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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전라도정자詩로 만난 인물- 장유(張維)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4. 19.

전라도정자詩로 만난 인물- 장유(張維) 전라도 정자시로 만난 인물 / 전라.제주정자기행

2020. 4. 28. 11:47

https://blog.naver.com/nox9109/221933683314

문화.오인교/ nox9109@naver.com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 계곡(谿谷)·묵소(默所) 장유(張維 1587 선조 20~ 1638 인조 16)는 천문·지리·의술·병서 등에 능통했고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조선문학의 4대가로 불렸다. 효종의 장인이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술을 못 마셨다는 선비의 글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고주망태(大醉)가 된 장유는 산도깨비도 무섭지 않았다.

 

이슥한 밤 풀길을 걸어서 가노라니

하늘엔 찬란한 북두성 별빛

산도깨비 어찌 감히 범접을 하랴

고주망태 시 읊으며 가는 사람을

夜深行草逕

星斗光離離

山鬼不敢近

大醉吟新詩

 

그러나 그에게는 술을 마셨을 이유가 있었다. 딸이 죽은 지 일 년이 되는 날에 애비가 지은 시 두 수(亡女初朞日 二首)는 결국 그도 한 인간이기에 느껴야하는 고뇌가 처절하게 다가 온다.

 

잔설 희끗희끗 얼어붙은 얕은 땅속

누워 있는 너의 몸 그대로 잘 있느냐

지난해 이날 쏟았던 눈물

눈물도 말라붙어 다시 흐르지 않는구나

殘雪淺土凍

汝骸猶在不

前年此日淚

落盡更難流

 

눈처럼 온통 하얗게 변한 머리

마음도 재마냥 차갑게 식어갈 뿐

이토록 쇠하지는 않았으련만

슬픔에 젖다 보니 이 모양이 됐나 보다

鬢髮渾成雪

心情冷若灰

不應衰至此

多是爲悲哀

 

눈물도 말라붙어 다시 흐르지 않고 마음도 재마냥 차갑게 식어간다는 애비이기 이전에 한 인간 한계성을 드러내는 처참한 심정에서 토해내는 해후의 싯글이 너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가 전라도에서 나주목사.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그기 남긴 시를 모아본다.

어느날 전북 순창에 있는 귀래정에 제하여 부친 시(次韻寄題歸來亭)가 전한다.

 

초암(草庵) 사방으로 얼굴 디민 산봉우리

아침 저녁 빈 창으로 푸른 빛 쏟아져 들어오네

늙어 가며 뜻대로 된 그윽한 거처

객이 와서 속세의 일 말하지 말게 하오

靑山面面遶茅庵

朝暮虛窓挹翠嵐

老去幽栖眞得計

客來塵事莫敎談

 

어떤 이가 장륙귀(藏六龜)를 배우려 할까

온 세상 교토(狡兎)의 삼굴(三窟) 파려고 덤비는 걸

만용 보기 부끄럽소 내 벼슬 이미 꽉 찼는데

병든 몸 끌고 억지로 조회 참석하다니

何人肯學龜藏六

擧世爭營兎窟三

慙愧曼容官已滿

强扶衰病趁朝參

 

왜 이곳에 들렸을까? 한 때 나주목사로 좌천되면서 재임중에 전남지방에 인연이 깊었고 전라도관찰사로 때 순치차 전라도를 두루 들리면서 많은 시문을 남겼다.

 

형 신숙주는 세조를 도와 단종을 제거하고, 집권세력이 된 반면 정자주인은 동생 신말주는 불사이군 충절을 택한 형제간의 다른 정치적 선택으로 장유와 동병상린(同病相隣)의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발길은 동향으로 남원으로 향한다. 요천이 바라보이는 비안정(飛雁亭), 기러기가 날으는 형국의 산에서 장유의 시상이 내려 앉았다.

 

요천 남쪽을 가른 벼랑 동쪽은

높은 곳이라 사방에서 바람이 분다.

맑은 은포나루에 하얀 솜구름 뜨고

바위 곁에 가을 낙엽 섬돌에 붉다.

蓼川南畔斷崖東

高處堪招四面風

銀浦晴雲當襤白

石林霜葉映階紅

 

남원의 젓줄 요천, 남쪽에 금암봉이 있고 이곳 높은 곳에 정자가 우뚝 섰다.

