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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聖經)♡

[참된 복을 받을 자(창 27:27~33)]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5.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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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복을 받을 자(창 27:27~33)]

◆ 서론

세상은 다섯 가지를 가리켜 복이라고 말합니다(오복, 五福). 장수하는 것(수, 壽), 부유한 것(부, 富), 건강한 것(강녕, 康寧), 덕을 쌓는 것(유호덕, 攸好德), 천명을 다 살고 죽는 것(고종명, 考終命)입니다. - 90살다가 가면 호상이라고 한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복을 가진 자가 오복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이 없는 자가 오복이 있는 것이 저주이다. 오히려 이 오복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복을 모른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가진 자가 오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오복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은 오복을 받기 위해서 산다. 이 오복을 가진 자들은 오복으로 살수록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간다. 자식이 있기를 바란다. 부모가 오복이 있기를, 만나는 사람에게도 오복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창 3, 6, 11장을 만든다. 창 3, 6, 11장은 자기만을 위한 오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적인 문제가 지구상에 퍼져나간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알아야 한다. 세가지이다.

마 16:16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그리스도이다. 왜 그리스도인가? 영계, 육신을 움직이는 것이 그리스도이다. 이 그리스도를 주셨다. 왜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고 하는가?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 창조주 하나님이 영계와 자연계를 움직이신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왔다, 가고 말미암다. 우리의 한계로 인해서 모를 뿐이지 그리스도 자체가 복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창 12:1-3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즉, 원죄에서, 운명에서 빠져나오라, 우상에게서 빠져나오라는 것이 복이다. 자신을 위한 오복이 우상이다. 세상은 우상에 잡힌다. 잡히면 근심, 걱정, 염려가 계속된다. 본질을 못 본다. 그리스도로 모든 것이 나오고 돌아간다는 것이 안 믿어지기에 세상의 오복에 잡힌다. 그래서 염려, 근심, 걱정에 잡힌다. 어디로부터 오는지 모르기에 오복이 우상이다.

세 번째는 완성되었다는 거이다. 엡 1:3-5이다. 항상 나오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사랑하는 자 안에서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했다. 이것을 놓치고 산다. 그래서 엄청난 복을 못 누리고 오복에 잡혀서 산다. 이것에 잡혀서 산다. 그래서 잘되면 좋아하고 안되면 주눅든다. 하나. 하나님이 주신 진짜 복을 놓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창세 전에 예비하셨습니다(에베소서 1:3~4). - 하나님은 진짜 축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시지 우리를 저주해서 지옥으로 보내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원래 창조하실 때도 축복하셨는데 마귀로 인해서 무너졋다. 창세전에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바꿀수 없다. 그리스도 안의 모든 축복을 못 누리는 것은 사탄에게 속은 만큼 못 누린다. 이것이 빨리 깨달아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은 무엇일까요?

1.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는가?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축복을 받게 됩니다(에베소서 1:13~14). -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안에서만 믿어진다.

