇도 없기에 하나 될 수 있었지만 성장함에 따라 여러 면에서 자기의 주관이 뚜렷해질 때 나와 다른 상대방을 수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행동방식이나 사고의 체계 특히 사상은 부모형제 간에도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이 가족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남이라면 어떻게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롬15:7에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한 말씀처럼,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가능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했습니다.
2. 화목의 비밀은 성령입니다.
2절에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여기 기름은 성령의 기름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는데 그 기름은 바로 성령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기름이 아래 옷깃까지 흘러내린다는 것은 충만함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화목하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4:3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했고, 고전12:13에도 “우리가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 했습니다.
성령 받으면 하나가 됩니다. 교회구성원은 다르지만 성령 받으면 하나가 됩니다. 가장 함께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여행입니다. 먹는 것, 말하는 것, 원하는 것, 감정, 속도, 행동 하나까지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여행하다가 기도가 부실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부실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아무리 성격이 독특한 남자와 또 독특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며 산다 해도 기도할 수 있다면 그 가정은 성공적으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서로 기도해 줘야 합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서로를 위한 기도는 얼마나 하십니까?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부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그리고 당회,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라는 틀 속에서 신앙생활한다는 것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원하든 원치 않던 때가 되면 예배하고 때가 되면 기도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부르짖고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것만큼 안전하고 복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비밀입니다.
3. 화목의 비밀은 성경입니다.
3절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 레바논 산맥에 있는 해발 2,700m의 높은 산입니다. 현재의 이름은 “제벨 엣쉬” ‘백발의 산’이란 뜻인데 연중 흰 눈에 덮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때가 되면 이 눈이 녹아 흘러내려서 이스라엘 평원을 적십니다. 헐몬의 이슬이라 했는데, 우리는 여기서 이슬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침마다 이슬과 같이 내렸던 광야의 만나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도 하나, 성경도 하나, 그러므로 진리도 같아야 합니다. 믿는 내용이 다르면 하나될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예수만이 우리의 구주라는 구원론만큼은 같아야 합니다.
요일4:15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했는데 이 기본진리가 다른데 어떻게 하나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기본 진리 다 내려놓고 연합하자"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한 마디로 성경을 읽지 않은 결과입니다. 성경을 읽는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목의 말씀도 묵상해야 합니다. 잠15:17에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고, 잠17:1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욥22:21에는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히12:14에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지켜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잡히시던 날 밤 그 절박한 순간에도 아버지 앞에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기도하셨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데 얼마나 화평하십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사랑의 은사와 성령의 충만을 구하고, 늘 성경을 읽어 한 분 예수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된 믿음의 가정 잠3:1-10, 골3:18-21♥
중앙일보 강남통신 팀은 ‘최고의 유산’이라는 책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명사 25인을 선정하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최고의 유산에 관하여 물었습니다. 저마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으나 공통점은 믿음, 사랑, 나눔,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명사 가운데 포항 구룡포에 사는 황보 태조라는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5남매를 둔 그는 시골에서 천여 평의 농사를 지었습니다. 1남 4녀를 서울대 의대 최우수졸업생, 경북대 의대 장학생, 포항공대 화학과 수석 입학생, 대구가톨릭대 약대생, 서울대 의대 특차 합격생으로 키워냈습니다.
그의 모델은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성경이며, 가정의 좌우명은 성실이라고 말합니다. 자녀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으며 기뻐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은 많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복된 믿음의 가정”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복된 믿음의 가정은,
1.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시34:9에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했고, 시103:17-18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주님 사랑이 후손 대대로 이어지는 복을 받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본문에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법에 잘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잠3:1-2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님의 자녀들은 말씀에 잘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는 말씀을 무시 하거나, 무관심하지 말고 귀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말씀 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고, 하나님 보다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면 말씀을 무시 하거나 무관심하게 되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고 마음에 명심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런 자들에게 장수와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했습니다.(시119:165). 그 장수와 평화는 이 세상의 삶을 넘어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인자와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3-4절에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했는데, 여기 ‘인자와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께로 난자는 자식이 부모의 성품을 닮는 것처럼 그 성품을 지니고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께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로 사람들을 대할 때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고 용서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권면하기를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은 철저히 주님을 닮아 가는 삶입니다. 성도가 주님의 성품을 덧입고 주님을 닮아간다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의뢰하고, 인정하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본문 5-6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했는데, 여기 ‘지도한다.’는 말의 원문의 뜻은 ‘길을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을 의뢰하고 인정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도 길을 내시고, 바다에도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둡고 사방이 막힌 것 같아도 우리 하나님은 길을 내시는 분임을 믿는 자는 요셉처럼 무슨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고, 엘리사처럼 적군으로 둘러 싸여도 두려워하지 않고, 바울처럼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사업이 잘되지 않아서, 문제가 많아서,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위탁받은 모든 것을 맡아서 처리하십니다. 