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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人문화유적❀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경북 영양 한양조씨의 충절(忠節) 조씨 가문 전체가 의병에 참가하기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by 晛溪亭 斗井軒 陽溪 2022. 3. 4.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경북 영양 한양조씨의 충절(忠節) 조씨 가문 전체가 의병에 참가하기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특별취재팀 21-06-22 19:12

[경북신문=특별취재팀]

임진왜란 때 가문 전체가 의병에 참가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례가 6월 의병의 달을 보내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매년 6월1일이 되면 대구 망우공원에 세워진 충의단에서 의병을 기리기 위해 실시해 오던 추모행사가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2년째 중단돼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임진왜란(1592-1598년)은 우리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엄청난 민족적 수난으로 기록되고 있다. 국가적 위기를 한 가문이 총궐기해 구국운동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한양조씨 가문은 영남에서 최초로 의병이 일어나 나라를 구하는 데 참가했다. 영남은 왜적의 침략 길목에 위치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또한 의병도 영남에서 선도적으로 봉기해 국난극복에 앞장섰다.
  이에 의병장 곽재우 장군 후손을 비롯한 한양조씨 의병 후손과 영남의병 후손들이 뜻을 모아 영남이 중심지였던 대구 망우공원에 충의사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임란호국 '영남충의단'을 건립하고 영남의병 315위 위패를 봉안해 매년 6월1일 의병의날 제향을 올려 위국충절을 기리고 있다.
  충의단에 봉안된 의사들 중에 마을 전체가 의병에 참가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군과 싸워 혁혁한 공을 세운 가문은 영양의 한양조씨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곽재우 장군의 서신을 받은 조광의(51세)는 맏집 조카 조검(23세) 조임(20세)과 아들 조건(23세) 조전(17세)을 거느리고 서둘러 준비를 해 긴긴 행렬을 이루며 포산에 도착, 곽재우 장군 휘하에서 참전, 화왕산 전투에서 선봉장이 돼 크게 전과를 올렸다.
  이때 조검은 선친으로 물려받은 재산 쌀 오백 섬, 기마 수십 필, 가신 40명을 보내 힘을 보탰다.
  그 공로로 조광의는 판결사, 조검은 선무원종 2등공신의 녹훈을 받았다. 아울러 조임이 남긴 시 '남정(南征)'은 임진왜란 때의 기행시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학계에서 평가받고 있다.
  그 후 조검(趙儉)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고령으로 참전치 못함을 한탄하고 아우 조임(趙任)과 함께 뒤뜰에 단을 쌓고 나라와 임금의 안녕을 빌었다니 그분들의 애국충절은 나이가 들어서도 가히 변함이 없었음이라 그때 쌓았던 단은 없어졌으나 공(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그 근처에 세운 비(碑)와 비각이 있다.
  이들의 공적은 '숭정처사수월조공검축천단비'에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영양 일월 도계리 한양조씨 영양입향 향조 조원의 종택


  특히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다섯 분의 위폐가 대구 망우당공원 내에 '임난호국영남충의단'에 봉안됐으니 실로 한 가문의 명운을 건 애국충절이라 할 수 있다.
  한양조씨는 기묘사화의 화를 피해 한양에서 낙남한 조운종(趙云從:靜庵의 三從祖父)의 증손인 조원(趙源)이 1535년에 영양에 정착하면서 세거하게 됐다.

 

↑↑망우공원 임란 추모탑


  그들은 정암 선생의 뜻을 받들어 충효를 가문의 제일 가치로 실천해 오던 중 1592년(선조1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원(趙源)의 둘째 아들 조광의(趙光義)가 자질(子姪, 맏집조카儉과 任, 아들 健과 佺)을 거느리고 곽재우(郭再祐) 장군 의진에 참여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더구나 조원의 장남 광인(光仁)은 일찍 사망해 맏조카는 주손임에도 불구하고 절손의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병으로 참전한다는 것은 그 당시 사회적 환경에서는 엄청난 애국심으로 무장하지 않고는 도저히 실행키 어려운 일이라 할 것이다.