어느날 발견된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축복을 받게 된 이유가 첫 번째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사주팔자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바뀌면 사주팔자, 운명에서 벗어납니다. 이 복을 받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영접 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12). - 사람을 만나서 육신적인 것을 말해봐야 소용없다. 세상 말을 해봐야 전도가 안된다. 들었냐가 중요하지 않다. 영혼을 보고 전도를 하면 근본문제 세가지가 보인다. 사람만나자마자, 신자를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사람이 똑바로 살아도 안되는 문제 세가지, 불신자는 사주팔자 빠져나오는 길, 무당에게는 새신을 받으라는 말을 하면 된다. 현장은 용어는 같은데 표현이 다른다. 신자에게는 눈에 안보이는 근본문제 세가지. 그리스도가 선포되려면 창 3장이 나와야 한다. 전도는 하려고 하면 안된다. 하나님을 믿어서 잘되었다는 소용없다. 잘된 것도 없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가 선포되려면 신자에게 세가지문제를 어떻게 말하는가? 창3장을 말하지 않으면 안나온다. 불신자에게는 세가지문제를 사주팔자로 알려주는 것이다. 무당에게는 새신을 받으라고 해야 한다. 처음에 전도를 모르다가 합숙을 갔다와서는 전도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내 수준의 전도는 사람을 만나서 말 잘하는 것이다. 내 기분이 좋아야 말하는 성격이기에 잘 안되었다. 인천에 내려와서 목사님들과 전도를 하면서 무당에게 하는 것이 힘들었다. 전도를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까 중국에 나가 있는 목사가 하는 말이 무당 만나서 다른 말을 하지 말고 새신을 받으라고만 하면 된다고 했다. 새신은 선지자, 제사장, 왕의 신을 받으라고 했다. 그때 내가 속은 것이다. 근본문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던 것으로 보았다. 전도는 근본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이면 그때부터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어서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리스도를 깨달은 것이 행복이다. 죄를 해결,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고린도전서 3:16, 요한복음 14:16~17), - 왜 거하시는가? 왜 예수믿으면 하나님 자녀가 되는가? 말을 풀어보면 전도가 된다. 예수 믿어야 하나님 자녀가 된다고 하면 예사롭게 듣는다. 예수 믿어야 하나님 자녀된다는 것은 예수 믿는다고 예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특징이 예수 믿어야 하나님 자녀가 된다. 예수 이름으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나님이 직접 약속하셨다. 예수 이름으로만 보혜사가 온다는 것이 약속이다. 예수 믿어야 하나님 자녀가 된다. 예수 이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믿어져야 세가지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안 믿어지면 세가지 문제에 빠져든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 보혜사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생각하는 것이 기쁨이 된다. 우리 수준에는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하나님 자녀가 된다. 이 때 세상이 줄수 없는 평안이 임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임합니다(요한복음 14:27). -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예수 이름으로 성령이 오신다는 약속이 좋다. 그러면 천사가 수종든다. 이름에 흑암이 무너진다는 것이 약속으로 좋았다. 두려움이 올 때마다 잡았더니 어느날 안개같이 없어졌다. 성령의 역사가 이렇게 일어난다. 예수 이름이다. 그래야 두 번째 사는 이유가 발견된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이유가 있다. 교회가 있는 이유, 이땅에 있는 이유, 복을 누리게 하시는 이유이다.

구원파는 구원받았기에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고 한다. 이단들은 구원받기 위해서 내 말을 들으라고 한다. 구원받았으면 더 살필요없다. 구원을 받았으면 살 필요없다고 자살로 끌고가는 것이 이단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자와 죽어가는 자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자이고 모든 사람은 죽어가는 자이다. 왜 살아가는가? 하나님의 모든 복을 받았다. 그 복으로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2. 사는 이유(복을 주신 이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살려야 합니다(디모데전서 2:4). - 이것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축복을 받았다. 이 축복을 모르는 만큼 구원받지 못한 자가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돈 없이도 살수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돈없으면 죽는다. 염려, 걱정, 근심에 죽어간다.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죽어간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복을 다 받았다. 우리의 사는 이유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살려내라는 것이다. 딤전 2:9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오직 복음으로만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으로 ‘나’를 살리고, ‘나’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을 살리면 됩니다. 전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에게는 영적 힘과 5력(영력, 지력, 체력, 경제력, 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힘을 마음껏 누리고 사용할 수 있도록 24시, 25시의 비밀을 주셨습니다. 이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

3. 나는 어떤 사람인가? -

전도자가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은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시편 1:2). 전 세계 엘리트들은 명상을 통해 귀신을 접하고 영적 문제에 사로잡혀 있습니다(마태복음 12:44~55). 반면, 하나님 자녀가 말씀을 묵상하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확한 성령 인도입니다. 성경의 Remnant 7명은 말씀 묵상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증인이었습니다. - 하나만 잡으라. 말씀을 잡았다면 성취될 축복, 완성될 축복으로, 앞으로 성취될 말씀으로 잡아야 한다.

문제가 왔다고 하면 어떻게 말씀을 잡아야 하는가? 말씀을 자기 마음에 부닥치는 것으로 잡는데 근본을 알아야 한다. 근본을 바꾸는 말씀으로 잡아야 하고 영적 배경을 누리는 말씀으로 잡아야 한다. 이렇게 잡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말씀을 잡는데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근본이다. 근본을 바꾸고 영적 배경을 누려야 한다.

 

우리 인생의 모든 근본이 바뀌는 귀중한 날이 되도록 그리스도안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시고 에수 이름으로 약속하신 성삼위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고 영적배경을 누리는 날이 되도록 말씀을 붙잡은 날이 되게 하옵소서.