시37:5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했고, 시55:22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려라’했으며, 잠16:3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했습니다. ‘맡기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며,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맡긴다는 것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맡기면 책임이 하나님께 있지만, 내 마음대로 했을 때는 내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러므로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고민이 많은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식이 없어 수색이 가득했던 한나가 엘리 제사장의 축복하는 말을 듣고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으니라.’한 것처럼 평안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존귀하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며 행하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복되고 아름다운 터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정은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가족의 일원으로 본분을 지키며 행할 때 가능합니다. 사단은 원래부터 사단으로 피조된 것이 아니라, 원래는 하나님과 주의 백성들을 섬기도록 지음을 받은 천사였지만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쫓겨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훼방 하는 무리가 된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계속해서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가정을 파괴시키는 일입니다. 문화라는 미명으로, 인권이란 미명으로 교묘히 성적 타락을 조장하는 일로, 동성애나 성 전환 등 자유분방한 것들을 통해 가정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천안에서 초등학생이 동성애로 인해 에이즈에 걸리고, 야권에서 군대에서 동성애 문제에 대해 채벌 대상이 되지 않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움직임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풍토는 결국 가정과 국가를 파괴로 몰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게 되어 어지럽고 힘든 혼돈의 세계를 맞게 되어 모두 힘들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애창곡 중에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노래가 생긴 배경을 보면 이 노래를 작곡한 하워드 팬은 ‘가정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가정을 떠나 방랑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나이 들고 병들어 방황하다가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숨을 거두면서 "내가 돌아갈 가정은 없지만 고향에 있는 공동묘지에라도 묻히게 해달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가정 무용론을 주장하던 팬이 오늘날 세계인이 애창하는 가정을 그리워하는 곡을 작곡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우리 인간이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역시 가정이고 가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잘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내용에서 가족 각자의 본분에 대해,
*남편과 아내의 본분이 있습니다. 본문 18-19절에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가장이라는 책임과 권위를 주시어 가정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남편을 가정의 대표로 세우시고, 예수께서 신부 된 우리 위해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사랑은 책임을 동반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열등해서가 아니라 본질은 같지만 가정을 책임지는 남편의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아내가 더 많이 배우고, 더 지혜롭고,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더 유명 인사가 되었다고 남편을 무시한다면 그 때부터 그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현숙한 여자라면 그럴수록 남편을 존중히 여겨 복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본분이 있습니다. 본문 20-21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기본적인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 사람을 위한 첫 번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할 때 복을 받는 것처럼, 자녀가 부모를 공경할 때 복을 받습니다.
부모에게도 자녀에 대한 본분이 있습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녀는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욕심대로, 마음대로, 감정대로 키워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의 말씀과 교양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인은 기본적으로 가족 모두는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의 본분을 말할 때에도 ‘주 안에서’라 했습니다. 우리 모두 주 안에서 자신의 본분을 잘 지켜 복된 가정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 앞에서 각자 바른 청지기로 사는 가정입니다.
신앙인은 주님이 말씀 하신 대로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결산할 때가 있음을 말씀을 통해 아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와 재능과 물질 등 모든 것을 주님의 뜻을 따라 바로 관리해야 하는데, 특히 재물 관리가 쉽지 않습니다. 구약 본문 9-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주가 넘치리라" 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넘치게 채워 주십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영혼이 잘되는 것이 가장 좋은 복이지만 물질의 복도 받으면 더욱 좋습니다. 물질로 인해 교만하게 되거나, 방탕하게 되거나,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것은 문제지만 그렇다고 가난하게 사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하늘에 보화를 쌓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훨씬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재물을 얻었고 그 중 많은 부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사용했습니다.
신앙에도 원리가 있는데, 구원은 믿음으로 얻지만 이 땅 위의 물질의 축복은 심는 자가 얻습니다. 그래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습니다.(고후 9:6) 성경에 재물을 하나님과 견줄만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돈을 하나님과 견줄 만큼 그렇게 많이 좋아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하기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돈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먼저 희생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말 3:10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했습니다. 이 첫 부분을 행하지 않고 뒷부분을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계산이 빠른 세상 사람들의 방법은 돈을 붙들고 있어야 재물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법칙은 여호와를 공경하는데 사용하면 언제든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고 풍성하게 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고 거둠의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믿음으로 행하면 재물의 복을 받습니다. 하이디라고 하는 사람은 백만장자인데 이 사람이 언제부터 십일조를 바치기로 작정했는가 하면 사업에 실패해서 십만 달러의 부채를 졌을 때였습니다. 당시 경영의 원칙은 우선 부채를 갚고 나서 십일조를 하는 것이 순서인데 부채가 있는 와중에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러자 직원들이 "이것은 윤리적인 원리에도 어긋납니다. 부채 상환을 우선 해야지 십일조를 우선으로 하는 것은 부당하며, 위선입니다."라고 말하며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하이디는 "나는 부채를 상환하는데 도적질한 것부터 상환하겠습니다."라고 응수했습니다. 직원들은 깜짝 놀라며 "아니 어디서 도적질을 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하이디는 말라기서를 펴놓고서 "나는 하나님의 십일조를 훔친 도적놈이므로 부채 상환도 중요하지만 도적질 상환부터 먼저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사업에 크게 성공을 해서 간증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셨는데,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먼저 섬기면 물질의 복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바른 청지기로 살다가 칭찬 듣는 자가 됩시다. 정리^.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복된 믿음의 가정”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복된 믿음의 가정은,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며 행하는 가정입니다.
◑.주님 앞에서 각자 바른 청지기로 사는 가정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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