탁 트인 남원 들녘, 시원한 바람 사방에서 불어온다.

맑게 갠 나루터에 높이 뜬 흰 구름이 솜뭉치를 던져 놓은 것 같구나."

라고 표현에서 이곳의 풍광을 함축해 주고 있다.

 

나그네에게는 비는 눈물이다. 그래서 유독 비에 대한 시는 애절하다. 전북 전북 김제시 금구 객관. 여관에서 비가 올 때 지은 시(金溝客館雨中作)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비 내리는 저쪽엔 몇 겹의 청산

뉘 집인지 담머리에 고개 내민 붉은 살구

남에서 왔다 북으로 가는 먼 길 나그네

봄바람에 하늘 끝 애가 다 끊어지네

雨外靑山幾疊

墻頭紅杏誰家

遠客南來北去

春風腸斷天涯

 

그의 일생도 고단한 나날이었다.

나그네의 회포(客懷)에서 그가 처한 신세타령이 슬프다.

 

땅에 가득 떨어진 꽃 반은 진흙 속

밤사이 앞 개울에 풍우 몰아쳤음이라

망향대에 올라 서니 괜히 슬퍼지는 마음

구름과 나무 천 겹 만 겹 꿈속에서도 헤매노라

滿地殘花半作泥

夜來風雨暗前溪

望鄕臺上空惆悵

雲樹千重夢也O

사진=전남 완도군 청해진 누각

송시열(宋時烈)은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의리가 정자(程子)와 주자를 주로 했으므로 그와 더불어 비교할 만한 이가 없다.”라고 칭송했던 장유가 당시에 아주 먼곳인 진도 섬에 바다를 대하며 절경의 자리에 있는 벽파정(碧波亭)에서 만리장성에 날아 온 기러기를 맞는다.

 

바다 햇빛 뉘엿뉘엿 돌아오는 배 그림자

그 정경 애다로워 벽파정을 서성이네

저 멀리 자라 등 삼산의 모습 가물가물

만리장성 바람 소리 기러기 타고 몰려 오네

海日斜明帆影回

碧波亭上爲徘徊

三山雲物鰲邊迥

萬里風聲雁背來

 

하늘가 햇발 가없는 바다 쏘아대고

구름 저 멀리론 점점이 나뉜 푸른 섬들

저녁 나절 급해지는 창합풍 소리

엎치락 뒤치락 바다 물결 벽파정에 부서지네

天邊日脚射滄溟

雲際遙分島嶼靑

閶闔風聲晚來急

浪花翻倒碧波亭

 

뒤죽박죽 엉킨 구름 폭풍에 말려 올라가고

저녁 바다 순식간에 은빛 산맥 일으키네

이 모두가 변덕떠는 비렴의 소치

​양후 혼자 어떻게 교만 부리리

亂雲顚倒卷狂飆

轉眄銀山滾晚潮

儘被飛廉軒輕得

陽侯未可自虛驕

 

그의 시어처럼 교만을 부리지 않고 무리하지 않아 편한함을 갖게한다. 장유는 시에 대해 "시는 천기(天機)이니, 소리를 통해서 울고 색택(色澤)을 통해서 빛나 청탁(淸濁)과 아속(雅俗)이 자연에서 나온다.

 

소리와 색택은 사람이 만들 수 있지만 천기의 오묘함은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다. 따라서 만약 시가 소리와 색택뿐이라면 몽매한 사람도 팽택(彭澤 도잠(陶潛))의 운율을 가장할 수 있을 것이요 악착스러운 필부도 청련(靑蓮 이백(李白)의 구절을 모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본래의 작품에 근사하면 좋은 시가 되고 그저 본뜬 것에 그치면 참람된 짓이 된다. 무슨 까닭인가?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정의한다.

 

극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부음(訃音)으로 18차례나 사직소를 올려 끝내 사퇴하며 정승에 응하지 않았던 한 성질하는 인물이었다.

將赴錦州次白洲韻 行藏兩難得 閉戶客長摩 別後誰相門 天涯應爾思 浮雲無定態 直道幾多岐 歲暮江南路 看梅欲寄詩 행세 하기도 어렵고 숨어살기도 어려운 것 문 닫고 있으니 오래도록 손님이 없네

이별 후에 누가 서로 물을까 하늘 끝에서 응당히 그대를 생각하리

뜬 구름은 정한 모양이 없고 곧은 길에 어찌 사잇길이 많으리오

한 해가 저무는 강남 길에서 매화를 보니 시를 지어 부치고 싶네

조선 선비들이 전라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들렸던 곳, 화순 적벽을 조망하는 협선루(挾仙樓)에 그는 오르고는 창주와 적벽은 아득한 생각을 자아낸다.