↑↑영양읍 상원리 수월의 축천단비 


  평소 이분들의 애국심과 인품을 들어오던 곽재우 장군은 조검(趙儉)에게 함께 참전해 주기를 청하는 서신을 보냈으니 그 때 주고받은 서신이 '수월일고(水月逸稿):조선 중기의 학자 趙儉(1570-1664)의 시문집'에 남아 있고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水月逸稿序

比觀世人。見人文稿之帙臣者。便以爲多少。則小之曰是惡足以集爲。不復致審於一言一事揔是實。初不在於集之多少何歟。其見小也。今見水月趙公稿詩八書四祭文三遺戒一。是誠少耳。然讀之。其詩則或意寄深遠。或音韻激越。發於德行之蘊而寓以尊攘之義。槪可見也。其書則無非致敬於先祀。效忠於國難。而至於遺戒一篇。志氣偉然。死而後已。又可見矣。公性至孝。七歲丁內外艱。守制如成人。終三年食素。事祖母色養備至。冬月祖母思江魚。扣冰泣。魚自冰坼處出。壬難與弟知樞公任。從郭忠翼於火旺。贊畫輸運多勞著。丙子聞南漢被圍。老而不能赴急。不御酒肉。不遑寢處。堂北築小壇。中夜沐浴禱曰願天廓淸國難。亟回鑾輿。祝已痛哭。大風雨不廢。鄕人名其壇曰祝天。後仍立石壇上以表之。其銘卽吾王考所撰也。伊其事行之大。得於天稟者然。而考其爲學大處。以小學一書。自少至老。爲隨身之具。是又皆本之古人嘉言善行。而爲終身之學者也。其事如此。故其言如此。如此者方可謂一言一事總是實。是豈巨麗其帙。榮華其言而無所實者。比而同之哉。公竟隱淪以終。朝廷不之知。一命未及。及其身後數百年。旌褒之典。又不見施焉。其子孫之體先意。不容人力。又可敬也。英之士林將以是卷繡諸梓。其八代孫彥斌遠來屬疇睦丁乙。請一語寘其顚。不佞固非知言者。逡巡不敢當。則督以先故。誼有所不可已。遂略加籤標。而謹題之如此。

《國譯 水月逸稿》는 조선 중기의 학자 趙儉의 시문집을 국역한 것이다. 저자의 遺集은 사후 후손이 보관해 오다 정조 연간에 화재로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이후 저자의 8세손 彦斌 등이 저자의 작품을 모으고, 행장, 묘갈명 등과 저자 관련기록을 합하여 2권1책의 목판으로 1871년에 柳疇睦의 서문을 받아 《수월일고》라고 제명하여 간행하였다. 이후 2002년에 저자의 11세손 基昌의 주도로 간행된 것이 이 문집이다. 《국역 수월일고》의 구성 내용을 보면, 사진자료와 간행사, 해제, 서문에 이어 권1에는 저자의 한시 7제 8수, 서간 4편, 잡저 1편, 제문 3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부록으로, 저자의 遺事, 行狀, 傳, 墓碣銘과 병자호란 때 저자가 단을 쌓고 나라와 임금의 안녕을 빌었다는 祝天壇 碑銘, 上梁文과 祝天壇歌, 저자의 학행을 기리기 위해 사후에 건립한 水月軒의 記文, 후손들이 쓴 祭文과 輓詞, 저자의 墓祭 齋舍인 忠孝齋에 題詠한 후인들의 시, 저자의 시에 차운한 타인의 시 등과 발문 그리고 끝으로 영인한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의 작품이 워낙 소략하여 저자의 면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으나 시는 은둔과 憂國忠君, 청과 일본의 침입에 悲憤慷慨하는 내용이며 서간문은 의병활동과 집안사람들에게 충효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잡저 遺戒는 일종의 유언으로 저자의 謙德과 충효심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목차]

화보(畵報)

간행사(刊行辭)

해제(解題)

수월일고서(水月逸稿序)

수월일고 제1권

[시(詩)]

수월유거 즉사(水月幽居卽事)

