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KBS 역사스페셜 –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 – 또 하나의 전쟁 / KBS 20120628 방송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3. 1. 2.
반응형

KBS 역사스페셜 –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 – 또 하나의 전쟁 / KBS 20120628 방송

KBS역사저널 그날구독자 71.3만명구독6.1천공유저장

 

조회수 440,964회 최초 공개: 2022. 6. 6.

◼︎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 1950년 12월, 압록강을 눈앞에 둔 국군과 연합군이 다시 퇴각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전주에 전투경찰이 창설된다. 이들의 임무는 전선의 사수가 아닌 내륙의 빨치산 토벌이다. 25,000명에 이르는 빨치산 토벌을 위해 태백산지구, 지리산지구, 운문사지구, 철도기동대 전투경찰 사령부가 생기고 이 중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사령부 산하 18대대를 차일혁 대장이 맡게 된다. 그리고 그는 ‘전장기록’을 통해 전투경찰의 창설부터 마지막 빨치산 토벌까지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 토벌대장과 빨치산 외팔이 대장의 편지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18대대에 전해진 두 번째 임무는 남한 유일의 발전소인 칠보발전소를 사수하는 것이었다. 당시 아군들은 칠보발전소에 갇힌 채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칠보발전소 주변의 빨치산은 2,500명. 하지만 18대대는 105명에 불과했다. 차일혁 대장의 기지 덕분에 전투는 토벌대의 기적적 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난 뒤 빨치산 대장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양쪽이 합의해 칠보발전소 파괴를 막고 단순부역자 등 비무장인원을 내려보낼테니 선처해 달라는 것이었다. 과연 차일혁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 이데올로기 전쟁은 비극으로 치닫고... 산 지형지물을 이용해 요새화했던 빨치산과의 전투는 전투경찰이 창설되고도 5년을 더 끌었을만큼 끈질겼다. 처음에는 양측 모두 양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은 광기로 치달았고 ‘전투’라는 명분과 ‘사상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 학살이 이어졌다. 빨치산에게 가족이 희생당한 18대대 김용운 중대장이 보복을 위해 고향으로 자진 출동해 빨치산의 가족들을 몰살시킨 사건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보도되지 않았던 이 사건은 차일혁 대장의 기록 속에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다.

 

◼︎ 빨치산 두목의 시신을 거둔 토벌대장 빨치산 토벌 막바지에 빨치산 두목이었던 이현상이 사살되자 정부는 서울에서 이현상의 시신을 전시한다. 하지만 전시가 끝나자 이현상의 시신은 친인척들조차 인수하려 하지 않았다. 차일혁대장은 이를 거두어 섬진강가에서 화장시킨다. -차일혁의 전장기록 中- ‘...이현상을 죽였다해서 금방 이 땅에 평화가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동족끼리 왜 피를 흘리며 싸웠던가를 밝힐 때 이 땅에 평화가 깃들 겁니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이 전쟁은 어쩔 수 없는 동족상잔이 아니겠습니까.’

 

신역사스페셜 106회 –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 또 하나의 전쟁 (2012.6.28.) http://history.kbs.co.kr/

 

 

KBS 역사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KBS

history.kbs.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