 

 

2017년 11월 24일 참된 복을 받을 자(시편 1:1~6)

 

[오늘 내게 주신 말씀]

매일 누리는 참복(眞福)의 신분과 권세

 

[내게 성취하실 응답]

요행적인 복이 아닌 매일 하나님이 주신 참복을 누리는 신분과 권세를 가질 때 하나님은 참 복의 증인으로 서게 하신다.

 

[기도]

하나님! 요행적 복을 구하는 자가 아닌 매일 참 복인 그리스도로 복의 근원을 누리게 하옵소서.

 

[미션]

요행적인 복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참 복이 되어지는 신분과 권세를 누리자.

청년, 학생들이 요행적인 복을 구하기위해 공부하고 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참복(眞福)을 누리도록 말씀, 포럼, 기도하기

 

 

이스라엘이 광야에 나왔습니다. 애굽의 철병거를 무찌르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제 막바로 가면 가나안까지는 40일 정도면 갈수 있습니다. 얼마 안가서 도착할 정도의 거리가 가나안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참된 복일까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고 쓴물을 단물로 만드시고 광야에 나와있는 오합지졸 이스라엘을 치러 온 아람군대를 해를 멈추면서까지 징벌하는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복일까요?

우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고 내 앞에 있는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아람군대를 멸하시는 것을 참복(眞福)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의 광야에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40일의 거리를 왜 40년동안 유리방황하게 하셨을까요?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따마다, 시마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옛날이 더 좋았다고 푸념하고 원망했습니다.

광야에서 알아야 할 것은 세절기입니다. 아무리 가나안을 들어가도 세절기를 잊으면 소용없습니다.

유월절을 통한 구원사역, 수고와 노력, 공로없이 거둬들인 맥추절, 40년의 세월을 방황하는 듯 하지만 미래가 분명한 수장절. 세절기의 축복.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에 세절기를 누리지 못하면 가나안에서도 애굽에서와 같이 요행적인 방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의 복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세절기의 축복을 매일 누리는 참복(眞福)입니다. 이 신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리고 누릴 권세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 광야입니다.

우리가 사는 광야교회, 광야학교, 광야훈련소에서 이 신분과 권세를 아는 자로 참복(眞福)을 깨닫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요 3장에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거듭나는 것을 율법을 잘 수행하고 사는 것이 거듭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 10장의 부자청년은 영생을 위해서 구제의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행했습니다.

마 4장에 많은 사람들은 요행적인 방법으로 취하는 복을 복으로 알았습니다.

니고데모에게도, 부자청년에게도, 마 4장 산상에서도 전혀 다른 결론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장 풀기 힘든 문제가 영혼, 내세의 문제입니다.

부자청년에게는 재물을 다 버리고 나를 쫓으라 하셨습니다. 청년에게 재물은 해결되지 못할 문제입니다.

창 4장의 사람들에게 부귀영화가 복인데 그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 성경 : 창세기 27장 41절-46절

설교 : 깨어진 것을 사용하시다

찬송 : 새찬송가338장, 내 주를 가까이

형제의 다툼

최근에 안타까운 소식을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개그맨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껏 모든 수입을 관리해 주던 형이 동생의 수입을 따로 챙겨서 외국으로 달아났다는 내용입니다. 선한 인생에 미담도 많았던 개그맨이었는데, 지금은 형제간의 다툼과 법적인 고소의 상황까지 간 상태로 들었습니다. 최근의 홈쇼핑 광고에는 살이 너무나도 빠져 수척한 모습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조선이 세워진 초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의 첫번째 왕인 태조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조가 막내 아들인 방석를 세자로 책봉하여 왕위로 물려주려고 하자, 방원이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형제들을 살해하였습니다. 또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한 후 방원이 직접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방원이 바로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입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될 수 있는 형제가 마음이 틀어지게 되면 원수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이삭의 가정이 깨어지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은 매우 인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자신의 우물을 빼앗으려 하여도 다투지 않고 내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르호봇이라는 큰 우물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십니다. 이삭의 아내였던 리브가는 대단한 여인이었습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말을 듣고 가나안 땅에 있는 아브라함의 집으로 시집을 온 사람입니다. 어차피 갈 거라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믿음과 결단의 여인이었습니다.

