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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3년 조덕린(趙德鄰) 서간(書簡)
기본정보
분류작성주체작성지역작성시기형태사항소장정보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
조덕린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
1713 |
크기: 27.7 X 31.8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
안내정보
1713년 조덕린(趙德鄰) 서간(書簡)
1713년 6월 9일에 조덕린(趙德鄰)(1658~1737)이 쓴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위문편지를 받았지만 그간 상장례(喪葬禮)를 치르는 일에 바쁘고 병에 걸리는 등의 이유로 답장을 제때 보내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측의 안부를 물었다. 지난겨울부터 이번 봄여름을 거치며 상을 거듭 당해 우환에 시달려 병까지 생기게 된 근황을 알리고, 그래서 상대측의 상가에 조문하러 가지 못했음을 알렸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713년 6월 9일, 玉川 趙德鄰이 안부를 주고받고, 喪을 치르느라 병이 들고 바빠서 상대측 喪制에 참석하지 못한 점을 알리기 위해 쓴 편지
1713년 6월 9일에 玉川 趙德鄰(1658~1737)이 안부를 주고받고, 喪을 치르느라 병이 들고 바빠서 상대측 喪制에 참석하지 못한 점을 알리기 위해 쓴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慰狀을 받은 것을 감사해 하며, 그간 장례를 치르는 일에 바쁘고 병에 걸리는 등의 이유로 답장을 제때 보내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측 여러분들의 안부를 묻고, 상대 맏형의 병이 호전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상대에게 外除(탈상) 날이 가까워졌고, 한창 더운 시절이기에 건강에 유의하라고 당부하였다. 자신의 경우는 지난겨울부터 이번 봄여름을 거치며 喪變을 거듭 당해 우환에 시달리다 보니 병까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상대측 喪制에 참석 못했다고 하였고, 게다가 이제는 날이 더워지고 손자의 병이 마음에 걸려 더더욱 갈 수 없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편지 전해 줄 인편이 없다가 이번에 倉吏가 가는 편으로 이 편지를 부친다고 하였다.
이 편지는 피봉이 누락되어 내용만으로는 수취인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다. 단지 수취인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며 형제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덕린은 1711년 黃海都事에 부임하였다가 이듬해 체차되어 고향으로 돌아왔고, 이후 1716년 忠淸都事에 부임하였는데, 이 편지가 발급된 해인 1713년은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영양 注谷에 머물고 있을 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발급인 조덕린은 본관은 漢陽, 자는 宅仁, 호는 玉川이며, 부친은 頵이다. 1677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1691년 문과에 급제하여 侍講院說書, 弘文館修撰, 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 당쟁의 폐해와 노론의 득세에 관해 논한 10여조를 상소했다가 鍾城에 유배되었고, 1727년 丁未換局 때 풀려났다. 1728년 李麟佐의 난 때 嶺南號召使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난이 평정된 뒤 同副承旨에 올랐다. 1736년에는 1725년의 상소와 연관되어 노론의 탄핵을 받았고, 1737년 金聖鐸의 葛庵 李玄逸 伸救上疏에 연루되어 濟州로 유배 가던 도중에 康津에서 사망했다. 그는 사후 1738년에 사면되었고, 1750년, 1756년 두 차례 관작이 회복되었다가 환수되는 과정을 거쳐 1788년에 완전히 신원되었지만, 1803년에 다시 관작이 추탈되었다. 결국 1899년에 와서야 특명으로 復官되었다. 저서로는 『玉川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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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13년 조덕린(趙德鄰) 서간(書簡)
前承
惠覆。仍賜慰語。迨猶不能忘。第
奔走葬埋。過後又緣賤疾緜綴。尙
闕焉修敬。日深逋逭之懼。炎暑比酷。
伏不審
僉候各安謐否。聞
伯氏兄所苦。比復脫然。殊慰馳念。外
除比爾。時又方熱。節宣將息。萬望
加護。得孫瘡患。想已完合否。德鄰。前冬春
夏來喪變荐臻。憂虞熏心。經紀往
來。身病加谻。愁惱慘悴。忽忽無生意。近
纔少減。而脚攣齒疼。尙未全已。每念
僉喪制告終。理宜趨慰。孫兒之病。日夜關
情。而欲起未能。奄及隆熱。默坐嗟恨。廢
然自憐。山居無便。又絶憑問。今
因倉吏。封付數字。揮汗撥昏。
不能多作書。未得各致謝意。
幸乞恕照。不宣謹狀。
癸巳 六月 九日。期服人 趙德鄰 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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