또又

'남한산성에서 강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聞南漢講和 憤吟一律

사의동 즉사思義卽事

나만산 만갑의 시에 차운함次羅晩山萬甲

정성지의 시에 차운함次鄭性之

박태로의 시에 차운함次朴台老

입춘날에 우연히 읊음立春偶吟

[서(書)]

곽망우당 재우에게 보내는 답서答郭忘憂堂再祐

곽망우당의 원 편지를 붙임附原書

여러 일족에게 보냄與諸族

아우 자중 임에게 보내는 답서答舍弟子重任

자중에게 보내는 편지與子重

[잡저(雜著)]

[유계(遺戒)]

[제문(祭文)]

종제 여강 건을 애도하는 제문祭從弟汝剛健文

종제 여수 전을 애도하는 제문祭從弟汝壽佺文

사위 권서방 극상을 애도하는 제문[祭權婿克常文]

[수월일고 제2권 부록(附錄)]

유사(遺事)-종(從) 5대손 술도(述道)

지ㆍ발 (識ㆍ跋)-조수인(趙秀仁) 외 4인

행장(行狀)-종5대손 술도(述道)

발(跋)-이병원(李秉遠)

전 傳-심계석(沈啓錫)

묘갈명(墓碣銘)-이시명(李時明)

발(跋)-종5대손 술도(述道)

축천단 비명(祝天壇碑銘) 〔幷序] 류심춘(柳尋春)

축천단비각 상량문(祝天壇碑閣上梁文)-이휘재(李彙載)

유허비[遺墟碑]-한치응(韓致應)

후서[後敍]-종7대손 성복(星復)

수월헌 기(水月軒記)-이돈우(李敦禹)

제문(祭文)무덤을 옮길 때, 임오년[遷厝時 壬午] 방후손(傍後孫) 칭도(秤道) 외 3인

또[又]-종5대손 상섭(常燮)ㆍ호신(虎臣)

또[又]-방후손(傍後孫) 성복(星復)

또[又]-방후손(傍後孫) 홍복(弘復)

또[又]-방후손(傍後孫) 언방(彥邦)

또 다시 옮길 때, 을사년[又 再遷時 乙巳]-방후손 연복(淵復) 외 3인

또[又]-6대손 거락(居洛)

만사(輓詞)-류정엽(柳廷燁)

또[又]-권조(權照)

또[又]-종6대손 언신(彥臣)

병풍 족자에 씀[題屛簇]-강박(姜樸)

축천단가(祝天壇歌)-강세륜(姜世綸)

충효재 제영(忠孝齋題詠)-현손(玄孫) 희숙(希叔)

또[又]-이급(李級)

또[又]-종5대손 운도(運道)

또[又]-성손(性孫) 술도(述道)

또[又]-이귀성(李龜星)

또[又]-방후손(傍後孫) 거협(居協)

또[又]-방후손 근복(根復)

또[又]-이종발(李宗發)

또[又]-조기영(趙基永)

또[又]-방후손 병화(秉華)

또[又]-방후손 거신(居信)

또[又]-조석귀(趙錫龜)

또[又]-방후손(傍後孫) 성복(星復)

또[又]-정지정(鄭之貞)

또[又]-권성(權晟)

또[又]-조가교(趙可敎)

또[又]-조관인(趙觀人)

또[又]-허학(許嶨)

입춘시(立春詩)의 운(韻)에 차운함[次立春韻]-김기헌(金騏獻)

유거시(幽居詩)에 차운(次韻)함[次幽居韻]-이지발(李志發)

또[又]-구관희(具觀喜)

또[又]-김진우(金鎭宇)

또[又]-이휘재(李彙載)

분음(憤吟)의 시에 차운함[次憤吟韻]-방후손(傍後孫) 언유(彦儒)

또[又]-심영석(沈英錫)

또[又]-이귀성(李龜星)

또[又]-방후손(傍後孫) 연복(淵復)

또[又]-서도 아울러 붙임-[又倂序]-김진우(金鎭宇)

또[又]-구관희(具觀喜)

또[又]-오정섭(吳正燮)

또[又]-족후손(族後孫) 언휘(彦彙)

또[又]-족후손(族後孫) 병확(秉確)