인자하고 용기와 결단력을 갖춘 부모님 아래에서 에서와 야곱은 각자 자신의 성품과 재능을 따라 성장합니다. 형 에서는 사냥꾼으로, 동생 야곱은 집안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활달한 에서를 좋아하였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잘하는 야곱을 좋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평화로워 보였던 집안이, 아버지 어머니가 쌍둥이 아들들을 편애함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는 집안이었지만, 이 가족들 사이에도 불화가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처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려 하였던 야곱은, 형 에서와의 틀어진 관계로 인하여 홀로 도망가게 됩니다. 에서는 에서대로 얼마나 동생을 미워하였으며 특히 어머니 리브가를 원망하였겠습니까? 동생 편을 들어 자신이 받아야 하는 장자의 축복을 동생이 가로채도록 뒤에서 사주한 분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아마도 에서는 평생동안 어머니 리브가를 원망하였을 것입니다.

창세기 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던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기만 하면 피바람을 일으킬 기세입니다.

아버지만 돌아가시면, 야곱, 너 두고 보자.

에서의 심정이었습니다.

깨어진 상태에서 만나 주시는 하나님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이 결국 깨어지게 됩니다. 큰아들은 부모를 원망하고, 둘째 아들은 형을 피해 먼 곳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먼 길을 잘 피해 갔는지도 모르고 생사도 확인이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부모와 큰아들과의 관계로 불편하고 어머니와 큰아들의 사이도 서먹합니다. 게다가 이 일로 인하여 남편 이삭과 아내 리브가의 관계도 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창세기에서는,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아내를 애도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애도하고 막벨라 굴을 사서 장사 지냈습니다. 야곱 역시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출산 중에 죽자, 애도하며 장사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는 이삭은 아내 리브가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는 리브가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곧 이삭이 아내 리브가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삭의 가정이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서, 모두가 따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상당수의 가정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대화하지 않고 부모에 대한 존경도 자녀에 대한 무한한 사랑도 없이, 각자도생, 즉 각자 알아서 생존하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생활하다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가정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의외로 깨어지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정이 많습니다. 마치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깨어진 가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비록 야곱의 얕은 꾀와 욕심으로 인하여 가정이 깨어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어디에서 만나셨습니까? 벧엘의 들판에서 홀로 두려움과 막막함에 떨며 잠든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창세기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던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비록 들판에 혼자 누워 있지만, 야곱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심을 알게 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깨어짐을 치유하실 수 있다

창세기 말씀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여전히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과정 속에서 고생을 하는 내용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야곱은 거부가 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얍복강 근처에서 형 에서와도 화해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창세기 28장15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과 같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든, 길을 가는 중에 있든, 자신을 원수같이 여기던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이든,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 야곱과 함께 하셨고 그를 지키고 돌보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야곱이 깨어진 상태, 가슴 한 가득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며,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상태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야곱의 연약함과 깨어짐, 상처들을 치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심리 상담가들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친구나 가족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힌 치유와 회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편들에서, 하나님께 회복시켜 주시길 기도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80: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혹시라도 주위의 사람들이 나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깨어짐과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아픔을 통하여 우리를 성장 시켜 주시기까지 하십니다.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시고 그 아픔을 넘어서서 우리를 온전하고 부족함 없게 성장시키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맡깁시다

어린이들이 자라다 보면 이유 없이 팔다리가 아프다고 하거나, 크게 앓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시고"성장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라기 위해 아픈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처이든, 혹은 다른 이들로 인한 상처이든, 그 상처를 하나님께로 가져가면, 완전한 의사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통하여 더 온전하게 성장시켜 주십니다. 상처를 딛고 일어난 우리를 사용하셔서, 또다른 아픔을 가진 이들을 치유하시는 도구가 되게 하십니다. 위로와 용기를 주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 주십니다.

내 삶에 깨어진 부분이 있습니까? 깊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교회로 부터 받은 상처, 가족들로 인한 상처, 직장 속에서 받은 아픔, 나 자신에 대한 연약한 모습으로 가지게 되는 상처, 그 어떤 상처라도 상관 없습니다. 모든 상처를 다 치유하실 수 있는 우리 하나님께 가지고 나옵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고 성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파송: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파송합니다. 성령과 함께 선교와 봉사를 위해서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회중: 아멘, 주 예수님! 우리와 동행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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