 

나그네 발길로 높은 누각에 올라보니

창주와 적벽은 아득한 생각을 자아낸다.

소동파(蘇仙)는 한번 가고 소식조차 없는데

명월청풍만이 만고의 가을을 지키는구나.

客子來登ㅇㅇ樓

滄洲赤壁添愁逈

蘇仙一去無消息

明月淸風萬古秋

 

여기서 소선(蘇仙)은 동파(東坡)소식을 신선에 비유하여 멋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협선루는 동복의 객관 동쪽에 있었던 누대이며 1587년(선조 20) 에 현감 이부윤(金富倫)이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동복면 독상리에 그 유지만 남아 있다 그는 더 남으로 내려가 승주(昇州)에서 다시 시를 만난다.

 

호남 지방 오십 개 고을 가운데

청절한 고장으론 승주(昇州)가 꼽히나니

집집마다 푸른 대숲 둘러서 있고

구비구비 맑은 시내 흘러내리네

湖南五十郡

淸絶說昇州

翠竹家家色

晴川曲曲流

 

미소 짓는 월녀는 비록 없어도

고호처럼 머물다 가고 싶어라

더욱이 마음 맞는 홍정이 있어

나그네 시름을 달랠 수 있음에랴

雖無越女笑

欲作賈胡留

更有紅亭好

堪消客子愁

 

참 부럽다. 자유롭게 풀어 낼 감정과 단어가 있어서... 바쁘다.

 

 

장유(張維)는 어떻게 해서 완도까지 들린다. 전라도관찰사를 지내며 순시차 완도를 들려(行莞島中) 지은 시가 아스라히 다가온다.

 

육지가 끝나는 곳 검푸른 바다 건너가면

아슬아슬 촉도처럼 험준한 산세

한겨울 푸른 나무 울창하게 우거져서

대낮에도 햇빛을 볼 수가 없네

地盡溟波外

山如蜀道危

深冬多碧樹

亭午失陽曦

 

골짜기엔 이무기들 또아리 틀고

숲속엔 굶주린 호랑이 표범

오직 목객이 산에 살면서

혼자 가는 내 모습을 지켜 보리라

大壑龍蛇橫

窮林虎豹飢

惟應木客在

見我獨行時

 

쓸쓸한 바람 소리 귓가에 들려오고

땅속에선 어디선가 졸졸 샘물 소리

깊은 숲 뚫고 가는 한 줄기 외갈래 길

아름드리 거목들 여기저기 넘어졌네

颯颯聞天籟

淙淙響暗泉

深林一線路

大木百圍顚

 

골짜기엔 산 귀신들 휘파람 소리

잡목 숲 이따금씩 두견이도 울어대네

호신용 칼 한 자루 덜렁 차고서

연꽃 바라볼 때 해는 벌써 뉘엿뉘엿

嘯谷多山鬼

啼叢或杜鵑

防身有孤劍

落日看秋蓮

 

완도에서 이번에는 함평으로 올러가는 도중에(咸平途中) 붓을 든다.

 

이정표(里程標)도 연륜 닳아 글자 반쯤 희미한데

황모강 저 너머론 병풍과 같은 산봉우리

가을 한 달 치달린 원습(언덕과 습지) 무슨 일을 이루었나

나그네 옷 검은 먼지 흠씬 뒤집어썼을 따름

雙堠年多字半微(쌍후년다자반미)

黃茅岡外亂山圍(황모강외난산위)

一秋原隰成何事(일추원습성하사)

贏得緇塵滿客衣(영득치진만객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한창 젊은 시절에 말하기를, “장유의 문장과 덕행은 비록 성문(聖門)의 여러 제자(弟子) 서열에 두더라도 서로 백중(伯仲)이 될 만하다.”하고 그의 덕행을 추켜 세웠던 예조판서, 우의정을 지낸 인물이 어느날 장성의 객관, 여관에서 촛불에게 의지하며 밤을 지새는 모습이 아련하게 떠 오른다.

