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2월 13일에 안동 하회에 사는 류시화(1901~?)가 4종형 류시연과 함께 비용을 마련하여 선조 월오헌 류일춘(1724~1810)의 『월오헌문집』을 간행하여 영양 주곡의 한양 조씨 옥천종택에 부치면서 동봉한 편지이다. 직접 찾아뵙고 문집을 전해야 하지만 초췌함이 심하여 우편으로 부치니, 수령한 이후 답장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漢陽趙氏兵叅公派世譜』,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963년 12월 13일에 안동 하회에 사는 柳時華가 사종형 柳時衍과 함께 비용을 마련하여 선조 月梧軒 柳一春의 문집인 『월오헌문집』을 간행한 이후 영양 주곡의 한양 조씨 옥천종택에 문집을 보내면서 동봉한 편지
1963년 12월 13일에 안동 하회에 사는 柳時華(1901~?)가 사종형 柳時衍과 함께 비용을 마련하여 선조 月梧軒 柳一春(1724~1810)의 문집인 『월오헌문집』을 간행한 이후 영양 주곡의 한양 조씨 옥천종택에 문집을 보내면서 동봉한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 부분에는 인사를 나누었다. 상대방과 본인은 친척이지만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은 후생의 소원함으로 인한 결과로 한탄스럽다고 했다. 이어 12월에 상대방의 기거는 평안하시고 문내 老少의 절도도 두루 평온한지 물으면서 매우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본인은 예전처럼 용렬하게 지낸다는 간단한 안부를 전한 다음, 풍산류씨 겸암찰방공파 20세인 월오헌 류의목이 저술한 글이 적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분탕을 겪어 남아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다고 하면서 선조의 아름다운 글과 덕행이 민몰되어 증명할 수 없을까 두려워 문집으로 엮었다고 했다. 초봄에 사종형 時衍씨와 비용을 마련하여 인쇄를 넘겨 올 가을에 공정이 끝났다고 했다. 마땅히 상대방을 찾아뵙고 드려야 하나 초췌함이 날로 심하여 뜻처럼 할 수 없어 우편으로 부친다고 했다. 수령 후에 답장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편지를 쓴 柳時華(1901~?)는 풍산류씨 겸암찰방공파 26세로 배우자는 퇴계 이황 후손이다. 편지에 나오는 류시연(1894~1964)은 류시화보다 7살 연상으로 문집의 간행에 앞장섰다. 풍산 류씨와 한양 조씨는 세의가 있는데, 특히 류일춘의 여동생은 영양 주촌의 한양 조씨 趙錫孝에게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