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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1792년 정조가 짓고 쓴 <忠武公李舜臣致祭文>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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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정조가 짓고 쓴 <忠武公李舜臣致祭文>◑

1792년 정조가 짓고 쓴<忠武公李舜臣致祭文>

大亂之肇 큰 난리가 일어날 즈음이면

人爲時出 인걸이 때에 맞추어 일어나니

晟奠唐社 이성(李晟)은 당나라 사직을 안정시켰고

葛復漢室 제갈량(諸葛亮)은 한나라 왕실을 회복했습니다.

後千百載 천백 년이 지난 뒤

合爲一人 이 두 사람이 합쳐 한 사람이 되어

以靖島氛 섬 오랑캐의 재앙을 다스렸으니

時在壬辰 때는 임진년이었습니다.

 

이 글은 1792년 8월 정조가 이순신을 제사지내며 지은 제문이다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날 즈음 그 어려움을 감당할 인물이 나는데이순신이 그와 같은 충신이자 명장이라는 것이다이성(李晟)은 당나라 주자(朱泚)의 난을 평정해 서울 장안을 수복했고제갈량(諸葛亮)은 삼국시대 한나라 충신인데 이 두 사람이 이룬일을 이순신 한 사람이 성취했다고 극찬한 것이다.

 

정조는1792년 직접 제문을 지어 전라도 강진현 탄보묘(誕報廟,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충무사길 86-31(지번)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700) 관리를 보내 진린명나라 부총관 등자룡(鄧子龍)과 이순신을 함께 제사지내게 했다탄보묘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도독인 진린(陳璘)이 이곳에 있으면서 중국 사람들이 전쟁의 신으로 섬기는 관우(關羽)의 신력을 빌리고자 세운 사당이다탄보묘가 위치한 강진현은 지금의 완도군 고금면이다고금도는 정유재란 때 충무공이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겨 설치했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로 매장했던 곳이다정조가 직접 짓고 글씨를 쓴 제문의 원고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돼 있다큰 글씨로 호방하게 쓰고 수정한 이 원고는 말년 정조의 필력을 느낄 수 있다.

 

이순신에 대한 정조의 추앙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다. 1794년 정조는 이순신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지어 충청도 아산에 있는 그의 무덤에 세우게 했다이 신도비의 윗부분에 상충정무지비(尙忠旌武之碑)’라는 전액(篆額)을 써서 새기게 했다그런데 정작 정조는 이 신도비명의 글씨를 쓰지 않았다정조는 충신의 비문은 마땅히 충신의 글자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 당나라의 충신이었던 안진경(顔眞卿)의 글씨를 집자해 새겼다국왕이 짓고 글씨를 써서 비를 세우는 것은죽은 이에게 영예이지만 이순신에게만큼은 그보다 더한 영광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다충신이라는 명예를 얻어도 부끄럽지 않고 그에 대해 아무리 포상을 해도 과하지 않는 이가 바로 이순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국왕들은 이순신을 현창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시행했다그럼에도 정조가 다시 이순신을 추앙하는 사업을 펼친 것은 끝없이 추앙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위의 제문을 지을 당시 정조는 이순신의 유사(遺事)를 읽고 있었다이순신과 관련된 글들이 책으로 편찬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정조는 글을 모아 편찬할 것을 명하며 자신의 내탕고(內帑庫재물을 보태게 했다마침내 1795년 11월 이순신이 지은 시문과 난중일기는 물론 그와 관련 기록들을 엮어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8책을 완성했다그해 12월 정조는 경상도 통영의 충렬사(忠烈祀)에 관리를 보내 다시 제사를 지내며 이충무공전서』 한 부를 보관하게 했다이때 지은 제문에서 이순신의 <진중음(陣中吟)>을 따와 바다와 산에 맹서하니초목도 그 이름을 알았네(誓海盟山草木知名)’라고 칭송했다.

 

弘齋全書 卷23 祭文李提督祠侑祭文忠武公李舜臣致祭文

請量南溟帝恩盈盈纖塵不動戰艦自橫孰仗天威永奠東土膺期而出曰有忠武昔者豕突列郡解瓦灑涕擊楫卿時士雅一鼓殲酋賀酒將釃單車來代卿時望諸拾燼裹創再按淮浙壁壘增彩卿時光弼鐘簴不改士女相慶天生爲社卿時李晟偕我王師夬擣巢穴忍說五丈嗚呼諸葛維牙之阡楸柏靑靑篆首紀常吁嗟武寧卿有所受萬曆天子旗章璽票鎭伏南紀都督舊渥上相新榮隰苓之思亦酹於卿

남쪽 바다를 헤아리건대 請量南溟

천자의 은혜가 가득하니 帝恩盈盈

작은 티끌도 움직이지 않고 纖塵不動

전함이 절로 종횡하였네 戰艦自橫

누가 천위에 의지하여 孰仗天威

길이 동토를 안정되게 하였던가 永奠東土

시기에 응하여 나온 이로 膺期而出

충무공이 있었다네 曰有忠武

옛날 왜적이 돌연히 침범함에 昔者豕突

여러 군읍이 와해되자 列郡解瓦

눈물을 뿌리고 노를 쳤으니 灑涕擊楫

경은 당시의 사아였네 卿時士雅

한 번 북을 울려 적장을 쓰러뜨림에 一鼓殲酋

하례하는 술을 장차 거르려 했는데 賀酒將釃

단거가 와서 대신하니 單車來代

경은 당시의 망저군(望諸君)이었네 卿時望諸

불탄 나머지를 수습하고 상처를 싸매고 拾燼裹創

다시 회절을 어루만져 再按淮浙

성벽에 광채가 더해지니 壁壘增彩

경은 당시의 이광필이었네 卿時光弼

종거가 바뀌지 않았기에 鐘簴不改

남녀 백성들이 서로 경하하여 士女相慶

하늘이 사직을 위하여 낳았다고 하니 天生爲社

경은 당시의 이성이었네 卿時李晟

명 나라 원병과 더불어 偕我王師

왜적의 소굴을 치려고 했는데 夬擣巢穴

차마 오장원(五丈原)을 말할 것인가 忍說五丈

제갈량(諸葛亮)의 죽음이 슬프도다 嗚呼諸葛

아산(牙山)의 언덕에 維牙之阡

묘소의 추백이 푸르디 푸른데 楸柏靑靑

공적이 비석에 새겨지고 태상(太常)에 기록되니 篆首紀常

아아 무공으로 나라를 편안케 하였네 吁嗟武寧

경이 하사받은 바가 있어 卿有所受

만력 연간 명 나라 천자께서 萬曆天子

기장과 새서(璽書)를 내려 주셨으니 旗章璽票

남쪽 변방을 진압한 때문이었네 鎭伏南紀

도독은 옛적의 두터운 은총이고 都督舊渥

영의정에 추증됨은 새 영광이니 上相新榮

습령의 생각에 隰苓之思

또한 경에게 잔을 드리네 亦酹於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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