또[又]-족후손(族後孫) 관용(觀容)

유집 고성문(遺集告成文)-후손 장복(章復)외 4인

발문〔跋〕

종8대손-언교(彥敎)

족후손-승기(承基)

8대손-언시(彥蓍)

8대손-언빈(彥斌)

국역판 발(國譯版跋)-11대손 기완(基完)

국역판 후지(國譯版後識) 족후손(族後孫) 동걸(東杰)

 

↑↑곽재우장군과 주고 받은 서신

●서(書)

◎곽망우당 재우에게 보내는 답서答郭忘憂堂再祐

 

◆ 곽재우 장군 서신 요약/원문 사진 참조
  나라에 불행이 있어 더러운 섬 오랑캐가 제멋대로 날뛰니 이는 참으로 국가 존망의 시기입니다.(중략) 아 ! 슬프옵니다.
  바야흐로 국가가 창이(瘡痍)한 때를 당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지키고 진 앞에서 싸워 국가와 시종(始終)을 함께 할 이가 또 몇 사람이 있겠습니까? 적이 듣자옵건데 집사의 형제께서 바닷가에 은거하면서(중략) 바야흐로 의병을 모집하는 의논이 있었다 하니 힘을 얻게 됩니다(중략) 오직 바라건데 즉일로 포산(苞山)에 이르러 함께 의리를 이루는 것이 하찮은 이 사람의 바라는 바이고 못나고 둔한 이 사람을 채찍질해 주시면 재우(再祐)가 은혜를 받는 것이 큽니다.

↑↑곽재우장군과 주고 받은 서신수록집

 

◆ 조검의 답신
  나라의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뜻밖에 귀한(貴翰)이 먼저 왔기에 봉함을 뜯어 공경히 읽으니 글자 하나 읽을 적마다 눈물이 백 방울 떨어졌습니다(중략) 집안의 자산과 개인의 저축을 다 털어내어 오직 쌀 오백 섬, 기마 수십 필, 가신 40명 만으로 오는 28일에 포산(苞山:현풍현의 옛 이름)에 도착하여 막하께 나아가 뵈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초초(草草)한 제구(諸具)가 떠벌리고 떨치기에 부족한 것이 한스럽습니다(중략) 바라건데 더욱 충의(忠義)를 증가하여 국가의 바램에 부응해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망우공원 임란의사 위패를 모신 곳

 

  곽재우 장군과 조검(趙儉)이 주고받은 서신은 '수월일고(水月逸稿):조선 중기의 학자 趙儉(1570-1664)의 시문집'에 남아 있다.

특별취재팀   kua348@naver.com

[임란호국영남 충의단에 모신 315위(位)의 성씨별 현황]
*곽씨 18분. *권씨가 11분. *금씨 3분/ *김씨 33분(김해 6분, 고령 6분, 상산 5분, 일선 3분, 경주 2분, 청도 2분, 김녕 2분, 영산, 영양, 안동, 선산, 창원,서흥, 강릉 김씨가 각각1분씩)/*남씨 2분/ 노씨 3분/*도씨 2분/*류씨 9분/*마씨 3분/ *문씨 1분/ *박씨 23분/ *배씨 2분/ *백씨 4분/  *변씨 2분/ *서씨 5분/ *성씨 4분/ *손씨 9분/ *송씨 7분/ *신씨 2분/ *심씨 1분/  *안씨 3분/ *양씨 3분/ *여씨 2분/ *유씨 1분/ *오씨 6분/ *우씨 2분/ *윤씨 1분/*이씨 62분(영천이씨 7분, 청안7분, 성산6분, 재령6분, 함안5분, 경주5분, 고성4분, 벽진3분, 예안3분, 여주2분, 인천2분, 흥양2분, 성주2분, 경주양월,덕산,양산,덕수,전주,진성,연안,철성이씨등이 각각1분씩)/ *임씨 1분/ *장씨 3분/ *전씨 5분/ *제씨 3분/ *조씨 14분/ *채씨 4분/*최씨 10분/ *한씨 2분/ *허씨 1분/ *홍씨 4분/ *황씨 1분 이상 315위 분들이 모셔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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