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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충정공 부조묘(충북 금왕읍 유촌리)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06.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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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 5세조 충정공 휘인옥 종가 세거지인 충북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마을을 순례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길은 참으로 감회가 새롭고 기쁜 마음으로 다녀올 수가 있었고, 충정공 21대 종손이신 성도님과 차대종손인 범희씨를 만나고 돌아와 어느때보다도 흐뭇한 순례길이 된거 같습니다. 따사로운 봄향기가 물씬 풍기는 고곳의 유적지는 감회에 젖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유포삼거리 자린고비 조륵선생 유래비 표지석

▲유포리/유촌리/삼봉리 삼리접경지에 세워져 있는 12세조 진사공 휘경유허비

천장의 굴비를 형상화한 유래비

 

 

자린고비는 천하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구두쇠를 가리키는데,그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시대에 충북 음성에 살았던 '조륵' 이란 인물이다.

 

그는 장독대에 빠진 날파리 다리에 묻은 간장이 아깝다며 단양 장벽루 까지 쫒아가 잡아서 다리에 묻은 간장을 쪽!빨아 먹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남의 집 머슴을 살고 삯짐을 져서 먹고 살았다.손발이 닳도록 열심히 일하던 어느날,그는 길가에서 계란한 알을 주웠다. 그계란에서 암평아리가 나왔고,그것이 자라 암탉이 되어 낳는 알마다 다 잘되어 그의 재산은 날이 갈수록 불어났다. 그뒤로 하는 일마다 손만 대면 잘 되어 만석지기 부자가 되었는데, 그는 재산이 많아 질수록 지독한구두쇠 짓을 했다.

 

-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있는 자린고비 조륵의 이야기다 -

 

그 뒤 조륵은 어떻게 되었을까?어느날 밤, 조륵에게 하인이 급히 달려와 고하기를 족제비 한 마리가

닭 한마리를 물고 갔다고 보고 했는데, 이 때, 조륵은, 하늘이 준 복이

다하고 이제 장차 재물이 빠져 나가려는 징조라고 생각했다.

 

'재물이 바져 나가려는 것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니,

이제부터 돈을 제대로 잘 써야 겠구나' 하고는 다음날 부터 그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고, 불우한 이들를 돕고

홍수를 대비해 뚝을 쌓았으며, 논 밭을 가난한 농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영호남 지방에 흉년이 들자 곳간의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하자,영조는 벼슬을 내리고 그 공을 기려 '자인고비'(慈仁考碑 , 어질고 자애로움을 기리는 비)를 세워 주었다.

 

그가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 아들에게 유산하나 남겨 주지 아니하고 "네 복은 네가 받아서 살아라" 라고  말했다.

 

조륵의 고향 음성에서는 1998년 절약정신과 봉사정신을 기리기위해

 '자린고비상'을 제정했다.

 

 

 

 자린고비란 말이 해학적인 풍자로 인색한 구두쇠를 지칭하지만

 

 사실은 이웃을 돕고 봉사하며 헌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사공유허비와 나란히 선 자린고비 유래비

유촌리 부락 중앙에 있는 마을회관

15세조 한원군휘유안 효자정려비

15세조 한원군휘유안 효자정려비문

조선개국공신 충정공휘인옥 부조묘 전경

부조묘외삼문

봄철쭉꽃이 활짝 피여난 부조묘 풍광

부조묘 재실에 살림을 하고 계신 충정공 21대종손 성도님

당뇨로 인한 건강이 많이 않 좋으신 종손어른

부조묘사당

딱다구리가 기둥에 구멍을 내여 파인 모습 :방지책이 있어야 겠습니다.

부조묘 현판

기골이 장대하신 21대 종손 성도님 

충정공 조부모님 불천위(좌:조부님, 우:조모님신위)

충정공 조부님 불천위를 모신 감실

충정공 부조묘 제향 홀기

축문

부조묘제향 분방기 첩

제향을 적은분방기

부조묘 주위의 봄날 풍광

부조묘에서 내려다본 유촌리 마을

주말을 이용하여 위토에 농사를 짖는 22대 차종손 범희님

12세조 모계공휘강 문집(모계집)

모계집과 1920년대 충정공파보

가운데로 효자정려문과 산밑으로 부조묘가 보임

동편에서 진입하여 바라본 유촌리마을

유촌리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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