애잔하게 스러지는 저녁 뿔피리 소리

머나먼 하늘 끝 외로운 나그네 그림자

내 마음 오직 짧은 촛불이 알아줄 뿐

서로 의지하며 남은 밤 지새우네

暮角聲初歇(모각성초헐)

天涯隻影遙(천애척영요)

知心有短燭(지심유단촉)

相伴度殘宵(상반도잔소)

 

문화.오인교/ nox9109@naver.com

전라도정자詩로 만난 인물- 장유(張維) 전라도 정자시로 만난 인물 / 전라.제주정자기행  

2020. 4. 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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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nox9109/221933683314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아버지 계곡(谿谷묵소(默所) 장유(張維 1587 선조 20~ 1638 인조 16) 천문·지리·의술·병서 등에 능통했고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조선문학의 4대가로 불렸다효종의  장인이요  김장생(金長生) 문인이다

 

술을 마셨다는 선비의 글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고주망태(大醉) 장유는 산도깨비도 무섭지 않았다.

 

이슥한 풀길을 걸어서 가노라니

하늘엔 찬란한 북두성 별빛

산도깨비 어찌 감히 범접을 하랴

고주망태 읊으며 가는 사람을

夜深行草逕

星斗光離離

山鬼不敢近  

大醉吟新詩

 

그러나 그에게는 술을 마셨을 이유가 있었다. 딸이 죽은 년이 되는 날에 애비가 지은  (亡女初朞日 二首) 결국 그도 인간이기에 느껴야하는 고뇌가 처절하게 다가 온다.

 

잔설 희끗희끗 얼어붙은 얕은 땅속

누워 있는 너의 그대로 있느냐

지난해 이날 쏟았던 눈물 

 눈물도 말라붙어 다시 흐르지 않는구나

殘雪淺土凍

汝骸猶在不

前年此日淚

落盡更難流

 

눈처럼 온통 하얗게 변한 머리

마음도 재마냥 차갑게 식어갈

이토록 쇠하지는 않았으련만

슬픔에 젖다 보니 모양이 됐나 보다

鬢髮渾成雪

心情冷若灰

不應衰至此

多是爲悲哀

 

눈물도 말라붙어 다시 흐르지 않고 마음도 재마냥 차갑게 식어간다는 애비이기 이전에 인간 한계성을 드러내는 처참한 심정에서 토해내는 해후의 싯글이 너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가 전라도에서 나주목사.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그기 남긴 시를 모아본다.  

어느날 전북 순창에 있는 귀래정에 제하여 부친 (次韻寄題歸來亭) 전한다.

 

초암(草庵) 사방으로 얼굴 디민 산봉우리

아침 저녁 창으로 푸른 쏟아져 들어오네

늙어 가며 뜻대로 그윽한 거처

객이 와서 속세의 말하지 말게 하오

靑山面面遶茅庵

朝暮虛窓挹翠嵐

老去幽栖眞得計

客來塵事莫敎談

 

어떤 이가 장륙귀(藏六龜) 배우려 할까

세상 교토(狡兎) 삼굴(三窟) 파려고 덤비는

만용 보기 부끄럽소 벼슬 이미 찼는데

병든 끌고 억지로 조회 참석하다니

何人肯學龜藏六

擧世爭營兎窟三

慙愧曼容官已滿

强扶衰病趁朝參

 

이곳에 들렸을까   나주목사로 좌천되면서 재임중에 전남지방에 인연이 깊었고 전라도관찰사로 순치차 전라도를 두루 들리면서 많은 시문을 남겼다.

 

신숙주는 세조를 도와 단종을 제거하고, 집권세력이 반면 정자주인은 동생 신말주는 불사이군 충절을 택한 형제간의 다른 정치적 선택으로 장유와 동병상린(同病相隣)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발길은 동향으로 남원으로 향한다. 요천이 바라보이는 비안정(飛雁亭), 기러기가 날으는 형국의 산에서 장유의 시상이 내려 앉았다.

 

요천 남쪽을 가른 벼랑 동쪽은

높은 곳이라 사방에서 바람이 분다.

맑은 은포나루에 하얀 솜구름 뜨고 

 바위 곁에 가을 낙엽 섬돌에 붉다.

蓼川南畔斷崖東 

高處堪招四面風 

銀浦晴雲當襤白

石林霜葉映階紅

 

남원의 젓줄 요천, 남쪽에 금암봉이 있고 이곳 높은 곳에 정자가 우뚝 섰다.

트인 남원 들녘, 시원한 바람 사방에서 불어온다.

맑게 나루터에 높이 구름이 솜뭉치를 던져 놓은 같구나."

라고 표현에서 이곳의 풍광을 함축해 주고 있다.

 

나그네에게는 비는 눈물이다그래서 유독 비에 대한 시는 애절하다. 전북 전북 김제시 금구 객관. 여관에서 비가 지은 (金溝客館雨中作) 이와 다를 없다.

 

내리는 저쪽엔 겹의 청산

집인지 담머리에 고개 내민 붉은 살구

남에서 왔다 북으로 가는 나그네

봄바람에 하늘 애가 끊어지네

雨外靑山幾疊

墻頭紅杏誰家

遠客南來北去

春風腸斷天涯

 

그의 일생도 고단한 나날이었다.

나그네의 회포(客懷)에서 그가 처한 신세타령이 슬프다.

 

땅에 가득 떨어진 반은 진흙

밤사이 개울에 풍우 몰아쳤음이라

망향대에 올라 서니 괜히 슬퍼지는 마음

구름과 나무 꿈속에서도 헤매노라

滿地殘花半作泥

夜來風雨暗前溪

望鄕臺上空惆悵

雲樹千重夢也O

사진=전남 완도군 청해진 누각

송시열(宋時烈)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의리가 정자(程子) 주자를 주로 했으므로 그와 더불어 비교할만한 이가 없다.”라고 칭송했던 장유가 당시에 아주 먼곳인 진도 섬에 바다를 대하며 절경의 자리에 있는 벽파정(碧波亭)에서 만리장성에 날아 기러기를 맞는다.

 

바다 햇빛 뉘엿뉘엿 돌아오는 그림자

정경 애다로워 벽파정을 서성이네

멀리 자라 삼산 모습 가물가물

만리장성 바람 소리 기러기 타고 몰려 오네

海日斜明帆影回

碧波亭上爲徘徊

三山雲物鰲邊迥

萬里風聲雁背來

 

하늘가 햇발 가없는 바다 쏘아대고

구름 멀리론 점점이 나뉜 푸른 섬들

저녁 나절 급해지는 창합풍 소리 

 엎치락 뒤치락 바다 물결 벽파정에 부서지네

天邊日脚射滄溟

雲際遙分島嶼靑

閶闔風聲來急

浪花翻倒碧波亭

 

뒤죽박죽 엉킨 구름 폭풍에 말려 올라가고

저녁 바다 순식간에 은빛 산맥 일으키네

모두가 변덕떠는 비렴의 소치

양후 혼자 어떻게 교만 부리리

亂雲顚倒卷狂

轉眄銀山滾晚潮 

儘被飛廉軒輕得 

陽侯未可自虛驕

 

그의 시어처럼 교만을 부리지 않고 무리하지 않아 편한함을 갖게한다. 장유는 시에 대해 "시는 천기(天機)이니, 소리를 통해서 울고 색택(色澤) 통해서 빛나 청탁(淸濁) 아속(雅俗) 자연에서 나온다.

 

소리와 색택은 사람이 만들 있지만 천기의 오묘함은 사람이 만들어 없다. 따라서 만약 시가 소리와 색택뿐이라면 몽매한 사람도 팽택(彭澤 도잠(陶潛)) 운율을 가장할 있을 것이요 악착스러운 필부도 청련(靑蓮 이백(李白) 구절을 모방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본래의 작품에 근사하면 좋은 시가 되고 그저 본뜬 것에 그치면 참람된 짓이 된다. 무슨 까닭인가?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정의한다.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부음(訃音)으로 18차례나 사직소를 올려 끝내 사퇴하며 정승에 응하지 않았던 성질하는 인물이었다.

<p>將赴錦州次白洲韻 行藏兩難得 閉戶客長摩 別後誰相門 天涯應爾思 浮雲無定態 直道幾多岐 歲暮江南路 看梅欲寄詩 행세 하기도 어렵고 숨어살기도 어려운 닫고 있으니 오래도록 손님이 없네</p><p> 이별 후에 누가 서로 물을까 하늘 끝에서 응당히 그대를 생각하리</p><p> 구름은 정한 모양이 없고 곧은 길에 어찌 사잇길이 많으리오</p><p> 해가 저무는 강남 길에서 매화를 보니 시를 지어 부치고 싶네</p>

조선 선비들이 전라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들렸던 , 화순 적벽을 조망하는 협선루(挾仙樓) 그는 오르고는 창주와 적벽은 아득한 생각을 자아낸다.

 

나그네 발길로 높은 누각에 올라보니

창주와 적벽은 아득한 생각을 자아낸다.

소동파(蘇仙) 한번 가고 소식조차 없는데

명월청풍만이 만고의 가을을 지키는구나.

客子來登ㅇㅇ樓

滄洲赤壁添愁逈

蘇仙一去無消息

明月淸風萬古秋

 

여기서 소선(蘇仙) 동파(東坡)소식을 신선에 비유하여 멋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협선루는 동복의 객관 동쪽에 있었던 누대이며 1587(선조 20)  현감 이부윤(金富倫)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동복면 독상리에 유지만 남아 있다   그는 남으로 내려가  승주(昇州)에서 다시 시를 만난다.

 

호남 지방 오십 고을 가운데

청절한 고장으론 승주(昇州) 꼽히나니

집집마다 푸른 대숲 둘러서 있고

구비구비 맑은 시내 흘러내리네

湖南五十郡

淸絶說昇州

翠竹家家色

晴川曲曲流

 

미소 짓는 월녀 비록 없어도

고호처럼 머물다 가고 싶어라

더욱이 마음 맞는 홍정 있어

나그네 시름을 달랠 있음에랴

雖無越女笑

欲作賈胡留

更有紅亭好

堪消客子愁

 

부럽다. 자유롭게 풀어 감정과 단어가 있어서... 바쁘다.

 

 

장유(張維) 어떻게 해서 완도까지 들린다전라도관찰사를 지내며 순시차 완도를 들려(行莞島中) 지은 시가 아스라히 다가온다.

 

육지가 끝나는 검푸른 바다 건너가면

아슬아슬 촉도처럼 험준한 산세

한겨울 푸른 나무 울창하게 우거져서

대낮에도 햇빛을 수가 없네

地盡溟波外

山如蜀道危 

深冬多碧樹 

亭午失陽曦 

 

골짜기엔 이무기들 또아리 틀고

숲속엔 굶주린 호랑이 표범

오직 목객 산에 살면서

혼자 가는 모습을 지켜 보리라

大壑龍蛇橫

窮林虎豹飢

惟應木客在

見我獨行時

 

쓸쓸한 바람 소리 귓가에 들려오고 

 땅속에선 어디선가 졸졸 샘물 소리

깊은 뚫고 가는 줄기 외갈래

아름드리 거목들 여기저기 넘어졌네

颯颯聞天籟 

淙淙響暗泉 

深林一線路 

大木百圍顚

 

골짜기엔 귀신들 휘파람 소리

잡목 이따금씩 두견이도 울어대네

호신용 자루 덜렁 차고서

연꽃 바라볼 해는 벌써 뉘엿뉘엿  

嘯谷多山鬼 

啼叢或杜鵑 

防身有孤劍 

落日看秋蓮

 

완도에서 이번에는 함평으로 올러가는 도중에(咸平途中) 붓을 든다.

이정표(里程標) 연륜 닳아 글자 반쯤 희미한데 

 황모강 너머론 병풍과 같은 산봉우리

가을 치달린 원습(언덕과 습지) 무슨 일을 이루었나

나그네 검은 먼지 흠씬 뒤집어썼을 따름

雙堠年多字半微 

黃茅岡外亂山圍

 一秋原隰成何事

贏得緇塵滿客衣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한창 젊은 시절에 말하기를, “장유의 문장과 덕행은 비록 성문(聖門) 여러 제자(弟子) 서열에 두더라도 서로 백중(伯仲) 만하다.”하고 그의 덕행을 추켜 세웠던 예조판서, 우의정을 지낸 인물이 어느날 장성의 객관, 여관에서 촛불에게 의지하며 밤을 지새는 모습이 아련하게 오른다.

 

애잔하게 스러지는 저녁 뿔피리 소리

머나먼 하늘 외로운 나그네 그림자

마음 오직 짧은 촛불이 알아줄

서로 의지하며 남은 지새우네

暮角聲初歇

天涯隻影遙

知心有短燭

相伴度殘宵

 

문화.오인교nox9109@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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